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회 - 괴물
-퍽!
깊은 산동네에 티비와 전화는 이용이 가능해도 여전히 난방 시설은 제대로 갖추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 가을이라 하더라도 밤을 따스하게 보내기 위해서나 저녁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장작을 팰 필요가 있었다.
이제 3일째. 아직까지 그렇게 익숙하진 않은지 도끼로 장작을 패던 현성이 ‘끄응…’ 하고 나무토막에 박힌 도끼날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종종 나무가 한방에 쩍 갈라질 때도 있었고, 점차 그 요령을 터득해 나가고 있었다만 지금은 자꾸만 도끼가 나무에 걸렸다. 집중을 해야 하는데 집중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더 그런 것이다!
불과 몇 분 전에 부동심이란 게 얼마나 필요한 지 깨달았다만 이래서야 되겠는가? 그 생각에 현성이 씁쓸한 한숨과 함께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장작이 더 필요한데…”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네는 그녀. 부엌 입구에 조신하게 기대어 선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아, 잠시만예!’ 하고 허둥지둥하며 걸린 나무에 걸린 도끼를 툭툭 내리쳤다. 아무리 중간에 걸렸다 하더라도 나무는 결이 있었고, 그의 힘도 보통 힘은 아니다 보니 몇 번 바닥에 치다보니 나무 반으로 갈라져 마른 속살을 드러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밥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토막 낸 장작들을 들고 현성이 부엌 앞에 다가오자 그 안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그녀가 그를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여기…”
그리고 그녀가 아궁이를 가리켰다.
“아, 예…”
불씨가 죽어가던 아궁이 안에 장작들을 집어넣고 후 바람을 불어 불씨를 살리기 시작했다. 곧 불씨가 순간적으로 살아나며 현성이 새로 집어넣은 장작으로 무사히 옮겨 붙었다. 이 정도면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생각하며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제 또 새로운 문제가 직면했다.
“…저… 여기는 우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물음을 던지는 그의 모습에 사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궁이에 바람을 불어 넣는 바람에 얼굴에 묻은 재가 재미있었던지 살짝 웃음을 띤 채 손가락으로 그의 뺨에 묻은 재를 닦아 주었을 뿐이다.
“아, 제가…”
그리고 현성이 움찔하며 손으로 얼굴을 슥슥 문지르자 재가 번지며 얼굴이 시꺼멓게 변해갔다. 그 모습에 사키가 후훗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자 더욱 더 당황한 듯 현성이 소매로 얼굴에 묻은 재를 닦아내곤 창피했던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근데 여는 진짜 우에…?”
그 날 이후로 사키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K-1 월드 그랑프리 무대가 남아 있지만 그런 공식 현장 외에는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녀가 설마 이 깊은 산골까지 찾아올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묻고 싶었던 말. 그 말을 현성이 조심스럽게 꺼내어 놓자 그 때보다 조금 수척해진 사키가 원망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녀가 밉지만 얼굴만 봐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던지 귀여운 미소와 함께 말했다.
“…도망쳐 왔어요.”
“예?”
“스미레가 많이 화낼 거에요. 아무 말도 없이 여기로 도망쳐 왔으니까.”
이런 짓을 한 건 처음이라는 듯 그녀가 혀를 살짝 내밀자 현성이 무척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카면…”
“스케줄 펑크는 내지 않았어요. 단지 다음 스케줄을 더 진행 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별 일은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하는 사키였다만 그녀가 또 다시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말에 현성이 그게 혹시 모두 자기 탓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던지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사키처럼 대단한 여자가 왜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좋아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힘들어 한단 것도… 그런 그를 바라보며 사키가 후후 웃음 지었다.
“배가 많이 고파요!”
그리고 그녀가 다른 이야기 대신 그 말을 먼저 꺼내자 깜짝 놀란 현성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일단은 카면 밥부터…”
이내 그가 후다닥 밖으로 나와 가스 버너를 들고 들어오자 사키가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요리는 내가 할 게요…! 기철 씨가 현성 씨 요리는 최악이라고 했어요.”
“…그건 그렇긴 한 데… 기철이 행님은 라면도 못 끓이는데…”
장난기 섞인 유쾌한 목소리에 현성이 다시 당황한 듯 헛웃음을 터뜨린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아마 그가 여기에 있는지 기철이나 김관수 관장에게 들어 찾아왔을 것이다. 혹시 차로 데려다 주진 않았을까? 어쨌거나 다시 제 2의 전성기를 누릴 상황에서 이리로 왔단 것이 큰 일이라면 큰 일은 아닐까 싶은 현성의 모습에 사키가 다시 물음을 던졌다.
“재료는 어디에 있어요…?”
“재료는 저 냉장고 안에 다… 근데 고기랑 김치 같은 거 밖에 없는데…”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이 보충제이기 때문에 딱히 사키에게 내어 줄 수 있는 재료가 없었다. 그 말에 사키가 걱정 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럼 김치 찌게 해요!”
“예?”
김치 찌게란 말에 현성이 조금 놀란 듯 얼떨떨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사키가 후후 웃으며 대답했다.
“나 한국 요리 자격증도 따냈어요! 걱정 말고 맡겨줘요!”
“아… 예…”
그 바쁜 시기에 한국 요리 자격증도…? 그러고 보니 현성이 입원을 했을 당시 매번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싸오던 사키였다. 아무래도 요리하기를 좋아하다 보니 그것도 함께 배웠던 모양이다. 이 곳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단 묘한 기대감에 현성이 얼른 냉장고에서 돼지고기와 김치를 꺼내 오자 사키가 후후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여기는 신기해요. 이런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녀 또한 도쿄 출신인지라 오래된 시골집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다 보니 건물에서 흐르는 정서도 달랐다. 그 모든 게 신기했던 모양인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사키가 주변을 돌아보자 현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예… 관장님 어릴 때 살던 데라고… 혹시 여는…?”
“버스 타고 왔어요! 오는 내내 덜컹덜컹해서 속이 안 좋았어요.”
배시시 웃으며 이야기 하는 사키의 모습에 현성이 다시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곳에는 차가 하루에 한 대씩 다닌다. 차를 타고 들어오기도 어렵다만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기다리고 걸어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관장님이 차로 안 데려다…?”
“그냥… 시간을 두고 여행하고 싶었어요!”
해맑게 웃음 짓는 그 모습에 현성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이틀 샷을 획득하고 나서, 이곳에서 휴가를 즐기는 동안 여유가 생겨서 그런 것일까?
조금 놀라긴 했지만 사키를 대하는 게 그렇게 어색하거나 힘들진 않았다. 여전히 그녀가 여기까지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궁금하긴 했지만… 그건 굳이 그녀의 입으로 듣지 않아도 어렴풋하게는 알 것만 같았다. 물론 그것에 대해선 분명히 다시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지만.
그런 그의 눈빛을 느낀 것일까? 사키가 도망치듯이 홱 고개를 돌리고는 요리 할 채비를 갖추었다.
“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현성 씨는 할머니 나무를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그녀가 그와 기다리는 동안 윗 집의 김씨 할머니와 친해진 것인지 그리 이야기 하자 현성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면 장작…?”
“응! 응!”
이젠 거의 무리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 정도로 한국어에 능숙해졌다지만 순간적으로 단어가 기억이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혀를 살짝 내밀고 귀엽게 웃음 짓는 그 모습에 현성이 다시 웃음을 짓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면… 저는 할머니 집 가가 장작 좀…”
“응! 알겠어요! 다 되면 부를게요!”
묘하게 들떠 있는 사키의 음성에 현성 역시 왠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졌다. 조용한 산골이라 좋은 점도 있지만 하나 단점이 있다면 무척이나 심심하단 것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키의 등장이 반가울 수밖에…!
마냥 좋아 할 일은 아니겠지만… 우선은 할머니의 장작을 패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던지 현성이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김씨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씨 할머니가 홀홀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총각 애인이가?”
“아… 아뇨! 그냥…”
“아가씨가 참 참하데이! 근데 한국사람 아이제?”
현성보다도 더 신이 난 듯 산골 마을에 홀로 살고 있는 할머니가 들뜬 얼굴로 물음을 던지자 왠지 모르게 현성이 짠한 기분과 흐뭇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본 사람인데…”
“근데 애인도 아이고, 여까지 모할라 왔노…? 총각이 부끄러움이 많아가 카는 거 아이가?”
“예, 예?!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허나 이후 거침 없는 할머니의 공세에 무척이나 당황한 현성이 허둥지둥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 할머니가 참 귀엽다 생각했던지 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여자 얘기 나오면 부끄러워 하는 게 관수랑 똑같데이…! 누가 보믄 아들인 줄 알겠다!”
그 말에 현성이 ‘아…’ 하고 왠지 모를 흐뭇한 웃음을 띤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카믄… 저 아가씨가 총각 많이 좋아하는 갑다. 젊을 때 생각나네…!”
소녀처럼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할머니의 모습에 현성이 혼자 운동만 다닐 게 아니라 말 벗도 해드릴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지 다시 수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일본서 여까지 올 정도면 참 지극 정성이네. 여도 들어오기 참 힘들낀데… 카지 말라 캤는데 그 뭐라 카노, 총각? 머, 머…”
“멀미요…?”
“응, 그래. 그거 있다 캐가 우리 집에서 좀 누워 있었는데.”
과연 할머니에게 비밀은 없다 했던가? 그 말에 현성이 ‘아…’ 하고 힐끔 고개를 돌려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김관수 관장의 옛 집을 바라보았다.
“참 말도 예쁘게 잘 하고, 얼굴도 이쁘고… 총각은 복 받았데이! 둘이 어쩜 이래 이쁘고, 잘 어울리노?”
사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지 할머니가 극찬을 늘어놓자 현성이 뿌득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조금 마음이 복잡해진 듯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잘 어울리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제가 못생겼으니까…”
“에이, 남자는 못 생기도 된다! 인물 좋으면 바람이나 피지. 우리 영감이 그랬다! 내가 젊어서 그래 잘 생겼다고 좋아했드만 이 영감탱이가 그래 내 속을 썩였다 아이가! 그캐가 내가 얼마나 맴 고생을 했는지… 지금 이래가 자글자글 못나진기다. 이기 다 영감 때문이다!”
웬만하면 총각도 잘 생겼다 해줄만 하겠지만 할머니는 무척이나 진솔했다. 그 말에 현성이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왠지 모를 친근함에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 인물이 좋으셨나봐예…?”
“어찌나 인물이 좋았는지 여자들이 끊이질 않았데이. 젊을 때는 마냥 좋았다가 내 속만 썩이고… 카다가 벌 받아가 일찍 가뿌따.”
“아…”
“그래도 저 아가씨는 참 참한데 사람도 잘 보는 거 같고… 총각!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너무 그카지 말고 꼭 잡으레이.”
“아, 저는 그게…”
“요새는 외국 아들이랑도 결혼 많이 한다 안 카나? 저만하면 인물도 좋고… 오늘 밤에 아궁이 불 뜨뜻하게 삭 지펴 놓았다가 일찍 꺼지 해뿌라… 캐가 처자가 춥다 카면…”
“하, 할머니!”
거침없는 할머니의 19금 토크에 현성이 다시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 순진한 모습에 할머니가 참 재미있다는 듯 박수를 짝짝 치며 좋아하는 동안 현성이 부동심은커녕 마음만 흔들리고 있단 생각에 푸훗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암튼 할머니! 저 빨리 장작 패드릴게예.”
“아이고, 그래! 총각이 힘이 장사라 카데…! 할매, 겨울 따땃하게 지내구로 좀 많이 패놓고 가라!”
“예, 할머니!”
간신히 할머니의 공격에서 벗어난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층층이 쌓아놓은 장작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가 굵다란 나무 밑 둥을 잘라 만든 나무 판 위에 장작을 세워 놓았다. 지금 도끼질이 익숙치 않아 사키가 저녁을 하는 동안 얼마나 빨리 팰지 모르겠다만 일단 하는데 까지 하고 나머진 밥 먹고 마저 해야겠단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흡…!”
그리고 현성이 기합을 내뱉으로 도끼로 나무를 내리쳤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도끼가 장작을 박혀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힘이 실려 중간까지는 파고들었으나 다시 걸린 장작에 현성이 도끼채로 나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몇 번을 힘차게 내리치다 보니 비스듬하게 갈라진 장작!
한 번에 쩍 가를 수 있을 것도 같았다만 그게 잘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왠시리 오기가 생겼다. 다시 한 번
“에헤이, 총각이 힘은 좋은데 요령이 없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또 심심해진 것인지 금새 다시 그에게 말을 걸어 왔다.
“요령이요…?”
“나무 결을 보고 때리야지. 막 그래 치면 안 된다. 잘 봐레이…!”
올해로 80살을 넘긴 할머니가 직접 보여주겠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성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른 팔과 다리, 그리고 구부정한 허리! 현성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의 할머니인지라 현성이 우물쭈물하고 서 있자 할머니가 그의 도끼 대신 자신이 쓰는 작은 손도끼를 들고 왔다.
“요래, 결이 보이면 여길 톡!”
그리고 할머니가 작은 손도끼로 나무 결을 따라 장작을 때리자 놀랍게도 나무가 쩍 하고 갈라졌다. 그 모습에 현성이 ‘응?’ 하고 무척이나 놀란 얼굴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자 할머니가 후후 웃으며 말했다.
“다시 해봐라, 총각!”
“아, 예!”
그 말에 현성이 다시 장작을 세워놓고 유심히 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냥 무식하게 두드리던 때와 달리 분명히 미묘한 결이 보였다. 그 순간 현성이 움찔하며 다시 쪼그리고 앉아 장작을 바라보았다.
나무에는 분명 결이 있었다. 그리고 아까 할머니는 아주 능숙하게 그 결을 두드렸다. 저 작은 몸으로, 그리고 현성의 도끼의 보다 훨씬 더 작은 도끼로도 별 다른 어려움 없이 나무를 쪼개어 냈다. 그 순간 다시 무엇인가가 현성의 머리를 스쳤다.
“총각, 나무 제사 지내나?”
“아…! 이제 해볼게예!”
그리고 현성이 후 하고 숨을 고르며 다시 나무 앞에 섰다. 결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도끼를 들어 올리자 펀치력의 근원이 되는 광배근이 꿈틀하고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현성이 숨을 내뱉으며 결을 향해 정확히 도끼를 내리 찍었다.
-쩌억!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손 맛이 찌릿 하고 그의 온 몸을 타고 흘렀다. 결대로 내리친 나무가 단숨에 반으로 갈라진 것이다! 그 순간 현성이 등줄기를 타고 무엇인가 전율이 찌르르 흐르는 기분을 느끼며 할머니를 돌아 보았다.
“잘 하네! 총각이 몸으로 하는 건 재주가 있는 갑다…! 오늘 아궁이에 장작 반만 넣고…!”
이내 꺄르르 웃으며 다시 짓궂은 장난을 던지는 할머니에게 현성이 놀림에 당황하지 않고 소리 높여 말했다.
“저, 저 갈 때 까지 여기 장작 다 패드려도 되요?”
아까와 달리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니 그 말이 들어오지도 않은 듯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물음을 던지는 그의 모습에 할머니가 깔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현성이 필이 온 듯 연이어 장작을 단번에 반으로 쪼개기 시작했다.
“하이고야…! 요령 알드만 이제 엄청시리 잘 하네! 총각 나중에 결혼하면 사랑 받겠다! 이캐가 예전에 머슴이랑 고 동네 과부랑 바람이 나는거라!”
유쾌한 할머니의 19금 토크를 벗 삼아 현성이 무서운 속도로 장작들을 토막 내기 시작했다. 나무의 결이 바로 그 비결이었다니… 세상 모든 일의 이치는 결국 하나로 흐른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장작을 패며 펀치력의 근원이 되는 등 근육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기분이 온 몸을 흘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양쪽 광배근이 아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게 무척이나 기분 좋은 자극이라 생각하며 현성이 제법 굵직한 장작도 중간에 정을 박는 일 없이 단숨에 반으로 쪼갈라 버렸다.
“아이고… 잘못하믄 내일 처자가 못 걸어다닐 수도 있겠다…! 총각…!”
“예, 예?!”
너무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19금 공격에 현성이 화들짝 놀라며 도끼질을 멈추었다. 그리고 때마침 사키가 부엌에서 나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살살 해레이…”
“하, 할머니!”
“저녁 다 됐어요!”
왠지 모르게 들떠 있는 사키의 음성에 현성이 정말로 오늘 밤은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지 멈칫하고 볼을 긁적였다. 그런 그를 향해 할머니가 홀홀 웃으며 말했다.
“얼른 가보그라! 장작 많이도 패놨네…! 이거는 내 정리 하믄 되니까…!”
“아, 예… 할머니…! 그럼 나머지는 내일 해드릴게예!”
“그래, 총각! 살살 해레이…!”
“아, 아닌데요! 그런 거!”
유쾌한 김씨 할머니를 뒤로 한 채 현성이 도끼를 들고 사키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작고 한적한 시골 마을.
“많이 했어요…? 할머니 나무…?”
또 장작이 생각이 나지 않았던지 사키의 귀여운 물음에 현성이 옅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저녁도 다 했어요!”
그리고 그를 반겨주는 사키의 수수하고 행복한 얼굴까지. 왠지 모르게… 이게 바로 가정이라는 느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현성의 마음을 울렸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저렇게 아름답고 다정한 사람과 평생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만 같았다.
그 생각에 순간 흠칫 하고 놀란 현성이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번뇌라…”
나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생각을 하기엔 이르다. 맺고, 끊고가 분명해야 하니까. 최소한 수긍 할 수 있는 결과가 필요했다. 거짓된 마음으로 쉽게 얻는 것은 금방 잃어버릴 테니까.
뭐라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그의 마음은 혜주니까. 그걸 정리하지 못한 채 사키를 선택한단 건 그 자신에게도, 그녀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솔직하지 못하단 것은 그가 생각하는 가장 큰 잘못 중 하나일 것이고.
“…길진 않을 것 같아.”
쉬는 동안 겪는 일상 하나, 하나가 그에겐 색다른 깨달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히 머지않아 이 모든 감정들도 결말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강해지게 되면 그때엔 분명히.
“할머니는 같이 먹지 않아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이젠 사람의 결을 찾아야 한다.
“아… 예?”
잠깐 생각에 잠긴 현성의 모습에 사키가 후후 웃으며 물음을 던졌다. 그 말에 현성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흔들자 사키가 옅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수고 했어요!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어요.”
까닭이야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여자란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토록 지고지순한 맘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란 것 또한. 그 마음을 가지고 그녀가 차린 밥상을 살펴보던 현성이 그런 걸 다 떠나서 무척이나 감탄한 얼굴을 하고 말았다.
가마솥 밥을 처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차르르 윤기가 돌았고, 김치와 돼지고기만 들어갔다지만 김치찌개도 무척이나 맛이 좋아 보였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사로잡자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배가 고프다더니 밥을 먹는 대신 먼저 그가 먹는 장면을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지켜 보는 사키! 도시락을 싸서 건네준 적은 있지만 한국 요리는 처음이다 보니 제법 긴장한 모양이다. 그 얼굴을 바라보며 현성이 숟가락을 들고 찌개를 한 숟깔 떠먹자 마자 ‘와…’ 하고 감탄을 터뜨렸다.
“여 와서 첨으로 사람 밥 먹는 거 같아예.”
그 웃음 섞인 대답에 사키가 양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다. 마지막 보았던 모습이 눈물이었기에 걱정했다만 그 행복한 모습은 혜주의 웃음을 보는 것 만큼이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현성 씨 요리가 그 정도에요…?”
기철로부터 전해 듣긴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단 그녀의 물음에 현성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 빼고 싶으면 연락하믄 되요.”
============================ 작품 후기 ============================
끼부리는 사키
색드립 은거고수 김씨 할머니
그와중 깨달음을 얻는 현성
연봉제도 계약 기간이 있어요~
1년에 한번씩 갱신 되는거구요. 저작권은 원저작권자인 저한테 있는겁니다.
대신 조아라측은 이 저작권에 대해서 일부 권한을 가지게 되는데 계약으로 조아라 이외의 장소에 올리거나, 조아라 이외의 출판물로 내지 마라 제약을 다는 거죠. 공동 저작권자라고 해도 계약 기간이 끝이 나면 원저작권자인 제게로 다시 돌아오는 거구요.
근데 전속 부분은 사실 연봉을 받고 조아라 소속 작가가 되는 것이니까 당연히 지켜야 할 부분이에요. 작가 자체가 후리랜서다 보니까 다른 출판사나 경쟁 업체에서 제의가 올 수 있고, 그러면 그 부분에 할애돼서 여기에 소흘해지는 걸 방지하려는 거죠.
저작권 문제로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될거에요~ 조아라 출판부에서 전자책 뿐 아니라 종이책도 낼 계획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그쪽으로도 나올 확률이 있구요.
근데 일단 제가 현재 될 지 안 될지 확실치 않은 상황인지라 ㅋㅋ 그냥 되면 안정수익이 생기니까 맘 편히 하고 싶은 실험적인 작품들을 맘껏 펼쳐 보일 수 있게 되는 거고, 그게 아니면 시장성을 고려한 작품들을 써내는 것의 차이 정도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저도 일단은 될 지 안 될지 장담을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음 작품은 무척 가벼운 작품으로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이제 너무 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상황인지라 어느 정도는 대중성을 회복하고자 괴물과 정반대로, 소패왕전처럼 만화 보듯이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 있고 막히는 구간 없이 스트레이트한 구성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호불호는 갈릴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ㅋ
요약하자면…
‘휴머니즘 하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