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로한 역시 통신으로 대답했다.
[마기에 오염된 몬스터들이야.]
[마기요? 어디서요?]
[포탈 안에서.]
[네?]
아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포탈이라고? 그렇다면 이 대륙에도 데르툴 행성과 연결된 포탈이 있다는 말인가?
아린은 좀 더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취익!”
“먹잇감이다!”
“크롸라라!”
오크들이 곧바로 침을 흘리며 그들에게 전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로한이 육성으로 말했다.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넌 어머니를 지키고 있어.”
“네, 오빠.”
이후 로한 역시 오크들을 향해 마주 달려가기 시작했다.
비올라는 기겁했다.
“안 된다! 아들아!”
지금 그녀의 눈에 비친 아들의 모습은, 오크들에게 자살하러 가는 것처럼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로한이 마을 내에서 가장 건장하고 힘이 좋다 하더라도 그건 인간들끼리 비교했을 때의 얘기지, 저 눈앞의 거대한 오크들과 비교할 수준은 절대 아닐 텐데…!
하지만 그녀의 걱정은 금세 기우가 되었다.
뻐버버벅!
“꾸에엑!”
“꿰엑!”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픽픽 쓰러지기 시작한 오크들.
그걸 본 비올라는,
“…어?”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멍청한 소리를 내었다.
큰 충격을 받은 그녀가 순간 현실을 못 받아들이고 있을 때, 로한은 벌써 10마리가 넘는 오크들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뻑! 뻑! 빡!
정확히 한 대당 한 마리씩.
로한의 주먹에 턱을 맞은 오크들은 전부 머리뼈가 완전히 박살 난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손가락 하나 움직이질 못했다.
5초 만에 벌써 절반 이상의 오크들이 죽은 상황.
하지만 남은 오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취이익!”
“죽어라, 인간!”
로한의 무위를 똑똑히 봤음에도 앞뒤 안 가리고 전력으로 달려드는 남은 오크들.
그들의 눈은 온통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마기에 오염된 탓이었다.
‘포탈 안의 몬스터들은 이게 문제라니까.’
일반적인 몬스터들과는 달리 마기에 오염된 몬스터는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동족은 물론, 설사 자신의 팔다리가 잘리더라도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적을 잡아먹기 위해 이빨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결론은, 다 죽여야 전투가 끝난다는 거다.
‘빨리 끝내자.’
로한은 달려오는 오크들에게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 시각, 지켜보던 비올라는.
“…….”
놀라 벌어진 입을 아까부터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보는 광경이 현실이 아니라 꿈인가 싶었다.
내 아들이, 로한이… 저렇게 강했다고?
“말도 안 돼….”
취익!
“……!”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비올라의 온몸이 굳었다.
그쪽을 돌아본 순간,
“꺄아악!”
비올라는 크게 비명을 질렀다.
반대편 수풀에서, 또 열 마리 이상의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취익! 인간이다!”
“잡아먹자!”
오크들은 입맛을 다시며 빠르게 비올라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첫 번째 목표는, 비올라보다 몇 발짝 앞에 서 있던 아린이었다.
가장 먼저 달려온 오크가 들고 있던 나무 몽둥이를 그녀에게 크게 휘둘렀다.
“아린아!”
비올라는 절규했다.
곧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질 아린의 모습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뻐억!
1초 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흰자를 드러내며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
비올라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쓰러진 건 아린이 아닌, 오크였던 것이다.
뭐지?
아니, 그보다 왜 쓰러진 거지?
그녀의 눈으로 보기엔, 아린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오크 혼자 안 보이는 무언가에 얻어맞아 뒤로 고꾸라진 것처럼 보였다.
비올라의 평범한 시력으로는 최첨단 휴머노이드, 아린의 주먹 속도를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다.
“내 어머니한테 접근 금지입니다.”
말하면서 방금 오크가 떨어뜨린 몽둥이를 주워든 아린.
“모두 다시 돌아가세요!”
외치면서 그녀는 달려드는 오크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뻑! 뻑! 뻑! 뻑! 뻑!
“꾸에엑~!”
“끄에에에~!”
아, 4번 타자 아린! 연타석 홈런을 계속해서 때리고 있습니다! 벌써 오크 팀과의 스코어가 10 대 0까지 벌어집니다!
몽둥이에 맞은 오크들이 아름다운 밤하늘을 수놓는 모습은, 35년 넘게 살아온 비올라도 생전 처음 보는 진풍경이었다.
한참 후, 저 멀리서 오크들이 땅으로 추락하는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떨어진 높이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 이것도 치워야지.”
아린은 처음 처치한 오크 시체의 다리를 잡은 뒤, 크게 휘둘러 저 멀리 던져버렸다.
본인의 몸집보다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오크를 한 손으로 너무도 쉽게 몇 백 미터 이상의 먼 곳으로 던져버리는 모습.
덕분에 더 충격받아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비올라를 향해, 아린은 해맑은 얼굴로 달려가 폭 안겼다.
“다 처치했어요, 어머니!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
“그… 그래….”
아린의 등을 쓰다듬는 비올라의 손길이 아까 전과는 달리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입꼬리 끝처럼 말이다.
* * *
- 마기에 오염된 몬스터 :
일명 포탈 몬스터라 불린다.
10년 전부터 엘도르 대륙 곳곳에 무작위로 생성된 포탈 안에 서식한다. 마기에 오염된 그들은 이성이 없으며, 오로지 피와 살육, 포식만을 원한다.
그들은 포탈 내의 미지의 세계에 서식하지만, 때때로 포탈 밖으로 뛰쳐나와 사람들을 잡아먹기도 한다.
10년 동안 포탈에서 나온 몬스터들의 수가 너무 많아, 이제 대륙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현재 대륙의 모든 국가가 이것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정도로 정리하면 되겠네. 자, 받아.]
로한은 작성한 메모장 파일을 아린에게 전달했다.
[…그렇구나. 혹시 여기 적힌 미지의 세계가 데르툴 행성인가요?]
[그건 아니었어.]
로한은 10년 전 엘도르 대륙에 있었을 때를 떠올려보며 대답을 이었다.
[어느 정도 문명이 갖춰져 있었던 데르툴 행성과는 달리, 여기서 들어갈 수 있는 포탈 내 대륙은 어떤 문명도 없었어. 그냥… 야생 그 자체? 몬스터들의 천국이라고 표현하면 정확하겠군.]
[그래요? 그런데 왜 포탈 몬스터들한테 데르툴과 똑같은 기운이 느껴지죠?]
[그것까지는. 어쩌면, 그 마기라는 것이 데르툴뿐 아니라, 다른 대륙에서도 흔하게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고.]
[훔~]
[뭐, 다시 들어가 보면 알겠지.]
로한은 계속 통신으로 대화했다.
[틸란 성에 가면, 영지 내에서 관리하는 포탈이 몇 개 있어. 거긴 헌터 신분증만 있으면 거긴 돈 안 내도 들어갈 수 있어.]
[영지에서 직접 포탈을 관리한다고요?]
[안 그러면 포탈 몬스터들이 계속 튀어나와서 주민들을 잡아먹을 테니까. 영지의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관리하는 경우지.]
[아~]
둘이 거기까지 통신을 했을 때였다.
“로한아! 저기 틸란 성 아니니?”
비올라가 정면을 가리키며 반가운 얼굴로 외쳤다.
“네, 맞아요.”
대답하는 로한의 시야에, 희미하게나마 길게 늘어서 있는 하얀 성벽들이 보였다.
때는 마을에서 떠난 지 이틀째.
저녁 해가 지기 전인 오후 5시 무렵에, 셋은 목적지인 틸란 성에 도착했다.
성문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경비병이 셋을 막았다.
“정지! 신분증을 제출… 어? 로한 아니냐?”
“한스 아저씨!”
한스라 불린 경비병이 말에서 뛰어내린 로한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게 얼마 만이냐! 아이고, 비올라 씨도 오랜만입니다~”
“저도요.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요즘 신혼이라 너무 행복합니다. 하하하!”
사람 좋게 웃는 한스.
이웃 주민이었던 한스는 3년 전 틸란 성에 사는 루시아라는 아가씨를 만나 마을을 떠났다.
“그런데 두 분 다 여긴 어쩐 일…?”
“아, 사연이 있어서요. 우리 마을이… 아저씨?”
“…….”
대답 없이 멍한 얼굴로 뒤를 바라보는 한스의 모습에 로한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한스의 시선은 아린의 얼굴에 꽂혀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한스의 입에서 침이 한 방울 떨어졌다.
“아저씨.”
“…….”
“한스 아저씨!”
“어, 어어? 쓰읍. 아이고, 웬 침이 이렇게….”
버럭 외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입가의 침을 닦는 한스.
로한이 그를 째려보며 한마디 했다.
“루시아 누나한테 다 이릅니다?”
“아, 아냐 아냐! 제발 봐줘! 한 번만! 그러면 나 집에 못 들어간다고~!”
애걸복걸하는 한스의 모습에 로한은 이내 피식 웃었다.
“이해는 합니다. 제 동생이 좀 많이 예쁘긴 하죠.”
“동생? 너 동생 없잖아?”
“사연이 좀 있어서 서로 남매 사이 하기로 했어요. 인사해, 아린아. 여긴 나랑 같은 마을에 살던 한스 아저씨.”
아린은 말에서 내려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린이라고 합니다.”
“아, 예예… 하, 한스라고 합니다.”
“편하게 부르셔요! 제 오빠에게 아저씨면 저한테도 아저씨니까요.”
“어? 어어… 그, 그래도 될까? 하, 하하하….”
무슨 소개팅하냐?
말을 더듬으며 웃는 한스는 이마에 땀까지 삐질 흘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미녀에 사족을 못 쓰는 평범한 남성의 모습이었다.
이 상태로는 대화가 안 되겠다고 판단한 로한이 말했다.
“저희 광장 쪽에 있는 ‘봄날의 햇살’ 여관에 묵을 거거든요. 조금 이따가 거기서 같이 저녁 먹어요. 할 얘기도 좀 있고요.”
“어어, 그래그래!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갈게!”
‘꼭 갈게!’라고 외칠 때 아린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던 한스. 왠지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찾아올 것 같은 기세였다.
로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몰았다.
안으로 들어선 셋은, 틸란 성의 가장 번화가인 대로를 따라 중심 부근까지 걸어갔다.
“이곳에 묵죠.”
로한이 가리키는 여관을 본 비올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기 말이니?”
딱 봐도, 지금까지 본 모든 건물들 중 가장 높고 화려한 여관이었다.
아무리 비올라가 마을 밖에 잘 나간 적이 없는 시골 여인이라지만, 이렇게 좋은 건물은 무조건 숙박비가 비싸다는 건 알고 있다.
“너무 비쌀 것 같은데…. 그냥 저렴한 여관으로 가지 그러니? 난 괜찮으니….”
“아니에요. 저 돈 많아요.”
로한은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던졌다 받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묵직하게 들려오는 것이, 안 봐도 돈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 그건 어디서 났니?”
“죽은 암살자 놈들이 돈을 많이 갖고 있더라고요.”
“아….”
실제로 암살자들의 옷을 뒤져서 모은 돈만 합쳐도 금화 10개가 가볍게 넘었다.
분명, 이 돈들은 그동안 몰살한 마을에서 강탈한 것들일 터다. 그러니 이렇게 많이 모였겠지.
하지만 굳이 그 사실까지는 로한은 말하지 않았다. 마음 약한 어머니께서는 또 크게 상처를 받아 한동안 우울해하실 게 뻔하니까.
* * *
잠시 후, 저녁 식사 시간.
“헌터가 되겠다고?”
“네.”
한스의 물음에 로한이 대답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