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 회 - 괴물
“아… 할머니도 진짜…”
밤이 되자 난감한 상황은 필연적으로 찾아오고 말았다. 그도 그런 것이 김씨 할머니가 여분의 이불을 내어주긴 했을 뿐, 자는 것은 알아서 하라 음흉한 미소를 지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관수 관장 집의 온돌이 도는 큰 방에 나란히 깔아 놓은 이불에 현성이 무척이나 어색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후훗…”
난처해하는 현성과 달리 사키는 묘하게 들뜬 얼굴에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무어라 이야길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그… 아랫목이 여기라서 따뜻할 거라예. 여기서 자요.”
“응!”
그 말에 사키가 고개를 끄덕이며 현성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자 현성이 무척이나 긴장된 듯 굳은 얼굴로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비켜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키가 할머니에게서 받은 몸빼 옷을 입은 채 꾸물꾸물 다가와 그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아 보았다.
“와… 후끈후끈 해요.”
“음… 너무 뜨거우면 이불 하나 더 깔아도 되는데…”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어색했던지 잔뜩 긴장한 그의 말에 사키가 후후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어색한 정적이 맴도는 가운데 현성이 사키가 있던 자리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저… 근데 사키 씨. 아까 여기 온 거는…?”
그리고 그가 이불을 덮고서 어느 정도 거리가 생기고 나서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지 그리 물음을 던지자 사키가 이불을 꼭 엎어 가슴팍까지 끌어 올린 채 대답했다.
“항의하러 왔어요!”
그 말에 현성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사키가 할머니가 내어준 메밀 베게를 베며 살며시 옆으로 돌아누웠다. 짐도 없이 맨 몸으로 온 지라 할머니의 옷을 빌려 입었다지만 피부가 워낙 희고 몸이 여리여리 하다 보니 그마저도 그렇게 이상하진 않았다. 물론 처음 보았을 때엔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그 눈에 현성이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자 사키가 따뜻한 온돌방의 기운에 마음이 풀린 듯 옅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그 날 너무 많이 울어서 힘들었어요.”
“그…거는…”
“날 생각해서 그런 거란 거 알지만 안 그랬으면 했어요.”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하기가 다소 부끄러웠던지 사키가 다시 이불을 꼭 끌어 올렸다.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쌍거플 진 옅은 갈색 눈으로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현성 씨도 알 테니까… 그러지 말아 줬으면 하는 기분.”
그건 현성으로써도 도저히 부인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키가 그를 향해 보이고 있는 이 마음은 현성이 혜주를 향해 보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그 말에 현성이 생각해보니 어쩜 두 사람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던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나 예쁘고, 요리도 잘 하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차여서 화가 났어요. 일이 손에 안 잡혀서 따지러 온 거에요!”
진지한 현성의 물음에 사키는 오히려 웃으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장난스러운 대답이라지만 그 말만큼은 정확한 대답은 없었다. 그 말에 현성이 괜시리 머슥한 듯 웃음을 띤 채 머리를 긁적이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리를 잡고 누웠다.
따뜻한 온돌방과 세상 누구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시골이란 것. 그리고 그녀의 눈 앞에 있는… 여전히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 그 모든 게 사키에겐 무척이나 행복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던 모양이다. 나란히 누워 눈이 마주친 사키가 너무 기분이 좋아 웃음이 참아지지 않는지 사랑스러움 가득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그리고 그녀가 이런 장난을 치더라도 마음만큼은 속일 수가 없다는 듯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순간 현성이 쿵쾅 하고 가슴이 뛰는 기분을 느끼며 사키를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밀어내도 그녀는 몇 번이나 포기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 해온다. 그건 현성으로써도 잘 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아니, 살아오며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
왜냐하면 언제나 도망쳐 왔으니까.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몸의 강함과 마음의 강함은 달랐다. 이렇게 여리고 가녀려 보이는 사키라지만 분명히 그 보다 마음 만큼은 갑절로 강한 것이 분명했다. 그 모습에 잠깐 현성이 두근거림과 동시에 감탄 아닌 감탄을 터뜨리며 웃음 지어 보였다. 혜주 말곤 자신에게 이렇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건만… 도대체 그녀의 말 대로 이렇게 예쁘고, 완벽한 사람이 대체 왜 자신 같은 못난이를 좋아해주는 것일까?
“…대체 내가 어디가 그래 좋은 건데요…?”
그게 너무나도 궁금해졌던지 현성이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그 물음에 사키가 이불을 꼭 안은 채 꼬물꼬물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 모습에 순간 긴장한 듯 현성이 꿀꺽 하고 침을 삼키자 이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온 사키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긴장한 듯 한 얼굴을 해보였다.
“전부 다.”
그 말에 현성이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아…’ 하고 멍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리고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사키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의 화상이 있는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 손길에 움찔하는 현성!
그리고 언제나 그랬다시피… 정말로 좋아한단 말 만큼은 그가 알아듣는 한글로 할 자신이 없었던지 사키가 발그레해진 얼굴로 말했다.
“젠부 다 스키다 요.”
방이 너무 뜨거워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창피해서 그랬던 것일까?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리 그가 혜주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전부 다 별론데…”
“…나는 그게 좋아요.”
수줍지만 당당한 그녀의 목소리. 여전히 눈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살며시 내리 깔아 긴 속눈썹을 보이고 있었다. 그 예쁜 눈을 바라보며 현성이 순간 혜주에게 했던 자신이 말이 떠오른 듯 피식 웃음 지었다.
내 이상형은 나이 많고 몸이 아픈 여자다… 라고 했던 것과 다를 것이 뭐가 있는 말인가? 마치 그녀는 거울 같았다. 정반대의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놀랍도록 자신과 닮은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끌림은 그래서 였던 것일까…?
“…나는… 혜주 씨를 이기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리고 사키 역시 그런 느낌을 느꼈던 모양이다. 수줍어하던 그녀가 다시 고개 들어 현성을 바라보았다. 보고만 있어도 심장은 두근거리고, 설레지만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분명했다.
“그냥… 내 마음이 그러니까 그런 거에요. 그래서… 나는 내 마음대로 한 거에요. 못된 사람이에요.”
그녀를 거듭 밀어냈지만 그래도 또 다시 이렇게 찾아온 것. 그걸 누가 감히 못됐다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그 말에 현성이 결국은 졌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어라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과분한 두 여자에게 무척이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단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불행과 절망에만 시선을 빼앗겨 있는 동안 전혀 느끼지 못했던 고마움이 이제야 밀려왔다.
“카면… 나도 못 돼져도 돼요…?”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현성의 눈빛이 부끄러움 속에서 강한 빛을 발하자 사키가 무척이나 경직된 얼굴을 했다. 수줍어하던 빛 그대로 얼어버린 듯 잠깐의 정적을 가진 그녀가 눈으로 보기에도 더 붉어진 얼굴로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난 행복 할 거야.’
그녀의 눈빛은 그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떠남으로 현성을 지켜주려 했던 혜주와 달리 그녀는 철저히 그의 곁에 남아 있는 것을 선택했다. 화려한 용모와 달리 순수하기 그지 없는 그녀의 지고지순함이 결국 그의 마음도 움직인 것일까…?
“아…”
순간 놀란 사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현성이 김관수 관장의 시골 방에서 사키를 먼저 끌어안았다. 거의 닿을 듯 말 듯 가까운 거리에서 그와 그녀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긴장한 듯 움직이지도 못한 채 조용히 숨을 내쉬는 사키의 숨소리가 조금씩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숨결이 점차 거칠어지고, 숨소리가 커진다는 걸 고요 속에서 느낀 사키가 수줍게 눈을 내리 깔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가녀린 어깨를 붙잡았던 현성이 천천히 잡았던 손을 그녀의 몸에서 떼어냈다.
“…난 안 될 거 같심다.”
이내 그가 던진 쑥스러운 목소리. 혜주가 과거에 그리 얘기 하지 않았던가? ‘줘도 못 먹는 녀석’이라고 말이다. 새삼스럽게 그 생각이 났던지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는 못 할 거 같아예… 그냥… 그렇다 아이다를 떠나가.”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드는 그 말에 사키가 긴장해 있던 것이 풀린 듯 내리깔았던 눈을 들고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의 마음은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좋아요.”
그리고 그녀가 조심스럽게 그를 마주 안았다. 그 이상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만 해도 만족할 수 있다. 그 포옹에 현성이 아무런 말없이 사키를 다시 마주 안았다.
“따뜻해.”
그래도 전보단 그의 곁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온 것만 같았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다시 만날 때 마다 조금씩 나아간다면 언젠간 그의 곁에 도착 할 수 있을까…? 어쩜 평생 닿지 못 할 거리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게 있어서 살아가는 게 행복하다 생각 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수줍지만 강인한 그녀의 사랑에 현성이 느끼는 바가 무척이나 많은지 사키를 꼭 끌어안은 채 말했다.
“고마워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사키가 후후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밀어내지 않아서 고마워요.”
그녀의 말에 현성이 고맙다거나, 미안해 할 일은 아니라는 듯 더욱 더 꼭 사키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포옹에 품에 있던 사키가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더욱 더 꼭 그를 마주 안았다.
따뜻함과 달콤함이 오랜만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무어라 이야길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포근함 속에서 현성이 오랜만에 ‘외롭지 않다’는 기분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순간마저도 마음을 스치는 것은 아직도 비어 있는 혜주의 자리. 그 자리가 다시 느껴졌다. 그런 그를 알았을까? 사키가 가까이에서 다시 느슨해진 그의 팔을 조금은 서운한 듯 올려다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곁엔 그녀가 아니라 혜주가 있다. 그 자리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안다는 듯 서글픈 얼굴의 사키.
그 얼굴을 바라보며, 그리고 비어 있는 그 자리를 다시 한 번 떠올리며 현성이 말했다.
“이제… 곧… 어떻게든 승부를 낼 거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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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UFC는 이변의 연속이네요!
오리지날 좀비 존 피치가 체급을 내린 데미안 마이아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렸고,
라샤드 에반스도 무난히 이길 줄 알았던 호제리오 노게이라에 스탠딩 짤짤이 당하면서 패.
거기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알리스타 오브레임이 3라운드 KO패!
헤비급 전선에 이상이 생겼네요. 데이나 화이트 완전 열받을 듯 ㅋㅋ
알도는 체력 문제가 있긴 했지만 무난하게 이긴 것 같고…
아무튼 오브레임은 출연 못 시키겠어요. 오늘 경기 이후로 주가 폭락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