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 회 - 괴물
“리저브 2 매치의 승자는 토니 모리스! 오랜만에 판정이 나왔네요…! 하지만 이 승부도 상당히 치열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번 대회 자체가 매우 공격적이고 버라이어티한 장면들이 많이 펼쳐지고 있네요!”
토니 모리스와 비욘 브레기의 리저브 매치마저 끝이 난 이후! 이제 월드 그랑프리의 일정 역시 준결승과 선수들에게 휴식을 위한 수퍼 파이트 매치, 그리고 대망의 결승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리저브 자격을 얻긴 했습니다만 리저브 인원이 들어갈 자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준결승에 진출한 다니엘 기타와 에롤 짐머맨, 자말 로우지…! 그리고 우리의 장현성 선수 모두 8강 전에서 큰 부상을 입진 않았거든요!”
“혹시라도 준결승에서 대체 인원이 발생한다면 아 이거 참 운 좋다고 밖에 볼 수가 없겠네요!”
꽤 긴 시간을 중계해온 만큼 MC 용준이나 김대환 해설 위원도 다소 피로가 누적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경기들 자체가 전반적으로 화끈한 KO승으로 이어져 왔었고, 구미를 자극하는 경기들이 가득하다 보니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지금 이 두사람을 무척이나 기운 넘치게 만드는 것은 현성이 준결승까지 진출을 했단 것일 것이다!
“그런 일은 없도록 준결승을 치루는 선수들이 각별한 주의를 했으면 합니다. 아무튼 이제 곧 준결승 1 경기가 다니엘 기타와 에롤 짐머맨의 시합이 펼쳐 집니다. 사실 이 시합은 기타가 여러므로 우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네, 전반적인 기량은 기타가 에롤 짐머맨을 상회합니다만 짐머맨 선수가 간간히 업셋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190센티에 110킬로 가량 되는 육중한 몸에 이 선수도 신장에 비해서 리치가 긴 편인데요, 그래서 역전 KO승을 거두는 일이 꽤 많습니다! 기타 선수도 방심을 한다면 곤란하겠죠!”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사실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매치가 준결승 1 경기 말고 사실 준결승 2 경기이거든요! 자말 로우지와 장현성 선수! 아시아 챔피언 결정전 이후로 2차전이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열립니다!”
진행 순서 상 기타와 짐머맨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만 이미 MC 용준의 마음은 콩밭으로 넘어간 듯 했다. 무척이나 들뜬 그의 음성에 김대환 해설 위원 역시 상당히 흥분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사실 정말로 많은 분들이 이 시합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시합에서는 장현성 선수가 1라운드가 거의 끝나기 직전! 난타전에서 승리를 거뒀거든요!”
“네, 그랬죠! 정말 대단한 시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토너먼트 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그때처럼 모든 걸 내려놓고 난타전에 임 할 수는 없거든요! 하지만 테세이라 선수와의 시합에서도 그랬고, 방금 전에 있었던 하리와의 시합도 그랬다시피 장현성 선수가 굉장히 스피드가 살아났고, 그때에 비해서 또 비약적인 발전을 거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난관을 어떻게 풀어갈 지도 귀추가 주목 됩니다!”
비단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그때 보였던 것과 똑같은 난타전 양상일 것이다. 하지만 토너먼트라는 것! 그것으로 하여금 아무래도 현성이 결승을 생각한다면 기동력을 살려서 그를 피해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 인식이 지배적인 상황이었다.
“아, 아무튼 이번 대회 최악의 대진표를 가지고 장현성 정말 잘해주고 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정말 이 대진표가 발표되는 순간 많은 국내 격투기 팬들이 탄성을 내질렀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바다 하리! 그리고 준결승에서 혹시나 또 자말을 만나면 힘들어서 어쩌나? 하지만 우려와 다르게 바다 하리에 압승을 거두었고, 이번에도 정말 좋은 모습 보이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결과야 어찌 됐든 현성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만 해내면 된다. 김대환 해설 위원의 응원 멘트에 MC 용준이 후후 웃음을 띤 채 말했다.
“아무튼 이제 곧 다니엘 기타와 에롤 짐머맨이 입장합니다! 잠시 후에 중계 계속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준결승을 앞두고 조금 상황이 딜레이 되는 동안 현성은 대기실에 다시 스스로를 컨트롤 하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로 머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K-1에서 가장 높은 자리! 월드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작년 연말에 밴너와의 시합이 확정 되었을 때, 그를 쓰러뜨리며 품었던 염원이 이뤄지는 순간이 정말로 머지않았다. 그것이 그때엔 이만큼 간절하진 않았다만 지금은… 남다른 목표가 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마음에 다시 파문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마음 한 구석이 흐트러지는 것만 같았다.
“후우…”
숨을 내뱉으며 현성이 다시 마음의 파문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용암처럼 들끓던 맘을 가라앉히고 진정 시켜야 한다. 자말과의 승부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것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랑프리 결승에서 승리를 가져가기 위해서도…!
“후우…”
우승을 하고, 정상에 올라 세계 챔피언이 되면 이제 혜주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보고 싶던 아영이도 다시 만날 수 있다. 물론 그게 예전과 같이 관계가 회복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리 된다면 당당히 그녀의 앞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월드 그랑프리 우승 너머에 있는 바로 그 시간…!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기대 할 수 있게 만드는 바로 그 시간!
“후…”
그 시간을 위해서는 아직 아껴두어야 한다. 조금 더 침노하고, 조금 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스리며 현성이 감았던 눈을 뜨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둘 다 나왔어. 이제 준결승 시작 할 거야.”
그 동안 현성을 대신해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던 민욱이 다소 긴장된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다.
“응. 저… 기타 상대 좋아 보이네.”
“얼굴에 붓고 생채기 좀 난 거 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1 경기 치렀으니 회복이 웬만큼 됐겠지.”
페이토자의 공격력에 1라운드를 고생했던 짐머맨에 비하면 기타는 그리 큰 충격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가라앉은 마음으로 바라보던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준결승에 진출한 4인 모두 상태는 비슷했다. 오히려 짐머맨이 역전스을 거두었던 짐머맨이 상당히 지친 상황이고, 자말은 그 누구보다 쌩쌩하다. 4초 만에 KO승을 거두었으니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 월드 그랑프리 우승의 분수령은 ‘자말’이었다.
“이제 시작한다!”
김관수 관장의 말과 함께 심판이 파이트를 선언하자 기타와 짐머맨이 글러브 터치를 하고는 서로 견제하듯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준결승이다 보니 움직임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터!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가늘게 눈을 떴다. 얼핏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회를 노리는 듯 보이고 있지만 야금야금 기타가 짐머맨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수염이 먼저 선제 날리겠다.”
현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순간 기타가 거리를 좁히며 로 킥을 날렸다.
-쩍!
현성이 산동네에서 도끼질을 할 때 났던 소리처럼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그와 함께 짐머맨의 다리가 크게 휘청하자 민욱이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저 자식 로 킥 보통이 아닌데?”
최근 훅을 장착했다고 하지만 기타의 주무기는 바로 저 묵직한 로 킥! 상당한 파괴력의 로 킥에 짐머맨이 단 한방에 다리를 절룩이는 모습을 보이자 세컨진들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 졌다.
“첩첩산중이다, 첩첩산중.”
한숨 섞인 민욱의 목소리에 현성이 그리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게 월드 그랑프리 아이가.”
그리고 현성이 기타와 짐머맨의 시합이 벌어지고 있는 모니터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로 킥 선제 공격 이후 기타가 공세를 이어가고 짐머맨이 수세로 몰린 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날카로운 원 투에 이어 라이트 훅! 다른 것보다 확실히 빠른 그 공격에 짐머맨이 움찔하며 몸을 숙인 순간 또 다시 한 번 기타의 로 킥이 터졌다.
-쩍!
그 소리는 마치 현성이 휴식 기간에 장작을 팰 때 났던 소리와도 같았다. 그 소리와 함께 짐머맨이 고통스러운 듯 다리를 절기 시작하자 기타가 더욱 더 묵직하게 짐머맨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머지 시합들을 지켜보며 자극을 받은 듯 맹렬한 공격에 짐머맨이 가드를 이어가다 간간히 반격의 펀치를 뻗었다만 그때마다 어김 없이 날아든 것은 기타의 로 킥!
-쩌억!
“아… 저거 진짜 나가 뒈져라 하고 차는구만!”
“그것보다 타이밍이 끝내주네! 역시 만만찮다!”
짐머맨이 반격의 의지를 보일 때 마다 적절한 타이밍에 그를 차단하는 로 킥을 그 자체로 무척이나 위력적이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로 킥을 주특기로 내세운 선수와의 대결은 처음이란 생각과 동시에…
“얼마 안 걸릴 거 같네예.”
자신의 차례가 이제 임박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곤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쩌억!
그 사이에 기타의 로 킥이 한 번 더 짐머맨의 다리를 흔들자 짐머맨이 인상을 찌푸리며 휘청하고 말았다. 두 발을 딛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연이어 기타의 로 펀치 콤비네이션이 들어가자 굳건한 가드로 어떻게든 버티는 짐머맨! 하지만…!
-쩍!
다시 한 번 폭발한 기타의 로 킥에 결국 짐머맨이 털썩 자리에서 주저앉으며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겠다는 듯 스스로 손을 흔들었다.
“에롤 짐머맨! 기권했습니다!”
“아, 아무래도 기타의 로 킥이 짐머맨의 대퇴부 이상이 온 모양입니다! 생각보다 일방적으로 경기가 끝이 났네요! 다니엘 기타, 1라운드 TKO 승! 먼저 결승에 진출 합니다!”
MC 용준과 김대환 해설 위원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이 나버린 준결승에 굉장히 불안한 얼굴을 하고서 조금 아쉬운 듯 중계를 이어가는 동안 그 모습을 대기실에서 바라보고 있던 김관수 관장이 ‘흠!’ 하고 현성을 돌아보았다.
무어라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현성은 굉장히 집중력을 끌어올린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이제 바로 우리네!”
“아, 이게 이렇게 끝이 나버리냐?!”
그 말에 현성이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가서 자말을 잡아야 된다. 잘… 잡을 수 있겠나?”
자말 로우지와의 일전은 플랜이랄 것도 없었다. 체력의 승부처가 될 수밖에! 어디까지나 현성의 결정이 경기 당락을 좌우할 것이다. 정면 승부를 채택한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 할 만 하다만 과연 그게 잘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많은 걱정과 의문부호가 뒤를 따랐다.
“예, 관장님.”
하지만 현성은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질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막강한 상대들에게 기가 죽을 생각도 없었다. 우승! 그래야만 그가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단지 그 앞을 가로 막는 게 있다면 뭐든 자신의 힘을 깨부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자말이 절치부심하고, 복수를 위해서 준비해왔다 하더라도 거기에 굴곡하거나 무너지진 않는다.
그게 뭐가 됐든 삶의 반드시 이유를 되찾고 싶은 남자의 절박함보다 강하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현성이 모두를 돌아보며, 믿어 의심치 말라는 듯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1분 안에 끝낼 겁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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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에 월드 그랑프리 파트 다 끝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내일까지로 생각해봐야 할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