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회 - 괴물
“…이런… 젠장.”
로드원 FC의 타이틀 샷을 일주일 앞두고 현성에겐 비상이 걸리고 말았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감량 크림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훈련의 텐션을 끌어 올렸다만 그게 오히려 화가 되고 말았다. 지나치게 높은 고강도의 훈련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었고, 과거보다 식사량마저 줄어든 현성이기에 그 부작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말았다.
런닝 도중 기운을 잃고 쓰러져 버린 그의 모습은 비단 김관수 관장이나 알렉세이 코치 뿐 아니라 키드와 광철을 놀라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현성아, 몸은 괜찮나?”
지나치게 집중력이 높아진 상태로 강도 높은 훈련을 매번 진행하다 보니 현성이 매번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신기에 가까운 타고난 신체라 해도 버티질 못했던 모양이다.
탈진(脫盡) 증상을 보이고 있는 그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은 물론, 알렉세이 코치와 키드, 광철 까지 걱정이 되는 듯 훈련 중 쓰러진 현성을 둘러싸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킬러비 짐 한 구석에 기댄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가 무척이나 힘이 많이 빠진 듯 바짝 마른 입술로 고개를 흔들자 키드가 관원들에게 물을 가져오도록 지시를 내렸다.
“아무래도 수분이 너무 많이 빠져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사실 그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하기에도 어폐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강도의 훈련을 이어갔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도 이상 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휴식을 취해야 할 시점에서도 본인 스스로가 ‘조금만 더…’ 하고 일정 외의 감량을 이어갔고, 결국은 그게 독이 된 것이다.
“7월 시합 이후에 제대로 회복도 안 하고 바로 다시 감량 들어갔으니까… 어쩔 수가 없지.”
민욱과의 리매치 이후로 현성에겐 쉴 틈이 없었다. 아니, 쉴 새 없이 스스로를 몰아 붙였단 것이 옳은 것일 것이다. 혜주와의 이별은 그만큼 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고, 늘어나는 훈련 량에 비해서 오히려 공급되는 에너지는 감소했다. 끌어 올린 집중력 탓에 신경은 날카로워 졌고, 날카로워진 신경 만큼 그가 감내해야 할 고통도 커졌다.
그 와중에 내릴 수 있는 현성의 유일한 해답은 몸이 버티지 못 할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 붙여 기절하듯이 잠이 드는 일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두달여 정도의 시간을 가지며 그나마 감량의 위협이 덜한 파이널 16강 전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3킬로를 더 감량해야만 하는 타이틀 샷이 있었고 그 사이에 현성의 몸도 한계점에 도달 해버렸던 모양이다.
“하아… 하아…”
물로 목을 축이고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숨만 몰아쉬는 그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과 알렉세이 코치가 안타까운 듯 한 얼굴을 하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남아 있긴 했으나 이대로라면 감량이나 체력의 관리에 분명히 차질이 생길 게 분명했다. 전반적인 리듬 자체가 붕괴되었고, 이것은 곧 일주일 뒤 시합의 컨디션이 회복되지 못 할 확률이 더 높단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타이틀 샷은 포기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회복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런 무리수를 던질 필욘 없을 것이다. 물론 미들급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은 상당히 매력적인 것이었고, 로드원 FC 측에서도 대대적인 광고를 한 만큼 폐를 끼치게 되겠지만… 선수 생명이 우선이 아니겠는가?
그리 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는 알렉세이 코치의 말에 김관수 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실 파이널 16강을 치르기 전부터 현성이 휴가를 가졌으면 한다 이야기를 한 바 있었다. 혜주와의 이별을 겪으면서 마음의 여력을 잃었으니 이미 방전 상태였을 것이다. 물론 계약에 묶여 있는 몸이었고, 앞으로 남아 있는 그 일정 탓에 타이틀 샷 이후로 가닥을 잡아 놓았지만 상황이 이리 되다 보니 그게 자신의 잘못인 듯 죄책감이 느껴졌던 모양이다.
선수의 컨디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단 실책 때문인지 무거운 표정의 김관수 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현성에게 다가갔다.
“현성아.”
충분히 수분을 공급해야 하지만 그것마저도 최소한으로 제하고는 킬러비 짐의 한 구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현성이 그의 목소리에 다소 지친 얼굴을 하고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틀 샷은…”
그리고 그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현성이 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합니다, 관장님.”
아무래도 김관수 관장이 무슨 말을 할지 그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약 2년. 그 긴 시간을 거의 함께 지내어 왔기에 그 뜻을 현성이 모를 리 없었다. 걱정 가득한 그의 눈빛에 현성이 힘든 와중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고개를 흔들었다. 몽롱한 듯 풀려 있는 눈이 무척이나 약해진 것 같았지만 그 의지만은 꺾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잘 들어 봐라, 현성아. 지금 탈진 증상이 와가 이대로 진행을 하면 더 큰 문제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길게 본다면 그리 하는 게 옳다. 김관수 관장이 크게 숨을 들이키며 다시 이야기를 하자 현성이 자신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입니다… 좀만 쉬면 금방 괜찮아지잖아예. 아직 일주일이나 있는데… 충분히 할 수 있심다.”
포기는 너무 이르다. 그도 그런 것이 바로 전 날도 아니고 아직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포기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류하는 김관수 관장과 달리 현성이 할 수 있다 다시 눈빛을 보냈다.
현재 그에겐 격투기가 삶의 전부였다. 자는 시간 이외에 모든 것은 시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만약에 그게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다면 오히려 이후 월드 그랑프리의 리듬도 망가질 수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상황 속에서 현성이 깊이 숨을 내쉬며 말했다.
“…크림 쓰면 됩니다… 관장님.”
지난 감량에서 사용 했던 엑셀레이트 크림!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노력 해왔던 것을 포기하겠다는 듯 한 그의 말에 김관수 관장이 놀란 얼굴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현성아…?”
“그거… 쓰면 회복도 좋고… 예후도 더 좋다 카잖아요… 좀 쉬면서 그걸로 남은 수분만 빼면… 충분히 될 겁니다.”
“…니 견딜 수 있겠나? 지금 이 상황에서.”
“…600그램 남았는데… 억울하잖아요.”
울먹울먹 하는 그의 목소리에 김관수 관장이 그건 정말… 무어라 할 말이 없다는 듯 멈칫하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그 어떤 선수보다 많은 노력을 해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열정이 아니라 돈 때문에 뛰어든 자신을 나무라며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 노력이 한국에서 작게 결실을 맺기 직전이 아니던가?
그가 연초에 했던 결심이 두 가지 있다면 타이틀을 가지는 것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나머지까지 좌초 되어 버린다면 그건 지켜보는 김관수 관장으로도 무척이나 버겁고 힘든 일이 될 것 같았다.
포기하지 못하는 현성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그 말에 김관수 관장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현성을 끌어안았다.
“…이길 수 있겠나…?”
“…계체 전까지만 참으면 되잖아요. 오늘 빼고 5일만 참으면 되니까…”
지친 몸과 마음. 그것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김관수 관장에게 아낌 없이 기댄 현성이 그리 이야기 했다. 더 이상 현성도 풋내기, 초보 선수가 아니었다. 이제 9전을 치룬 경력자다. 자신의 몸의 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듯 그가 의지를 내보이자 김관수 관장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면 내일 한국으로 드가자.”
당초의 계획은 계체량 전 날까지 킬러비에서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었지만 조금 더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찍 한국으로 들어가 미리 켄벤션 호텔에 자리를 잡고, 최대한 이동 경로를 줄이는 것이 유리 할 수 있었다.
“이 카면 더 이상… 타격이나 레슬링 훈련은 준비를 못 한다, 현성아.”
“…괜찮심다, 관장님.”
그건 선수의 몫이었다. 몸에 익어 있는 동작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듯 확고한 의지가 담긴 그의 말에 김관수 관장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의 주시하고 있는 알렉세이 코치와 키드, 광철을 돌아보며 말했다.
“더 이상 별도로 훈련은 진행 안 할끼다. 알렉 코치야! 크림 준비 하고… 내일 당장 한국 들어갈 수 있게 예약 좀 해야겠다!”
“관장님! 하지만 지금 탈진 상태인데 그때까지 컨디션을 회복한다는 건…! 감량 크림이 나쁘진 않지만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하고도 컨디션을 회복 한다는 건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컨디션은 선수의 정서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분이었다. 육체의 상태보다는 정신의 상태에 따라 더 크게 좌우되는 부분이니까! 지금 극한까지 내몰린 상태의 현성이 ‘작열통’에 버금가는 고통을 느끼게 할 감량 크림까지 사용한다면… 그 뒤가 너무나도 걱정된다는 광철의 말에 김관수 관장이 한숨을 내쉬며 현성을 바라보았다.
어느 샌가 덮고 있던 수건을 내려놓은 현성이 여전히 마른 입술로 고개를 흔들어 보았다.
“괜찮심다… 행님. 할 수 있심다.”
본인 스스로 그리 이야기를 하는데 더 이상은 만류 할 수가 없었다. 험상 궂은 외모와 달리 정 많은 광철이 걱정 가득한 눈으로 현성을 바라보자 현성이 고개를 흔들며 다시 미소 지었다.
이것 말고는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강렬한 자기혐오에 빠진 현성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유일하게 지킬 수 있는 일은 이것 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고, 걱정해주는 것은 알고 있다. 설령 이걸 치르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그의 곁을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현성 자신이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혜주와 이별 이후로 병적으로 치고 오는 자기 혐오감이나, 사람들을 망칠 것 같단 두려움! 비단 그 미친 듯 한 훈련 량은 ‘잊기 위해서’뿐만이 아니었다.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심다. 괴물이잖아예. 저는.”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웃으며 이야기 꺼내는 그의 모습에 광철도 무어라 더 만류 하진 못하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아선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처연한 모습이었다. 재일 교포인 광철이 일본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운동에 매진했던 것처럼 말이다.
미친 듯 훈련에 임했던 것. 그건 단순히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합이 멈추고,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는 것. 둘 다 현성이 견딜 수 없는 일일 테니까.
“…이길 수 있심다.”
궁지 몰릴수록 아이러니 하게도 현성의 집중력은 살아나고 있었다. 기진맥진한 상황 속에서도 석현재와의 일전을 머리에 그리며 그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맹렬한 승리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 보였다.
“죽어도 이길 겁니다.”
============================ 작품 후기 ============================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