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1화 (1/200)

제1화

서기 3038년.

대한민국 강원도의 한 산등성이. 그 밑의 아주 깊은 지하.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포탈이 하나 존재했었다. 하지만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그 포탈은, 지금은 완전히 부서진 상태다.

바닥에 마인(魔人)들의 시체가 즐비한 이 처참한 장소에서 멀쩡하게 서 있는 이는 오직 두 명뿐이었다.

인간 한 명, 마인 한 명.

“으으…!”

마인, 샤훌리트는 이를 악물었다.

몇 년 전, 지구를 침략한 ‘마족’ 데르툴들의 마지막 남은 지배자.

일명 마왕이라 불리는 그의 모습은 처참했다.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가득했고, 그곳에서 흘러내린 검은 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그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정면의 청년을 노려보았다.

“나의… 완벽했던… 계획이…!”

그의 계획은 완벽했다.

지구에 기습적으로 다수의 워프진을 소환시킨 후, 데르툴 전사들을 일시에 투입해 순식간에 정복한다.

이 계획은 절대 실패할 수 없었다. 실제로 완전 정복까지 딱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눈앞의 저 인간 한 명 때문에!

“로한, 너만 없었어도…!”

“말이 많다.”

순간 로한의 신형이 사라졌다.

인간의 시력으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

샤훌리트가 기척을 감지했을 때 로한은 이미 얼굴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로한.

하지만,

깡!

샤훌리트의 커다란 팔에 그 공격은 가볍게 막혀 버렸다.

아무리 상태가 안 좋더라도, 데르툴족 최고 실력자 중 하나인 마왕 샤훌리트한테 이런 눈에 뻔히 보이는 공격은 아무 소용 없었다.

그때였다.

콰아앙!

공격을 막아낸 샤훌리트의 팔에서 굉음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샤훌리트.

그의 시야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왼팔이 보였다.

조금 전 폭발로 왼쪽 어깨에서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는 로한을 바라보았다.

“이 새끼, 또 자폭을…!”

이를 악무는 그의 시야에, 역시 왼쪽 팔이 없어진 로한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조금 달랐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팔이 없어진 어깻죽지 쪽에 당연히 뼈와 피로 범벅된 살점들이 보여야 정상이다.

하지만 로한의 그곳에는 다수의 기계 연결선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망할 사이보그 새끼들!”

사이보그.

뇌를 제외한 온몸이, 최첨단 기술로 무장된 기계 신체로 만들어진 존재들.

로한이 바로 그 사이보그였다.

지금 그는, 자신의 기계화된 팔을 폭발시켜서 샤훌리트의 왼팔과 함께 날려버린 것이다.

“니들만 아니었어도.”

로한은 차갑게 말했다.

“내 몸이 이 꼴이 되진 않았다.”

그라고 사이보그가 되고 싶었겠는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데르툴족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재수 없게 사지 중 한 곳이 잘리거나 회복 불가능한 중상을 입는 일이 다반사였다.

광화문 전투 때는 오른발이 잘려 나갔고, 천안시 전투에서는 왼팔이 팔꿈치 부분까지 짓이겨졌다.

부산에서는 얼굴 피부가 불타서 완전히 녹아버렸고, 그다음은 오른팔, 그다음은 오른쪽 다리….

자연 복구가 불가능한 신체 부분을 계속 하나씩 기계로 대체하다 보니, 어느 순간 뇌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기계화되어 버린 것이다.

“내 몸을 이 꼴로 만든 걸 그대로 갚아주지.”

로한은 다시금 공격 자세를 잡았다.

“나야 자폭하더라도 신체를 새로 갈아 끼우면 되지만, 넌 그게 불가능하니까.”

“……!”

샤훌리트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지금, 로한은 소위 동귀어진의 마음가짐으로 달려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공격은 굉장히 치명적일 것이다. 데르툴족이 지구인들에게 밀리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사이보그들과 휴머노이드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자폭 공격 때문이었으니까.

그리고 로한은, 지구 최강의 사이보그 전사라 불리는 사나이다.

팍!

땅을 박차며 로한은 엄청난 속도로 다시 달려들었다. 그리고,

콰아앙!

다시 한번 커다란 폭발음이 샤훌리트 쪽에서 들려왔다.

잠시 후.

폭음이 계속해서 울리던 지하 내부가 고요해졌다.

“…드디어.”

로한은 여러 감정이 섞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

“끝났다….”

그의 시야에는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나버린 샤훌리트의 처참한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피부가 강철보다 질긴 데르툴족.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마왕 샤훌리트였지만, 로한의 신체를 움직이는 현존 최강의 에너지원, 렐리기륨(relígĭrum)의 자폭 공격을 버텨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로한의 상태 역시 처참했다.

왼팔과 두 다리는 자폭으로 이미 날아가 버린 상태.

간신히 몸에 붙어 덜렁거리는 오른팔.

그나마 상체와 머리만 온전히 붙어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로한은 그런 자신의 상태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

속으로 중얼거리는 로한은, 후련해진 얼굴로 바닥에 드러누워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그의 시야를 가리는 두 개의 그림자가 생겨났다.

“괜찮나?”

장교 복장을 한 중년의 남성이 물어왔다.

로한은 대답했다.

“보면 알지 않나? 최고의 상태다.”

“늘 똑같은 대답이군.”

표정 변화 없이 그리 말하는 남성의 이름은 강동혁. 현재 대한민국 기계사단 총사령관이라는 직급을 가지고 있다.

“진짜 운 좋은 놈이네!”

이번 목소리는, 옆의 왜소한 중년한테서 나온 것이었다.

“이번에도 살았냐? 에휴, 오늘만큼은 편히 쉬나 했더니 다 글러먹었네….”

“나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가장 서럽게 울 인간은 에드먼, 너일걸?”

“큭큭큭, 눈이나 감아라. 전원 장치 끌 거니까.”

에드먼.

현존 지구 최고의 사이보그 기술 개발자라고 불리는 그가, 웃으면서 손을 뻗어 로한의 등 밑으로 집어넣었다.

동시에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보그들에게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였다.

[전원이 꺼졌습니다.]

[5초 후 모든 신체 기능이 OFF됩니다.]

[5… 4… 3… 2… 1.]

곧 로한은 의식을 잃었다.

* * *

“…….”

다시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낀 로한이 천천히 눈을 떴다.

동시에 머릿속에 울리듯 들려오는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

[안녕하세요? 새로운 사이보그 신체인 ‘로한-Final’의 인공지능 도우미입니다.]

[현재 신체의 모든 기능을 정상적으로 작동 및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신체 상태는 100%입니다.]

새로운 인공지능 도우미라…. 어쩐지 목소리도 이전과 좀 달랐다.

로한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후, 손과 발을 움직여서 감각이 느껴지는지부터 확인해 보았다.

그런 그의 귀에,

“내 최신 사이보그 기술을 모두 접목시킨 몸뚱어리다.”

라는 에드먼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쳐다보는 로한에게 에드먼은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기존 사이보그의 주 에너지 원동력인 렐리기륨을 레기스트륨으로 바꿨다.”

“…처음 듣는데.”

“내가 며칠 전에 개발한 에너지원이니 당연하지. 스페인어로 기적을 뜻하는 단어인 ‘registro’를 붙였고.”

“기적?”

“알게 될 거야. 정말 기적 같은 힘을 보여줄 테니까. 그리고 너의 신체를 구성하는 금속들도 그 레기스트륨을 고체화시켜서 제작했어. 아마 전 우주를 통틀어 이 금속보다 강한 건 없을걸?”

“오….”

감탄하는 로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드먼이 이 정도로 장담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고맙다, 에드먼. 마지막까지 신세만 지는군.”

“흥! 고맙긴! 이제 더 이상 이 짓거리 안 해도 된다 생각하니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다!”

“나 가고 나서 울지나 마라.”

“닥쳐, 새끼야.”

욕하면서도 웃는 낯을 지우지 못하는 에드먼.

그만큼 둘은 친했다. 오랜 세월 최강의 사이보그와 최고의 사이보그 기술 제작자로서 쌓아온 둘의 친분은 꽤 각별한 편이었다.

“이제 나와라.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니까.”

에드먼의 뒤를 따라 이동한 곳은, 연구실의 가장 깊은 지하에 위치한 비밀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두 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강동혁이었고, 한 명은 굉장히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그녀를 본 로한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린.”

“주인님!”

아린이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로한이 지구에서 유일하게 소유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아린은 언제나 전투 등의 외부 일로 바쁜 로한을 대신해 집사 및 비서 업무를 도맡았었다.

그리고 그녀는 로한이 유일하게 가족처럼 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너도 따라왔구나.”

“그럼요! 주인님이 가시는 데 저도 무조건 따라가야죠. 왜요? 설마 제가 따라가는 게 마음에 안 드세요?”

“아니. 오히려 엄청 든든한걸.”

대답한 로한은 아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고, 아린은 생글생글 웃었다.

그때 옆에서 에드먼이 말했다.

“아린의 신체도 너랑 똑같은 레기스트륨 소재로 새로 제작해 놨다.”

“정말?”

“그래. 이제 지능뿐만 아니라 전투력도 지구에서 제일 강한 휴머노이드야. 그래야 천하의 로한 님을 오지에서 제대로 보필할 수 있지 않겠어?”

“…고맙다, 에드먼.”

진심 어린 로한의 대답에 에드먼은 그저 씨익 웃었다.

로한은 강동혁한테도 감사해했다.

“너도 고맙다. 포탈 만드느라 고생 많았을 텐데.”

“나 말고 다른 각성자들한테 고마워해라. 이 포탈 하나 만든다고 일주일을 넘게 밤을 새웠으니까.”

“대신 전해줘. 그나저나, 정말 완성했네.”

로한은 정면의 커다란 검은 포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이 포탈 안으로 들어가면 그가 태어났던 고향, 엘도르 대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강동혁이 대답했다.

“운이 좋았다. 며칠 전에 생포했던 마지막 데르툴 마법사가 엘도르 대륙에 포탈을 만든 경험이 있던 놈이었다. 그놈을 심문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포탈은 없었다.”

“좌표는 확실한 건가?”

“엘도르 대륙은 맞지만, 나머지는 불확실하다.”

“나머지?”

“대륙의 어느 장소로, 어느 시간대에 귀환할지는 나도 모른다. 재수 없으면 바다 한가운데에 귀환할 수도 있고, 네가 살던 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과거나 먼 미래의 시간대로 귀환할 수도 있다. 아직 지구의 포탈 생성 기술이 100%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

“음….”

“이런데도 정말 갈 거냐?”

강동혁이 로한한테 물어왔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갈 필요가 있느냐? 그냥 지구에서 영웅 대접 받으면서 편하고 행복하게 살지 그러냐? 정도의 뜻이 담겨 있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로한은 대답하는 데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이제 지구는 더 이상 내가 필요 없어. 하지만 고향은 지금 내가 필요해. 언제 완벽해질지 모르는 포탈 기술의 발전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

그가 지구로 넘어오기 직전, 고향인 엘도르 대륙도 한창 전쟁 중이었다.

그때 적군의 흑마법사가 생성한 이상한 마법에 휩쓸리지만 않았어도, 로한은 아직도 자신의 모국, 테르디아를 지키기 위한 끝없는 혈투를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다시 돌아가서 테르디아를 구할 차례다.

무엇보다, 지금보다 더 포탈 기술이 발전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제 납치해서 심문할 데르툴족도 모두 죽어버린 상태니까.

“그럼 빨리 가라. 곧 포탈이 없어진다.”

강동혁은 더 붙잡지 않았다. 굳게 결심한 로한의 생각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가자, 아린.”

“네!”

로한은 아린과 함께 포탈 입구 바로 앞까지 걸어간 후, 몸을 돌려 강동혁과 에드먼에게 인사했다.

“다들 잘 지내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둘의 인사를 받은 에드먼이 외쳤다.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네 몸속 데이터 저장소 안에 여기 좌표를 저장해 놨으니까.”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큭큭큭… 어여 가라!”

이후 둘은 포탈로 걸음을 옮겼고, 우우웅~ 하고 떨리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 * *

그 시각, 엘도르 대륙의 어느 우거진 숲속.

“자, 사냥감도 잡았으니 이제 돌아가야지~!”

등에 커다란 사슴을 메고 있음에도 매우 발걸음이 가벼워 보이는 한 젊은 사내가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어머니와의 저녁 식사를 위한 사냥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주 능숙하게 숲을 계속 걸어가던 사내. 그때였다.

툭.

갑자기 바닥에 육중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가 메고 있던 사슴이 내는 소리였다.

그런데, 사슴을 메고 있던 사내는 온데간데없었다. 갑자기 이 숲속에서… 아니, 엘도르 대륙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춘 것이다.

때는, 정확히 로한과 아린이 엘도르 대륙으로 넘어온 그 타이밍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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