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250화 (250/281)

- 250 회 - 괴물

“야옹!”

자기가 사람인 줄 안다는 고양이 마키가 식사를 끝내자마자 사키의 무릎 위로 폴짝 뛰어 올랐다.

“마키, 아직 식사 중인데……! 그럼 안 돼!”

“야옹!”

차분한 음성으로 마키를 나무라는 사키였지만 들은 체 만 체 하며 품으로 파고드는 마키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식사 중임에도 불구하고 애교를 부리는 마키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자상함이 가득했다.

“마키가 샘이 많아서……. 평소엔 본 척도 안 하다 사람만 오면 이래요.”

결국 마키를 안아 들고 어쩔 수 없단 얼굴로 양해를 구하는 사키였다. 그 모습에 현성이 옅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심다.”

샘 많은 고양이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키의 모습은 그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면모였고, 무척이나 귀엽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나베를 들다가 사키의 품에 있는 마키를 바라보며 미소 짓자 사키가 미소 띤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현성 씨는 동물 좋아해요?”

김관수 관장의 시골집에서 만난 다람쥐 이야기도 그랬고, 절에 있던 강아지들도 그랬고 두 사람 모두 동물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 키운 적은 없는데 좋아해요.”

딱히 짐승을 키워 본 일은 없었다지만 어릴 때부터 동물들을 좋아했던 게 사실이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동물 캐릭터도 좋아하는 편이었고!

마키에 눈을 떼지 못하고 미소 짓고 있는 현성의 모습에 사키가 입가에 후후 웃음을 띤 채 대답했다.

“왜 좋아 하는 거에요?”

“그냥…… 모르겠네예. 야들은 한결 같으니까……?”

이젠 거의 한국인과 다를 바 없이 한글을 구사하는 사키의 말에 현성이 잘 생각해본 적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런 이유이지 않았을까? 어쩜 정 붙일 곳이 없었으니 그래서 귀여운 것들을 저도 모르게 좋아하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근데 야는…… 암컷이에요……?”

그 이유가 조금은 서글프다 생각하며 사키가 미소 짓는 동안 현성이 마키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자그마한 친칠라 고양이 마키가 그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 도도하게 고개를 돌리고 사키에게 아양을 부리자 사키가 푸훗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응! 이 집엔 남자 한 번도 온 적이 없어요.”

“아…….”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한 그녀의 말에 현성이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금방 사키가 그게 어떤 의미처럼 전해졌는지 알 것 같다는 듯 서둘러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혀를 내밀고 귀엽게 웃음 짓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덩달아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오늘은 현성씨 먹는 양이 줄어든 것 같아요. 음식이…… 맞지 않아요?”

“아, 아뇨! 진짜 맛있는데 고양이에 정신 팔려가…….”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식사하는 현성의 모습에 사키가 후후 웃으며 마키를 꼭 끌어안았다.

“글고 원래 먹는 거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가지고…….”

“아, 그래요……?”

“예. 선수 하면서 몸 불릴라고 많이 먹었는데, 그냥 습관되가 먹는 거지 원래 입은 짧은 편이라가…….”

“입이 짧아?”

계속된 저녁 식사 속 대화! 현성의 말에 사키가 순간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한국어를 익혀온 그녀이지만 아직까지 막히는 부분이 전혀 없진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참 새삼스럽게도 사키가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지 채 1년밖에 되지 않았단 사실을 떠올리며 현성이 미소 지었다.

“카니까 그…… 먹는 거 조금만씩만 먹는 편이라가.”

“아! 입이 짧다…… 하핫……!”

그게 그런 의미인 줄은 처음 알았다는 듯 사키가 해맑게 웃음 지었다.

“재미 있는 말이에요! 그럼 나도 입이 짧아요!”

“그래요……?”

그녀의 웃음에 현성이 덩달아 미소가 그려짐을 느끼며 물음을 던졌다. 긴장하고 경직했던 마음은 온데 간 데 없었다. 그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키의 웃음과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 것이 녹아내린 듯 말이다.

“음…… 나는 현성 씨랑 반대로 계속 관리를 해와야만 했어요.”

“아…….”

“항상 날씬해야 하니까 많이 먹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게 습관이 됐어요! 그래서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먹는 걸 좋아 해서 이것 저 것 많이 하긴 해요. 예전에는 많이 음식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잔소리를 많이 했어요. 나 때문에 살이 찐다고!”

후후 웃음 짓는 사키의 모습은 어찌 보면 현성과는 정반대이지만 식습관마저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방향은 반대이지만 그래서 더 잘 어울릴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나는 내가 많이 먹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이 많이 먹어주면 굉장히 행복해요. 스미레는 이기적이래요. 후훗!”

“아…… 아무래도 스미레 씨는 같은 여자니까.”

“하지만…… 스미레 말곤 함께 식사 해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조금 서글픈 사키의 대답에 현성이 굉장히 안타까운 듯 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사키가 실수를 했다 싶었던지 금방 다시 웃음 띤 채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괜찮아요! 응!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어느 샌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마키의 모습에 그녀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마키, 어느 샌가 자고 있어요.”

재빨리 화제를 돌리는 사키의 목소리에 현성이 옅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사키 씨 목소리가 듣기 좋아가 카는가봐예.”

“아……. 고마워요!”

현성의 칭찬에 사키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굉장히 부끄러운 듯 잠이 든 마키를 꼭 끌어안았다. 소녀처럼 미소 짓고 있는 그 사랑스런 얼굴에 현성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소한 칭찬 한 마디에도 눈에 띠게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로 말이다.

그래서 그런 그녀에게 그 말들을 전해야 한다는 게 무척이나 힘들어 졌던지 저도 모르게 현성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사키가 이젠 때가 왔다는 듯 다소 담담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내가 먼저 말 할래요.”

그리고 그녀가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눈을 감고 있어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 알 겨를은 없었지만 그녀는 분명 미소 짓고 있었다.

“……우리 친구로 지내요. 계속해서, 오래오래.”

잠깐 숨을 멈추었던 사키가 이내 눈을 떴다. 여전히 얼굴엔 미소를 그리고 있었지만 어쩐지 눈을 감았던 그녀의 눈빛이 촉촉하게 물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아…….”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리고 그녀가 먼저 꺼낸 말에 현성이 순간 조금은 당황한 듯 멍청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 못하고 멈춰버렸다.

“아, 예…….”

그리고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에 사키가 모두 다 괜찮다는 듯 미소를 띤 채 살며시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차마 그를 마주 볼 수는 없다는 눈을 피한 채 품에 안겨 잠든 마키를 다시 한 번 더 꼭 안고서 사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우승 했을 때 벌써 알고 있었으니까.”

현성이 혜주를 되찾으려 했던 것. 이미 그건 그가 우승에 대한 의지를 보일 때부터, 그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사키에게 전달되어 왔을 것이다.

“그…….”

무어라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현성이 말을 잇지 못하고 사키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빛에 그녀가 다 알고 있다는 듯, 괜찮다는 듯 미소 지어 보였다.

“이게 제일 행복한 결말이에요.”

현성이 한국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혜주를 다시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그녀가 내린 결론은 그러했던 모양이다.

“꼭 연인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잖아요?”

다시 한 번 더 사키가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초연해 보이는 그 모습에 속에서 현성이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서글픔을 느끼며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이 깊은 배려심을 말이다.

“……고맙심다.”

그 거대한 배려심과, 마음 앞에서 현성이 할 수 있는 건 그녀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주는 일밖에 없었다.

“……정말…….”

“응…….”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고, 그가 정말 원하는 사람은 혜주가 아니라 바로 사키였다고 혹시라도 이야기 하진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런 사람일 수가 없었으니까. 언제나 한결 같은 그 모습에 사키가 정말로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정말로 거짓말관 인연이 전혀 없는, 아주 솔직하고 우직한 사람. 분명히 그랬기 때문에 그녀가 이토록 반해버렸을 것이다. 무거운 얼굴로, 미안한 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 사키가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가로 스미는 눈물을 보이고 싶진 않은지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속이 다 시원하네요!”

그를 위해서 미소 짓고 있지만 감은 눈 사이로 스미던 물기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나, 차인 적은 없는 거에요!”

그의 한숨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았던지 사키가 다시 한 번 더 힘겹게 웃음 지었다.

이겨내야만 한다 스스로를 강하게 붙잡고 있는 그녀는 역시나 강한 사람이었다.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가냘퍼 보였지만 현성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정말…… 진심으로 사키 씨를 알게 돼서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심더.”

진심 담은 그의 말에 그녀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미소 지었다. 감은 눈을 뜨면 이제 더 이상 웃는 척조차 하지 못 할 것 같았던지 말이다.

“그리고 아마 후회하게 될 거에요……. 나 같은 여잘 놓친 거.”

그렇지만 내색하지 말자. 스스로를 다그치며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 말에 현성이 십분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겐 과분할 정도로 너무 완벽한 사람.

“……예. 정말로…….”

그 말에 사키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오히려 더 울컥하는 기분을 느끼며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 줄래요……?”

점점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이 떨려 왔다. 웃고 있는 입 끝이 파들파들 떨려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힘겨운 모습에 현성이 덩달아 마음이 울컥하고 쓰라림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 높이를 맞춰 그가 그녀를 안았을 때 마키를 꼭 안은 채 사키가 그의 품에 얼굴을 기대었다.

그리고 그제야 ‘흑……’ 하고 울리는 그녀의 울음 소리. 그 소리에 현성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 잘 될 거라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말했다.

“으응…….”

흐느끼는 듯 구슬픈 목소리에 잠이 들었던 마키가 깨어난 듯 ‘야옹?’ 하고 소리를 냈다. 그리고 마키가 아둥바등하며 사키의 품을 떠나 바닥으로 사뿐히 착지를 하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안고 있던 마키를 놓친 사키가 그대로 그의 몸을 떠나 보내고 싶지 않다는 듯 와락 끌어안았을 때.

현성이 저도 모르게 자신을 바라보는 듯 한 마키를 향해 힐끔 고개를 돌렸다.

“야옹…….”

정말 자신을 사람처럼 생각한다더니 마키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한 울음소리를 내며 마키가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말라는 듯, 그를 나무라는 듯 말이다.

그 눈빛에 현성이 다시 한 번 더. 어린 시절 보았던 하얀발의 작은 고양이를 떠올리며 품에 안 긴 사키를 꽉 끌어안았다. 떨어지고 싶지 않은 품 속에서 사키가 ‘그래도 보내야만 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서글픈 음성으로 말했다.

“생일…… 축하해요…….”

============================ 작품 후기 ============================

그녀의 생일 선물.

과연 두 사람의 결말은…

현자의 시간, 드디어 출간 되었습니다. 이제 네이버 검색하면 나오네요!

신기합니다 ㅋㅋ 광고 페이지는 제 뜰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소개글에는 낚이지(?) 마세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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