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회 - 괴물
“K-1 월드 그랑프리 준결승! 자말 로우지 대 장현성! 이제 그 서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월드 그랑프리도 이제 슬슬 절정을 향해서 흘러가네요! 결승을 포함해 이제 마지막 3경기만이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과연 장현성, 마지막 결승까지 진출 할 수 있을지!”
“아무래도 자말 로우지 선수가 대단히 강하고, 또 내구성 덕분에 토너먼트에선 최악의 상대라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기동력 면에서 장현성 선수가 압도적이니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자말과 현성의 시합은 시작 전부터 장내를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도 그런 것이 지난 아시아 챔피언 결정전에서 두 사람이 보여준 싸움은 셔독이나 MMA 정키, 위클리 포럼 같은 거대 사이트에서 꼽은 올해 최고의 매치에서 50 퍼센트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 두 사람이 이제 월드 그랑프리 준결승에서 다시 한 번 리매치를 벌인다니? 이는 당연히 도쿄돔에 운집해 있는 3만 여 팬들과 중계진을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물론 이미 승리한 적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만 문제는 이게 토너먼트란 것이죠! 누누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만 토너먼트는 단발적으로 보아선 안 되는 시합이거든요. 게다가 자말 선수는 우승보단 리벤지에 무게를 더 두고 있는 것 같던데 아무래도 자말 로우지를 상대로 너무 많은 체력을 소진하고 부상을 입게 된다면 승리해도 결승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우려 섞인 김대환 해설 위원의 목소리에 MC 용준이 애가 탄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필이면 왜 또 자말 로우지일까요? 참 대진표가 원망스럽습니다!”
“게다가 다니엘 기타가 1 시합에서 그리 큰 체력소모나 부상 없이 오랜 시간을 휴식했고, 짐머맨에게도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기권승을 거두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장현성 선수가 조금 안 좋은 상황에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응원은 하겠지만 최대한 상황은 정확하게 파악을 할 필요가 있었다. 김대환 해설 위원의 안타까운 음성에 MC 용준이 꿀꺽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쪼록 우리는 장현성 선수가 무난한 승리를 가져갈 수 있도록 무운을 비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칼을 갈고 나온 자말이 그렇게 쉽게 쓰러질지 장담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무대 정리가 분주한 가운데 급하게 전 경기가 끝난 만큼 장내 아나운서가 서둘러 링 위로 걸음을 재촉했다.
어둠 속에서 링 위로 올라가 그가 다시 헤드 라이트를 받자 조금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비춰졌다.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터져 나온 함성은 준결승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사실 두 사람이 아시아 챔피언 결정전에서 싸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것은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시합이었다.
성 난 멧돼지처럼 난폭하고 위협적인 자말 로우지! 그리고 핏불처럼 투지 가득한 현성! K-1 측에서 가장 어그레시브한, 아니! 격투기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어그레시브한 선수 두 명의 시합이니 말이다!
“드디어 장내 아나운서가 입장했습니다. 그 자체로 기대가 됩니다. 아, 입술이 바짝 마르네요!”
“장현성 선수가 어떻게 자말을 상대할지가 관건이네요! 인, 아웃이 모두 가능한 선수이다 보니 아무래도 아웃 스트라이킹 전략을 구사하지 않을까 싶은데… 부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기원, 또 기원! K-1 무대에서 여지껏 동양인이 낸 가장 좋은 성적은 준우승이고, 한국 선수의 경우는 8강이 최고였다. 그것을 이미 갱신해낸 현성이 동양인 최초로 K-1 월드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이것은 격투계에서도 상당히 기념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친 숨을 고르고 난 장내 아나운서가 이제 호흡이 정돈된 듯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상투적인 그 멘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쏟아내는 환호는 여지껏 보여 왔던 것들과 격을 달리 했다. 격투기 이벤트의 관중으로 와서 가장 보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멋지고 화려한 기술의 향연과, 동시에 링 위의 두 사람이 보여주는 투지일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이것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시합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좀처럼 참지 못하고 사람들이 환호를 내질러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파묻힐 지경이었다.
“지금부터 K-1 월드 그랑프리! 준결승 제 2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소개합니다! 레드 코너! 자말 더 워리어 로우지!”
사람들의 함성과 경쟁을 하듯 장내 아나운서가 소리를 질렀다. 먼저 등장을 하는 것은 3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자말! 그 외침과 함께 다시 도쿄 돔에 마우리 전통의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과 달리 그리 오랜 대기 시간을 가지진 않을 셈인지 자말이 금방 모습을 드러내 성큼성큼 링 위로 걸음을 옮겼다. 결연한 그 얼굴은 마치 준결승이 아닌 결승전을 치르는 선수처럼 기백이 흘러 넘쳤다.
“와 자말 로우지! 엄청난 기백이네요! 이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거의 목숨을 걸고 올라오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역시 리벤지 매치는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나요?”
‘리벤지(Revenge)!’
격투계에서 이 말 만큼 많은 의미를 가진 단어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곧 선수의 자존심과, 모든 노력이 걸린 일이었고 리벤지는 때때로 타이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리벤지의 승리와 함께 벨트까지 거머쥘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지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자말이 준결승에서 현성을 잡고 내친 김에 우승가지 차지하겠다는 듯 결연한 얼굴로 링 앞까지 성큼성큼 다가와 ‘아우우우우!’ 하고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하아! 하!”
하카를 완전히 생략할 수는 없었던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야성이 넘치는 모션으로 발을 구르고 두껍고 단단한 자신의 몸을 철썩철썩 두드리는 위협적인 동작에 사람들이 환호해 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
환호 소리를 만끽하며 자말이 분노를 사정없이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성에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정당한 시합이었고, 상대인 현성은 불리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정면으로 맞서 싸워 자말을 KO 시켰다!
그가 가진 분노는 현성을 이기지 못한 자신을 향한 것!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얼마나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던가? 그와의 싸움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절치부심하며 훈련에 임해왔고, 그 결과가 이제 곧 펼쳐질 것이다! 다시 한 번 그를 만나니 즐거움과, 희열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 충만한 기분을 만끽하며 자말이 잠시도 참을 수 없다는 듯 상기된 얼굴로 링 위에 오르자 사람들의 환호가 다시 한 번 그를 향했다.
“하아아아아아! 하카!”
괴수처럼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더욱 더 고양시키는 자말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원시 부족의 주술사와도 비슷해 보였다. 그 소리에 자극 받은 듯 사람들이 더 큰 함성을 터뜨리는 동안 장내 아나운서 역시 이 시합이 너무나도 기대된다는 얼굴로 자말과 블루 코너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블루 코너! 로드원 FC 미들 웨이트 챔피언! 자아앙! 디 몬스터! 혀언성!”
드디어 그가 현성의 이름을 불렀을 때! 다시 한 번 더 럭스 아테나의 장엄한 사운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8강전의 시합처럼 따로 영상이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 그 선율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을 자극시키기 충분했다!
“럭스 아테나! 그리고 파란 불빛! 아까 전과는 상반된 분위기네요!”
“과연 장현성,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하리를 침몰시킨 작전과 수행 능력이라면 충분히 자말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자말의 기백! 그리고 이에 맞서는 현성…! 매번 다윗과 골리앗 중 다윗이 되어 버린 현성이지만 그는 승리를 가져갔다. 때로는 우직하게, 때로는 기술적으로…!
“카이부쯔! 카이부쯔!”
그렇기 때문일까? 벌써부터 현성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심지어 또 다시 화면에 잡힌 로렌조 퍼티타와 동행한 조 로즌까지! 모두가 그의 팬이 된 듯 주먹을 치켜들고 현성의 또 다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자말이 그의 입장을 기다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링 위를 거니는 동안… 현성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까와 마찬가지로 부동명왕의 티셔츠를 걸친 채 동요 없는 얼굴로 링을 응시하는 현성! 그 모습에 도쿄돔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광란의 파티 현장처럼, 곧 벌어질 두 남자의 가장 공격적이고 사나운 쇼에 사람들이 열광을 더했다.
“…분위기 엄청나네.”
그 정도로 가열된 분위기는 세컨진들도 처음이었다.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기가 질릴 지경이었으나 현성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대에 익숙한 키드가 과거 킬러비에서 트레이닝 하며 자말을 잡았던 선례를 떠올리라는 듯 직접 사키의 깃발을 들고 선두에 서서 깃발을 좌우로 흔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요한 현성과 달리 쇼맨쉽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을 비롯한 세컨 진들의 긴장도 풀린 것인지 그들이 현성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손길에 현성이 옅은 웃으로 그들을 돌아보며 시선을 주고받고는 이내 뒤돌아서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장현성! 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저 당당한 걸음걸이를 보십시오! 감히 왕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가 아니겠는가! 이야기를 드려 봅니다!”
“저 부동명왕 티셔츠는 정말 잘 만든 것 같습니다. 장현성 선수와 너무 잘 어울리네요! 이제 링 네임을 괴물에서 명왕님으로 교체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 모습에 불안과 걱정에 표했던 MC 용준이나 김대환 해설 위원도 이상하게 안심되는 기분을 느끼며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중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무어라 이야기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날이 잔뜩 서 있는 자말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하게도 자말이 보여준 기백 못지 않은 담대한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것에 마음이 울렁울렁 하며 부풀어 오르는 것들을 느끼곤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현성의 이름을 불렀다.
“카이부쯔! 카이부쯔!”
그 열광과 환호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현성의 마음속에 있는 자신감도 커져 갔다.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외면 당한 채 놀림 받던 괴물이 아니다. 이젠 사람들의 환호와 열광을 받는 존재가 되어 간다! 아직까지 스스로 떨쳐내지 못했던 과거의 잔재들! 그것들마저도 더 큰 환호와 열광으로 지워낼 수 있다면…! 그때야 말로 진정으로 현성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리!
물론 자리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스스로를 자부 할 수 있는 자리를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맘속엔 그것으로 인해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참지 못하고 새어나오는 그 깊은 열망으로 현성이 링 위의 자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장현성과 자말 로우지! 대치 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눈싸움입니다!”
“와, 제 몸이 떨릴 정도네요! 이 정도로 긴장되는 시합이라니…!”
각 기 이유는 달라도 지금 이 순간 넘어야 할 대상이 서로란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성이 티셔츠를 벗고 링 위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접근에 자말이 참지 못하고 달려나갈 것 같은 자신을 억누르며 뉴트럴 코너로 가 로프를 양 손으로 움켜 쥐었다. 스스로를 통제하려는 듯 한 그 움직임 속에서 현성이 날렵하게 로프를 뛰어 넘어 링 안으로 들어오자 일순간 함성이 한번에 터져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피도 절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운데로!”
준결승을 맡은 심판 기쿠다가 현성과 자말을 링 한 가운데로 불러왔다. 그 호출에 참고 있던 자말이 무척이나 기쁜 듯 거칠게 콧바람을 내뿜으며 중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현성을 잡아 먹을 듯 바라보는 자말의 시선!
“굿 럭.”
하지만 그 시선에 주눅은커녕 미동조차 없는 차분한 얼굴로 현성이 먼저 글러브를 내밀자 사람들이 아시아 챔피언 결정전의 모습이 재현될 것 같다는 묘한 기대감에 다시 한 번 환호를 터뜨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시작해라! 얼른!”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관중까지 모습을 보일 지경이었다. 그 격한 환호와 웅성임 속에서 자말이 바라던 바라는 듯 현성이 내민 글러브를 터치하고는 씩 웃으며 먼저 현성을 안고 그의 등을 툭툭 쳐 보았다.
“아아! 두 선수! 상당히 정겨워 보이는데요?!”
“그만큼 잘 해보자, 좋은 시합을 만들어보잔 의미가 아닐까요? 라이벌 관계에 놓여져 있습니다만 상대에 대한 존중이 분명히 느껴지는 장면 입니다!”
그것이 더 큰 환호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분명히 이 이른 인사는… 경기가 시작되자 마자 서로 공격을 할 것이란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일 테니!
노련한 기쿠다 심판마저도 그 모습에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격투기 가진 가장 큰 엔터테이너란 것을 알고 있기에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그가 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합니다…! 임박 했습니다…!”
꿀꺽 침을 삼켜 마른 목을 적신 MC 용준! 그 중계와 함께 장내도 고요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두 선수의 시작을 놓칠까 어느 샌가 도쿄돔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아 유 레디?!”
정적 속을 울리는 기쿠다의 물음에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 묘한 정적! 찰나의 순간이 무척이나 긴 시간인 것 같다 느끼며 현성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숨을 고르고는 파이팅 포즈를 잡았다. 그리고 자말 역시…!
대답 대신 시작부터 치고 나갈 준비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아우라가 풍겨나오기 시작했다. 전운이 맴도는 링 위…! 집중력 가득한 눈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링 위에 머물렀을 때…! 기쿠다가 이런 시합의 개전(開戰)을 알릴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단 얼굴로 소리쳤다.
“파이트!”
============================ 작품 후기 ============================
어젠 오랜만에 착하게 살자 코멘트 8천개 정주행 했네욥 ㅋ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구요! 아마 차기작품에선 그 비슷한 분위기를 다시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