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회 - 괴물
K-1 월드 그랑프리의 결과는 단순히 일본만을 흔든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셔독 포럼과 MMA 정키를 비롯한 모든 격투 커뮤니티가 뒤집어 졌고, ESPN같은 스포츠 채널 뿐 아니라 일본의 NHK, TBS를 비롯해 국내의 9시 뉴스에서도 소식을 전달 할 지경이었다.
격투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챔피언! 종합이든, 입식이든 이는 분명히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맙소사, 3경기를 4분 58초 만에 끝냈어! 기록도 역대 최고야!”
“바다 하리, 자말 로우지, 다니엘 기타 세 사람을 상대로 낸 기록이라니! 맙소사!”
게다가 그것은 완벽에 가까운 승리였다!
비록 첫 번째 상대인 하리가 공백기를 가졌다고 하지만 그의 기량은 이미 지역 대회를 통해 확인된 바 있었다. 본인과 코치진들이 전성기 때 보다 더 강하다 밝히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공백기는 더 이상 변명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 곱히기도 했고!
두 번째 상대였던 자말은 또 어떠한가? 타고난 내구성과 위협적인 펀치 탓에 토너먼트 최강의 난적으로 손꼽혔던 이가 그였다. 게다가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최단 시간 KO승을 거두었던 상대가 아니던가?
그리고 파이널의 상대! 쇼타임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기타는? 레미 본야스키가 은퇴하고, 하리가 공백을 보내는 동안 유럽 대회를 휩쓸었던 사실상 최강자였다. 네임 벨류와 기량, 실력 모든 면에서 최정상인 선수들 셋을 5분 안에 침몰 시켰단 것 자체로 이슈가 될만한 일이었다.
여지껏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동양계 선수들이 홈 어드밴티지와 심판들의 지원을 받아오며 비판 받았던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었다.
“한국의 피터 아츠!”
“아냐, 밴너에 가깝지 않아?”
“하지만 기타를 쓰러뜨린 킥은 럼버잭 그 자체였어!”
“이 친구는 사기 같아! 펀치는 밴너와 보브찬친(러시안 훅의 창시자)을 섞은 것 같고, 킥은 아츠를 연상케 해! 굉장해!”
“혹시 동양의 비기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VADA(약물 검사 단체)에 검사를 의뢰 해봐야 해!”
그건 곧 동양인 선수들에 대해선 혹평을 하기 좋아하던 서양의 격투 팬들도 현성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단 말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미 당 해 최고의 신인, 최고의 시합 두 파트에서 50퍼센트가 넘는 득표율을 보이며 셔독 어워드 정상을 차지한 상황이었지만 그것은 화룡점정이었다.
최고의 결말, 최고의 마무리! 이제는 국내와 일본을 넘어서서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성공적인 첫 걸음과도 같았다.
“그런데 대체 로렌조는 일본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분명 전 시합에서도 모스을 보였다고!”
“혹시 로렌조가 저 괴물을 영입하려는 게 아닐까?”
“그렇게 된다면 분명히 로제스타도 긴장해야 할 거야! 로제스타의 독주를 유일하게 막아낼 수 있는 선수라고!”
무엇보다도 더 큰 반향을 일으킨 건 역시 로렌조 퍼티타였다. 그가 모습을 드러냈고, 현성이 참여한 월드 그랑프리 경기를 모두 관람했단 것!
그것은 분명히 K-1과 UFC 간에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오가고 있단 것과 같은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MMA와 입식은 달라! 아무리 장이 강하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링 위에서지 옥타곤에선 아냐!”
“하지만 장은 MMA 선수 출신이야! 그의 한국 시합을 보면 그런 말은 하지 못 할 걸?”
“아무리 그래도 로제스타는 NCAA 챔피언 출신이야! 입식을 잘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그래도 혹시 모르지. 스탠딩 게임에서 로제스타를 침몰 시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그림은 K-1 월드 그랑프리 챔피언이자, 로드원 FC 미들급 왕좌에 올랐던 현성과 현 UFC 헤비급 챔피언 미구엘 로제스타와의 시합이었다.
7차 방어전을 성공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언디스퓨티드 챔피언 로제스타! 명실공히 헤비급 최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상대를 구하지 못해 매치업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성의 존재는 한줄기 서광과도 같았을 것이다.
실제로 데이나 화이트와 로렌조 퍼티타 모두 그런 생각으로 제안을 건넸었던 것이고. 이 알려지지 않은 서류상의 일은 현성이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로제스타는 아직 부담스러운 상대일 테니까 거절하지 않을까?”
“하지만 성사만 된다면 어마어마한 PPV 수익을 올리게 될 거야! 아시아 전역은 물론이거니와 라스베가스 도박꾼들도 난리가 날 테니!”
“라스베가스에서 이 대회가 열린다면 난 반드시 보러 갈 거야! 장을 실제로 보고 싶어!”
12월 11일, 최초의 동양인 챔피언 탄생 했고 그 아래로 미구엘 로제스타와의 시합에 대한 코멘트가 끊이지 않는 상황!
그 상황 속에서 정작 주인공인 현성은 무척이나 고요한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방송 출연은 안 합니데이. 예, 죄송합니더.”
국내외에서 몰려드는 취재진 모두를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그에겐 방송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명예를 얻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후.”
민욱의 소개로 말끔하게 맞춰 입은 정장은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듯 편안했다. 남들보다 큰 덩치 탓에 사이즈를 맞추기가 상당히 힘들었다만 몸에 맞춘 옷이다 보니 브랜드가 없어도 그게 더 좋은 것 같았다.
“괜찮나……?”
그다지 외모에 신경 쓰고 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현성이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며 여기 저기 몸을 돌려 보았다.
선이 딱 떨어지는 셔츠와 그 위로 이태리 멋쟁이들이 입을 법한 고급스러운 라펠의 재킷이 평소보다 훨씬 더 멋지게 그를 꾸미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꾸만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넥타이는 오바가…….”
화장실 거울 앞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인 이유는 바로 타이의 유무! 대충대충 입고 나가면 될 일이지만 그것조차도 쉽지가 않았다.
타이를 바라보던 현성이 이왕 입는 김에 완벽하게 입어보자 싶었던지 셔츠 카라 깃을 올리고 그 위로 넥타이를 감기 시작했다.
“……이래 하면 되나…….”
영 넥타이를 매는 게 어색했던지 어렴풋이 배웠던 기억을 더듬으며 현성이 타이를 매듭짓기 시작했다. 몸의 라인을 살려주는 까만색 투 버튼 재킷과 잘 어울리는 빨간 실크 타이에는 모양만 봐도 알 법한 G사의 패턴이 있어 심심해 보이지도 않았다.
“후.”
익숙치 않은 터라 헤매기도 했지만 어렵사리 기억을 떠올려 타이를 묶은 현성이 삐뚤지 않게 균형을 잡고 올렸던 카라 깃을 내렸다. 그리고 입고 있던 까만 재킷의 윗 단추를 잠그자 심심해 보였던 전과 달리 조금은 화려한 느낌이 가미 되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게 좀 나아 보이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꽤 근사해 보였다. 비록 여전히 얼굴은 화상과 태생적으로 험상궂은 얼굴이라 못난이처럼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나도 제법……’이란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자뻑.”
괜히 또 그게 창피했던지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만질 것도 없는 짧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슥 만지곤 숨을 골랐다.
“휴.”
이제 모든 준비는 끝이 난 셈이었다. 약속이 있었던지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그가 밖으로 걸어 나와 조심스럽게 베란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현성이 혼자 살고 있는 그의 집 주변은 며칠 전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던 남자의 집치고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인자는 없겠지……?”
사실 월드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많은 언론들이 그와 만나길 희망했었고, 몇 몇은 대구까지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 했었다. 연일 주변을 시끄럽게 하며 언론들의 요청들이 계속 되었고, 취재진들이 주변을 맴돌았었지만 현성의 의사는 분명했다.
인터뷰는 파이널 이후 K-1을 통해서 했던 공식 인터뷰만으로 충분하며 휴식을 취하고 싶단 것이 주된 이유였다. 물론 지금까지 숨을 쉴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현성이니만큼 그 누구도 이견을 달 수는 없었다.
그리고 꿈같은 그랑프리 우승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은 크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저 현성은 자신이 해야만 할 일들을 해왔을 뿐이었으니까. 자신을 위해서, 김관수 관장을 위해서, 그리고 응원해줬던 모두를 위해서. 그걸 굳이 언론들에게 알리고, 그들의 기대치를 채워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그렇게 희망 했던 것은 ‘그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함이 아니었으니까.
“후.”
또 다시 한 번 숨을 고르고 현성이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이상하게도 월드 그랑프리 결승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긴장되는 것만 같았다. 그 생각에 그가 옅은 미소를 띤 채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 화면을 켜 보았다.
“……아.”
여전히 그의 핸드폰 바탕 화면을 채우고 있는 혜주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면 속 웃고 있는 그녀는 지금도 그대로일까? 100일이 넘는 긴긴 시간동안 만나지도 못했던 그녀를 이젠 드디어 만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걸 누가 뭐라 했던 것도, 그러지 말라 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젠 자신이 생겼다.
그의 집 한 구석에 걸어 놓은 로드원과 K-1의 트로피! 그리고 월드 그랑프리 벨트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주었으니까.
“후……. 왜 이래 긴장 되노.”
그렇다곤 하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슴이 너무 크게 요동치고, 설레어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다시 한 번 더 숨을 고르던 현성이 마지막으로 깊게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미리 준비했던 꽃다발을 들고 그가 집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부르르!
그와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왼손엔 꽃다발을 들고, 오른손에 든 핸드폰으로 화면을 확인하던 현성이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영이가?”
표정만큼이나 들떠 있는 그의 음성에 ‘응! 오빠야!’ 하고 세상 그 무엇보다도 밝고 아름다운 음성이 들려왔다.
-오빠야, 언제 오노?!
생일 전에는 반드시 찾아가리라. 약속했던 그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달려왔던 바로 그 날!
즐거워하는 아영만큼이나 함께 있을 혜주도 이 순간을 기다려준다면 좋을 텐 데. 묘한 기대와 불안을 품은 현성이 왠지 모를 벅찬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이제 간다, 아영아.”
그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핸드폰에서 ‘우와아아아아아! 진짜?! 진짜?!’ 하고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지껏 두 사람을 위해서 계속해서 참고 있었던 아영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참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리 어른스러우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가련한 소녀!
그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현성의 마음이 울컥하고 흔들렸다. 현성과 혜주가 힘들었던 만큼 함께 힘든 시간을 보냈을 아영이 아니던가? 얼마나 이렇게 즐거워 하고 기뻐하고 싶었을까? 그걸 꾹 누르고 감춘 채, 매일 밤마다 민욱에게 전화를 걸고 이야기를 꺼냈을 아영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을 가렸다.
“응. 조금만 기다리면 오빠야 금방 간다.”
-얼만큼 걸리는데, 오빠야?! 십분오분일초만에 오나?!
목소리만 들어도 아영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가 선했다. 생일 날 원하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방방 뛰며 기뻐하고 있진 않을까? 혜주만큼이나 보고 싶었던 아영의 모습을 그리며 현성이 미소 지었다.
“이제 엘리베이터 타고, 택시 타고 가면 금방 도착한다. 응, 십분오분일초만에 간다.”
그리고 그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누르고 초조하게 숫자들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엘리베이터가 오늘따라 느리게만 느껴지는지! 잠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느낌을 무어라 말해야 할까?
아무래도 현성은 말보단 몸이 앞서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윗층에서 멈춰선 채 내려오지 않는 엘리베이터 대신 구두발 소리를 내며 그가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빠야, 무슨 소리야? 말 타고 오나?! 강남 스타일!
말춤에 푹 빠져 있는 아영이 그 소리를 듣고 무척이나 기대되는 듯 한 음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 현성이 잃어버렸던 것들을 이제 정말로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것 같단 확신에 차 말했다.
“응! 지금 만나러 간다!”
============================ 작품 후기 ============================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입대를 앞둔 분들을 위해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완결까지 도달 할 수 있도록 달려 보겠습니다.
현자의 시간(사열, 로크 미디어) 3월 4일 출간 됩니다.
전국 배부는 3월 6일이구요. 아마 그쯤하면 저도 초판 20권 로크에서 받을 것 같네요.
기다리고 성원해주신 분들께 약소하나 작은 이벤트 진행하고자 합니다.
쪽지로 주소, 성함 보내주시면 10분 선정해서 사인본 우체국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보시고 서평 남겨 주실 수 있으신 분들이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이것도 사실 실험적인 작품이라서 호불호가 갈릴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끔껏 제가 조아라서 계속 글을 써오면서, 많은 작품들 하면서 계속 함께 해오셨고 힘이 되어 주신 고마운 분들께는 별도로 쪽지를 보내겠습니다.
아, 나 정도면! 싶으신 분들 쪽지함 한번씩 확인 하세욥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