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260화 (260/281)

- 260 회 - 괴물

현성이 누군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 그건 아무래도 그 자신이 가장 잘 되는 일밖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역설적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던 이가 무엇인가를 하나, 둘 가져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제이드’에게는 의미가 될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라티노 소년에게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이자 한 마디는 ‘너도 할 수 있다’라고 보여주는 것일 테니까.

“후…….”

그랬기 때문일까?

2월 4일, UFC의 데뷔전을 앞두고 현성은 라이트 헤비급까지 감량을 해도 무방할 정도로 지독스런 훈련을 겸하고 있었다.

체중에 제한이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웨이트로 코어 근력을 강화 시키고, 레슬링과 가드에 중점을 둔 훈련을 반복하면서 그의 몸과 체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나와 체급을 바꾸지 그래……?”

그건 그 날 함께 시합에 참여하게 될 웰터급의 조니 헨드릭스가 약 20킬로그램을 감량해야 하는 자신보다도 더 지독하다 평을 내릴 정도였다.

“그건 절대로…….”

웬만하면 거절은 하지 않는 현성이라지만 조니의 말에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아무래도 몸 자체가 체지방이 적은데다 워낙 근육 량이 많다보니 조니처럼 20킬로그램을 감량한다면 그야말로 죽음의 고통을 맛봐야 할지 몰랐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진단 현성의 모습에 조니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영어에 대해 울렁증이나 두려움이 있었던 현성이지만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성실함을 넘어서서 내 훈련량이 부족한 게 아닌가 자괴감이 느껴질 정도로 지독한 훈련을 묵묵하게 실행해 나가는 현성이다 보니 선수들 또한 그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내일이 바로 계체량이로군. 기분이 어때? 난 아주 행복해 죽을 것 같아!”

평체가 9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조니였기 때문에 그의 감량폭은 과거 현성이 로드원에서 시합을 할 때와 비슷했다. 아니, 그 이상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조니의 체형 평소 체형 자체가 근육량보단 지방이 많이 있는 몸인지라 상대적으로 감량과 커팅에는 유리한 모습이었지만!

어쨌거나 2달 전과 비교 했을 때 무척이나 홀쭉해진 그를 보며 현성이 ‘굿!’ 하고 미소 지었다. 그 모습에 눈이 무척이나 선한 조니가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라스베가스 도박사들 배팅에선 오브레임이 더 유리하게 나왔다던데, 난 자네만 믿고 걸겠어.”

그 말은 현성이 알아듣기가 힘들었던지 ‘음?’ 하고 고개를 갸웃하자 그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던 민욱이 재빨리 끼어들며 말했다.

“도박사들이 너보다 오브레임이 유리하다고 판정을 내렸댄다. 그리고 조니는 너한테 배팅을 했고!”

“아…….”

아무래도 두 사람 모두 K-1 월드 그랑프리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다, 경력이나 커리어 면에서는 여전히 오브레임이 압도적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은 아니라 생각한 듯 현성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 워리.”

무척이나 순박해 보이는 웃음과 간단한 영어였지만 그건 무척이나 힘있게 느껴졌다. 그 말에 조니가 흡족한 표정으로 현성을 향해 주먹을 내밀자 현성이 가볍게 주먹을 마주쳤다.

“자, 이제 다시 훈련 시작이다!”

그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새신랑 김관수 관장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짝짝 박수를 치자 조니가 질렸단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쉰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지나치게 몸을 혹사 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지 그의 물음에 현성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게 익숙해가…….”

잠시라도 몸의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된다. 아무래도 세간의 평이 현성보다는 오브레임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언제나 언더독의 입장에서 시합을 치러온 현성이다 보니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한 듯, 현성이 220Kg의 대형 타이어를 굴리기 시작했다.

“후!”

숨을 내뱉으며 바닥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 타이어를 일으켜 굴리는 일은 생각보다는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지금이 4세트 째라고 한다면 누가 됐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말겠지만!

전반적으로 현성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오브레임의 압박을 이겨내기 위한 힘을 기르는 일이었다. 뺨 클린치와 레슬링에도 능숙한 상대이다 보니 분명히 현성에게 접근해서 그것으로 승부를 낼 생각일 것이고, 거기에 당한다면 상황은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그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결코 오브레임과의 클린치 싸움에서 져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이 훈련은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었고!

“흡!”

온 몸의 힘을 짜내어 대형 타이어를 넓디넓은 커투어 짐의 끝에서 끝까지 굴려 보내고 나면 그제야 또 다시 짧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하아…… 하아…….”

근력 운동도 이렇게 쉴 새 없이 몰아붙이듯 들어가면 숨을 내쉬기 벅찬 경우가 생기는 법이라고, 지독스런 근성으로 대형 타이어 굴리기를 4세트 째 완료한 현성이 숨을 헐떡이며 타이어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 사이에 막판 감량에 돌입한 조니가 땀복을 입고서 커투어 짐을 폴짝폴짝 뛰다니며 그에게 ‘화이팅!’ 하고 주먹을 쥐어 보였다.

30대 중반의 애 아빠치곤 굉장히 귀여워 보이는 모습인지라 현성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참 밝다, 밝어. 아직 빼야 할 체중 500 그램 남았다면서.”

에이전트 겸 통역 겸 스파링 파트너라는 전천후 포지션을 맡은 민욱이 그의 곁으로 와 한 마디 거들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보기 좋네…….”

“그러게! 우리 새신랑 관장님도 그렇고!”

그의 말에 민욱이 낄낄 웃으며 장난스럽게 김관수 관장을 바라보자 김관수 관장이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자슥! 새신랑이 뭐꼬! 내 나이가 몇인데!”

민욱이 지어준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툴툴 거리는 그의 모습에 현성이 다시 해맑게 웃음 지어 보였다. 미국으로 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는 터라 처음엔 잘 웃지 못했지만 지금은 많은 것들이 익숙해졌는지 상당히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에이, 뭐 어때요? 한창 신혼 재미 좀 보셔야 되는데 생이별해서 더 절절하신 것 같은데?”

“저거 조디를 확 마!”

민욱의 놀림에 김관수 관장이 한 대 쥐어박아 버릴까 주먹을 치켜들자 현성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무어라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미국 생활은 생각 이상으로 즐거운 구석이 많았다.

민욱과 김관수 관장, 알렉세이 코치가 함께 해 익숙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토네이도 짐보다는 현역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교감들을 나누기가 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파이터들에게는 말보단 주먹으로 교감을 나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가장 큰 것은…….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여전히 툴툴 거리고 있지만 제시카와 함께 커투어 짐에 다니기 시작한 제이드의 존재가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나 밖에 없는 누이 제시카의 부탁을 거절하진 못하고 억지로 커투어 짐에 나와 이것저것을 배우기 시작했던 터라 그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그건 분명히 그와는 다른 건강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단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그야 당연히 니가 약골이니까 그렇지. 어디 가서 맞고 다니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민욱의 한 마디에 제이드가 팍 인상을 구기며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어디 민욱이 그런 것에 겁을 먹을 사람이던가? 사람 괴롭히는 데엔 타고난 재주가 있는 지라 그가 사악한 미소를 짓자 겁을 먹은 제이드가 움찔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모습에 현성이 그만하라는 듯 민욱의 등을 착 때리자 제이드가 힐끔 그들을 바라보며 다시 인상을 구겼다.

“아무튼 꼬맹아! 운동은 좀 할만 하냐?”

그런 제이드를 보며 민욱이 다시 말을 걸자 제이드가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철저히 말을 무시하는 듯 한 그의 모습에 민욱이 ‘이거 봐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제이드를 향해 다가서자 제이드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또 괴롭히려고 그러지!”

그 모습에 현성이 타이어 위에서 일어나 민욱을 향해 소리쳤다.

“아 좀 그만 괴롭히라!”

웃음 섞인 그 말에 민욱이 이번 한 번은 봐줬다 싶었던지 쳇 하고 손을 털고 뒤돌아섰다. 그 모습을 보던 제이드가 현성을 바라보며 ‘누가 고마워 할 줄 알고…….’하고 투덜거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자신을 위해서 싸우라’는 말을 들은 이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제이드였지만 아직까지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 겨를이 없었다. 제시카의 말에 못 이기는 척, 어쩔 수 없이 나온 짐이었지만 그곳에서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척이나 고된 훈련을 쉼 없이 계속하는 현성의 모습이었다.

“좀 할만 하나……?”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몰라!”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다 보니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항상 그가 보일 때 마다 친절한 얼굴로 먼저 말을 걸어주는 현성이었다. 괜히 툴툴 거리며 모르는 척 하는 제이드라지만 그게 나쁘진 않았던지 힐끔힐끔 곁눈질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이틀 뒤 시합에서 넌 질 거야.”

맘은 그런 게 아닌데 이상하게 삐딱한 목소리가 먼저 나오고 말았다. 제이드의 그 말에 현성이 이번엔 알아듣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을 짓자 민욱이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저 징글징글한 꼬맹이가 니가 데뷔전에서 질 거란다!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저게 부정 타게!”

아마 제시카가 함께 있었다면 한 소리를 했을지 몰랐다. 제시카 또한 내일 있을 계체량 때에 공식적으로 데뷔를 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한가하게 짐에서 몸을 가꿀 시간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제이드를 커투어 짐에 있는 민욱과 현성에게 부탁했던 터라 그녀 대신 민욱이 제이드를 나무라자 제이드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괜히 샌드백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기지 못 할 거야. 흥!”

그렇게 유치하게 심술을 부릴 만 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앞에만 서면 자꾸만 이렇게 되어 버리곤 했다. 처음에 만났을 때에도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고, 두 번째 보았을 때에도 그렇게 도망쳐버릴 생각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그와는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고, 그가 자신보다 훨씬 더 앞서나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다시 한 번 더 제이드가 현성을 힐끔 바라 보았다.

“샌드백 치는 거 가르쳐 주까?”

그 모습에 현성이 샌드백을 가리키며 펀치 모션을 취해 보이자 제이드가 삐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니 얼굴에 날려 버릴까보다.”

후후 웃으며 받아주는 현성과 달리 사납기 그지없는 민욱의 목소리에 겁을 먹은 듯 그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자 현성이 피식 웃으며 민욱을 돌아보았다. 애 한테 그러지 말라는 듯 한 그의 얼굴에 민욱이 그런 건 별로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펀치는 칠 때는…… 아, 룩 엣 미.”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현성이 자세를 잡았다. 턱을 당기고 다리는 어깨 너비 만큼 벌리고, 주로 쓰는 손을 앞으로……!

스위치히터답게 양 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현성이었지만 기본 동작 만큼은 오소독스 자세였다.

“옆에서 따라 하라고!”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로 민욱이 제이드에게 소리를 지르자 제이드가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현성의 모습을 따라했다. 그 모습에 현성이 옅은 미소를 짓자 자존심이 상한 듯 제이드가 인상을 구기며 자세를 풀었다.

“오늘 제시카 늦게 온다.”

사악한 미소를 띤 채 민욱이 그리 이야기 하자 제이드가 ‘윽!’ 하고 인상을 구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가 마지못해 다시 한 번 자세를 잡았다.

“최대한 허리를 써야 되거든.”

펀치력의 원천은 강력한 코어 근육에 있다. 등과 허리를 잘 쓰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나올 수 있단 것을 그가 설명해 보이자 제이드가 여전히 무슨 말인진 모르겠다는 듯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를 쓰란 말이야! 허리를!”

금방 또 민욱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제이드가 움찔하며 불만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제길…… 하고 입술을 내밀어 보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자…….”

그런 그를 보며 현성이 이제 펀치를 날릴 준비를 하겠다 미소 지었다. 제이드가 있는 동안 대부분 현성의 훈련은 레슬링과 근력 위주로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그의 타격을 직접 눈으로 감상 할 시간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제이드가 은근히 기대가 되었던지 살짝 뒤로 물러서자 현성이 순간 숨을 내뱉으며 강렬한 스트레이트를 샌드백에 꽂아 넣었다.

-퍼엉!

순간 넓디넓은 커투어 짐의 사람들 모두가 쳐다 볼 정도로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지자 눈 앞에 있던 제이드가 가장 놀랐던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제이드가 툭툭 쳤을 땐 꿈쩍도 하지 않던 샌드백이 철렁철렁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이 저 엄청난 펀치를 맞는다면 아마도 견디지 못 할 것이다! 그 생각에 제이드가 얼어붙은 얼굴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항상 친절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착한 동양인의 진면목을 본 듯 한 기분이 들었다.

“I’ll Win.”

============================ 작품 후기 ============================

새벽 까지 방황했네욥- 이 파트 통으로 지우고 새로 쓸까 고민고민 했습니다.

우선은 강행 돌파 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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