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1 회 - 괴물
“흠.”
“잘 어울리는데?”
이제는 말을 나누는 게 편안해진 용훈이 그리 이야기를 해주자 현성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심까?”
아직까지 장현성 VS 미구엘 로제스타라는 UFC의 공식 발표는 있지 않았다. 다만 그 날 입어야 할 정장을 미리 입은 터라, 평소와는 다른 묘한 기분이 들었던 모양이다. 다부진 현성의 몸에 착 달라붙어 멋스러운 라인을 살려준 정장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와는 한 몸인 듯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정말 최고로 멋있다! 실제로 본 것 중에 제일!”
그 말에 현성이 잘 어울린단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던지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여 보였다. 수덕하고 순박한 웃음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그의 모습에 용훈이 덩달아 후후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잔뜩 빼입고 가는 거야? 페어런츠 데이에? 이거 그냥 가는 게 아니라 정말 제시카에게 마음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인데!”
27살 유학생의 짓궂은 질문에 현성이 그런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올 때 챙겨온 게 이거 인터뷰 할 때 입을 정장이랑 츄리닝 밖에 없어가 그캅니더. 아무래도 그런 자리에 그렇게 갈 수는 없으니까…….”
그 말에 용훈이 장난이었다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제이드가 꽤 좋아하겠는데? 그래 보여도 현성이 너를 꽤 잘 따르는 것 같던데!”
그 날 현성에게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페어런츠 데이에는 학교를 가지 않겠다 고집을 피우던 제이드가 고집을 꺽고 말았다. 그 탓에 누나인 제시카와 계속해서 툴툴 거리며 다투던 소년이 처음으로 먼저 뜻을 꺽자 제시카도 그 사실에 무척이나 행복해 했다. 커투어 짐에서 제이드를 끌어 안고 정말 기쁜 듯 비명을 지를 정도 였으니까.
아마 그 모습을 보고 제이드도 느낀 바가 있진 않았을까?
“물론 그게 너한테 격투기 기술을 배우려고 했다면 정말 영악한 녀석일 거야.”
“그렇게까지 영악한 아는 아일 겁니더.”
용훈이 후후 웃으며 이야기 하자 이번엔 현성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제이드는 어딘지 모르게 현성과 닮은 구석이 많은 아이였다. 그네들의 특성 상 세상에 상처를 받아왔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가 힘들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타고난 외골수였다. 그리고 보기완 다르게 속은 여리고, 마음도 깊었고.
그렇기 때문에 제이드가 정말 일부러 현성에게 격투기 기술을 배우고자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누나인 제시카가 그렇게 좋아 할 줄은 몰랐으니, 그 쑥스러움을 감추려고 일부러 더 그랬을 것이고.
“아무튼 제시카가 현성이 너한테는 반 할 수밖에 없겠다! 동생이랑 단 둘인데 그 말 안 듣느 녀석이 이렇게 따르는 사람이 너니까 말이야.”
“아…… 아입니더, 행님. 그냥…….”
“뭐야? 그런 게 아니면 원래 매력적이라서?”
용훈의 장난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모습에 용훈이 ‘오, 이거 봐!’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가리키자 현성이 괜시리 쑥스러웠던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는 동안…….
-띵동!
벨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와 함께 용훈이 들뜬 얼굴로 ‘제시카!’ 하고 소리쳤다. 아무래도 그는 UFC의 최연소 링 걸이자 푸른 눈의 라티노 미녀의 고혹적인 매력에 푹 빠진 모양이다. 그 모습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먼저 나서려는 용훈을 제지하곤 ‘후 아 유?’ 하고 물음을 던졌다.
용훈이 개인 통역사로 붙은 터라 그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는지라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으로 늘일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나예요!”
그리고 문 밖에서 제시카의 들뜬 목소리가 들리자 현성이 당연히 올 사람이 왔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웨잇 어 세컨드!’ 하고 소리치며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간단한 회화 구절이지만 그걸 해내고 있단 사실에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현성이 못내 귀엽게 보였던지 용훈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곧 현성이 문을 열자마자……!
“현성! 안녕!”
그와는 반대로 한국어를 입에 달기 시작한 제시카가 오늘만큼은 단정한 셔츠와 스커트 차림으로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반 묶음 머리를 해서 앞머리는 파란 눈동자까지 내려왔고, 뒤의 머리는 올려 묶어 그 뒤로 길고 건강한 구리빛 목덜미를 드러낸 터라 단정한 복장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섹시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와우!”
무엇보다 팽팽해진 셔츠의 단추가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볼륨을 감출 순 없다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용훈이 인사 대신 감탄을 터뜨리자 제시카가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와! 오늘 멋지네요! 정말 멋있어요!”
그리고 그녀가 마침 드레스 코드가 자신과 딱 맞는 현성의 모습에 행복한 미소를 띤 채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스킨쉽이 많고 적극적인 제시카인지라 현성도 이젠 그게 익숙해진 듯 처음처럼 그리 굳어 있지만은 않았다.
“아, 땡 큐.”
현성이 가장 좋아하는 영어 단어를 내뱉으며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모든 상황에서 사용을 할 수 있단 점에서 가장 유용한 단어이기도 했다만 그 말 만큼 그의 입에 착 달라붙는 말도 없었다.
“난 어때요?”
그리고 그녀가 물음을 던졌다. 제시카가 매번 그를 생각해 아주 천천히 물음을 던지는 터라 현성이 영어 실력을 늘이는 데엔 제 격이었다.
“스틸 프리티.”
단조로운 만큼 의미는 명확한지라 그 말에 제시카가 환하게 웃으며 그의 팔을 꼭 끌어 안았다.
“……아 부러워.”
더블 D 사이즈의 맹렬한 압박에 용훈이 쩝 하고 소리를 내자 제시카가 부럽지 않냐는 듯 장난스런 눈빛을 그에게 던져 보였다.
“아무나 가질 수 없어요.”
도발적인 그 한 마디에 용훈이 ‘넵…….’ 하고 부럽다는 듯 현성을 바라보자 현성이 익숙해질 듯 익숙해지지 않는 뭉클함에 어색한 웃음을 띤 채 말했다.
“빨리 가야지 안 늦겠어요?”
“음, 계속 보고 있으면 내 건강엔 안 좋을 것 같아. 내 혈압을 생각해야지. 렛츠 고, 허리 업!”
두 사람의 대화를 눈을 크게 뜨고 귀 기울여 듣던 제시카가 의미는 모르겠지만 아무렴 상관 없다 생각한 듯 밝게 웃으며 ‘렛츠 고!’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이 집을 나서자 마자 바로 앞에 세워둔 제시카의 낡은 폭스바겐이 보였다. 현성이 월세를 든 건물이 제시카와 제이드가 살고 있는 건물의 바로 옆 블록인지라 금방 몰고 온 모양이다.
“여기 현성이가 들어갈 수 있긴 한 거야?”
자그마한 딱정벌레 차량인지라 그걸 보자마자 용훈이 현성의 덩치가 들어갈 순 있을지 모르겠다 걱정되는 얼굴로 말했다.
“제일 넓게 준비 해뒀어요! 걱정 마요!”
하지만 제시카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었다. 이미 현성이 커투어 짐으로 향할 때나 집으로 돌아올 때 매번 그를 픽업해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으니까. 그녀의 조수석은 현성을 위한 자리가 된 듯 가장 넓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한 걸. 이런 미녀가 드라이버까지 겸하다니!”
한국에선 쉽게 생각 할 수 없는 광경이라 용훈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 말에 제시카가 잘록한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미녀는 차를 몰면 안 되는 건가요?”
그리고 그녀가 미소 짓자 용훈이 ‘아!’ 하고 탄성을 터뜨리며 웃음 지었다.
“아니, 아니! 조금 생소하게 느껴져서! 보통 미녀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난 보통 미녀는 아니거든요!”
중고차 시장에서도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을 만큼 낡은 차였지만 그게 또 저런 자신감, 당당함과 함께 있다 보니 그마저도 품격이 있어 보였다. 항상 밝고 건강한 그녀의 매력이 더욱 더 돋보이는 날인 것 같다 생각하며 현성이 미소 짓는 동안 용훈이 인정 할 수밖에 없단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튼 빨리 가도록 하죠! 이런 미녀가 운전해주는 차는 난생 처음 타는 거라서!”
“걱정 마요! 난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섹시하고, 가장 유능한 여자 드라이버니까!”
곧 제시카가 먼저 차에 올랐다. 뒤 이어 현성과 용훈이 조수석과 뒷좌석에 오르자 제시카가 벨트를 메고는 능숙하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런데 차를 대체 언제 몰기 시작한 거에요?”
제시카에 대해선 알고 싶은 게 많은지 용훈이 그녀를 향해 물음을 던지자 제시카가 제이드의 학교를 향해 차를 몰며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부터 일을 해야 했어요! 웨이스트리스 일을 하다가 조금 더 시급이 센 일을 찾게 되었는데 마침 노스 라스베가스 쪽에서 모델을 구하더라구요. 시급도 좋았고, 학교도 다닐 수 있었지만 너무 멀었던 터라 차가 필요 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몰고 다니고 있으니까 4년 정도 됐네요!”
4년. 제이드의 그 일이 있었던 것이 약 6년 전 쯤의 일이라 했으니, 그 이후로 제시카는 바로 사회로 뛰어든 셈이었다.
“아……. 일찍 일을 시작했네예?”
현성의 말에 제시카가 용훈과는 달리 미소 띤 얼굴로 뚫어져라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녀가 다시 전방 주시를 위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원래 집이 가난해서 일은 어릴 때부터 했었어요. 제이드 나이 때엔 친구들과 함께 레모레이드를 팔기도 했었죠.”
보기와 다르게 생활력이 강한 건 그 탓이었던 모양이다.
“원래 이쪽은 이민자들이 사는 곳이라 다들 가난해요! 그리고 어려운 형편이다 보니 일찍 일을 시작하는 거죠.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그건 결코 제이드의 탓이 아니다. 제시카의 말은 그런 의미가 섞여 있는 듯 했다. 그 말에 현성이 스피킹은 많이 늘지 않아도 리스닝 만큼은 제법 늘었던지 별도의 해석 없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림을 그려본다면 제시카처럼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6년 전. 고작해봐야 제시카가 15살 때 그런 사건이 생겼고, 그녀의 어머니는 어떤 상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제시카나 제이드 모두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선 그 이전에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동생 제이드를 이렇게 잘 챙기고, 이렇게 밝고 건강하게 자라왔단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현성이 세상과 단절되어 소년원에 수감되었을 무렵, 그보다 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에 대한 책임감으로 거친 세상으로 몸을 내던진 제시카가였으니까.
“힘들진 않았어요?”
보이는 모습으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라 용훈이 제법 숙연해진 얼굴로 다시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에 제시카가 환하게 웃으며 현성을 향해 눈웃음 지어 보였다.
“힘들어요! 그래서 누군가 보상을 해주면 좋겠어요!”
현성이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예린조차도 이 정도로 적극적이진 않았다. 그 모습에 현성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난처한 얼굴을 해보이자 제시카가 후후후 웃으며 어깨를 들썩들썩 해보였다.
“벌써 다 온 것 같네요! 나머지 이야긴 나중에 둘이서 하기로 해요!”
뜨뜨 미지근한 현성의 반응도 충분히 커버 할 수 있다는 듯 대담한 한 마디에 용훈이 ‘와우!’ 하고 다시 감탄을 터뜨렸다. 적극적이기도 하지만 섹시한데다 저런 센스까지 있지 않은가? 부러움 가득한 그의 눈빛이 현성을 향하자 현성으로써도 이 강인해 보이는 라티노 미녀가 사실은 아주 힘이 들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던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끼이익!
그 사이 제시카가 운전 실력을 과시하듯이 한 큐에 주차까지 성공하자 다시 용훈과 현성이 감탄을 터뜨렸다.
“워!”
“……쥑이네예.”
웬만하면 현성의 입에서 나오기 힘든 순수한 감탄사에 제시카가 싱긋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제이드가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그리고 그녀가 차에서 먼저 내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에 현성과 용훈이 여장부 제시카의 리드를 따라 차에서 내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 끝내준다, 제시카.”
팬심을 적극 발휘하는 용훈에 현성이 십분 공감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이 제이드가 있는 윈체스터 초등학교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페어런츠 데이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던지 곳곳에는 참관 수업에 참여한 부모들이 뒤를 지키고 서있었고, 그 앞엔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저도 모르게 옛 생각에 웃음 짓고 말았다. 물론 그에겐 너무나도 오랜 과거의 일이었다. 보통 사람과 같았다면 기껏해야 2년 전 과거일테지만 그에겐 그게 너무나도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랬기 때문일까? 과거로 돌아가는 듯 한 묘한 기분을 느끼며 현성이 교실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제시카가 먼저 그의 손을 잡아 보였다.
“무슨 생각 해요?”
그에겐 항상 궁금한 것이 많다는 듯 그녀가 물음을 던졌다. 아무래도 제이드로부터 현성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던지 그녀의 눈빛에는 온화하고 따스한 기운이 배여 있었다. 그 강인함이 왠지 모르게 제이드 뿐 아니라 현성을 감싸안아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에 현성이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옛날 생각.”
그의 말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얘기 해줘요!”
“음…….”
그 말에 현성이 생각을 하는 듯 천장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샌가 그의 손을 꼭 잡은 제시카가 재촉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자 뒤에서 홀로 걷는 용훈이 외로움을 느끼는 듯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매번 싸웠던 기억 밖엔…….”
그러다 현성이 정말로 기억이 나는 건 그것 밖에 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학교는 항상 가기 싫었고. 가서 맨날 싸우고. 집에도 돌아오기 싫었고. 그냥…….”
괴물 같은 용모라 놀리는 친구들과의 싸움, 부모 없는 녀석이란 놀림과의 싸움, 살인자라는 안 좋은 소문과의 싸움. 그리고 점차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르단 것에 대한 분노와 삐딱선으로 인해 벌어졌던 싸움들까지!
“정말로 아무 것도 없었네예. 맨날 화가 나 있었던 것 말곤.”
불우했던 유년기인지라 돌이켜 생각해도 가져갈 좋은 추억조차 없었다. 그 말에 제시카가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애틋한 맘을 감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왜 그렇게 자신이 제이드를 돕고 싶은지 그제야 알겠다 싶었던지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제이드는 최소한 좋은 기억 하나라도 가지고 있었음 좋겠네예.”
그 말에 제시카가 정말 고맙다 그를 바라보며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면서 나더러 좋아하지 말라구요?”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듯 제시카가 금방이라도 그를 덮칠 듯 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기 초등학교에서 그런 눈빛은 좀…….”
쓸쓸히 뒤를 따라오던 용훈이 사태를 미연에 예방하고자 그리 이야기 하자 제시카가 푸훗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여기서 만큼 순수한 눈빛으로!”
그리고 그녀가 마주 잡은 현성의 손을 앞뒤로 흔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 밝고 건강한 분위기가 정말 나쁘지 않게 다가오고 있었다. 함께 손을 흔들던 현성이 그 옛 날, 정말로 먼 옛 날에 이런 기억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아, 여기에요!”
때 마침 제이드의 교실로 도착했던지 제시카가 무척이나 들뜬 얼굴로 현성을 다시 돌아 보았다. 그 모습에 현성이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묘한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살짝 뒷 문으로 수업 중인 교실을 바라보니 많은 학부모들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조금 늦은 터라 조심해서 들어가야 할 터.
나중에 현성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다면 언젠가 자신도 저 뒤에 서 있는 부모들처럼 흐뭇한 표정을 띤 채 그 모습을 볼 날이 오지 않을까? 그걸 미리 연습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간질간질한 기분이 현성에게로 밀려왔다.
“제이드는……?”
그러면서 그가 제이드를 살폈다. 제이드가 또래보다 키와 체구가 작은 터라 여전히 후드를 눌러쓴 채 앞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들 환하게 웃고 떠드는 가운데 제이드만이 수업에 어울리지 못하는 듯 묘한 분위기였다.
그 모습을 보며 현성이 또 다시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라믄 안 돼.”
그러나 그러고 싶다 해서 쉽게 그리 되는 일 또한 아니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현성이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제시카를 바라보았다. 곧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뒷문을 열었다. 그리고 제시카와 현성, 용훈까지 세 사람이 교실 뒤로 모습을 보이자 뒤에 서 있던 학부모들과 뒷 줄의 아이들이 힐끔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 마이 갓! 몬스터!”
한 아이가 현성을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자 순간 수업을 듣고 있던 아이들 모두가 우르르 고개를 돌렸다. 그건 제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업과 교실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던 제이드가 ‘몬스터!’ 라는 소리에 움찔하고 고개를 돌리자 현성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제이드?”
그리고 수업을 진행 중이던 교사가 상당히 이례적인 참관인의 등장에 놀란 듯 제이드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 그냥! 내 친구에요!”
“와!”
제이드의 그 말과 함께 터져 나온 아이들의 감탄사! 그 모습에 제이드가 처음으로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허나 웃는 티는 낼 수 없었던지 입을 꾹 다물고 웃음을 참아 보였다. 그 모습에 제시카가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듯 현성의 팔을 꼭 끌어 안았다.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UFC가 학부모들에겐 그렇게 사랑받지 못하는 스포츠이지만 부모와 자식의 맘은 반대라고 윈체스터 초등학교의 아이들 대부분이 그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몇 몇 아이들은 앞을 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고개를 돌려 현성을 보고 ‘오 마이 갓’ 하고 말을 되뇌일 지경이었다.
남자 아이들과 별개로 여자 아이들도 TV에서 본 화려한 링걸 제시카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사태가 그러하다 보니 제이드의 담임선생도 수업을 이대론 진행하기 힘들었다 싶었던지 짝 하고 박수를 치며 말했다.
“제이드가 굉장히 멋진 친구를 데리고 온 것 같네요! 저도 정말 놀랐는데, 혹시 괜찮다면 앞으로 모셔볼 수 있을 까요?”
그 말에 현성에 그건 예상치 못한 듯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학부모 참관 중에는 부모가 교사가 되어 대신 수업을 이끄는 수업의 일환이 있다곤 하지만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서 가봐요! 어서!”
들뜬 얼굴로 제시카가 그를 밀어 보였다. 그녀에게 떠밀린 현성이 얼떨결에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아이들이 ‘블러디 엘보 몬스터!’ 하고 숙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현성이 조금 당황한 듯 앞에 아이들의 앞에 서선 무어라 이야길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제이드를 바라보며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제이드도 당황한 그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는 것을 꾹 참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당혹감도 잠시일 뿐 환하게 웃음 짓자 담임교사인 마가리타가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넸다.
“자기 소개 좀 해주지 않을래요?”
그 말에 현성이 리스닝은 되어도 스피킹은 안 된다 생각했던지 용훈을 불렀다. 말총 머리를 한 유학생 용훈이 설마 여기 와서 통역사 일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곁에 나란히 서자 현성이 도쿄돔 3만여 팬들, 만달레이 베이 이벤트 홀의 1만여 팬들 앞에 섰을 때 보다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아…… 저는 장 현성이라고 하고, UFC 격투기 선수입니더. 여기는 제이드의 친구로 왔구예.”
그 말을 용훈이 후후 웃으며 통역하자 아이들이 ‘와아아아!’ 하고 환호를 질렀다.
“몬스터! 블러디 엘보 몬스터!”
“진짜 그 선수 맞아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세요?”
데뷔전 이후로 그의 인기가 급증한 것은 정말 단순히 반짝 그칠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초등학생들의 우상이라도 된 듯 그들이 멈추지 않고 웅성이며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를 보며 마가리타가 후후 웃음과 함꼐 말했다.
“얘들아, 궁금한 게 있으면 손을 들고 물어야지?”
그 말에 번쩍 손을 드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며 현성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난처한 웃음을 짓자 맞은 편에 선 제시카가 그를 향해 환한 웃음 지어 보였다. 참관한 학부모들도 이런 이벤트가 있을 줄은 몰랐다는 듯 즐거운 얼굴을 해보이고 있었다.
“그럼 지목해서 질문을 받아 주지 않으시겠어요?”
마가리타의 말에 현성이 피식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요! 저요! 저요!”
유난히 적극적인 아이! 아까 현성이 들어올 때 눈이 마주치고 나서 계속 돌아보던 아이가 강하게 자신을 어필하자 현성이 그를 가리켜 보았다. 그의 손짓에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뜸 소리쳤다.
“팔꿈치 보여주세요!”
“어……?”
그 황당한 질문에 현성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오브레임을 잡았던, 피로 물든 팔꿈치가 실제로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을 터뜨리자 현성이 한숨을 내쉬며 ‘웨잇…….’ 하고 정장 재킷을 벗었다.
그리고 그가 셔츠를 걷어 올리고 팔꿈치를 보여주자 그게 뭐가 대단한 일이라고 또다시 여기저기서 ‘오!’ 하고 감탄이 터져 나왔다.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현성이 ‘큭!’ 웃음을 터뜨리자 제이드도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용훈도 이런 멋드러진 복장으로 팔꿈치를 보여주고 있는 현성이 웃겼던지 입을 가리고 웃음 짓자 현성이 재빨리 걷어 올린 셔츠를 내리고 다시 재킷을 걸쳤다.
“저요!”
그리고 이번에는 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아이가 손을 들어 보였다. 그 모습에 현성이 흠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아이를 가리키자 그녀가 똘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메리 제인이에요. 나중에 유명한 배우가 될 거구요.”
“아…… 응.”
개성 강한 메리 제인의 말에 현성이 다시 당황한 듯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메리 제인이 힐끔 제이드르와 제시카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사이에요?”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틴에이지가 대뜸 던진 그 물음에 현성이 무척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건 제이드와 어떤 사이인가를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현성이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자신과 제이드를 가리키며 확인을 하자 메리 제인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자신과 제시카를 가리키자 메리 제인이 그게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 노코멘트.”
그 대답에 메리 제인이 도도하게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건 사귄단 말과 같은 거에요.”
“아, 아니 그런 게…….”
개성 강한 소녀의 모습에 현성이 황당한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제이드가 메리 제인을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모습에 현성이 ‘아…….’ 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그 반에 흔치 않은 동양인 아이가 ‘저요!’ 하고 손을 들었다. 일본계일까? 어쩐지 한국이나 중국보단 그쪽 느낌이 강하다 생각하며 현성이 그를 가리키자 동양인 아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마츠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해요? 한 번도 진 적이 없나요?”
마츠이의 물음에 현성이 드디어 질문다운 질문을 받아 다행이라 생각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진적은 없다.”
그 당당한 대답에 아이들이 와아아아 하고 다시 감탄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처음에 물음을 던졌던 아이가 그를 향해 들뜬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하지만 다음 상대는 그 유명한 미구엘 로제스타 잖아요!”
역시 보통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세계 최강은 미구엘 로제스타였다. 그건 미국 뿐 아니라 어딜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말에 현성이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상대가 누구든…….”
곧 로제스타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단 걸 알기에 다소 긴장한 듯 한 얼굴의 제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 번도 진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그리 이야기를 하는 현성의 얼굴은 여지껏 보인 수줍음이나 당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오만하진 않았다. 단지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리고 노력에 대한 확신이 있을 뿐!
“아이 프로미스 유.”
============================ 작품 후기 ============================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부족하더라도 끝까지 함께 해주시길-!
일일일식 시작 했어욤. 이틀째! 신기하게 배가 그렇게 고프진 않네요? 그리고 속이 더부룩 한 건 사라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