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275화 (275/281)

- 275 회 - 괴물

눈을 뜰 수도 없는 매캐한 연기. 기분 나쁘게 타오르고 있는 소리. 그리고 뭔가가 타들어가는 듯 한 냄새.

그것들 모두가 구역질이 날 정도로 끔찍한 현성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울렁울렁한 기분에 타들어가던 작은 쪽방과 거동이 불편해 피하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던 어머니의 음성이 떠올랐다. 얼굴에 닿은 열기가 지글지글 거리며 얼굴을 태우는 소름끼치는 느낌보다도 더 괴로운 그 날! 심장을 칼로 도려낸 듯 한 고통이 되살아나고야 말았다.

왜 어째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고 만 것인가?

그 의문을 가득 담아 현성이 매캐한 연기가 사정없이 새어 나오는 계단을 거슬러 달리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코록!”

이미 그 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건 같은 것으로 입을 가리고, 고장 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을 뚫고 거슬러 올라가는 현성은 그야말로 미친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비켜! 비켜!”

아수라장이 된 화재 현장! 그 자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현성의 존재!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처럼 정신이 없었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현성이 2층, 3층에 다다랐을 때!

이젠 눈도 뜰 수 없을 정도로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퍼엉!

그리고 다시 한 번 들려온 폭발음! 그것은 점점 더 불꽃이 번져 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 순간 짜르륵 하고 현성의 온 피부 신경을 타고 섬뜩한 느낌이 흘렀다. 매캐한 연기 때문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압박이 그의 심장을 향해 느껴졌다.

“하아… 하아…….”

구역질이 자꾸만 밀려왔다. 무섭도록 피어 오르는 연기 속 손으로 입을 막고, 어느 샌가 흐르는 식은땀과 함께 현성이 다시 4층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거의 빠져 나올 사람들은 빠져 나온 것인지 더 이상 그와 부딪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불이 난 건 4층이었던 모양이다. 제시카와 제이드의 집이 있는 4층! 그 생각에 현성이 더욱 더 마음이 초조해지는 것을 느끼며 매캐하고 역한 연기를 파고들어 계단을 올랐다. 그와 함께 후끈한 열기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집 안에서 불길이 시작되었고, 그가 들었던 첫 번째 폭발은 그 집안을 홀라당 태워 버렸던 모양이다.

방금 전에 들었던 불길은 이제 그것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버린 것일 테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가 4층의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둠과 고요만이 가득했던 복도가 이렇게 변해버릴 줄은 정말로 몰랐던 터라 현성이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린 채 인상을 구겼다.

‘제이드……! 제시카……!’

밖에 있는 사람들 중 제시카와 제이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이 화마를 뚫고 나오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성의 마음이 점차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감량 크림을 사용하는 것조차도 두려워했던 현성인지라 실제의 화재 현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압박감을 전해주고 있었다. 얼굴의 절반이 타들어 가며 새겨진 상처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넘어서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앗아갔던 지독한 기억이 새긴 상처가 심장을 피투성이로 만든 것 같았다.

“하아…… 하아…….”

불꽃 속에서 현성이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들어오긴 했으나, 이 자리는 정말 다시 보아도 끔찍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간 잊고 있었던 죄책감을 이제야 떨쳐낼 수 있다 믿었건만 ‘감히 네 녀석이?!’ 하고 화를 내는 것만 같았다.

-꾸욱…….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제이드는 이제 겨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와 다르게 그를 위해서 헌신해온 제시카도 있다. 최소한 그 두 사람 만큼은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는 안 된다.

타이틀 전을 앞두고, 그와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해도 상관이 없을런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절대로 그리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아!”

다시 한 번 현성이 숨을 내쉬고는 연기와 불꽃 속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제이드와 제시카의 집은 건물 가장 깊은 곳에 있다. 그 안쪽까지 들어가는 것도 역부족이란 생각이 들 정도 였으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콜록, 콜록!”

기침 소리를 내며 현성이 손으로 입과 코를 다시 틀어 막았다. 화재에서 정말 위험한 건 불꽃이 아니라 바로 이 연기. 그 연기가 정말로 위험한 것들이었다. 그 생각에 현성이 입술을 꽉 깨물고 더 지체 하면 구하긴 커녕 같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생각하며 그 안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온 사방은 불에 타오르고 있었고, 낙후된 소방 시절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 매캐한 연기가 거침없이 피어올랐고, 뜨거워진 공기는 그 자체로 살갗을 태우는 것 같았다. 그 속을 헤치며 현성이 제이드와 제시카의 집에 다다랐다.

“후우…!”

최대한 몸을 낮춰 숨을 정리하고는 현성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그 안 쪽에서 들려오는 제시카의 목소리! 그 연약한 목소리에 현성이 순간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입을 막았던 손을 떼내고 말았다.

다시 한 번 어린 시절이 투영되듯 머리를 스쳤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피어올랐고, 불꽃은 커튼을 타고 점차 거대해지더니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놀란 현성이 불을 끄려 아둥버둥하다 타다만 커튼 조각들이 얼굴에 떨어졌고…… 그의 얼굴에 닿은 조각들은 여린 살들을 태우며 지독한 고통을 선물해주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지독한 고통에 울부짖으며 비명을 질렀었다.

“아…….”

그리고 그 소리를 들었던 어머니가 침상에서 눈을 떴을 때. 점차 번져가던 불꽃은 거대해져 어느 샌가 벽 한 켠을 가득 채웠고…… 놀란 어머니는 ‘현성아!’ 이름을 부르며 그를 끌어 안았고, 그 속에서 피어오른 매캐한 연기에 기치을 하며 어머니가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그 날을 떠오르 게 한 제시카의 기침 소리와 가녀린 목소리! 그 소리에 현성이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고 온 힘을 다해서 닫힌 문을 몸으로 밀어 내기 시작했다.

-쿵! 쿵!

2년 간 사람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해왔던 트레이닝으로 단련된 몸이었으나 문은 좀처럼 열리질 않았다.

“으아아!”

몸이 아니라 마음이 타들어가는 듯 한 초조함 속에서 현성이 처음으로 이성을 잃고 소리를 내지르며 발길질로 문고리를 걷어 찾았다. 열어야 한다! 열여야 해! 열어야만 해!

-콰직!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아낌없이 힘이 실린 그의 발길질에 문고리가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닫혀 있던 문이 열리자 현성이 문을 열고 들어와 소리쳤다.

“제시카!”

그의 외침에 이내 거실까지 나왔다 연기에 쓰러진 듯 제시카가 기침을 하며 간신히 손을 들어 보였다.

“현, 현성! 콜록!”

그가 어떻게 여기에 온 것일까? 여기까지! 그 모습에 놀란 제시카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4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번지며 폭발을 일으켰고, 그 여파로 제이드와 제시카의 집까지 번진 듯 했다.

“제이드! 제이드!”

연기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동생의 이름을 부르짖는 그 모습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어서!”

어서 제이드를 구해야 한다! 아마 제이드는 자신의 방에 있을 터! 그의 말에 제시카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듯 눈물과 함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가 손으로 입을 막고 먼저 밖으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제시카의 상태도 걱정이 되었지만 최대한 의식이 있을 때 먼저 탈출을 해야만 했다.

그 전에 그 안까지 밀려들어오는 연기를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서 현성이 주먹으로 창문을 내리쳤다.

-와장창!

그걸 열 시간은 없었고, 다급한 마음에 창문들을 박살내다 보니 그의 손도 상처가 생겼지만 그런 고통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일 분 일초가 급한 시점이었다. 어느 샌가 현성의 정신도 몽롱해져 오는 것이 단순히 이 상황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일깨웠던 것 이상으로 그의 몸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 틀림없었다.

“제시카! 제시카! 콜록콜록! 제시카……!”

제이드의 방에서 들려오는 소년의 비명 소리! 기침에 괴로워하는 그 음성을 듣자마자 현성이 더욱 더 마음이 급해졌다. 불길이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깨어 놓은 유리창으로 새어나가는 연기가 점점 더 많아져 위태로움이 극대화 되고 있었다.

“기다리라!”

어떻게든 데리고 나가야 한다. 이 문을 박살을 내야만 한다! 거침없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현성이 제이드의 방 문을 다시 한 번 발로 걷어 차 문을 부수었다. 유리 조각이 박힌 손에선 피가 흘렀고, 불길 속 현성의 몸 여기 저기엔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두려울만도 했다만 지금은 그를 구한다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제이드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제이드……!”

그 모습에 현성이 놀라 그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콜록!”

기침을 하는 제이드는 아직까지 의식을 잃진 않은 듯 했다. 그 모습에 현성이 쓰러진 제이드를 안고 연기가 새어 들어가지 못하도록 손으로 그의 입과 코를 막았다.

“조금만 참아라! 조금만!”

힘겹게 숨을 내쉬며 그을음 생긴 얼굴로 제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현성이 그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자신을 구했던 아버지가 바로 이런 기분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입을 꽉 깨물었다. 제시카는 밖으로 빠져 나갔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도중에 쓰러져 있다면……? 그녀 또한 반드시 구해내야 한다 생각하며 현성이 밖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퍼엉!

그리고 그가 복도로 발을 내딛자마자 다시 한 번 더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란 제이드가 움찔하고 눈을 감고 현성을 끌어안았다.

“으흐흑……!”

아무리 자존심 강한 아이라도 이 순간을 버티긴 어려웠을 것이다. 두려움에 질린 그의 울음 소리에 현성이 제이드가 다칠 일은 없을 것이라 온 몸으로 그를 감싸하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다!”

묘하게 오버랩 되는 과거의 잊혀진 기억. 그 말이 떠오른 듯 현성이 가슴이 미어지는 듯 한 기분을 느끼며 그를 안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코와 입으로 매캐한 연기들이 밀려오고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최대한 빨리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가 없었다. 5월 12일의 타이틀 전도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괜찮아, 괜찮다!’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음성이 떠올랐으니까.

“큭……!”

점차 번져 가는 불길에 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움이 밀려오고 있었다. 점차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현성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제시카를 발견하곤 질주를 멈추었다.

“제시카!”

품에 안긴 제이드도 의식을 잃은 것인지 미동이 없었다. 그와 함께 현성이 콜록콜록 하고 기침을 내뱉으며 쓰러진 제시카를 옆구리에 끼고 계단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이 좋은 현성이라고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등 쪽에서 따끔따끔한 통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무기력증에 가까울 정도로 몸이 무너져 내리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참 희안하게도 묘한 희열까지 몰려오고 있었다.

나른하게 퍼져 이대로 잠이 들었으면 하는 생각마저도 말이다.

-꾸욱…!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제이드와 그가 붙잡고 있는 제시카의 체온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걸 가지고 이대로 퍼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시합 중의 무산소 상태, 무호흡 증상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못 버티면 지는 것.

밴너와 싸웠을 때가 문득 현성의 머리를 스쳤다. 그와의 거침없는 타격전에서 처음으로 날아오를 수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때 현성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면 절대로 지금처럼 날아오르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버텨야지. 버텨야 한다. 바다가 보이는 집을 가지고 싶다던 제시카도, 이제 마음을 열어 세상과 어울리기 시작한 제이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괜찮아, 괜찮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움직여 왔으니, 계속해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력의 냄새. 이 매캐한 냄새보다 그것이 더 강하단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와 함꼐 현성이 제시카와 제이드를 안고서 계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멍한 가운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다. 불현 듯 떠올랐던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를 되새기며, 그것을 따라 이어갈 뿐.

하지만 그것도 한계였을까? 2층의 나선 계단을 내려가던 현성의 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하는 묘한 생각이 그의 몸을 흘렀다. 하지만 정말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단 압박감만이 가득한 가운데 파노라마처럼 많은 광경들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빌었던 소년. 그리고 ‘괜찮아, 괜찮다.’ 이야기를 하던 아버지의 모습. 그 순간 현성이 정말로 잊고 있었던 기억을 찾은 듯 멍한 얼굴을 해보였다.

‘현성이……! 여보……! 현성이……!’

애시당초 그의 아버지는, 그리고 어머니는 그를 미워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용서랄 것도 없었다. 그 순간에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해보였던 어머니가 있었고, 괜찮다며 그를 안심시켜 주는 아버지의 미소가 있었으니까.

긴 세월 가슴에 품어왔던 죄책감. 그에게 필요했던 건 부모님의 용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건 그 순간에 직면한 현성이 옅은 미소를 띤 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5월 12일보다 더 일찍 그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만 같았다. 그 곳에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누구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대로 둘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은…….

‘현성이랑 짝 하기 싫어요! 괴물 같이 생겼잖아요!’

‘제 부모 잡아먹은 못된 놈!’

‘살인자!’

“아니…….”

더 이상 그런 게 아니었다. 괴물 같은 용모도, 부모님을 잡아먹은 적도, 악의로 누군가를 해치려 한 적도 없었다. 사람들이 말해왔던 그런 게 아니었다. 부인하지 못하고 홀로 숨죽여 울기만 했던 것을 이제 더 이상 그런 게 아니라 말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괴물이라도 좋으니, 제발 이 순간만큼은 버틸 수 있게 해주기를.

‘내는 니 믿는다, 빙시야.’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을 믿어준 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현성이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자신도 믿지 못하는 자신을 처음으로 믿어주었고, 걱정해주던 어머니 같은 사람.

‘다이죠브.’

무엇이든 괜찮다 이야기 해주는 아버지 같은 사람. 본 지 너무나도 오래 된 두 사람을 떠올리며 현성이 멍하니 걸음을 옮겼다. 걷는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나아가고 있단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콰앙!

점점 거대해지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놀라거나 움찔하지도 않았다. 등 뒤로 불꽃이 튀어 올라왔지만 아무런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나아가고, 또 나아갈 뿐.

파노라마 속에서 고통과 괴로움 뿐 아니라 행복과 기쁨, 환희도 함께 들어 있단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을 때.

“어서 서둘러! 어서!”

“어……?!”

뒤늦게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안으로 진입하려 하다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마주 보았다. 그건 그들 뿐 아니라 화재 현장을 구경 나온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콰앙!

그리고 다시 한 번 폭발이 울렸다. 성이 난 듯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 와중 현성이 소방대원들의 부축을 받아 제이드와 제시카를 안고 드디어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와…!”

모든 사람들이 대비를 한 것은 아니지만 밖에서 안으로 들어갔던 유일한 사람! 그가 제시카와 제이드 두 사람을 안고 나오자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박수와 환호를 질렀다. 거친 화마 속으로 들어가 두 사람을 구해온 남자! 그 모습에 어찌 환호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

“어어어?!”

“어서 구급차에! 빨리 서둘러!”

점차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그 소리들을 들으며 현성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강인한 육시도 더는 버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모든 것들은 그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단지…….

‘괜찮아, 괜찮다.’

아버지의 음성이 스쳤고…….

‘5월 12일에는…… 전부 다 말을 해야지…….’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마지막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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