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회 - 괴물
“측두부를 가격하게 되면 귀에 있는 균형 중추가 흔들리게 된다고. 그렇게 세게 칠 필요도 없어. 일단 한 번 그 자리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종합이 아니라 입식에선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거야.”
현성의 요청대로 민욱이 일순간이나마 그를 무릎 꿇게 만들었던 펀치를 설명하자 현성이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보기엔 일반 펀치와 다를 게 없었다만 타격 부위에 따라서 그 효과가 다르다니!
“비슷한 걸로 턱 끝을 살짝 흔들어 놓으면 뇌가 흔들려서 중심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
민욱의 말에 김관수 관장이 부수적인 설명을 이어가자 현성이 역시나 그도 알고 있는 기술이라 생각한 듯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게 쓰기가 쉽지가 않을 거란 말이야. 왜냐하면 측두부를 정확하게 가격하는 게 어렵고, 일단 측두부가 잘못 치게 되면 귀 뒤. 후두부 가격으로 처리가 될 지도 모른다고.”
“그래, 맞다. 후두부 가격이면 실격패 처리 되는 거고, 상대 선수 목숨도 위험해질 수 있다.”
정교한 타격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위험하다. 그것이 민욱과 김관수 관장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밸런스 조절만 하면 스탠딩 게임에서는 제일 좋은 기술이 되겠네예.”
그러나 현성은 그들의 걱정보다는 그 자체의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 현성이 민욱의 정교한 타격을 익히게 된다면… 아마도 그는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질 것이다. 지금도 강하지만 정면으로 치고 받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흔들게 되는 능력까지 포함하게 된다면 막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자말 로우지나 밴너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선택했고, 그들을 때려눕힌 것이 현성이다. 만약 그런 그를 상대로 평형감각을 상실하게 된다면? 스탭은 몰라도 펀치의 속도감은 최고다. 균형감을 상실한 채 그 빠른 펀치를, 그리고 그 차괴력 넘치는 주먹을 맞게 된다면?
“…확실히. 밸런스 조절만 잘 한다면 치명적인 기술이 되겠지.”
민욱이 어차피 자신이 이제 현성과 주먹을 마주할 일은 없다는 듯 사악한 웃음을 띤 채 이야기 하자 현성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캐도 현성아. 민욱이가 그게 가능했던 거는 니가 스매쉬 때리는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안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구사 할 수 있는 기 아이다.”
“그건 맞아. 너 스매쉬 연습하면서 플랜 짰을 때 함께 했었고, 그걸 내가 수백 번도 넘게 봤으니까 그걸 생각해낼 수 있었던 거야. 펀치력이 다운을 가져 가는 건 아니다! 스매쉬의 반격을 스매쉬로 한다는 건 정말 내가 생각해도 천재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튼 그 타이밍 가져가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민욱의 말 그대로였다. 민욱의 펀치가 현성의 세반 고리 기관을 흔들 수 있었던 것은 스매쉬라는 막강한 카운터 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폼이 떨어지지 않은 민욱의 정교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정박의 카운터보다 조금 더 빠른 변칙 리듬으로 현성의 타이밍을 흔들 수 있었다.
“이건 타이밍을 빼앗는 거야. 보통의 카운터가 완전히 힘을 싣고 달려오면 내 펀치력에 니 가속도까지 더해서 데미지가 배가 되는 거잖아?”
“응.”
“이건 니 동작이 완성 되기 전, 불완전한 자세를 흔들어 놓는 거라고. 그래서 타이밍 가져가기가 어려웠던 거고. 난 너 타이밍을 앗아간 거지. 니가 스매쉬를 들어오려는 찰나 반박자 빠르게 치고 나가서 흔들었지! 결국 아예 뻗지도 못하고 자세 자체가 무너진 거야. 그래서 다운이 생긴거지.”
“음…”
민욱의 설명에 현성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운터보다는 더 빨라야 한다. 상대의 자세를 흔들어 놓을 정도로. 그러니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쉽게 구사 할 수가 없단 것이 자명했다.
“난타전이면 기회가 많아지겠네.”
의미심장한 그 말에 민욱과 김관수 관장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현성에게는 기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원래 무뚝뚝하고 조용한 편이긴 했지만 그보단 생각이 많아졌단 기분이었다. 뭔가를 연구하고 고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그의 머리를 자꾸만 채우는 혜주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함이란 것을 알 수는 있었다만…
“멍청아, 그러면 대신 너도 정교하게 들어가기가 힘들어 지지! 난타전이 아니라 공방전, 그것도 교착 상태에서 니가 확실하게 상대의 패턴을 파악할 필요가 있는 거야.”
계속 되는 민욱의 조언에 현성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마 그의 생각은 아무래도 민욱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 순간 민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함 더 보여주면 안 되겠나?”
“니가 아는데 그걸 굳이 맞아 볼 필요가 있겠냐?”
“10월까진 증량 못 한다. 그리고 증량한다 캐도 다들 내보다는 체중이 최소 5킬로씩은 높다.”
타이틀 샷이 문제였다. 두 가지 단체를 병행한다는 것이 이러한 어려움이 있다보니 현성이 이 기술을 꼭 익히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어려울 건 없는데… 다 아는 걸 굳이 한 번 더 맞아 보겠단 거야?”
“알고 맞는 거랑, 모르고 맞는 거는 다르니까.”
그 타이밍, 그 느낌을 몸을 새기겠다는 듯 한 그 말에 민욱이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제 민욱은 8월 말에 미국으로 출국을 해야 했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 기간도 사실상 얼마 남지 않았다.
김관수 관장 역시 현성이 스트레스 때문인지 증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기술을 익혀 놓는다면 상당히 앞으로 경기를 풀어 가는데 유리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지 현성을 말리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대신에 이상 반응 오면 바로 쉬는기다. 알겠제?”
“예, 관장님.”
선수는 자신의 몸이 자산이다. 그 자산을 가장 아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현성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물론 괴로운 만큼… 그것을 잊기 위해서 몸부림 치고 있는 지라 말릴 수도 없었다만.
결국 현성과 민욱이 글러브를 끼고 다시 링 위에 올랐다.
“내가 너랑 또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네.”
“맘 껏 치라. 호빵.”
아직도 현성의 파운딩 탓에 붓기가 가라앉지 않은 얼굴을 보며 현성이 도발하자 민욱이 기도 차지 않는단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이제 슬슬 이별을 받아들이고 이겨내고 있는 것일까? 웃음기기 메마른 얼굴에 유일하게 미소를 짓는 순간. 그 순간을 보며 김관수 관장이 그나마 민욱이 있어 다행이다 생각하는 동안 민욱이 정말 욱한 듯 주먹을 들고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그의 리듬은 현성보단 확연히 빨랐다.
원래 스탭 자체가 풍부하고 다양한 콤비네이션을 통해서 상대를 압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민욱이다 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물론 중요한 것은 그의 리듬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리듬 속에서 어떻게 그 기술을 가져갈 수 있는지, 소화를 해내는 것이 필요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민욱이 몸이 풀릴 시간이 필요했다. 쉬운 기술이 아닌만큼 그의 상태를 고려해야 했다. 실제로 경기를끝내고 민욱이 다시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것도 꽤나 오랜만의 일일 테니까!
“오케이!”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면 간다.”
그리고 현성이 리매치를 끝내고 다 다음날부터 지금껏 움직여 왔던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오히려 경기 당일보다 더 날카로워진 움직임에 민욱이 조금 당황한 듯 한 모습을 보였다. 촘촘한 경기 일정 때문에 그런 것일까? 경기가 거의 2-3달에 한 번씩 있다 보니 긴장을 늦출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혜주 일까지 있었으니 더욱 더 훈련에 미쳐 살았을 것이다.
새삼스럽게 긴장이 되는 것을 느끼며 현성이 더욱 더 날카로워진 몸놀림으로 다가오자 민욱이 리듬을 타며 스탭으로 그와의 거리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성이 순간 그를 향해 자세를 낮춰 들어오자 민욱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냉정한 얼굴을 해보였다. 견제로 슬쩍 뻗은 잽!
그것을 현성이 숄더 챠징으로 커트해내곤 바로 러독 스매쉬를 위한 발을 내딛자 그 순간 민욱이 번개처럼 튀어나가 펀치를 뻗기 직전! 가장 흐트러지기 쉬운 자세의 현성을 흔들었다. 반 박자 빠르게 치고 나간 맥클라렌 스매쉬!
-퍽!
순간 귓가가 울리는 충격에 현성이 다시 한 번 정신이 멍해진 것을 느끼며 비틀하자 민욱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현성의 손을 잡았다.
“괜찮냐?”
그 말에 현성이 통증 대신 빙글빙글 도는 묘한 기분에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묘한 기분에 그가 쉽지는 않겠다 싶었던지 털썩 주저앉은 그의 모습에 민욱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고.”
“근데 펀치 날릴 때 그립 다 안 쥐고 쳤제?”
“응?”
민욱의 펀치에 다시 평형 감각을 잃은 현성이었다만 그의 말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
“시합 때… 두 번째였나…? 그때 맞은 거랑 다르드라.”
한 번 더 맞아본 이유가 아마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그 말에 민욱이 모든 것을 실토하겠다는 듯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은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 왜냐하면 그냥 카운터로 때려 넣어도 너 같은 경우는 KO가 나올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난 피니쉬 능력이 부족하니까. 중추 신경을 흔들려면 타격면적을 넓힐 필요가 있었거든. 왜냐하면 니 귀안에 들어 있는 신경을 흔들어야 하니까.”
“막 말로 어퍼로 뇌를 흔드는 것도 턱에 정타를 넣는 게 아니라 스쳐서 끝만 흔드는 게 더 효과적이다.”
민욱의 말에 김관수 관장이 설명을 잇자 현성이 어지러움 속에서도 새로운 배울 것이 생겼다는 듯 즐거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디를 치느냐… 그리고 우에 때리느냐에 따라서도 다 다르구나.”
묘하게 탐구와 연구에 빠져버린 듯 한 그의 모습에 민욱이 왠지 모르게 다음 시합. 파이널 16강에서 또 엄청난 것을 보여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던지 현성을 빤히 바라보았다.
“…와?”
그 물음에 민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그가 현성을 힐끔 보며 말했다.
“야, 어차피 나 쓸 일 없으니까 인체 도감이라도 보내줄까?”
이젠 선수 생활도 포기했고, 남아 있는 것은 미국에서의 유학 뿐. 더 이상 미련은 없다는 듯 민욱이 꺼낸 말에 현성이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거 어렵나?”
“당연하지. 전부 영어인데.”
“…영어?”
“당연히 의학 원서니까.”
“…카면 우에 보라고?”
“내 사정이냐?”
사악한 웃음 짓고 있는 그의 모습에 현성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직까지 마음에 담겨져 있는 일들은… 남아 있지만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간다.
“그거라도 도. 영어도… 공부도 할 겸…”
괴로워하기 보다는 참고 더 나아가길 선택한 현성이 의지를 보였다. 비록 아직까지 여파가 남아 완전히 떨쳐내진 못했으나 거기에 사로잡혀 멈춰 있진 않겠다는 듯 말이다.
“오늘 줄게.”
“너거 집에 있는 거 아이가?”
의대 원서라면 민욱의 서울 집에 있는 게 아니던가? 오늘 당장 건네주겠단 그의 말에 현성이 생각지도 못한 듯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에 민욱이 뭘 그리 놀라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새로 살 거야. 제일 어려운 원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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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심의 아이콘
전 이제 잠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