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6화 (6/200)

제6화

지금은 해가 지고 어두워진 저녁 시간.

봄날의 햇살 여관에서 짐을 풀고 쉬던 셋은, 퇴근 후 찾아온 한스와 함께 식사하는 중이었다.

“저한테는 헌터만큼 최적인 직업이 없어요. 아저씨도 아시겠지만, 전 어릴 적부터 사냥만 하면서 자라 왔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리고 지금 돈과 명예, 둘 다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직업이기도 하고요.”

헌터.

대륙 각지에 무작위로 생겨난 포탈 안에 사는 마기에 오염된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을 일컫는 단어다.

기존 대륙의 몬스터들보다 몇 배는 더 강한 놈들을 상대하려면 보통 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헌터들은 현재 대륙의 어딜 가더라도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여기 틸란 성 영주도 헌터 출신이었죠?”

“어, 아는구나? 맞아. 지금 영주가 조프리 백작인데,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왕실이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작위를 내려준 거로 유명해.”

방금 한스가 말한 조프리 백작 같은 경우가 작은 나라에서는 허다하다. 헌터 출신 귀족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소리다.

지금 엘도르 대륙은, 마기에 오염된 몬스터들만 때려잡을 수 있으면 천민 출신이라도 단번에 인생 역전이 가능한 시기다.

“그래, 뭐 한번 해봐라. 마을에서 제일 힘 좋기로 유명했던 너라면 헌터로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추천서 한 장 써주실 수 있나요?”

“응? 이 자식, 그래서 나 밥 사주겠다고 한 거였냐?”

“앗, 들켰다. 큭큭큭.”

소리 죽여 웃는 로한의 모습에 눈에 쌍심지를 켜던 한스는 이내 다시 사람 좋게 웃었다.

“하하하, 알았다. 내일 일어나자마자 바로 경비실 가서 작성해 줄게.”

“감사합니다, 아저씨.”

“어유, 내가 더 고맙지 뭘. 이름 한 번 팔아서 이런 아름다운 미인과 마주 보면서 밥을 먹을 수 있다면야….”

“루시아 누나 집이 동문 쪽에 있었죠?”

“야야야! 농담이야, 농담! 제발 앉아!”

한스는 일어나려는 로한을 다급히 막았다. 그 모습에 식사 자리는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그런데 위험하지 않겠니?”

이 질문은 비올라의 것이었다.

“괜찮아요. 어제 저녁에 보셨잖아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저, 생각보다 굉장히 강해요.”

확신에 찬 로한의 얼굴을 보니 비올라도 더 할 말이 없었다.

어젯밤, 혼자서 20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을 너무나도 가볍게 때려잡던 로한의 모습이 또다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비올라는 이번에는 아린을 돌아보았다.

“아린이, 너도 설마….”

너도 헌터 할 거니? 라는 뒷말이 생략된 질문이었다.

아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계속 어머니 곁에 있을래요.”

“그래, 그래. 잘 생각했다.”

비올라는 한시름 놓은 표정이 되었다. 만약 아린도 헌터가 되겠다고 대답했으면 그녀의 걱정은 두 배가 되었을 것이다.

비올라를 향해 생글생글 웃던 아린은 곧 로한과 시선을 마주쳤고, 로한은 통신으로 아린한테 부탁했다.

[앞으로 나 없을 때도 어머니를 잘 부탁할게.]

[걱정 마세요, 오빠.]

아린도 통신으로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아린은, 싸우는 것보다 집사나 비서 일 쪽에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휴머노이드다.

그녀 입장에서도 로한이 외부 일을 담당하고, 자신이 집안일을 담당하는 편이 훨씬 편했다.

지구에서 10년 동안이나 그렇게 지내왔고 말이다.

한 시간 뒤.

로한 일행의 식사 자리는 어느새 술자리로 바뀌어 있었다.

“크~!”

한스가 맥주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러는 그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로한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믿을 수가 없구만. 30년 넘게 살아오던 마을이 그런 참상을 겪다니….”

“…….”

“나중에 시간 나면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 묘비에 라일리꽃이라도 하나씩 두고 와야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한스는 다시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설마 내 고향 마을도 그 꼴을 겪을 줄이야…. 그거 알아? 최근에 비슷한 일을 겪은 곳이 몇 군데 더 있어.”

“우리 마을까지 합해서 총 다섯 곳이죠.”

로한의 대답에 한스의 눈이 커졌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오면서 소문으로 들었어요.”

로한은 대충 둘러댔다. 과거로 회귀했기 때문에 알고 있다는 솔직한 대답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다섯 마을 전부 한 집단이 벌인 짓이라면서요?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주민들은 전부 다 죽여서 마을 광장에 쌓아놓는 것까지 똑같다고 들었어요.”

“맞아. 근데 아직도 범인을 찾지 못했어. 워낙 흔적을 잘 지우는 놈들이라, 추적 전문 각성자를 고용해도 결국 못 찾았다 하더라고.”

“…….”

“가뜩이나 그놈의 포탈 몬스터들 때문에 온 나라가 뒤숭숭한데, 이젠 정체도 모르는 암살 집단까지…. 나라가 망하려고 하는지 원. 에이!”

한스는 다시 맥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그의 목구멍으로 맥주가 쭉쭉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로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버몬드…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지?’

도대체 무슨 구린 짓을 하고 있길래 목격자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 걸까?

확실한 보안을 위해 목격자의 마을까지 전멸시킬 정도면 절대 좋은 의도의 일을 꾸미는 건 아닐 것이다. 애초에 버몬드가 좋은 일을 할 인간도 아니고.

‘뭔 짓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뜻대로 안 될 거다.’

어차피 버몬드에게 복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로한의 생각으로는,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로한은 아침 일찍부터 여관을 나왔다. 경비실에 들러서 한스한테 추천서를 받은 뒤, 바로 광장 반대편에 있는 헌터 길드 건물로 향했다.

건물 안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다. 방문객들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서류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 수많은 직원들의 모습이 가장 눈에 띄었다.

“안 돼!”

그때 중앙 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30대 직원이 바로 앞의 지원자한테 외치면서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추천서 없으면 지금 테스트 못 봐!”

“네? 왜요?”

“사망자가 너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어. 개나 소나 다 응시 자격 줬더니 포탈 안에서 살아 나오는 놈들이 10분의 1도 안 되는 걸 어떡해? 국왕께서 결정하신 규정이니까 토 그만 달아!”

“아, 안 되는데…. 당장 오늘 오후에 시험이라면서요.”

“지금이라도 성 돌아다니면서 추천인 만들면 되잖아! 다음!”

매몰차게 지원자를 내쫒으며 다음 참가자를 찾는 직원.

로한이 바로 그 직원에게 다가갔다.

“왜 왔어?”

그는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었다.

“헌터 시험 응시하러 왔습니다.”

“추천서.”

“여기요.”

로한이 내민 추천서를 받은 직원은 추천인의 이름부터 확인했다.

그제야 직원은 로한을 올려다보았다.

“한스? 제2 경비대 소속?”

“네.”

“그럼 네가 로한이냐?”

“네. 혹시 캠벨 님이신가요? 틸란 성 헌터 길드 행정부장이신.”

“어떻게 알았어?”

“한스 아저씨가 말씀하셨어요.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하시던데요.”

“풋! 친하긴 개뿔.”

피식 웃어버리는 캠벨.

실제로 캠벨과 한스, 둘은 따로 술도 자주 먹을 정도로 꽤 친한 사이였다.

이어지는 캠벨의 목소리는, 아까 전과 다르게 부드러워졌다.

“안 그래도 아침에 한스가 찾아와서 네 얘기를 좀 하더라. 살던 마을이 큰일을 겪었다면서?”

“네.”

“매우 유감이야. 대지의 여신께서 모두 안전하게 데려가셨을 거야.”

“…….”

“이리 와라.”

캠벨은 로한을 데리고 테이블 뒤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다른 가구는 아무것도 없었고, 오로지 마법석으로 만들어진 수정구만이 원형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캠벨이 설명했다.

“헌터 시험은 최소 준각성자여야 응시가 가능해. 준각성자가 뭔지는 알지?”

“싸울 때 마나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죠.”

“정답. 이 마나 감지 수정구는, 네 신체가 마나를 느낄 수 있는지 확인시켜 줄 거야. 이게 반응을 해야 준각성자라는 이야기지. 이제 두 손을 수정구에 갖다 대봐라.”

캠벨의 말에 따라 로한은 두 손을 수정구에 갖다 댔다.

그러자,

우우웅-!

가느다랗게 떨리는 소리가 울리면서, 수정구 전체가 하얀빛으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

캠벨의 눈이 부릅떠졌다.

빛의 세기가… 너무 밝았다!

최소 만 명 이상의 마나를 검사한 경험이 있는 캠벨조차도 이 정도 밝기는 처음이었다.

‘이건 도대체…!’

너무 놀라서 두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기까지 한 그의 귓가에,

“이제 떼도 되나요?”

라는 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캠벨은 정신을 차렸다.

“아, 그래.”

이후 들고 온 서류에 ‘응시 가능’이라는 글자를 적었다.

펜을 움직이는 동안 그는 놀란 가슴을 최대한 진정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후에 말할 때는 평상시와 똑같은 사무적인 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단 1차 테스트는 통과다. 이제 나와라.”

다시 원래 책상 앞에 앉은 캠벨은 서류를 모두 작성한 뒤 마저 설명했다.

“점심 먹고, 오후 1시까지 북문 앞으로 와. 거기서 다른 응시자들과 다 함께 실기 시험장으로 이동할 거야.”

설명을 모두 들은 로한은 캠벨에게 인사하고 헌터 길드를 빠져나왔다.

로한이 북문에 도착한 시간은 약속 시각보다 10분 빠른 12시 50분.

백 명이 훌쩍 넘는 남성들이 그곳에 몰려 있는 게 보였다. 전부 헌터 시험에 응시하는 자들이었다.

“헌터 시험에 응시하는 자는 이리 와서 이름을 대라!”

일행들 앞쪽의 벤치에 올라서서 크게 외치는 중년의 남성. 응시자들의 통솔자로 보이는 그는, 로한이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헌터 길드장이군. 이름이 베론이었나.’

15년 전 기억을 되짚으면서 그는 베론에게 다가갔다.

“이름.”

“로한입니다.”

베론이 흘끗 로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참가자 중 로한이라는 자를 주목하십시오. 지금까지 검사했던 사람 중 가장 마나 수정구가 밝게 빛났던 사람입니다.”

아까 길드 건물에서 출발하기 전, 행정부장 캠벨이 언급했던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좋아. 통과.”

그가 들고 있는 서류에 적혀 있는 로한의 이름에 체크 표시를 하던 그때.

“길드장님! 오셨습니다!”

뒤편에서 베론을 부르는 외침이 들려왔다.

헌터 길드 직원으로 보이는 그가, 손가락으로 저 멀리 가리켰다.

사병들이 호위하고 있는 고급스러운 마차가 천천히 일행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차의 문에 그려져 있는 문양을 본 순간, 모두가 웅성거렸다.

“록버튼 백작 가문의 문양이다!”

“여기 영주잖아?”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 이동하던 마차는, 베론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호위병이 마차 문을 열자, 그곳에서 16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모두가 매우 놀랐다.

“피터슨이다!”

“조프리 백작의 장남이야!”

“헌터 시험을 본다는 소문이 진짜였어?”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베론에게로 향하는 피터슨.

로한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래. 저놈도 같이 시험을 봤었지.’

피터슨 록버튼.

틸란 성 영주의 장남이자, 차기 가주가 될 젊은 청년의 이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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