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회 - 괴물
주지 스님이 가르쳐 준 진언이라는 것이 달리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부동명왕상은 현성에게 큰 인상을 남긴 듯 했다. 김관수 관장의 옛 집에 있던 낡은 낚시 대를 들고 찾은 호수가에서도 물고기 낚시보다는 그 말이 자꾸만 머리를 맴돌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인생은 위태로움의 연속이었고, 흔들림은 멈추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흔들림은 그가 점차 커나가며 어른이 되어가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더 심각해져 갈 뿐!
인생이란 것이 고통이었다. 스님이 말했던 ‘인생이란 고통의 세계’라는 말에 십분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탓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은 기억을 할 수가 없다.
아주 어렴풋하게 그랬던 것 같다는 실체 없는 행복의 자국만 보일 뿐! 현성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와 그로 인해서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낙인들이었으니까.
과거 노예나 죄인의 얼굴에 인두를 지져 흉물스러운 외모를 만든 것과 같이 그에겐 얼굴의 화상이 낙인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 이후로 살아간 나날들은 어찌 고통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괴로웠고, 그 이후엔 몸이 괴로웠다. 괴로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번뇌는 피어났고, 그건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원망으로 번졌다. 불꽃처럼 활활 타올라서 무섭게 번져가는 그 거대한 감정들을 어린 나날의 현성은 차마 감당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세상은 잔인할 정도로 냉혹하게 목을 죄어 왔고, 그 속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수밖에.
“…번뇌…”
그건 낚시 바늘과도 같았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욱 더 살갗 깊숙이 파고 들어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쩜 그의 얼굴에 화상이란 낙인이 찍힌 순간부터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 같은 운명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혜주를 만나게 된 것은 인생의 구원과도 같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처음으로 사랑 받을 수 있단 느낌을 알았으니까. 그리고 처음으로 인생이 고통스럽지 않단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녀를 시작으로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세상에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란 걸 배웠다.
하지만 그조차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로 그건 상처가 되었고, 깊은 방황을 이끌어 냈다. 그의 잘못이든 아니든 그녀가 버티지 못하고 떠나 가버린 것에 대해서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잊고 있었던 만큼 강렬한 고통이 밀려왔고, 그건 몸의 고통으로 겨우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짙었던 것이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느꼈지만 여전히 변한 것은 없었던 것이다. 단지 그런 느낌만 느꼈을 뿐.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더 강해져야 돼.”
그리고 문득 소년원을 막 나와서 혜주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아직 현성은 어려서 자신이 지켜줘야 한다는 그 말. 그땐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제 20살인데 애 취급하나 싶기도 했었고!
하지만 그 말 그대로였다.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수 있게 되었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듯 한숨이 슬픈 맘을 죄어 왔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이젠 더 커나가면 될 것이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를 바라보던 현성이 혜주의 얼굴을 그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보고 싶네. 진짜…”
그녀가 정말로 보고 싶었다. 그 날 이후로 잊어본 적이 없었다. 매일 밤마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들어도 꿈결 속에서 그녀를 본 것 같았다. 그러다 새벽에 일찍 깨면 멍청하게도 그 집 앞을 서성이곤 하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서버렸고…
그리고 핸드폰을 들고 익숙한 번호를 지웠다 다시 저장 했다 수십, 수 백 번도 반복하고. 결국 또 다시 버림 받을까봐, 그녀에게 외면 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다가서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물러서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그를 지키기 위해서 곁을 떠나야만 했다. 버티기 힘들었단 것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를 계속해서 지켜주고 있었으니까.
괴로움이 익숙해지고, 고통도 잊혀져갈 때 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혜주도 그를 지키기 보단 그의 품에 숨어 모든 것을 기대었을 텐 데. 더 해주지 못한 아쉬움에서 시작된 후회가 이젠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강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마음을 잊지 말자. 절대로 잊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했다. 그게 무엇이든, 설령 혜주라 하더라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 마음을 말이다.
-찰랑!
그 사이 수면 위에 떠있던 찌가 한 번 크게 움직였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현성이 팽팽하게 당겨진 낚시 줄이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마 저 물 아래에서는 그의 낚시 대와 씨름하고 있는 물고기가 있을 것이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더 살 깊이 파고드는 낚시 바늘에 고통스러워하는 물고기가 말이다. 그런데 그것과는 다른 생각이 순간 현성의 머리를 스쳤다.
-휙!
이내 현성이 가볍게 낚시 대를 끌어 당겼다. 그와 동시에 펄떡 펄떡이는 자그마한 민물고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물고기를 손으로 잡고는 조심스럽게 낚시 바늘을 빼냈다.
그의 손에 잡혀 살아남기 위해서 온 몸으로 요동치는 물고기의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아…’ 하고 입을 떡 벌리곤 옅은 미소를 지었다.
-퐁당!
그리고 금방 다시 호수가로 던져준 물고기. 호수가로 다시 돌아간 물고기는 어떻게 지낼지 모르겠지만 방금의 그 장면은 현성에게 또 다른 뭔가를 심어주었다.
“…부동심… 또… 기다림.”
무엇인가가 알 듯 말 듯 맘이 간질간질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가 낚시 대를 옆에 두고는 두 다리를 양 팔로 끌어안은 채 ‘음…’ 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중천에 걸려 있던 해가 점차 기울기 시작할 때 까지도 미동 없이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현성이 그제야 정신이 다시 돌아온 듯 ‘아!’ 하고 고개를 돌렸다. 호수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던 가을날의 태양이 어느 샌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기다리면 온다…”
그건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너무 사소하고 당연한 일이라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기다리면 고기가 낚시 줄을 문다. 기다리면 태양이 지고, 저녁이 찾아온다.
-까악! 까악!
까마귀 한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붉게 물들 산동네 하늘을 날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느낀 듯 낚시 대를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지 그가 낚시 대와 신문지를 잘 챙겨 서둘러 김관수 관장의 옛 집을 향해 달려갔다.
전속력을 향해서 달려간 낡은 집! 그리고 그가 낚시 대를 한 구석에 세워두고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 대구에서 싸온 짐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찾고 있던 것을 찾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짐 자체가 워낙 조촐한 것도 있었다만 그건 그가 수 십 번도 더 보아온 물건이었으니까.
“…여기 있네.”
그리고 그가 꺼내든 것은 민욱이 전에 선물해주었던 ‘칼럼’이었다. 인체도감까지 정리가 되어 있는 그것을 다시 꺼내 보이며 현성이 씩 웃음 지었다. 테세이라나 석현재를 상대로 사실 일시적으로 브레이크를 거는 펀치를 구사하려 했지만 그건 민욱이 이야기 했던 대로 정말로 쉽지 않았다.
다만 지금 그의 머리를 스친 것은…
“한 방.”
단순히 브레이크를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하나로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치명적인 한 방’이었다. 몸이 달아올라 미친 듯 공세를 퍼부었던 것과 달리 흔들림 없는 맘으로 상대를 기다릴 줄 안다면 어쩜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일런지도 몰랐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는 모두 리듬과 호흡이 다르고, 그것을 단 한 번에 캐치한다는 것은. 허나 그게 가능하다면 정말로 혜주가 바랐던 대로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이기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지 몰랐다.
“하나의 타점에 모든 힘을 집중 시키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아마 상당히 다를 것이다. 이것은 무척이나 동적이었던 지금까지의 흐름과 정반대의 패턴이었다. 그러나 이것에 해답이 있을 것만 같았다.
경험에서 배운 집중력. 반드시 필요하다 느꼈던 부동심. 그리고… 여전한 기다림.
항상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납게 날뛰는 무대라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더 치명적인 공격력이 아니라 기다림이었던 것이다. 그 생각을 차분하게 가슴 속에 담으며 현성이 미소 지었다.
“…근데 쉬러 와가…”
쉬러 와서도 결국은 시합 생각뿐이라니. 정말 쉬는 데는 재주가 없다 생각하며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하지만 예정보다 대구로 돌아가는 시간은 늦어질 것 같았다. 최소한 집중력, 부동심, 인내심의 3박자가 완전히 일치하기 전 까지는 제대로 된 무엇인가를 꺼낼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었다. 이것이 인간사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격투기에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명상을 좀 더 해야 하나…”
아무래도 그 비중을 좀 더 늘여야 겠다 생각한 듯 현성이 살짝 웃음 지었다. 이게 답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무척이나 들뜬 기분은 12월 11일에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약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면 그때엔…
“다시 만나 볼 수 있을까…?”
여전히 미래는 불확실했다. 다만 사람은 항상 기대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숨을 고르며 현성이 인체 도감과 칼럼들은 저녁에 챙겨 보기로 하고는 다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휴식을 취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증량’인지라 끼니를 챙겨 먹는 일만큼은 확실해야 했다. 오죽하면 김관수 관장이 일찌감치 이 옛날 집에 냉장고까지 새로 들여 놓았겠는가?
이젠 미들급에서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렸고 더 이상 감량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보니 앞으로의 결전을 위해서는 체중을 반드시 늘여야 했다. 쉬면서 체중을 95킬로까지 늘여오기로 한 약속도 있었던 고로 현성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나온 동안 산동네 마을에 살고 있는 김씨 할머니가 ‘총각!’ 하고 그를 불렀다.
“아, 예! 할머니!”
올해로 나이가 80살이 넘어가는 고령인지라 현성이 무슨 일인가 싶어 대답을 하곤 후다닥 걸음을 옮겼다. 인적이 워낙 드문 마을에 사람이 와서 반가웠던지 첫 날부터 그를 잘 챙겨준 할머니였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꺼?”
걱정담긴 그의 음성에 김씨 할머니가 홀홀 웃으며 ‘그런 게 아이고!’ 하고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 현성이 혹시 반찬이라도 주시려는 건 아닌가 싶었던지 어색한 웃음을 띤 채 할머니의 집 앞에 서자마자 ‘어…?’ 하고 멈춰서고 말았다.
“누가 총각 찾아 왔는데, 아가씨가 어쩜 이래 예쁘노!?”
산동네 시골 마을에 손님이 많이 찾아와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지 김씨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 함박웃음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쉽게 웃을 수가 없었다. 그저 놀란 듯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질 뿐이었다.
“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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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작가 연봉제 이력서 제출 했지 말입니다.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