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195화 (195/281)

- 195 회 -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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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6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다. 그리고 총 8전. 이 또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전적이었다. 그러나 여지껏 격투기를 해오며 이토록 시합이 기다려진 적은 없었다.

1경기와 2경기를 루슬란 카라예프와 다니엘 기타라는 두 강호가 무난하게 가져간 데 이어 자말의 3경기. 저돌적인 맷집을 앞세워 자말이 라스베가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제이크 씬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자말 로우지! 역시 굉장합니다! 아시아 챔피언 결정전에서 보여주었던 그 어마어마한 모습은 단순히 반짝 빛이 났던 선수가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아, 제이크 씬! 자말 로우지의 펀치를 감당하지 못하는데요!”

“네! 장현성 선수가 대체 저 선수를 어떻게 이겼을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모습입니다! 아마 이번 대회 첫 KO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4월, 현성과 겨루었던 모습 그대로 자말이 압도적인 맷집을 앞세워 불도저처럼 제이크 씬을 몰아붙여 나가는 모습을 보며 현성 역시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이상하게 신경이 곤두서서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무어라 해야 할까? 매번 그가 싸움을 앞두고 명상에 잠기며 스스로를 컨트롤 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기분이었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과 알렉세이 코치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현성 내부에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앞으로의 시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전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 자말 로우지! 라이트 훅! 연타 들어갑니다! 제이크 씬! 쓰러지나요?!”

“제이크 씬 선수도 얄팍한 몸으로 잘 버팁니다! 과연 좀비맨이라는 별명에 모자람이 없습니다만 사모사 괴인 자말 로우지에겐 역부족입니다!”

MC 용준과 김대환 해설 위원이 열띤 중계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3경기는 점차 자말에게로 분위기가 확연히 기울기 시작했다. 2라운드 중반 들어 잘 버티던 제이크가 힘을 잃었고, 곧 자말의 라이트 훅 두 방이 연달아 히트하며 거의 스탠딩 그로기 상태로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성아.”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김관수 관장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앉아 있던 현성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고 있심다. 준비 됐심다.”

깊이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이야기 하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무어라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참고, 참아 왔던 화가 드디어 터져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링 위에서는…”

“알고 있심다, 관장님. 지.. 빙시는 아입니더.”

이제 더 이상 망치지 않을 것이다. 침노한 분노 속 갈고 갈았던 날카로운 어금니가 드러나자 김관수 관장이 순간 오싹함마저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현성은 그조차도 말을 붙이기 힘들 정도로 매서운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너무 흥분해 감정 통제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싶은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확실히 하제이. 현성아. 이거는 시합이다.”

걱정이 되는 게 있다면… 이 거대하고 차가운, 응어리 진 분노가 상대에게 몰아친다면 어떤 결과를 만들지 알 수가 없단 것이었다. 아무리 현성이 냉정과 집중력을 유지하려고 해도 링 위에서 격해진 감정이 일순간 그를 휘어잡는다면, 그를 삼켜 버린다면 결과는 아주 쓰디 쓴 것이 될지 몰랐다.

그 말에 현성이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그 역시 걱정하고 우려하는 바. 발산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동시에, 이제 그에게 남은 모든 것은 격투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망가뜨려선 안 되는 남은 것이란 말과 같았다.

“예, 관장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고르는 그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더 긴 말 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라이트 훅! 다시 자말 로우지의 라이트 훅이 폭발했어요! 자말 로우지! 제이크 씬을 쓰러뜨립니다! 아! 굉장합니다! 마이애미 출신의 대단한 맷집을 가진, 좀비맨 제이크 씬을 격침합니다!”

그리고 때마침 자말의 피니쉬가 작렬하며 2라운드 후반까지 버티던 제이크 씬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것과 동시에 사람들의 환호가 모니터 너머로 전해져 왔다.

“와아아아아아아!”

그 격정적인 함성 속. 현성이 이제야 드디어 움직일 때가 되었다는 듯 눈을 감아 보았다.

“가자, 현성아!”

그런 그의 어깨를 툭 치며 김관수 관장이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서 현성이 천천히 걸음 옮기기 시작했다. 곁에 선 알렉세이 코치가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옅은 미소와 함께 그의 주먹을 주먹으로 터치한 현성이 다시 한 번 깊은 숨을 들이켰다.

상대인 글라우베 테세이라의 검고 육중한 몸! 그리고 위협적인 보디와 달리 선량한 눈을 떠올리며 그가 꼭… 이건 시합이 아니라 싸움을 하러 가기 전에 느꼈던 긴장감이 흐르는 것 같다 생각하며 입가에 쓴웃음을 가져갔다.

여지껏 많은 시합을 해왔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시합 전에 극도로 차분한 기분을 유지하던 것이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리면 온 사방으로 요동을 칠 정도로 거대한 무엇인가가 속에서 꿈틀 거리고 있었다.

“아… 이쪽으로!”

안내하러 왔던지 스태프들이 미리 움직이고 있는 그들을 발견하고는 금방 걸음을 돌렸다. 그 안내를 따라서 현성이 블루 코너의 백 스테이지로 걸음을 옮기며… 흥분하고 있는 몸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관수 관장이 그런 그를 그냥 두고만 있을 순 없다 생각한 듯 현성의 이름을 불렀다.

“현성아.”

그 목소리에 현성이 잘 통제가 되지 않는 격렬한 감정의 흐름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예, 관장님.”

그의 대답이 떨어졌지만 김관수 관장은 말이 없었다. 잠깐의 정적이 스치며 얼마나 더 걸음을 옮겼을까? 현성이 재차 물음을 던지려 하던 무렵 김관수 관장이 입을 열었다.

“후회 없는 파이팅을 해라.”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승패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듯 김관수 관장이 그리 이야기를 하자 그 순간 현성의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사실 이겨도 개운치 않은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와 함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시합을 하고 싶었다. 과거 세상과 대적하듯이 싸워나가던 어리석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단 것! 모두와 함께 기뻐 할 수 있는 승리, 진정한 승리를 누릴 수 있는 시합을 하고 싶다는 것!

그 열망이 그의 마음을 채우며 요동치던 감정이 순간 가라앉기 시작했다.

“…예, 관장님.”

그 진지한 대답에 김관수 관장이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는 이기 다다, 현성아. 너를 믿고 기다리는 거. 어떤 결과를 가져가던지 우리는 니 세컨이다. 가가… 니가 할 수 있는 만큼 모든 걸 다 쏟아 붓고 온나. 화만 쏟아 붓는 기 아이라… 여지껏 해왔던 노력, 결실들까지. 전부 다!”

그리고 그가 현성을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그 주먹에 현성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곧 자그마한 김관수 관장의 주먹을 글러브 낀 손으로 마주친 현성이 기다릴 때 보다 한결 가라앉은 마음으로 숨을 들이켰다.

여전히 무대 위에서 날뛰고 싶은 충동은 가득했으나… 그래도 조금 더 냉정해질 수 있었다. 승리에 대한 갈구와 울화로 기울었던 마음이 평정(平正)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김관수 관장의 말대로 화, 분노, 속에 쌓여있던 울분만을 푸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인내를 비롯해 그가 해왔던 모든 시간들을 방출하겠다 마음먹으며 말했다.

“테세이라는… 제가 화만 나는 게 더 좋았을낍니다.”

그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에 김관수 관장과 알렉세이 코치가 씩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보는 현성의 순박한 미소였다. 그렇지만 정말로… 이것이 글라우베 테세이라에겐 재앙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이길라고 싸우는 거다. 현성아… 화도 도움이 된다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시합이 싸움이랑 다를 게 없어선… 뭘 얻어 갈 수 있겠노…?”

옅은 웃음으로 김관수 관장이 그의 마음을 보듬자 현성이 공감하고 말았다는 듯 웃음과 함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 그대로였다. 시합에 대한 너무 큰 열망이… 상대와 겨뤄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쌓여있던 해묵은 감정들과 분노들을 풀기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 그것들을 모두 떨쳐 버릴 순 없다하더라도 결코 싸움이 되어선 안 된다.

방향을 잃고 요동치려던 마음을 정리하고 멈춰선 백 스테이지의 끝.

“잔현선! 잔현선!”

벌써부터 사람들의 함성이 그의 귓가로 스쳤다. 그의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었던지 뭉개진 발음에 현성과 김관수 관장이 옅은 미소를 짓는 사이…

“제 4경기! 장현성 대 글라우베 테세이라! 드디어 임박했습니다! 한국 격투계의 미래를 책임 질 괴물, 장현성!”

MC 용준을 비롯한 한국 중계석뿐 아니라 일본 중계석도 여간 떠들썩한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현성의 일본 내 인기는 대단히 상한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중계석의 사키가 가장 응원하는 선수는 ‘장현성’이라고 단언했으니 당연한 반응일수도 있겠지만…

“상대인 테세이라도 이쯤하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요?”

“네, 국내에선 장현성 선수의 인지도가 타 스포츠스타에 비해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만 일본 내에서는 엄청 납니다! 마치 요코하마 스타디움이 장현성 선수의 홈이라도 된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장현성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이 있네요!”

MC 용준과 김대환 해설 위원이 감탄을 터뜨릴 정도로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반응은 격렬했다. 하지만 글라우베 테세이라가 그런 것에 흔들릴 정도로 초보 선수는 아닐 것이다. 이미 K-1에서 7전이란 전적을 채운 경력자이며, 월드 그랑프리에 진출했단 자체가 다른 보통의 선수들과는 차별화 되는 뭔가가 있단 것일 테니!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16강! 지금 제 4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사이 정리된 링 위로 장내 아나운서가 모습을 보였다. 그의 선언과 함께 이시이 관장이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키 또한 중계석에서 헤드셋을 끼고 뚫어져라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먼저 홍 코너! 브라질에서 온 모두가! 극진가라데 최강자! 글라우베 테세이라!”

“그라아아우베에에에에에! 테세이이이이라아아아!”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에 맞춰 레니 하트 여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가득해웠다. 그와 함께 육중한 힙합 음악이 흘러 나왔고, 붉은 조명과 함께 레게 머리를 한 글라우베 테세이라가 세컨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환호가 터져 나온 가운데 그가 별 다른 퍼포먼스 없이 정확히 시합만 보이겠다는 듯 링 위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그의 등장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테세이라가 링 위로 올라와 인사를 하고 몸을 푸는 동안 사람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웅성이기 시작했다.

“K-1 아시아 챔피언! 동방의 최종 병기! 괴물! 장현성!”

“자아아아아아앙 디 몬스터어어어어어 혀언서어어어어어엉!”

곧 장내 아나운서와 레니 하트 여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잔현선! 잔현선! 잔현선!”

그와 동시에 일본 관중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제롬 르 밴너가 후계자로 지목한 남자! 동시에 전 시합에서 좀비맨 제이크 씬을 KO로 잡아낸 자말 로우지를 무릎 꿇게 만들었던 남자! 사람들의 웅성임이 커져 가는 동안 순간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스크린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괴물(怪物)’

한자로 쓰여진 그 단어에 순간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관중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스크린에 장현성 선수의 링네임이 비춰졌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습니다!”

“동양인 파이터 중 이 정도로 파격적인 승리를 거둔 파이터가 어디 있겠습니까?! 경량급을 제외하곤 전무한 실정입니다! 장현성 선수는 가히 아시아의 보물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겁니다!”

그 환호에 흥분한 듯 터져 나온 김대환 해설위원의 음성! 그리고 럭스 아테나가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울리기 시작했다.

“잔현선! 잔현선!”

“역시 전율의 럭스 아테나!”

잘 되지 않는 발음이지만 일본 내의 그에 대한 열광이 얼마나 대단한지 피부로 느껴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 열광적인 순간을 사키도 함께 동참하는지 헤드셋을 낀 채 ‘장현성!’ 하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사이드 스크린에 비춰지자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승리의 여신은 오늘도 장현성 선수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장현성! 절대로 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무대 위의 글라우베 테세이라, 이 와중에도 굉장히 침착해 보입니다! 상대는 극진 가라데 세계 선수권을 2번이나 제패했고 아직까지 K-1에서 패배가 없는 선수입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열광 속에서 침착한 글라우베 테세이라를 경계하는 김대환 해설 위원의 목소리!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현성이 블루 코너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마자 사람들의 환호는 더욱 더 커졌다. 새까만 몬스터 티셔츠와 아디다스의 하얀 삼선이 그려진 까만 글러브. 그리고 킬러비에서 챙겨온 사키의 깃발까지!

그것을 어깨에 걸친 그의 모습은 춘추전국 시대를 제패했던 용맹한 장수 같았다. 푸른 조명을 받아서 더욱 더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모습 속에 담긴 기백! 그 무도가 혹은 장군을 연상케 하는 카리스마에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잔현선! 잔현선! 잔현선!”

그리고 본격적으로 럭스 아테나가 시작 될 무렵. 김관수 관장이 그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가자! 현성아!”

김관수 관장의 열정 가득한 위침에 그가 매섭게 링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건할 정도로 비장한 럭스 아테나가 격렬한 흐름을 타는 가운데 현성이 무대 위의 글라우베 테세이라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 장현성! 평소와 달리 링 위의 글라우베 테세이라를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엄청난 기백이에요!”

“글라우베 테세이라도 경계하는 눈칩니다! 역시 장현성! 세계가 주목하는 신예 답습니다!”

비장한 럭스 아테나의 선율과 함께 빠르지 않은, 장엄한 걸음이 시작됐다. 링 위의 글라우베 테세이라를 향해 모든 감정과,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겠단 일념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한 그의 눈빛에 사람들의 환호가 음악을 가릴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집중력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집중한 듯 미동조차 없는 그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추며 사람들이 오싹함 마저 느낄 때 드디어 현성이 링 위로 올랐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가벼운 몸인지라 사뿐하게 3단 로프를 뛰어 넘어 안착한 그가 사키의 깃발을 들어 올리자 일순간 요코하마 스타디움이 요동쳤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함성은 마치 예견된 수순처럼 당연한 것인지라 그의 소문을 듣고 구경을 왔던 셔독과 정키 MMA 등 각종 포럼의 외국인 유저들이 깜짝 놀라 주변을 돌아볼 정도였다. 격투기 역사상 이 정도로 사람들을 열광케 한 선수는 없었다. 그 함성에 당혹스러워 하던 외국인들도 함께 미친 듯 소리 지르는 동안 현성이 알렉세이 코치에게 깃발을 내밀고는 티셔츠를 벗었다.

“장현성 선수! 체구를 보니 걱정이 좀 되긴 합니다만 몸이 그야말로 예술품 같습니다!”

“군살 하나 찾아보기 힘든 완벽한 몸입니다! 어쩜 저 몸이 장현성 선수에겐 베스트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려보다는 믿음을! 그것이 바로 현성이 아니던가? 김대환 해설 위원의 말에 MC 용준이 ‘맞습니다!’하고 후후 웃으며 소리쳤다.

“오늘 정말 김대환 해설 위원, 멘트라도 준비해온 것 같은데요? ”

“이 정도는 해설자로써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두 사람이 다시 만담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현성이 티셔츠를 김관수 관장에게 건넸다.

“갔다 오겠심다.”

굳은 의지 담겨 있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김관수 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후회 없이!”

다른 말보다 이번 시합의 모토는 바로 그것이라는 듯 그 말에 현성이 다시 웃음을 띤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미 기쿠다 심판과 테세이라가 그를 기다리고 서있었다. 곧 현성이 테세이라의 앞에 섰다. 여전히 몸은 시합을 갈구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나를 참게 두지 마라. 더 이상은 참지도, 견디지도 않을 것이다.’

이성과 감정을 초월한 거대한 열망이 테세이라를 향해 내리 꽂히고 있었다. 이상스러울 정도로 진한 기백과 패기가 전해져 오는 듯 기쿠다 심판과 테세이라가 덩달아 그를 향해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긴장감이 흘러 넘칩니다! 장현성! 오늘은 정말 무서운데요?”

“칼을 갈고 나온 것 같습니다! 장현성 선수…! 아시아 역사상 최강의 파이터라는 것을 온 천하에 증명 할 것 같습니다!”

MC 용준과 김대환 해설 위원도 감추지 못한 긴장감 속에서 기쿠다 심판이 두 선수에게 룰을 설명해 보였다.

“오스.”

차분한 음성으로 테세이라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현성이 역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듣진 못해도 매번 듣는 이야기니 순서는 알 수 있다. 이윽고 모든 설명이 끝이 났을 때.

“아 유 레디?!”

기쿠다의 열정 넘치는 목소리가 현성의 귓가를 울렸다. 그 소리에 현성이 감았던 눈을 뜨고 먼저 테세이라를 향해 두 주먹을 내밀어 보였다.

“굿 럭.”

이내 심상찮은 기세를 감지한 듯 테세이라가 두 손으로 글러브를 터치하며 먼저 인사를 끝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기쿠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순간 기쿠다를 비롯한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전원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꿀꺽.

약속한 듯 사람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이렇게 일찍 인사를 건넨다는 것은… 필시…

“파이트!”

그리고 그가 시작을 알리는 소리를 외치자 마자 둔탁한 소리가 요코하마 스타디움을 울렸다!

-퍼억!

============================ 작품 후기 ============================

설정란에 현성과 혜주 이별 테마도 링크해 놓았습니다. 그 장면 쓰기 전부터 미리 물색해두고 선곡했던 노래인데요. 이런 거 좋아하시는 분들은 혹 드라마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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