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 회 - 괴물
12월 24일은 언제나 풍요롭게 느껴졌다. 크리스마스를 축복하기 위해서 거리엔 캐럴과 사람들이 가득했다. 오순도순 모여 들뜬 얼굴로 걸음을 옮기는 가족들과 손을 마주잡은 연인들. 거리엔 온통 행복만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예전의 현성은 그 모습을 보는 게 무척이나 버거웠었다. 이부라는 날이 그렇기도 했지만 그 날은 그에게 있어선 무척이나 특별한 날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이 아릿아릿 아파오고, 시린 느낌이 가시지 않아 저도 모르게 일찌감치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곤 했었다. 깨고 나면 26일 밤이길 바라듯이 말이다.
“후.”
허나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더 이상 그들의 훈훈함에 부러워하고 괴로워하지 않았으며, 되려 따스한 미소를 지어 줄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아닌 가족, 친구들, 그리고 아영과 혜주와 함께 보냈다면 좋았을 텐 데 싶은 마음. 그러나 그걸 지금 당장에 해결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별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맘 대신 현성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귀여운 꼬마 아이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동안……
“일찍 왔군요!”
이시이 관장과 류이치를 비롯한 K-1 측 인사들이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아, 오셨습니까?”
현성과 함께 스카이라운지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김관수 관장이 반가운 얼굴로 이시이 관장과 일행을 반겼다.
“생일 정말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
가장 먼저 그들이 던진 말은 역시나 현성의 생일을 축하하는 말이었다. 아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의 현성은 K-1 제일의 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격투기 역사상 최초!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인 최영의 총재를 제외하고, 영화 속 히어로였던 이소룡을 제외하고 이만한 커리어를 기록한 동양인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그건 곧 K-1 부활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그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 법도 했지만 누가 봐도 남자다운 그 면모엔 오히려 더 호의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성실하고 노력하는 천재! 국적을 불문하고 열광할 수밖에 없는 화끈한 파이팅까지!
그 인기가 어느 정도로 대단해졌냐 하면 TBS 방송국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현성의 화상 자국을 따라 분장을 하고 나왔다가 호되게 뭇매를 맞았을 정도로 말이다.
“아, 고맙심다.”
B22
사람이 능글맞아 기분 나쁜 구석도 있긴 했다만 지금으로썬 현성의 든든한 버팀목 중 한 사람이었다. 현성에 대한 애정을 한 가득 선보이는 이시이 관장이 수행하러 온 류이치를 힐끔 바라보자 류이치가 들뜬 얼굴로 눈인사를 하며 들고 온 뭔가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현성 대신 김관수 관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음을 던지자 이시이 관장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파이널 대회 이후에 휴블럿 사에서 소식을 듣고 선물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휴블럿?”
김관수 관장과 현성이 그게 뭔지 모르겠다 서로 힐끔 고개를 돌리자 류이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굉장히 고가의 시계 회사입니다. 스포츠 스타일의!”
그 말에 ‘아!’ 하고 김관수 관장이 감탄을 터뜨리자 현성이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류이치가 내민 상자를 바라보았다.
“한 번 열어보시죠. 나중에 관계자들을 만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휴블럿에서 먼저 스폐셜 에디션 제의가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그 전부터 이시이 관장이 여기저기에 발품을 팔면서 스폰서를 구하려 노력 했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뭔진 몰라도 자부심 있어 보이는 그의 얼굴에 김관수 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시계란다. 함 열어 봐라.”
“아…… 시계요?”
현성이 이런 선물은 또 처음이라는 듯 괜시리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그가 류이치에게서 상자를 받아 열자마자 그 안에서 무척 단단해 보이는 시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광 블랙의 묵직한 베젤과 그 안에 마치 현성의 화상 자국 같은 붉은 글씨가 섞여 상당히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명확하게 새겨진 글씨!
‘K-1 World Grand Prix Champion J.H.S’
이탤릭체로 새겨 넣은 그 글씨가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느낌까지 더해주고 있었다.
“와…….”
얼핏 보아도 상당히 고가의 제품이란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우레탄 밴드마저도 그가 어릴때 쓰던 전자시계와는 달라 보일 지경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후후 웃음 짓는 이시이 관장의 말에 현성이 굳이 해석을 듣진 않아도 이젠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곧 휴블럿 관계자와 미팅을 가지게 되면 스폐셜 에디션 제품으로 한정 판매 될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선 김관수 관장도 생소한 게 사실이었다. 스포츠 브랜드의 후원은 경험해보았지만 이 정도로 고가의 브랜드에서 후원을 해준 경험은 처음이었을 테니!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일들이란 것이었다.
“당연하지요! 누가 뭐래도 이견이 없는, 완전무결한 챔피언입니다! 현성 군이 말입니다!”
K-1 월드 그랑프리 우승자에겐 그만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역대 최초의 동양인 챔프라면 더더욱 말이다! 김관수 관장이나 현성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건 유럽 프리미언 리그의 유명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단 의미이기도 했다.
“막 안 화려해가 좋은 거 같네예.”
고가의 물건이라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현성이나 김관수 관장이 생각한 것은 수백만원 정도. 하지만 실제론 수 천 만원을 호가 하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담담하지 못했을 런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선물 증정이 끝이 나고 이시이 관장이 자리를 잡았다.
“아무튼……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텐 데.”
마주 앉은 이시이 관장의 목소리에 현성과 김관수 관장이 조금 들뜬 맘을 가라앉히곤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오늘 이 자리는 현성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논의를 위한 자리!
“정말로 응 할 생각 입니까?”
원래대로라면 어떻게 해서든 이시이 관장이 현성을 연말 이벤트인 다이너마이트에서 시합을 가지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예.”
왜냐하면 그가 직접 제의했던 UFC와의 공조 계약서에 현성이 싸인을 했고, UFC 헤비급 타이틀로 또 다른 목표를 가진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잘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들은 위험을 부담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K-1의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K-1이 부활하는데 가장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역시나 현성의 존재였다. 동양인 선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을 모조리 때려눕히는 데 걸린 시간은 예선과 본선을 합쳐 채 10분이 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스코어인지는 말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었다. 5경기를 모두 끝내는데 걸린 시간은 약 8분. 중복되는 이가 있긴 했지만 그건 이전에 스탠딩다운 한 번 당한 적이 없었던 자말 로우지란 괴물이라는 것!
그러다 보니 현성이 K-1의 부흥을 이끈 것도 사실이지만, 더불어 그의 어깨에 너무 많은 것들이 실려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무너지면 K-1이 다시 무너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시이 관장이 말 한 위험 요소였다.
“하지만 승산 있습니다. 현성이는 원래 MMA 선숩니다.”
김관수 관장과 현성의 의미는 확고했다. 기실 그들의 진짜 목표는 K-1이 아니라 처음부터 UFC였다. 다소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하이패스보다 빠르게 UFC 메인 무대로 인도해줄 줄은 몰랐다만 이건 분명 기회였다.
“그래도 지금 현성 군의 어깨에는 우리 전체가 달려 있습니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대회에 적응을 하기도 힘들지 않겠느냐 싶은 맘도 있습니다만…….”
이시이 관장이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또 있긴 했다.
바로 로렌조 퍼티타!
카지노 재벌인 그와 연계하게 된다면 막대한 재정적 후원이 이어질 수 있단 것이었다. 현성이 지게 된다면 K-1도 다시 흔들릴 수 있다지만, 만약에 승리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K-1의 부활을 넘어서서 이전에도 기록하지 못한 중흥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미리 가서 준비를 할 생각입니다. 미국 짐에 이미 인력이 있고, 주파 측과 직접 이야기해서 일정을 잡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월드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직후 현성은 바로 UFC 타이틀로 눈을 돌렸다. 그 자신이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어 당당하게 다시 혜주를 되찾고 싶단 열망 덕분에 말이다.
“자신 있심다. 믿어 주이소.”
간절한 눈으로 현성이 이시이 관장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이시이 관장이 다소 망설이는 듯 생각을 하다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로썬 도박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이미 K-1은 한 번 내려앉은 적이 있었으니까! 아주 처참할 정도로 말이다!
그걸 간신히 수습한 게 지금이라만 지금 챔피언인 현성이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패배를 당하게 된다면 또 다시 K-1은 내려앉고 말 것이다.
“……후.”
조금 망설이는 듯 한 이시이 관장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더욱 더 열과 성을 담았다.
“상상만 해도 전율이 오지 않습니까? UFC와 K-1 양대 챔피언 말입니다!”
“물론 매력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위험 부담이…….”
“위험 없이는 결과도 없습니다.”
그 말에 이시이 관장이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 제안을 승낙하기만 해도 그에겐 상당히 많은 것들이 주어졌다.
데이나 화이트 뿐 아니라 로젠조 퍼티타가 특히 16강과 파이널을 직관하고 나서 현성에게 푹 빠져 들었기 때문이었다. 팬을 자청하며 직접 만남을 주선해달라 적극적으로 요청을 할 정도로 말이다.
“……정말로 자신이 있습니까?”
이시이 관장으로써도 전혀 계산이 없는 건 아니었다. 비록 군소단체이긴 했지만 현성은 로드원 FC의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바 있었다. UFC 타이틀전을 치르게 된다면 상대가 될 레슬러 미구엘 로제스타의 공격을 막아낼 능력이 있을런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스탠딩에서 단 일격에 로제스타를 끝을 낼 수 있는 ‘한 방’이 있기도 했고!
지금의 그는 산불과 같았다. 막으려고 해도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거대한 불길 말이다. 그것에 배팅을 한 버 해보기로 마음을 먹은 듯 이시이 관장이 진중한 눈빛을 보였다.
“예.”
물어 무엇을 하겠는가? 이미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장인 만든 칼날처럼 서슬 퍼런 빛을 내뿜는 눈빛에 저도 모르게 이시이 관장의 몸이 움츠러들 지경이었다.
“……넘어간다 해도 바로 타이틀 샷을 주진 않을 겁니다. 분명히 시장에서 검증을 하려 할 거에요.”
이시이 관장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마지막 설득인 듯 진중한 그의 말을 김관수 관장이 번역해주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타이틀 전을 치르기 전 한 번 정도는 경기를 치러야 할 것이다. 아무리 그가 K-1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국내 로드원 FC 미들급 챔프를 역임했다 하더라도 시장에선 검증이 필요하니까.
미국 UFC 팬들에게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모습일 것이다. 허나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릴 리 없었다. 미국 UFC 넘버 시리즈는 한 달에 한 번씩 개최를 하고 있고, 챔피언인 미구엘 로제스타는 벌써 몇 달째 경기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괜찮심다. 다이죠브.”
오히려 그런 의미에선 이쪽이 더 날카로운 실전 감각을 가지고 임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절대로 질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다시 되찾아내야만 했다.
그 생각에 현성이 벌써부터 몸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는 지는 법은 못 배웠심다.”
============================ 작품 후기 ============================
인기 선수의 필수 코스!
휴블로 빅뱅 K-1 월드 그랑프리 챔피언 스폐셜 에디션!
가격대는 약 1700만원~3000만원.
(박지성, 추신수, 마라도나 시계랑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출판본은 6일에 전국 배부되면 확인 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도 긴가민가(?) 해서 확인 해보았는데 오늘 출간 되는 거 맞다 하더라구요. 출판에 대한 환상이 있었나 봐요ㅋㅋ (교정본 받고, 다시 작가교정본 보내주고, 최종 교정본과 표지 컨택은 마치고 출판일 확정 되면 공식적으로 오피셜도 띄워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더라구요.)
생각보다 출간 과정이 너무 심플해서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6일 이후엔 확인이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
택배 받으면 이벤트 응모 해주신 분들께는 고루 보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