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255화 (255/281)

- 255 회 - 괴물

“사실 이 일은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전엔 다크 매치에 잠깐 섰었고, 이제 두 번째니까 눈 인사만 한 셈이야.”

민욱이 자신을 알아본 게 신기했던지 제시카는 상당히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그녀가 UFC 링걸로 섰던 것은 이전 대회의 다크 매치에 불과했고, 이번 대회에서 본격적인 데뷔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니 충분히 그럴만 했다.

“내가 미녀를 못 알아볼 리 없지.”

민욱의 말을 듣자마자 제시카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워! 너도 참 잘생겼어!”

건강해 보이는 용모만큼이나 제시카는 밝은 사람이었다. 라스베가스 대회를 앞두고 벌써부터 몸을 가꾸고 운동을 하는 성실한 사람이기도 했고!

“아무튼 의외네! 확실히 경력도 짧고, 나이도 어린데 우리를 알고 있다니 말이야.”

봄날의 실바람처럼 매력적인 그녀의 모습에 민욱이 희희낙락하며 물음을 던졌다.

“내 데뷔의 메인 이벤트를 장식해줄 사람이기도 하고……!”

덤벨 컬을 하며 매끈한 팔을 선보이던 제시카가 계속된 대화로 집중이 잘 되지 않는지 ‘윽!’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아래로 덤벨을 내려놓았다.

“읏차…! 사실은 내 동생 덕분에 알게 됐어.”

“그래?”

민욱의 목소리에 제시카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덤벨 컬 운동 덕에 몸에 열이 슬 오르기 시작했는지 입고 있던 후드를 내리자 UFC의 새로운 링 걸 답게 육감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와우!”

압박감이 큰 스포츠 브라를 입고 있음에도 감추지 못할 풍만한 가슴과 11자 복근이 무척이나 섹스어필한 몸매에 민욱이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리자 제시카가 후후 웃으며 ‘우!’ 하고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해 보였다. 장난스러운 포즈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가진 선천적인 섹시함을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 이래서 미국이 좋다니까!”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 하는 것 보다 당당히 어필하는 그녀의 모습에 신이 난 민욱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수줍어하는 모습도 좋지만 이렇게 적극적이고 활발한 모습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 않은가?

흐뭇한 마음 가지고 민욱이 미소와 함께 제시카에게 묘하게 끌리는 기분을 느끼며 물음을 던졌다.

“아무튼 그 동생이 얼마나 예쁜 짓을 했길래?”

제시키와 친해지고 싶은 욕구를 아낌없이 드러내며 민욱이 물음을 던지자 제시카가 후드를 바닥 아래에 내려놓은 채 미소 지었다.

“그건…….”

그리고 그녀가 눈을 돌린 곳은 잠깐 인사만 하고 다시 운동을 하러 가버린 현성!

민욱과 제시카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에 끼기도 뭣했고, 본인 스스로도 목적의식이 있다 보니 시간을 허비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시차적응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터라 계속 해서 몸을 푸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지 가볍게 런닝 머신 위를 달리고 있었다.

첫 날이니만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운동을 한다 이야기 했지만 어느 샌가 등이 땀으로 젖어 있을 정도로 그는 열정적이었다.

그 모습에 제시카가 묘한 미소를 짓자 민욱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인상을 구겼다.

“혹시 동생이 저 녀석 팬이야?”

“음……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 그럴 거야!”

민욱의 물음에 제시카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해 보였다.

“……느낌이 싸한데.”

그 말에 민욱이 ‘하아!’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물론 그로써도 근사한 미녀들을 많이 알고 있다지만 제시카는 상당히 욕심이 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건강하고 훌륭한 몸매와 멋진 미소를 겸비한 라티노 미녀는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았으니까!

그걸 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현성에게 빼앗겨야 한다니! 왠지 모를 샘이 났던지 민욱이 툴툴 거리는 얼굴로 다시 물음을 던졌다.

“의외네! 동생이 격투기 팬이라면 미구엘 로제스타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사실…… 내 동생은 장을 선수로써 좋아하는 게 아니야.”

“응? 뭐야, 설마 이성적으로?”

여복이 있어도 이렇게 있어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제시카의 여동생이라면 충분히 그녀만큼이나 예쁠 것이 생각한 민욱이 발끈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제시카가 그를 돌아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제이드는 남자야! 절대로 그런 아이가 아냐!”

여동생은 아니란 말에 민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물음을 던졌다. 생각해보니 더 이상하지 않은가? 남자가 선수로써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 남자. 그럼 뭔데?”

조금 떨떠름한 민욱의 얼굴에 제시카가 처음으로 밝고 건강한 얼굴에 그늘을 스치며 말했다.

“그런 사정이 있었어……. 장과 비슷한.”

“현성이랑 비슷한……?”

민욱의 물음에 제시카가 아직까지 이야기 할 만 한 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 사이에 현성은 어느 샌가 천천히 달리던 런닝 머신의 속도를 최대로 맞춰놓고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제시카가 묘한 눈빛을 보내자 민욱이 뭔가 느낌을 잡은 듯 ‘흠!’ 하고 팔짱을 꼈다. 아마 제시카의 동생도 현성과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을까?

이미 그는 격투계에선 사연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스토리는 언제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특히 이런 승부의 세계에서 스토리가 결합되면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 사람은 누구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이 승리하길 바라는데, 현성의 삶 자체가 그러했다. 그는 인생 역경을 극복하고, 동양인이라는 한계마저 2년 만에 극복하며 K-1 왕좌에 오른 기적의 주인공이니까!

아마 제시카의 동생 제이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몰라도 라티노 이주민이라면 상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었을 것이다. 섹시한 라티노 미녀야 어딜 가도 환영 받겠지만 남자라면 그 의미가 조금 다를지 모른다. 아마 그 와중에 겪은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충분히 선수가 아니라 사람으로써 현성을 좋아할지 모를 일이었다.

최소한 그들에게 있어서 현성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한 선수가 아니라 ‘희망’이 될지도 몰랐으니까.

“하필 왜…….”

그 와중에 민욱의 머리를 스친 것은 묘하게도 아영이었다.

이상하게도 갑자기 아영의 얼굴이 머리를 스쳤다. 매 번 새벽에 전화를 걸어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민욱이 움찔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튼 나중에 시간 되면 같이 여기로 와! 저 멍청이는 시합하기 전까지 여기서 살 거야.”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낸 현성이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렇다 생각하며 민욱이 재빨리 재화 주제를 바꾸었다.

“그래도 돼? 방해 되진 않아?”

그 말에 제시카가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동생 제이드를 현성과 만나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던 모양이다.

“아마 누가 적당히 휴식 시간을 만들어 줘야 할 걸. 옆에 있는 사람이 토 나올 정도로 훈련을 한단 말이야.”

그의 말에 그녀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현성에게로 향했다.

“정말로 그런 것 같긴 하네……!”

아무래도 동생과 그를 정말로 만나게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그것 말고도 그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괜히 샘이 나긴 했지만 아무렴 어떨까? 이미 초연해진 얼굴로 민욱이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도 원래는 선수 였단 말이야. 한 번 따라 해봤다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어.”

“정말? 그렇게 보이지 않아! 너무 예쁘게 생겨서!”

후후 웃으며 제시카가 대답하자 민욱이 인상을 찌푸렸다.

“예쁘게 생겼다니?”

“아, 그런 의미는 아니야! 기분 나빠 하지 마!”

그리고 그녀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흔들리는 가슴에 민욱이 조금 발끈한 기운도 슥 내려앉았던지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미국 사람들은 터프한 취향인가 봐.”

“음……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야! 내가 개인적으로 그래서! 굉장히 잘 생겼어, 넌.”

분명히 선을 긋는 말이었다.

그 말에 민욱이 ‘윽!’ 하고 인상을 구기며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너마이트 대회를 함께 관람하며 농담처럼 이야기 했던 게 정말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현성이 여기에서 또 다른 선택지를 만나서,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생각한 듯 그가 여전히 달리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후우! 후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의 몸은 2월 4일, 알리스타 오브레임 전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아마 알렉세이 코치가 미국에 도착하고, 또 김관수 관장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 바로 훈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몸을 적응 시켜놓을 생각이지 않을까?

그 모습이 새삼스럽게 민욱도 멋져 보인다 싶었던지 끙 하고 인상을 구겼다.

그 어떤 것에도 곁눈질 하지 않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서 정진하는 것! 그 누가 보아도 멋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인정 못 한다. 지가 주인공인가……. 쳇!”

투덜거리는 민욱의 말에 제시카가 힐끔 그를 돌아보았다. 한국어는 전혀 하지 못하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그의 모습에 민욱이 이미 그녀는 떠나간 비행기라 생각한 듯 한결 느긋해진 모습으로 대답했다.

“아무튼 이걸 로제스타에게 알리진 마. 같은 라틴계라고 해서 그러면 곤란해!”

짐짓 심술 섞인 민욱의 목소리에 제시카 ‘윽!’ 하고 장난스러운 얼굴로 미소 지었다. 무척이나 유쾌한 성격을 가진 터라 그 모습에 민욱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제시카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 사람은 뉴멕시코에 있는 사람이고, 난 네바다 주 사람이니까! 게다가 같은 날 데뷔하는 장에게 더 마음이 가!”

“너무 애정 표현이 적나라한 거 아니야?”

“음…… 그는 아내가 있지만 장은 그렇지 않잖아?”

후후 웃으며 제시카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주춤하거나 움츠러듦이 없었다. 그건 동양인 정서와는 확실히 다른 부분이었다.

분명히 현성에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라티노 미녀의 모습에 민욱이 부럽다는 듯 쩝 하고 소리를 내며 현성을 돌아보았다.

“진짜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거야…….”

그 사이에 런닝 머신을 내달리던 것을 멈추고 어느 샌가 등판의 반이 땀에 젖은 모습으로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충분히 열은 올랐고, 무거웠던 몸도 땀을 빼고 나니 오히려 개운해진 얼굴이었다.

“스파링 한 게임 안 할래……?”

그러나 아직도 부족했던지 현성이 민욱을 보며 그리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그의 훈련 본능에 불이 붙은 모양이다.

그 모습에 민욱이 한숨을 푹 내쉬며 커투어 짐을 돌아보다 옥타곤 철장에 걸려 있는 글러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난 몹시 화가 나 있다. 각오 해둬.”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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