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회 - 괴물
“슬램이랑 니 킥 때문에 내장에 출혈이 생깄다 카네. 그리고 마지막에 피니쉬로 들어간 스매쉬 때문에 턱이 완전히 부서졌단다…”
그건 현성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물론 이것은 시합이었다. 서로가 상대로 만나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일었다. 현성으로썬 사력을 다해 이기는 것만을 생각했고 전혀 그런 것을 고려 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김관수 관장이 밝힌 ‘현재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래 심하게요…?”
“다행스럽게도 의료진 투입이 빨라가 큰 문제는 없는 갑다… 근데 캐가 한 1년 정도는 선수 생활을 못 하게 된 것 같은데… 흠…”
깊은 숙면을 취하고 마주하는 첫 번째 소식이 그런 소식이란 사실에 현성이 미안함 가득한 얼굴을 해보이자 김관수 관장이 너무 그럴 것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시합 하다 보면 그래 될 수도 있는 기다… 공백이야 생기겠지만 이거는 현성이 니가 잘못한 기 아이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프로의 세계! 그렇게 연약한 마음을 가져선 안 된다는 듯 김관수 관장이 고개를 흔들어 보이자 현성이 ‘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써도 당연히 그리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1년의 공백이 생긴다는 것은 선수에겐 치명적인 일이었다.
물론 현성 역시 그러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라만 묘하게 과거의 여름날이 덜컥 가슴을 스쳤다. 뜨거운 날씨와 찐득한 양 손. 그 더러운 기분이 잠깐이나마 스친 것은 당시의 현성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단 것과 일맥상통했다. 테세이라와의 싸움에서도 그러했다. 분명히 그 두 가지 경우와 차이는 있었다.
두 가지 상황과 달리 현재와의 시합에서 현성은 정말로 절박했고, 그런 것들을 고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벌인 일이었지만 혹시나 시합 중에 그때와 같은 일을 다시 반복하게 되다면 어떻게 하나 싶은 불안이 순간 그의 맘을 스쳤다.
“…후.”
그건 현성이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자기혐오와 비슷한 맥락의 문제였다. 단순히 외모만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가 위험한지도 모르겠단 생각 말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의 손에 목숨을 잃은 아영의 아버지나, 얼마 전에 치렀던 테세이라. 그리고 현재 모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죽음.. 혹은 그에 준하는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 사실이 현성의 맘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은 충분히 생길 수 있는거야! 너무 자책 하지 마라!”
혹시나 하는 걱정이 들었던지 숙취로 고통 받고 있는 기철이 머리를 붙잡고 소리치자 현성이 움찔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나란히 숙취를 겪고 있는지 머리를 붙잡고 있는 알렉세이 코치와 키드, 광철. 그 모습에 순간 현성이 진지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인종인 네 사람이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자 웃음이 터져버린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았다.
토종 한국인과 러시아인! 그리고 재일교포인 광철과 하와이안 혼혈인 키드! 각 기 다른 네 사람의 모습에 그가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어낸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좀… 마음 수양을 좀 더 해야겠다 싶어서예…”
확실히 그런 부분이 필요했다. 물론 이것이 전의 시합과 다른 게 있다면… 분명히 현성이 마음 고생을 무척이나 심하게 했고, 그로 인해서 폭발한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했단 것이다. 결과적으로 승리에 대한 집착과 그 감정들이 나쁜 결과를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건 현성이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자아상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돌변해서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 한 것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눈을 내리깐 그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어쨌거나 이제 이 일은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는 듯 이야기 했다.
“시합에서 최선을 다했고, 결과는 각 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기다. 현재도… 뭐, 좀 힘들긴 하겠지만 그게 다 사람 팔자다.”
“예, 관장님…”
그의 말에 현성이 가장 큰 힘을 얻은 듯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어라 이야길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기분은 아주 상쾌했다. 그 동안 부족했던 잠을 모두 다 채워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 몸 구석구석이 쑤시고 아파옴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정말로 상쾌했다.
“참, 현성이 니 배 안 고프나?”
그리고 김관수 관장이 기철, 알렉세이 코치, 키드, 광철과 마찬가지로 숙취야 있긴 하다만 그들보다는 좀 더 개운한 얼굴로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먹고 싶은 거 많이 있어도 오늘 아침은 딱 정해져 있는 거 같아요! 이 술쟁이들 정말!”
유일한 여성 맴버인 예린이 자신만 빼놓고 술 파티를 즐긴 데 앙심을 품은 듯 팔짱을 끼고 앙칼지게 소리치자 기철이 어깨를 으쓱했다.
“보드카 마셨는데 니 어떻게 부르노, 예린아!”
술에는 다소 취약한 예린이다 보니 그럴 수 없다지만 예린의 토라진 얼굴은 좀처럼 원래대로 돌아오질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같은 팀원끼리 그러면 서운하잖아, 오빠!”
그 말에 기철이 지끈 거리는 두통이 심해진 듯 ‘아…’ 하고 엄살을 피우자 예린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다시 한 번 미소 짓는 동안 김관수 관장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맘껏 먹어라, 현성아! 다 사주께!”
“기왕이면 국물 있는 음식으로…”
유난히 숙취가 심한 듯 헬쓱한 얼굴의 기철이 간절한 표정을 짓자 현성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마음이 편해진 기분이 들었다. 대기실에서 대기하면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했었다만 아무래도 벨트를 얻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일까?
예전과 같은 여유를 일부 회복한 듯 한 그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모두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피자 무러 가도 돼요…?”
이내 현성이 오랜만에 장난스러운 얼굴로 이야기를 꺼내자 기철과 광철, 알렉세이 코치가 인상을 구겼다. 키드 마저도 ‘피자’라는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자 현성이 저도 모르게 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소고기 국밥 먹으러 가요. 횡성… 한우 가지고 만든 거 있다 카던데.”
전에 왔던 기억을 더듬으며 현성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자 순간 네 사람이 ‘오오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지도 있나…?”
“아마 있을 걸!”
광철의 말에 기철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어린아이처럼 헤헤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 모습에 예린이 여전히 맘에 들진 않지만 시커먼 털이 한가득인 남자들이 그러니 그래도 귀엽다 싶었던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튼…! 근데 난 피자도 먹고 싶은데…!”
그리고 예린이 그들을 바라보며 애교 가득한 눈빛을 보내자 너, 나 할 것 없이 기철을 비롯한 네 사람이 그녀의 눈을 피했다.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하하 웃음 짓는 그 모습에 예린이 ‘쳇!’ 하고 인상을 구긴 사이 김관수 관장이 현성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만들 싸우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관장님도 어제 너무 하셨어요! 내만 빼놓고!”
“그거는… 예린이 니 피부 관리 좀 하라고…”
“그래! 맞다! 일찍 자야 피부에 좋다 안 카나?!”
요즘 부쩍 외모 꾸미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진 20살 예린인지라 그 말에 예린이 썩 기분이 나쁜 건 아니라는 듯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부터 내 피부 걱정들 해줬다고! 와, 속이 빤히 보인다!”
그 모습에 현성이 다시 한 번 미소를 띤 채 컨벤션 호텔에 위치한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참, 오빠 몸은 괜찮아요? 어제 진짜 죽은 사람처럼 계속 잠만 자서 걱정 했는데…”
그리고 예린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밉다 하고 현성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랑 얼굴 좀 따갑긴 한데… 다른덴 괜찮은 거 같다.”
몸이 무거운 것은 아직도 그 여파가 남아 있는 것이니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트라이앵글 초크에 당했던 목과, 그 상태에서 안면을 가격 당한 통증만 남아 있단 그의 말에 예린이 ‘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진짜 오빠 거기서 어떻게 현재 오빠 들어올릴 생각을 다 했어요? 아니, 그게 돼요?”
“바보가? 되니까 이겼지!”
재빨리 기철이 끼어들며 예린을 구박하자 예린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공익 요원한테 안 물었거든요?”
“…친절과 봉사가 슬로건이다.”
한상 티격태격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현성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며 볼을 긁적였다. 염두에 두고 있었던 기술은 아니었다만…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로 하여금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그 상황부터는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대처했던 상황이었고, 이후에 초크를 탈출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겨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부상 정도가 그리 심각했던 것이고…
“맨날 쇠질 했으니까… 그거 밖엔 방법이 없는 거 같드라…”
부족한 그의 경험으론 그게 최선이었다는 듯 현성이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동업자 정신이라고 해야 할 까? 본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테세이라와 현재 모두 1년 정도 되는 큰 공백을 가지게 만든 것에 대한 미안한 맘이 가시질 않았다.
“일단 메뉴는 다 통일 합시다! 후딱 먹고 좀 쉬게…!”
그 사이에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기철이 주문부터 하자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래도 보드카와 뭔가를 섞어 마셨던지 숙취가 있어 빨리 해장을 하고 들어가 쉬고 싶은 모양이다. 그 모습에 예린이 다시 찌릿 하고 눈빛을 보내는 동안 현성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모르게 그 동안은 잠깐 잊고 있었던 정겨운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한 기분이었다.
“아무튼 이제 남은 건 K-1 월드 그랑프리 밖에 없네! 좋겠다, 오빠는…! 나는 진짜 시합이 너무 없어서 못 하고 있는데!”
여성 디비전 자체가 적다 보니 거의 1년째 경기를 쉬고 있는 예린이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녀 자체가 원래 입식 선수이다 보니 K-1 무대는 동경 그 자체일 것이다.
“근데 오빠 앞으로 훈련은 어떻게 하는데? 일단은 휴가 먼저…?”
“아, 그러고 보니 휴가! 참, 어디로 갈 생각이야?”
광철도 궁금하다는 듯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관장님 어릴 때 살던 집에 잠깐…”
“관장님 집에…?”
“뭐, 거 시골에 윽수로 조용하고 한적한 데에 있다. 거 스님한테 얘기 해가 집도 좀 치워 놓고, 먹을 거리도 좀 챙기 달라고 했으니까 몸만 드가면 될 거다.”
지친 현성을 위한 휴식! 그게 지금 김관수 관장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말에 예린이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장님 시골 집이라고 하니까 나도 궁금하네요!”
“음, 확실히 지금까진 너무 급하게 달려 왔으니까 그런 조용한 곳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광철 또한 붐비는 다른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보단 그 편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한 듯 후후 웃음 지었다.
“가면 참 좋다. 너무 산골이라가 나오기가 힘들어서 글치.”
어린 시절 생각을 하며 김관수 관장이 껄껄 웃음을 터뜨리자 현성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 선택한 장소였다만 지금은 그게 맞는 것 같았다.
“12월 중순에 그랑프리 결승이니까… 그러면 한 일주일이나 이주일 정도 쉬나? 오빠?”
그 사이에 궁금한 게 많은 예린이 다시 한 번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에 현성이 후후 웃으며 김관수 관장을 바라보자 그가 일주일, 이주일 기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가 확실히 잘 챙기 먹고, 마음도 푹 쉬고 오기만 하믄 된다.”
“가서 고기 같은 거 많이 좀 사다 놔야겠다! 오빠 가서 뭐 제일 먼저 하고 싶은데?”
그리고 예린이 시합은 못해도 학생 신분인지라 부럽다는 듯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옅은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 생각 없이 휴식만을 취하고 싶었다만… 쉬는 것도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마음이 격하게 내몰리다 보니 통제 되지 않던 것을 회복해야 할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일 것이다. 그 생각과 함께 현성이 확실히 휴식 중 해야 할 일을 마음에 새긴 듯 대답했다.
“…마음 수양.”
============================ 작품 후기 ============================
현성의 괴물 전적
10전 10승 10KO
1. 김영찬 - 86킬로 데뷔전 1라운드 니킥 KO승
2. 이재석 - 86킬로 디비전 1라운드 스핀킥 KO승
3. 야마다 류이치 - 86킬로 디비전 1라운드 하이킥 KO승
4. 제롬 르 밴너 - K-1 수퍼 파이트 1라운드 레프트 훅 KO승
5. 차준혁 - 86킬로 디비전 1라운드 하이킥 KO승
6. 앤드류 나카하라 - K-1 토너먼트 지역 예선 1라운드 스매쉬 KO승
7. 자말 로우지 - K-1 토너먼트 지역예선 1라운드 레프트 훅 KO승
8. 이민욱 - 86킬로 디비전 1라운드 스매쉬 KO승
9. 글라우베 테세이라 - K-1 월드 그랑프리 16강 1라운드 스매쉬 KO승
10. 석현재 - 86킬로 타이틀전 1라운드 스매쉬 KO승
Who’s NEXT?
1. 루슬란 카라예프
2. 다니엘 기타
3. 고칸 사키
4. 바다 하리
5. 자말 로우지
6. 에베르트 페이토자
7. 에롤 짐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