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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3화 (3/200)

제3화

이미 괴한들은 모두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유일한 각성자가 쓰러진 순간, 그들이 로한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었다.

그들의 이인자인 부대장이 외쳤다.

“목표는 모두 이뤘으니 퇴각한다!”

동시에 괴한들은 바로 로한의 반대편인 북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사불란하게 한 몸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만 봐도 훈련이 엄청나게 잘된 정예병들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로한은 그들을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쪽으로 도망가면 안 되지.”

괴한들이 퇴각하는 쪽은 어머니가 숨어 계신 곳이다. 물론 아린이 지키고 있긴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위험해질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일단 그는 통신으로 아린에게 경고했다.

[그쪽으로 지금 ESF탄 쏜다.]

[네! 보호막 가동할게요!]

대답을 들은 로한은 오른손을 펴서 괴한들이 도망치는 방향으로 조준했다.

[에너지원을 일렉트릭 쇼크 필드탄(Electric Shock Field Bomb)으로 변환합니다.]

[변환이 완료되었습니다.]

[ESF탄을 발사합니다.]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응축된 푸른색 전자 에너지탄이 로한의 손바닥에서 발사되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ESF탄은, 도망치는 적들의 머리 위에서 폭발했다.

콰르르르릉!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강력한 전격 자기장이 괴한 무리를 전부 뒤덮었다.

도망치던 병사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모두 건전지가 빠진 로봇처럼 바닥에 힘없이 고꾸라졌다.

결과는 전원 사망.

로한의 청력 장치에 들려오는 숨소리는 딱 두 명. 저 멀리 약수터에 숨어 있는 어머니와 눈앞에 기절해 있는 각성자뿐이었다.

단 한 방에, 전투는 끝이 났다.

로한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ESF탄에 의해 모두 박살이 난 마을 북쪽 건물들과 근처 나무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훨씬 더 위력이 세졌군.’

이 정도면 힘 조절 실패다. 괴한들만 모두 죽일 수 있는 에너지원보다 과하게 많은 양을 사용했다.

닭 잡으려고 소 잡는 칼 쓴 격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상황이다.

‘에드먼의 말이 맞았어.’

새로운 에너지원 레기스트륨을 응축시켜 만든 ESF탄의 위력이, 기존 에너지원인 렐리기륨으로 만든 것보다 위력도 두 배 이상 강해졌고, 범위 역시 그만큼 넓어졌다.

‘그러면 소화탄도 더 효과가 좋겠지?’

로한은 다시 오른손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동시에 머릿속에 울리는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

[에너지원을 화염 소화탄(Fire Extinguishing Bomb)으로 변환합니다.]

[변환이 완료되었습니다.]

[화염 소화탄을 발사합니다.]

로한의 손바닥에서 하얀색의 화염 소화탄이 발사되었고, 하늘 높은 곳에서 터졌다. 그러자 엄청난 양의 소화 분말이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효과는 대단했다.

거세게 불타던 건물 위 화염들이 빠른 속도로 꺼지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 건물은 몇 초 만에 완전히 소화된 것이 로한의 시야에 들어왔다.

‘세 번 정도만 더 쏘면 마을의 모든 불을 끌 수 있겠어.’

속으로 생각하면서 로한은 다시 한번 화염 소화탄을 발사했다.

마을 불을 모두 끈 뒤에야 로한은 약수터 쪽으로 이동했다.

약수터 입구 앞에서, 그는 어머니와 15년 만의 감동적인 재회를 할 수 있었다.

“어머니…!”

로한의 목소리 끝이 절로 떨려왔다.

15년 만에 그의 어머니, 비올라의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격하게 끓어오른 탓이었다.

“아들아!”

비올라 역시 격하게 반응했다.

달려와 로한을 포옹한 비올라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오면서 괴한들 못 봤니?”

“네, 괜찮아요. 밖의 상황도 모두 정리되었으니, 이제 안심해도 돼요.”

“저, 정말이니?”

“네. 가보니까 괴한들도 모두 죽어 있더라고요. 일단 저희는 살았어요.”

“아,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아르미나 여신님. 정말 감사합니다….”

안도한 비올라는 순간 긴장이 풀렸는지, 로한의 품에서 결국 흐느끼기 시작했다.

로한은 그런 비올라를 따스하게 끌어안았다.

‘어머니….’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인가.

그 냉혹한 사이보그 전사, 로한이 지금 이 순간 완전히 무장 해제가 되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아린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입가에 따스한 미소를 그린 상태로 말이다.

‘정말 다행이다….’

주인님의 행복은, 곧 그녀의 행복이었다.

* * *

안타깝게도, 비올라를 제외하고 살아남은 마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마을 내는 물론, 마을 밖으로 도망치던 주민들 역시 모두 괴한의 추격을 뿌리치지 못하고 사살되었다.

혹시나 하고 로한과 아린이 적외선 스캔 시스템을 활성화해 마을 주변에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한 시간만 이른 과거로 회귀했어도 모두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광장에 쌓여 있는 시체들을 보면서 로한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흐흑…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어어어엉~!”

옆에서 통곡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더더욱 가슴이 아파져 왔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즐겁게 웃고 떠들던 이웃들이 한순간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렸다.

마음 약한 어머니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30분 정도 뒤.

마을의 광장에는 시체 더미가 사라지고 대신 수많은 비석이 생겨났다. 로한이 마을 사람 모두의 무덤을 만든 것이다.

“다 만들었어요, 어머니.”

“어머?”

로한의 말에 비올라는 슬픈 와중에도 깜짝 놀랐다.

“벌써 이 무덤들을 다 만들었니? 세상에….”

“제가 힘이 좀 좋아서요.”

로한은 대충 둘러댔다.

사실 3분 안에 끝내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러면 어머니가 너무 놀라실까 봐 최대한 시간을 끌며 일한 게 30분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아린이 나타났다.

“말씀하신 라일리꽃들 따왔어요, 어머님.”

“고마워요….”

아린에게 꽃을 받은 비올라는 이후 비석 하나하나마다 무릎을 꿇고 마을 사람들의 명복을 빌기 시작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 님이시여, 부디 억울하게 이승을 떠난 이 가엾은 영혼들에게 평안한 안식을 내려주소서….”

기도가 끝날 때마다 비석 앞에 새하얀 라일리꽃을 하나씩 내려놓는 비올라.

로한이 아린한테 통신으로 설명했다.

[여기서는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 때 저 라일리꽃을 써.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눈물로 만들어진 꽃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거든.]

[아….]

뒤쪽에 서서 어머니의 기도를 지켜보던 로한과 아린.

비석이 워낙 많아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어머니 챙겨드리고 있어. 난 심문 좀 하고 올게.]

[네.]

로한은 몸을 돌려 마을 구석의 창고로 향했다. 마을에 있는 건물 중 그나마 제일 덜 타서, 인질을 몰래 가둬놓기 좋은 장소였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 로한은, 중앙에 세워진 두꺼운 기둥으로 향했다.

아까 전 기절했던 괴한들의 대장이 거기에 꽁꽁 묶여 있었다.

“정신이 드나 보군.”

로한의 말에 대장은 대답할 수 없었다. 두꺼운 재갈이 물려 있는 상태였으니까.

로한은 대장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너를 심문할 거다.”

“큭.”

그 말에 재갈이 물린 상태에서도 비웃는 대장.

마치 ‘어림도 없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강렬한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을 본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쉽게 말은 안 하겠지.”

상대는 각성자다. 보통 인간보다 전투력은 물론, 정신력도 최소 몇 배는 뛰어나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단순한 고문으로는 입을 열지 않는다.

실제로, 지구에서도 데르툴족에게 잡혀간 각성자는 기밀을 발설하는 경우보다 혀를 깨물고 자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총사령관인 강동혁이 직접 얘기했던 정보이니 확실할 것이다.

“그래도 이건 못 버틸 거다.”

로한은 오른손을 들어 대장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 검지를 정수리에 세우듯이 올려놓았다.

[에너지원 일부를 나르커즈(Narkoz) 약물로 변환합니다.]

[총 0.30ml의 나르커즈 약물을 생성하였습니다.]

[투약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인공지능 도우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검지에서 가느다란 주삿바늘이 튀어나와 각성자의 정수리에 꽂혔다.

그 바늘을 통해 나르커즈 약물이 모두 각성자의 두뇌 안으로 투여되었다.

“……!”

동시에 각성자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순식간에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안 돼… 정신을… 차려…야….’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버티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약이 투여된 지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그는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멍청해진 그의 눈빛을 본 로한이 입을 열었다.

“나르커즈라고, 에드먼이 개발한 지구에서 가장 독한 최면 약물이다. 심문할 때 이것보다 좋은 정신 지배 약물은 없었다.”

“…….”

“인간보다 훨씬 더 강한 정신력을 가졌다는 데르툴들도 이 약물 앞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었다. 고작 평범한 각성자 수준의 인간은 절대 못 버티지.”

로한은 각성자의 입에 물린 재갈을 벗겨내었다.

“으….”

어느새 각성자는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이런 백치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면, 완전히 나르커즈에 정신을 지배당한 상태다.

로한은 느긋하게 심문을 시작했다.

“자,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모두 진실만을 대답한다. 알겠나?”

“네….”

홀린 듯이 순순히 대답하는 각성자.

“너의 이름은 뭐지?”

“모리…스….”

“모리스. 널 이 마을로 보낸 사람은 누구지?”

“버…몬드….”

로한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지금 버몬드라고 했어?”

“네….”

“내가 알고 있는 그 버몬드 백작?”

“네에….”

대답을 들은 로한은,

“하!”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입가에 걸린 웃음기와 두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싸늘했다.

버몬드.

10년 동안 잠깐 잊고 살았던 그 이름.

로한의 철천지원수와도 같은 남자의 이름.

테르디아의 헌터로 살아가면서 매일같이 원망하고 저주했던 그 이름.

‘마을 사람들을 죽인 놈들이 그 새끼의 사병이었어?’

15년 전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를 죽인 게 그 버몬드의 짓이었다고?

로한은 다시 각성자에게 물었다.

“버몬드가 왜 너희를 여기로 보냈지? 그리고 왜 마을 사람들을 죽이라고 시켰지?”

아까보다 훨씬 차가워진 목소리에, 모리스는 술술 대답했다.

“목격자를… 죽여라…. 그리고… 목격자가… 사는… 마을 주민도… 모두… 죽이고… 태워라….”

“목격자? 목격자는 누구지?”

“이… 마을의… 촌장….”

이 마을의 촌장이라면, 헤르윈이다.

“헤르윈 할아버지가 뭘 봤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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