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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251화 (251/281)

- 251 회 - 괴물

12월 31일! 연말 다이너마이트 대회는 지난 대회나 월드 그랑프리에 비해서는 그렇게 큰 열기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요코하마 아레나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팬들도 있었고,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에 참가 했던 선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챔피언’의 부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를 나무랄 순 없었다. 한 해 동안 워낙 타이트한 일정을 해온데다 K-1의 타이틀은 여타 다른 단체의 타이틀과 달리 디펜딩 개념이 아니었으니까. 내년에는 또 다시 월드 그랑프리가 열릴 것이고, 전 회의 챔피언은 바로 16강에 안착할 수 있단 메리트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K-1 측도 이번 대회는 쉬어가는 이벤트로 가닥을 잡은 모양이다. 보다 ‘축제’라는 의미에 포커싱을 맞춰 이뤄진 이번 대회는 2년간 다이너마이트 걸로 중계진과 함께 해온 사키의 마지막 무대이기도 했으니까.

“자, 여기로!”

그 무대를 처음으로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현성이 류이치의 안내를 받아 VIP석에 자리했다. 선물 받은 자신만의 커스텀 시계와 몸에 딱 맞춘 정장을 입고 자리를 찾은 그는 누가 뭐래도 챔피언의 품격이 있었다.

“카이부쯔! 카이부쯔!”

그가 참가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부를 정도로 인기는 대단했다. ‘괴물’이라는 호칭이 이젠 놀림감이 아니라 아주 자랑스러운 이름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현성이 주변 사람들에게 꾸벅꾸벅 인사를 전하자 사람들이 ‘와아아!’ 하고 환호를 보내어 주었다.

김관수 관장도 그걸 무대와 세컨 코너가 아닌 관중석에서 느끼는 건 처음이었던지 그저 허허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현성 씨 인기가 정말 대단하네요!”

그와 나란히 앉은 정숙자 원장이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에 많이 놀란 듯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녀의 목소리에 현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냥 조금…….”

아직도 이런 건 많이 어색한 듯 순박하게 웃음 짓는 그의 모습에 정원장도 감회가 새로운 듯 미소 지었다. 그가 아영을 찾아왔을 때만 하더라도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던 게 사실이었다.

깡마른 체구에 큰 키, 그리고 슬픈 눈빛을 가졌던 20살 청년은 이제 그 누구도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자리에 올라 그 눈에 ‘우수’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분명 그의 외모는 아직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움츠러 들 정도로 위협적인 건 사실이었다만 그런 것들을 감안하더라도 참 멋스럽단 느낌이 풍겨져 오고 있었다.

“정말 대견스럽네요!”

그리고 그 원동력은 현성의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그 누구보다 김관수 관장의 힘이 컸을 것이다. 그가 잘 된 만큼 김관수 관장에 대한 흐뭇한 맘이 들었던지 정원장이 그의 손을 꼭 붙잡자 김관수 관장이 ‘어허허허!’ 하고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현성이 그저 미소를 가득 담아서 웃음 짓는 사이…….

“장현성!”

현성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성이 홱 하고 고개 돌린 곳에는 파이널 대회 이후로 약 20일 만에 보는 민욱이 씩 웃음을 띤 채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웃음을 띤 채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왔나?”

이젠 가장 든든한 친구 중 한 사람! 현성의 인사에 민욱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미, 일 삼국을 오가며 바쁜 터라 살이 제법 빠진 민욱은 전보다 더 호리호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삐쩍 골았네.”

“요즘 대세는 슬림이야, 무식아!”

인사 대신 서로 한 마디씩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곧 그 뒤로 낯익은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헤이! 장!”

현성보다도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외국인 두 사람! 민 머리 외국인이 무척이나 들뜨고 흥분된 목소리로 현성을 향해 인사를 건네다. 그 모습에 현성이 조금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헬로.”

굳어 있는 그의 인사에 민머리의 외국인, 데이나 화이트가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며 현성에게 손을 건넸다.

“긴장 하지 마, 이 친구야! 긴장은 내가 더 되니까!”

그리고 그가 영어로 무어라 이야기 하자 현성이 어색한 웃음을 띤 채 민욱을 바라보았다. 그냥 대답하면 된다 눈빛을 보내주는 민욱의 모습에 현성이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그는 현성을 보며 좋아 어쩔 줄을 몰라하는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난 정말 빅 팬이야! 모든 경기를 다 살펴 봤지!”

현성의 팬을 자청하고 있는 이 남자! UFC의 대표이자, 격투계 최고의 얼굴 마담 데이나 화이트!

그가 다이너마이트 대회에 특별 초청 되었단 사실은 이미 그 전부터 알려진 바 있었다만 챔피언인 현성과 이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단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기실 오늘 사람들이 그렇게 운집한 이유도 바로 이런 부분에 있었다. 사키의 마지막 K-1 무대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데이나 화이트와 로렌조 퍼티타가 참석해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할 계획이라 사전에 언급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가운데 데이나 화이트가 현성을 향해 무척이나 직접적으로 애정을 보이고 있는 장면이 보이자 그 주변 사람들이 묘한 기대감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데이나 화이트가 직접 찾아오다니?”

K-1과 UFC! 종목이 겹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경쟁 관계에 있다 할 수 있는 단체의 대표와 회장을 VIP에 초청했다는 것은 셔독을 떠들던 ‘공조’가 사실임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잘 지냈습니까?”

그 곁에 있는 김관수 관장에게도 화이트 대표가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김관수 관장 역시 이제 점점 가시화 되어 가는 미국행에 부푼 가슴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파인 땡 큐. 앤 유?”

결연한 표정과 달리 귀여운 김관수 관장의 영어에 정원장과 현성, 민욱이 순간 ‘큭!’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화이트 대표는 달리 그게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던지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사이에 관중들이 입장하며 웅성이던 관중석도 모두 자리를 잡고 정리가 되었는지 요코하마 아레나 스타디움을 밝히고 있던 조명이 ‘텅!’ 하는 소리와 함께 꺼지고 메인 링을 비추기 시작했다.

“오, 시작한 모양이로군!”

로렌조 퍼티타와 데이나 화이트가 일본 격투기의 쇼 엔터테이너적인 면은 본받을 필요가 있다 생각한 듯 들뜬 얼굴로 소리쳤다.

“너도 봐서 알겠지만 코쟁이들이 이런 건 정말 더럽게 못 하거든.”

그 모습에 곁에 있던 민욱이 낄낄 웃으며 사악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바로 옆에서 욕을 해주겠단 친구의 사악한 면모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UFC의 밋밋한 입장은 현성도 이미 영상으로 보아 알고 있는 대목이었다.

“지금부터 K-1 다이너마이트! 축제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번 축제를 빛내줄 선수들을 소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와중 장내 아나운서가 다이너마이트 대회 개최를 알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의 목소리에 현성이 다시 고개를 돌려 링을 바라보다 기분이 이상해졌던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왜? 저기 안 있고, 여기 있으니 갑갑하냐?”

현성의 심정을 알만하다는 듯 민욱이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네자 현성이 옅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쫌 이상하네.”

매번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다 무대를 바라보는 1인이 된 건 정말로 묘한 기분이었다. 그리 두근거리던 무대가 그립기도 하고, 괜시리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고.

언젠가 현성이 격투기를 그만두고 보통 사람이 된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그 생각에 현성이 깍지 손을 끼고 있는 동안 민욱이 그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근데 너 그 문제는 어떻게 됐냐?”

“음?”

그런 현성을 향해서 민욱이 물음을 던졌다. 이제 알고 지낸지 2년이 다 되었는데 얼굴만 봐도 알겠단 듯이 민욱이 씩 웃음 지었다.

“니 징글징글한 연애 말이야, 새꺄.”

“아…….”

그 말에 현성이 어색한 웃음을 띤 채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은…….”

“그런 거 말고!”

현성의 대답에 민욱이 고개를 흔들자 현성이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사키야……? 아니면 조강지처냐……?”

민욱이 궁금했던 건 아무래도 그가 누구를 선택했느냐 였던 모양이다. 그 물음에 현성이 쓴웃음을 띤 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자 민욱이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한테 사키가 까일 줄은…….”

“……그런 기 아이다. 그냥…… 말 하기도 전에…….”

우물우물 하며 대답한 현성이었다만 그 목소리는 관중들의 환호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런 현성의 모습에 민욱이 예측 못 할 선택은 아니었다는 듯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니 취향 문제인데 뭔 말이 더 필요하겠냐.”

“……그래.”

사키와는 그 날 밤이 마지막이었다. 울고 있는 그녀를 쉽게 떠날 수 없어 사키가 지쳐 잠이 들 때 까지 기다리곤 크리스마스 아침에 조용히 떠나 가버린 현성이었으니까.

그 사이에 걸려온 혜주의 전화는 미처 받지 못했고 말이다.

“후…….”

술술 풀려가는 비즈니스 문제와는 반대로 여전히 사랑 문제에 어려움을 겪는 그의 모습에 민욱이 어깨로 현성을 툭 쳤다.

“그냥 둘 다 버리고 미국 가서 금발 만나자.”

“……뭔 소리고.”

“너 미국에선 좀 먹혀. 얼굴에 화상도 멋지다 그러고, 특히 완전 짐승 같아서 좋단 애들 쫘악 깔려 있거든.”

이도 저도 안 되면 새로운 선택은 어떠냔 그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버렸다.

“됐다. 그 얘긴 이제 그만 하자.”

“너도 가서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

큭큭큭 하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민욱이 팀을 짜보자 유혹의 손길을 내밀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나마 민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다 문득 앞의 중계석에 앉아 있는 사키가 힐끔 그를 돌아본 것을 보고 현성이 잠깐 멈칫하고 말았다.

잠이 든 그녀를 두고 떠나왔던 크리스마스 아침. 그리고…… 그 이후로 처음 보는 모습이라만.

그녀는 그를 향해 미소 띤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순간 넋이 나간 듯 멍한 얼굴로 멈춰서버렸다. 그 날 이후로 이상하게 그의 마음이 요동치는 것만 같았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혜주와 헤어져 있었기 때문일까?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맘을 느끼며 현성이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사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보이는 것이라곤 가냘픈 어깨와 다그마한 뒷모습 뿐. 그 모습에 왠지 모를 먹먹한 기분을 느끼며 현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까인 거 맞냐? 까인 거 치곤…….”

“까인거는 니고. 2번이나.”

“너, 이씨!”

“……봉구까지 합하면 3번.”

다른 사람은 다 받아줘도 민욱의 말은 안 받아준단 현성의 대답에 민욱이 ‘맞다!’ 하고 박수를 쳤다.

“근데 그건 어떻게 됐냐? 그 봉구인가 하는 개 봤어?”

“……갠데 진짜 잘 생깄다.”

“무슨 개소리야?”

“아니…… 진짜 갠데 니 닮았아.”

“뭐? 내가 개 같이 생겼다고?”

어이가 없단 얼굴로 민욱이 현성을 바라보자 현성이 그 말에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생긴 건 비슷해도 분위기는 봉구가 나은 거 같다.”

그 말과 함께 다시 떠오른 혜주의 모습.

“이런 미친놈! 내가 누군데 어디서 그런……!”

그를 그토록 애가 닳도록 기다린 그녀를 생각하면 그런 맘을 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정말 안타깝고, 정말 쉽진 않지만…… 역시 그가 가야 할 곳은 혜주의 곁뿐이다. 그리고 흥분한 듯 투덜거리는 민욱의 모습을 보며 현성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영이가 니 보고 싶어 하드라.”

“어디서 그런 개…… 뭐? 그 기집애가 나를 왜?”

흥분하다가도 아영의 말에 민욱이 움찔하며 말을 멈추자 현성이 후후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쉽게 대답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민욱이 ‘누가 궁금해 할 줄 알고!’ 하고 관심없단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한결 조용해진 민욱의 모습에 현성이 평온함을 얻은 듯 마음을 다스리며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자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까딱이며 안절부절 못하던 민욱이 버럭 소릴 질렀다.

“이게 어디서 못 된 걸 배워와 가지고! 자꾸 인터넷 소설 작가처럼 중요한 순간에 끊을래?”

참 못된 녀석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처럼…… 분명히 사키의 곁에도 분명히 좋은 사람, 아주 멋진 사람이 생기기를 기원하며 현성이 말했다.

“……이 맛에 하는 거 같은데?”

============================ 작품 후기 ============================

아, 요즘 너무 집중이 힘드네요. 왜죠?

저도 아직 제 책 못 봤는데 벌써 보신 분들이 계실 줄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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