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회 - 괴물
그것은 꼭 불꽃같았다. 절에서 보았던 불상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불의 움직임에 반해서 눈에 익은 상대의 움직임은 예상하건데 그리 어렵지 않단 것이었다.
“하앗!”
기합과 함께 달려오는 상대의 전진형 스탭이 채 발에 닿기도 전에 한 발 빠르게 로 킥을 날리면…!
-퍽!
묵직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내 딛던 발이 흔들려 상대의 몸이 휘청하고 말았다. 당황한 듯 억지로 몸을 바로 잡으려는 그 모습에 조금의 힘만을 더해서 턱 끝을 흔들면…!
-퍼억!
그대로 상대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중앙으로!”
점차 숨이 버거워 지고 몸의 텐션도 떨어져 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쓰러진 상대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중앙으로 서면 또 다시 새로운 그림이 다가온다. 그것이 현재 현성에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벌써 50명 넘겼는데 시간이… 10분밖에 안 지났어요.”
황당하단 얼굴로 시계를 바라보며 민욱이 말했다. 그 말에 김관수 관장 역시 더 할 말이 없단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하나에 10초 꼴이가…?”
“…미친 괴물 자식 진짜…”
대체 얼마나 격차를 다시 벌일 셈이란 말인가? 로드원 FC 시합에서 느꼈던 격차가 이젠 훨씬 더 멀어진 기분이었다. 민욱으로써는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니 그것에 불만을 가지거나 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괴물 같은 성장에 흥미와 묘한 동경심까지 느끼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현성이도 쪼매씩 지쳐 가네.”
백인조수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초반에 힘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는 상대를 단숨에 제압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백인조수에 도전한 일인의 체력은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이렇게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순간에는 말이다!
게다가 나머지 백인(百人) 역시 일인에 당할 수는 없다 스스로를 다잡고 그를 막기 위해서 마음을 고쳐먹고 덤벼들기 때문에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탓에 백인조수를 성공했다, 실패 했다는 100명과의 대련을 버텨냈느냐, 버티지 못했느냐로 양분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써 현성은 50여명의 극진 선수들을 평균 12초 정도의 시간 안에 KO 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심판을 보고 있는 겐지 사범을 비롯한 극진회관의 선수들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오스!”
51번째로 나온 일본인 선수는 상당히 강렬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풀 컨텍 가라데의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고, 헤드기어 또한 끼고 있지 않았는데 얼핏 봐도 만만찮은 상대란 느낌이 들었다.
“음. 이번엔 좀 강해 보이는데요?”
“극진 세계 대회서 순위 안에 들었다 카는 간갑다.”
다른 이들과 확실히 분위기가 다른 모습이었다. 젊고 강맹한 것이 꼭 사자를 보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더욱 더 강인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과 민욱이 51번째에서 발목이 잡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현성은 별 다른 미동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 순간부터는 무엇인가를 바꿔나갈 작정인지 조금씩 스탭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여지껏 오픈 가드로 담담하게 상대를 기다리며 체력의 소모를 막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 또 뭘 하려고 저러는 거지? 저 미친 놈 좀 말려봐요, 관장님!”
“잘하고 있는데 와?”
“저러다 외계로 날아가겠어요, 저거.”
50번째 까지는 몸 풀기에 불과했던 말일까? 본격적으로 스탭을 섞어 가는 현성의 모습에 순간 대도숙 가라데의 ‘잇세이 미야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앗!”
그리고 그가 현성을 향해 달려들며 번개 같은 프론트 킥을 날렸다. 상대의 전진 스탭을 보고 다리를 죽여 버리고, 이후 턱을 마무리 하는 그의 무서울 정도로 효율적인 방식에 도전이라도 하는 듯 날카로운 프론트 킥이 현성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무리 빠른 시간 안에 끝을 냈다고 하지만 50번째 대련! 땀을 흘리는 현성에 비해서 비교적 생생한 잇세이가 맹렬한 킥을 날리자 순간 현성이 어렵잖게 사이드 스탭으로 그의 프론트 킥을 피해내며 펀치를 뻗었다.
-파앙!
번개 같은 플리커가 순간 잇세이의 안면을 흔들었다만 사도관과 대도숙 출신인 그는 다른 극진 가라데 선수보다 안면 가드에 능했다! 프론트 킥을 날리면서도 내리지 않은 안면 가드로 현성의 펀치를 막아낸 잇세이가 다시 거리를 좁히며 형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쉽게 당하지 않는다!’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의지가 담긴 주먹이 잇세이의 기합과 함께 날아들었다.
“하앗!”
극진회관을 쩌렁쩌렁 울리는 맹렬한 음성! 그러나 잇세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런 그의 투지와 의지에 불과하고 미동도 없이 싸늘한 눈동자였다.
-후웅!
닿을 것이라 생각했던 펀치는 그 순간 상상 이상으로 빠른 백 스탭에 의해 타격 대상을 잃고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지금까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체력의 관리를 위해서였는지 바로 그 순간 백 스탭으로 펀치를 피한 현성이 순간적으로 반동을 더해 전진형 스탭을 밟았다!
-쿵!
아직까지 잇세이의 주먹은 회수가 완료되지 않았다. 그 맹렬한 스피드에 잇세이가 움찔하며 바로 가드를 올리려는 찰나의 순간 그가 내딛은 오른 발과 함께 터져 나온 레프트 스매쉬!
-퍼억!
순간 자극을 받아오던 등 근육이 꿈틀하는 느낌과 함께 현성의 손에 걸린 묵직한 느낌! 그와 동시에 잇세이의 턱이 흔들렸다.
“컥!”
그리고 의지나 투지와는 상관없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 잇세이!
“와… 저 자식, 스탭 속도가 장난 아니네요!”
“니한테 시달리고 나가 현성이가 많이 준비 했다.”
민욱의 스피드를 좀처럼 잡지 못해 난처해 했던 로드원 FC 시합 이후! 테세이라 전에서 그는 가공할만한 속도를 선보인 바 있었다. 물론 컨디션이 매우 저조했던 현재와의 시합에서는 그것을 살릴 수 없었다만…
지금 현성이 보인 순간적인 대쉬 속도는 가히 과거와 차원이 달랐다.
“저작권료 받아야 겠네요. 돈 주세요.”
딱히 민욱이 가르쳐 준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혜주와의 이별이 저 연습벌레에게 불을 당긴 것이 틀림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민욱이 도무지 이건 스탠딩 게임에서 잡을 방법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물론 당시에 민욱이 스탠딩에서는 영리하게 현성보다 우위를 가져가긴 했지만 그때도 베스트 컨디션이라고 할 순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보호 장비가 없어 실신으로 이어진 잇세이를 겐지 사범이 다른 관원들로 하여금 그를 돌보게 하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가운데로!”
52번째 극진회관 선수가 앞으로 나서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현성이 강한 선수라는 것이 확인되었다지만 그를 상대로 채 한 라운드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기만 해서는 곤란했다.
“하아!”
어떻게든 버티기로 마음을 먹은 듯 보호 장비를 갖춘 그가 현성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거리를 두자 현성이 후 하고 짧게 숨을 골랐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먼저 상대를 향해 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타닥!
빠른 전진형 스탭과 동시에 날카로운 잽이 순식간에 상대의 안면에 날아들었다.
-파앙!
풀 컨텍 보호장비를 모두 착용한 52번째 극진회관 선수가 움찔하며 가드를 올렸고 바로 그 순간 칼 날 같은 현성의 로 킥이 그의 다리를 때렸다.
-퍼억!
“헉…!”
순간 쇠 파이프로 다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그가 움찔하며 반격의 펀치를 뻗었다면 백 스탭으로 거리를 잡은 현성이 프론트 킥을 차올렸다.
-뻑!
무기는 펀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의 안면을 걷어 찬 앞차기에 크게 휘청이는 상대! 그리고 그의 다리가 뒤로 주춤하는 순간 현성의 로 킥이 상대의 다리를 끊어 찍었다.
-퍽!
무거운 소리와 함께 그대로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아 버린 상대!
“으…!”
뒤로 주춤 물러서는 순간 킥을 맞아 다리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주저앉아 버린 그의 모습에 겐지 사범이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현성의 손을 들어 주었다.
“가운데로!”
그리고 다시 현성이 쓰러진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중앙에 섰다. 워낙에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 보니 그도 조금 버거워 지는 듯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만 그 무게감은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극진 역사상 많은 괴물 선수들이 나타났지만 이 정도로 강인한 상대는 나온 적이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주춤하던 극진회관의 선수들에게 겐지 사범이 ‘다음!’ 하고 소리치자 누군가 한 사람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후.”
이번에도 역시 보호 장비가 없는 선수였다. 그 모습에 순간 김관수 관장과 민욱이 ‘어?’ 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니콜라스 페타스!”
K-1에서도 활동을 한 바 있는 니콜라스 페타스가 설마 여기에 왔을 줄은 미처 몰랐던 모양이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
외국인들 생긴 게 다 거기서 거기라만 민욱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던 그의 모습에 짝 하고 박수를 쳤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퇴근 파열로 은퇴하긴 했으나 과거 K-1 8강 전 까지 진출한 바 있는 니콜라스 페타스라는 것이었다.
“재미있네…! 이거! 페타스도 8강에서 하리랑 싸웠잖아요!”
“뭐, 지긴 했다만.”
김관수 관장이 수군수군 이야기를 하자 민욱이 흥미 가득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물론 40을 훨씬 넘긴 고령이긴 하다만 여전히 그는 운동을 포기하지 않은 듯 그의 몸은 밸런스가 잡혀 있었다.
“53번째에서 니콜라스 페타스라!”
기대감 가득한 민욱의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아니, 듣지 못한 듯 중앙에 선 현성이 차분한 얼굴로 페타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력에 비해서 대진운이 부족해 패배 전적이 많긴 하지만 페타스는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 기운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듯 현성이 꾸벅 인사를 했다.
“오스!”
그의 인사를 받으며 순간 페타스가 빠른 속도로 현성을 향해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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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오스
차기작품은 슈퍼 을질의 파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