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259화 (259/281)

- 259 회 - 괴물

라스베가스! 사막 위에 사람이 세운 신기루 같은 환락의 도시!

익히 화려함만 알려져 있는 대도시였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어둠도 깊은 법이라고, 라스베가스 동부 다운타운은 범죄의 온상이기도 했다. 라스베가스의 중심부는 관광지로써 24시간 내내 안전지역이라 해도 무방했지만 특히나 동부 지방은 안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네바다 주의 대부분이 라스베가스에 살고 있는 것처럼, 호텔가를 벗어난 다운다운의 도우 외곽지대는 이민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터전이 되어버렸으니까.

“…꽤 와일드 하게 느껴지는데.”

화려한 라스베가스 중심부와 다르게 삭막한 사막의 색채가 느껴지는 동부 거리를 보며 민욱이 한 마디를 거들었다. 그 말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제시카가 후후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 위험한 곳이야. 절대 해가 떨어지고 나선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아마 장이 챔피언이라고 해도 여기선 마음 놓고 다닐 수가 없을 거야.”

웃으며 한 말이라지만 그건 무척이나 단호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런 것이 미국 내 범죄율을 따져 보았을 때 8위에 랭크된 도시가 바로 네바다 주였고, 그 네바다 주에서 발생하는 범죄 대부분이 이곳에 밀집되어 있었다. 총기에 대한 규제가 없는데다 과거부터 무법자들의 영역이라 불린 곳이니 아무렴 현성이 강하다 하더라도 총을 들고 있는 사람과 다퉈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낮이니까 걱정 없잖아?”

“……꼭 그렇지만도 않아.”

민욱의 물음에 제시카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보였다.

“가끔은 낮에도 감당하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하니까.”

아름다운 용모와 달리 강단이 있어 보이는 것은 이런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모습에 민욱과 현성이 ‘흐음’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무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될 거야! 아주 가끔의 일이니까!”

후후 웃으며 제시카가 두 사람을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민욱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무래도 이런 동네면 빨리 여길 떠나고 싶은 맘도 있겠네.”

“응! 빨리 다른 사람들처럼 유명한 사람이 돼서 여길 떠나는 게 내 꿈이야. 그럼 제이드도 더 이상 시달리지 않을 거고…….”

제시카에겐 항상 제이드가 가장 먼저였던 모양이다. 그녀의 그 말에 민욱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현성은 간밤에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지 조금은 초췌해 보이는 얼굴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넋 놓고 보고 있냐? 영어가 사방에서 들려오니까 정신이 혼미해지냐?”

“좀 글네.”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민욱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라 어깨를 으쓱했다. 여전히 언어적인 문제가 남아 있어 온전히 마음을 모두 전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제이드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단 생각이 가득 차올랐다.

“그런데 확실히 훈련을 준비하는데 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그 사이 백미러로 제시카가 현성의 눈치를 살피며 이야기 했다.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온 여자인 만큼 이렇게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동생 제이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녀의 말을 민욱이 심술부리지 않고 온전히 전해주자 현성이 그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라는 듯 말했다.

“이거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인 것 같단 느낌이 들어가……. 결국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거는 가나 내나 똑같다고 좀 전해도.”

어느 순간인가 과거란 것이 뚝 끊어진 듯 사라지진 않는다. 그건 언제나 지금과 연결되어 있고, 자연스럽게 잊혀 지거나 받아들여질 뿐. 단지 사람에 따라 다른 게 있다면 그 시기가 얼마나 빠르냐, 느리냐의 일 뿐일 것이다.

민욱이 그 말을 전해주자 제시카가 무척이나 고맙고, 또한 안타까운 듯 한 눈으로 현성을 돌아보았다. 동생 제이드가 그 일로 인해서 얼마나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했는지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말 못 할 현성의 아픔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상처들을 이겨내고, 지금은 이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 그가 무척이나 존경스럽다는 듯 한 마음까지도 느껴졌다.

“어떤 말이든 제이드에겐 무척이나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아!”

믿음을 가득 담은 그녀의 목소리는 민욱이 따로 통역을 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목소리에 현성이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어느 샌가 제시카의 구형 폭스바겐은 그녀와 제이드의 집에 도착했다. 연립 주택식으로 지어진 낡은 건물! 그 모습에 민욱과 현성이 의외라는 듯 제시카를 힐끔 바라보았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화려하고 섹시한 느낌이 워낙 강해서 그랬던 것일까?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우울하고 낡은 색채의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당했다. 이게 잘못이나, 움츠러 들 일은 아니라는 듯 밝은 웃음과 함께 두 사람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제이드는 곧 학교에서 돌아올 거야. 안에서 같이 기다리고 있으면 돼!”

그 당당한 모습이 더욱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강인함! 그게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느끼며 현성과 민욱이 함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음, 청소를 하긴 했어야 했는데!”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옷가지들을 제시카가 후다닥 치우곤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리 당찬 여자라고 해도 그건 좀 창피했던 모양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민욱과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라도 마실래?”

그리고 그녀가 걸음을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2개의 방이 있는 자그마한 집은 살림꾼의 손길이 그렇게 많이 닿아 있지 않은 듯 보였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건물, 낡은 집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그럼 여기서 둘이 사나……?”

현성의 물음에 민욱이 아무래도 그럴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제시카의 가족이 정상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집이 고요하진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그걸 보니 현성이 덩달아 과거 생각이 나던지 무거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는 분명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비슷한 경우가 이 경우가 아니었을까?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민욱이 무어라 할 말이 없다는 듯 쩝 하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동생과 단 둘이 지내는 거야? 단 둘이 지내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아?”

차를 내어 오겠다 준비하러 간 제시카에게 던진 물음이었다. 그 외침에 제시카가 후후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빨리 돈을 벌어서 여길 떠날 거야!”

곧 그녀가 커피를 내어 왔다. 세 잔의 커피를 느긋하게 내어 오는 모습에 민욱이 ‘웨이스트리스?’ 하고 물음을 던지자 제시카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쪽 일도 꽤 오래 했었어.”

웃음 섞인 그녀의 대답에 민욱이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어다 준 커피! 좁았던 구형 폭스바겐 차 안보단 한결 느긋하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적막한 집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음, 아무튼 여기 생활은 어때……?”

그런 적막감이 싫었던지 제시카가 현성을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민욱과는 말이 통하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지만 현성과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묻고 싶은 것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무척이나 많았던지 그녀의 물음을 민욱이 전해주자 현성이 ‘아…….’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조금이라도 시합을 빨리 치렀으면 싶네.”

말 끝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겸연쩍은 얼굴로 그가 미소 짓자 제시카가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현성에게 호감을 보이던 제시카인지라 민욱이 둘 사이에 끼어 괜히 어정쩡한 입장이 된 듯 툴툴 거리며 말했다.

“너 진짜 앞으로 영어나 일어는 필수로 마스터 해라.”

질투심 담긴 그의 말에 현성이 미안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음, 시합을 빨리 치르고 싶은 건 왜야?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 현성의 말을 민욱에게 전해들은 제시카가 연이어 물음을 던졌다. 머그컵을 들고 새파란 눈으로 질문을 던지는 그녀의 모습에 민욱이 다시 한 번 물음을 던달하자 현성이 꼭 그런 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지금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가. 어쩜 가랑 비슷 할 지도 모르는데……. 내가 사람 같이 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자리에 당당하게 서고 싶단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하게 됐거든. 그카다 보니까…… 이제 그게 눈 앞에 있다 생각하게 되니까 조금 마음이 급해지는 것도 있고.”

그리고 현성이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최대한 빨리 돌아가고 싶단 마음도 컸지만 그것만큼이나 큰 것은 모두에게 당당해지고 싶단 생각이었다. 월드 그랑프리 타이틀보다도 더 따내기 어려운 UFC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가짐으로써 말이다.

그런 그의 바람이 녹아내려 있는 진지한 대답에 툴툴거리던 민욱도 작은 한숨을 내쉬며 온전히 그 말을 전달해 주었다. 그와는 다르게 매 순간을 고통으로 살아왔고, 버티는 게 일이었던 현성이었으니.

“아…… 그렇구나. 그래도 참 다행이야! 이렇게 강인한 사람이라서! 제이드도 그랬으면…….”

그는 제이드의 미래일런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와 같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직하고 강인한 마음을 지닌 남자! 제이드가 훗날 나이가 들었을 때 그와 같은 어른이 되길 바라는 제시카의 마음이 묻어나자 현성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거를 알았을 때. 그때부터 제대로 살아갈 수가 있었으니까. 괴물 같이 생겼다 놀림 받고, 부모 잡아먹은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어울릴 수 있는데가 한 군데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사람 품이 따뜻하단 걸 알았으니까. 그런 게 생기니까 그때부터는 좀 나아질 수 있었던 거 같다.”

그건 민욱에게도 잘 하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그리 오랜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가까이 지낸 사람 중 하나! 그걸 이제야 알게 되었단 게 참 한 편으론 섭섭하기도 하고, 또 안타깝기도 했다. 아마 현성이 혜주를 잊을 수 없는 건 그녀가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유일한 온기를 제공해줬던 첫 사람!

“그래서 가능하면…… 그런 자리가 되어 주고 싶은 거고. 부족하지만…….”

바람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그는 여지껏 손가락질 받아 왔고, 외면 당해온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지 알고 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기에, 최소한 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그 자신도 괴로워해야만 할 인간이 아닌 보통의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었고,

복잡한 맘이 담긴 말에 제시카가 글썽글썽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왔을지 어렴풋이 느껴졌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제이드를 곁에서 가장 오래 지켜봐온 사람이었으니까. 그녀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현성이 걱정 말라 미소 지어 보였다. 지금은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도, 위태롭지도 않다.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갈 뿐이라고 말이다.

“많이 힘들었지……?”

다시 한 번 제시카가 그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녀의 물음에 현성이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많이 힘들었었지.”

지금은 더 이상 아니라는 듯 말이다. 아마 힘든 것은 제이드 뿐 아니라 제시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비극적인 사고로 가족을 잃었고, 지금은 그녀가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런 맘이 들었던지 현성이 제시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이내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괜찮다 미소 지어 보이는 그녀. 어쩐지 모르게 사키와 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현성의 맘을 스쳤다.

그 생각에 그가 잠깐 멈칫해 있는 동안.

-철컥!

학교를 갔던 제이드가 집으로 돌아왔던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제시카의 낡은 폭스바겐 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그녀가 집 안에 있는 줄은 알았지만 현성과 민욱이 있을 줄은 몰랐다는 듯 문을 열자마자 제이드가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가 이내 화가 난 얼굴로 문을 쾅 받아 버리자 제시카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드!”

그리고 그의 뒤를 쫒아가는 그녀! 그 모습을 보며 현성과 민욱이 서로의 눈치를 주고받았다.

“……얼굴에 맞은 자국이 있는데?”

잘못 본 게 아니지 않느냔 민욱의 말에 현성이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소문이라도 나면 가만히 두질 않으니까.”

그도 경험해본 일이라는 듯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자 민욱이 한숨과 함께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로썬 알지 못하는 세계였고, 영역이었으니!

“대체 왜 데리고 온 거야! 대체 왜!”

두 사람이 현관문을 열었을 때 복도에선 유난히 격앙된 제이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이드! 장이 널 위해서 훈련도 마다하고 왔는데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어제 그렇게 무례한 짓을 하고도!”

제시카 역시 동생 제이드에게 화가 단단히 난 듯 한 눈치였다. 복도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다투는 남매의 모습에 민욱이 현성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일 거 같은데?”

그 말에 현성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제이드가 현성을 응원하면서도 만나려 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 좋은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대상이란 점에서 만날 수가 없는 것일 테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은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내 ‘꼴도 보기 싫어!’ 하고 소리치며 제이드가 밖으로 달려나가자 제시카가 많이 속상한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입술을 잘끈 깨물고 뒤돌아서자 민욱과 현성이 후다닥 다시 소파로 걸음을 옮겼다.

“미안해…….”

안으로 다시 들어온 그녀가 굳이 이렇게까지 시간을 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안 데리러 가도 되겠어?”

민욱의 물음에 제시카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지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럴 때 마다 제시카도 더 이상은 견디기가 힘들다는 듯 한 얼굴이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지금 예민한 시기라서…… 정말 미안해.”

연이은 그녀의 사과에 현성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제이드의 나이쯤 되었을 땐 그랬었으니까. 아마 저 나이 때 가장 많이 싸움을 하고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음을 던졌다.

“혹시…… 가볼만한 데가 있나……?”

그의 물음을 민욱이 전달해주자 메시카가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남자끼리 더 잘 통한다.”

그 말에 제시카가 말도 통하지 않는 그가 어떻게 할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듯 물끄러미 현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담담하고 옅은 미소를 띤 이 동양인은 말로는 설명 못 할 신뢰감을 주고 있었다.

“……아마……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긴 해.”

혹시나 하는 맘에 그녀가 그리 이야기 하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말도 안 통하는 주제에 가오 잡긴.”

민욱이 툴툴 거리며 그의 뒤에 붙자 제시카가 자신도 함께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던지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데리고 올 게. 걱정 마.”

그리고 두 사람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흠……. 그 꼬맹이 사춘기치곤 상당히 거칠던데 너도 그랬냐?”

“집 안에서는 안 캤지. 집 밖에서 난리가 났었지…….”

그게 아마 그와는 다른 점이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훨씬 더 큰 키와 힘이 있었기 때문에 맞고 다니진 않았던지라. 그 말에 민욱이 흠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현성이 주먹으로 명성을 떨쳤던 이유가 이런 것이라면 그건 또 그대로 참 슬프고 애달픈 내용이었다.

“……진짜 내가 나쁜 놈이었네.”

알면 알수록 찝찝한 과거이기에 민욱이 한숨을 푹 내쉬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암튼…… 가가 얘기를 좀 잘 해야 될 건데…….”

그리고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와 제시카가 말했던 이스트 에비뉴 파크로 걸음을 옮겼다. 다운타운에 있는 자그마한 공원은 라스베가스 중심부와 달리 그렇게 관리를 잘 해놓진 않은 모습이었다. 밤이 되거나, 저녁 시간이 되면 마약상들이 접선을 하지 않을까 싶은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었다.

그 자리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현성과 민욱이 얼마 지나지 않아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제이드를 발견했다.

“야……!”

민욱이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려 하자 현성이 고개를 흔들며 그의 입을 막았다.

“도망 칠 끼다. 절대로 놀라게 하면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할라고? 넌 말도 안 통하잖아?”

그 말에 현성이 그렇긴 하지만 방법이 있진 않겠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민욱을 두고 홀로 제이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후드를 눌러쓴 채 씩씩 거리고 있는 라티노 소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눈치채곤 홱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현성이 걸음을 멈추었다.

“꺼지라고! 꺼져!”

현성을 보며 거칠게 소리치는 그의 모습에 현성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것 자체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씩씩 거리던 제이드가 그를 피해서 도망치려 하다 걸음을 멈춘 현성의 모습에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분위는 다름이 아니라 얼굴에 난 화상 자국이었으니까. 그 자국을 보자 자신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처지란 게 느껴졌던지 제이드가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와도 된다 용인한 것일까? 그 모습에 현성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제이드가 앉아 있는 벤치의 끝자락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곧 벤치 양 끝에 거대한 덩치의 동양인과 자그마한 체구의 라티노 소년이 앉아 묘한 대치를 이루는 장면이 펼쳐졌다.

“I’ll proudly win.”

그리고 그가 혜주와의 통화를 마치고 밤새 찾아왔던, 외워왔던 이야기를 꺼내자 제이드가 휙 고개를 돌렸다. 많이 다투었는지 여기저기 상처가 난 얼굴로 그가 불만스럽게 현성을 바라보았다.

“Get UFC Heavy weight champion.”

어설프기 짝이 없는 말들이었지만 의미는 분명히 전달되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 담겨 있는 힘만큼은 분명했으니까. 그 모습에 제이드가 왜 이런 말을 자기에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It’s not your fault. so did I.”

그리고 꺼낸 그의 한 마디. 그건 두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리고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 말에 순간 제이드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니! 그건 내 잘못이야! 너도, 나도 살인자라고!”

거칠게 소리치는 소년의 모습에 현성이 고개를 흔들었다. 단호한 얼굴이었다. 그 또한 과거에는 제이드와 마찬가지로 마음 먹고 삶을 살아왔었다. 지금도 어렴풋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부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사고 였고, 실수였던 것! 그걸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으니까! 소년의 맘으론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Not your fault.”

그가 전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 다였다. 그 말에 제이드가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주먹을 움켜 쥐었다. 그와 다르게 화상이나 상처가 생기진 않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동일했다. 그 동일한 상처를 제시카 이외의 사람이 처음으로 보듬어 주는 것을 느끼며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저히 함께 있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던지 금방이라도 도망치려 하는 듯 한 그를 바라보며 현성이 말했다.

“Fight for yourself.”

더 이상 도망치지 말고 싸우란 그 말. 그들이 싸워야 할 가장 큰 상대는 다름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을 위해서 싸워야만 했다. 그걸 제이드가 알아줄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그게 현성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이드가 도망치듯이 다시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쉬운 마음이 한 가득이었다. 그가 그를 온전히 도울 수 있다면 좋을 텐 데 그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들이기에.

“……뭐라고 했길래 도망을 저렇게 치냐?”

민욱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싸우라고…….”

“애 한테 너무 어려운 말 한 거 아니야?”

“……그렇게 어렵진 않았을 거다. 내 말하는 거야…….”

그 말에 민욱이 ‘하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뭐 더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싶은데. 이 정도로 꺼려하면 더 다가가는 게 민폐지 않냐?”

조심스런 그의 물음에 현성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 그건 제이드 역시 마찬가지! 그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길 수 있단 걸 보여주는 거밖엔 없겠지.”

============================ 작품 후기 ============================

빅 슬럼프 온 것 같습니다…

완결은 내야 하는데 컨디션은 바닥을 치고. 아 이 상황이 정말 화가 나네요.

진짜 안 될 거 같으면 휴식기 좀 가지고 와서 마무리 지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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