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회 - 괴물
그건 마치 더운 여름날 같았다. 부모님을 잃고 고모네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 입학했던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단체 무용 비슷한 것을 했던 날.
내리 쬐는 태양에, 쉽게 어울리지 못했던 아이들 틈바구니 속에서 모두들 그를 꺼려했던 탓에 짝 없이 홀로 뜨거운 운동장을 서있다 느꼈던 그 날의 울렁이는 기분 같았다.
대체 민욱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리찍는 듯 들어온 카운터가 분명히 현성의 상태를 이상하게 만든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민욱이 의도한 것이고…!
“아직 회복 덜 됐다! 현성아! 테이크 다운!”
아직까지 세반 고리 기관을 뒤흔든 민욱의 펀치에 대한 비밀은 알 수 엇었지만 현성은 그게 두렵지 않았다. 자칫 빙글빙글 도는 기분에 넘어질 것 같았지만 그의 등 뒤에는 열화 같은 목소리로 소리치는 김관수 관장이 있었다!
“하앗!”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날아든 민욱이 순간 체중을 실어 맹렬한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슈퍼맨이 도약을 하는 듯 자체로, 피니쉬를 노린 스트레이트가 둔해진 감각 탓에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안면으로 날아들자 순간 현성이 안면 타격은 위험하다 본능으로 판단한 듯 고개를 돌렸다!
-스윽!
아슬하게 스치는 민욱의 스트레이트! 그리고 그것이 스치기 무섭게 날아드는 민욱의 니 킥!
-파악!
분명히 공격의 강도가 아까보다 훨씬 높아져 있었다. 그리고 공격 역시 대담해졌다! 민욱은 판정이 아니라 이것으로 승부를 보려고 한 게 틀림 없었다!
그 생각이 들자 현성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스치는 기분을 느꼈다.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민욱 또한 자신과 다르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 무대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다 똑같은지도 몰랐다. 말론 이긴단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진심 전력으로 부딪쳐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기고 싶은지도 몰랐다.
-쩍!
재차 날아드는 민욱의 로 킥! 현성이 무릎을 들어 가드해내며 쓴웃음을 지었다. 느낌도 좋다만 지금은 그렇게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하앗!”
다시 한 번 기합과 함께 민욱이 쇼트 어퍼를 현성의 안면으로 쳐 올렸다.
-퍽!
한 번 더 머리가 흔들리고 어지러움이 강해지자 그의 생각이 조금 더 확실해졌다. 민욱의 펀치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이 틀림없었다. 니 킥과 로 킥을 섞어 가며 시선을 분산 시키고 있지만 민욱이 피니쉬로 노리고 있는 것은 분명히 머리였다!
‘머리를 죽이면 몸은 따라 죽는다!’
민욱이 현성에 대해 알고 있는만큼 그 또한 민욱을 잘 알고 있다. 너무 습관적이고 익숙한 것은 쉽게 망가하기 마련이다. 그랬기 때문일까? 흔들리는 충격 속에서 현성이 살짝 주춤한 모습을 보이자 이번에도 민욱이 그의 신경을 분산하기 위한 로 킥을 날려왔다.
‘자세가 한 번 더 무너진 순간 스매쉬로 마무리 한다!’
계산된 일격이었다! 현성의 앞 길을 막는 것 같아 미안한 맘도 들었지만 승부의 세계는 언제나 냉정한 법이니까! 쇼트 어퍼로 머리가 흔들렸고, 로 킥으로 다시 시선이 분산되었을 때 마무리 스매쉬만 날린다면 완벽한 리벤지를 마치고, 이 격투 세계를 아쉬움 없이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념으로 날린 민욱의 로 킥!
-덥석…!
순간 뭔가 허한 느낌이 민욱의 다리에 맴돌았다. 어느 샌가 현성이 어지러움 때문인지 인상을 구긴 채 그의 로 킥을 한 손으로 캐치해낸 것이다! 비슷한 덩치의 민욱보다도 한 마디 정도나 더 크고 긴 손가락! 그 엄청난 손이 그의 로 킥을 캐치하는 바로 그 순간 현성의 원 레그 테이크 다운이 작렬했다!
-쿠당탕!
“장현성! 다시 한 번 테이크 다운! 아! 경기가 재미있게 풀리네요!”
“아무래도 스매쉬가 2번이나 들어갔기 때문에 데미지가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현성 선수로써는 기술적인 실험을 하기도 좋은 것 같네요! 방금의 원 레그 테이크 다운은 정말 완벽했습니다!”
다시 한 번 바닥으로 넘어진 민욱이 순간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을 느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 쉽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설마 또 테이크 다운을 해올 줄이야! 파운딩에서 당한 출혈 탓에 숨 쉬는 게 쉽지 않은 마당에 격한 움직임이 보여 지자 민욱이 입으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가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퍼억!
아까와 다르게 망설임 없이 현성의 파운딩이 민욱의 안면을 가격했다!
“와우! 엄청난 파운딩입니다!”
“말 그대로 해머네요! MC 해머!”
“아아! MC 용준, 경기 중에 그게 무슨 망발입니까! 아무튼 장현성 선수 데이크 다운 이후 다시 한 번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마운트 포지션을 가져갈까요?!”
격투기 팬으로써는 실로 흥분되는 장면이었다! 스트라이커인 현성의 모습도 좋았지만 방금의 모습은 올라운드 파이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 정도로 대담한 테이크 다운을 구사 할 수 있는데다 현재 포지션에서의 압박 또한 상당히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퍼억!
그 사이 현성이 다시 한 번 민욱의 옆구리를 때렸다.
“큭!”
근접 상황이지만 그의 펀치력은 전혀 위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체력적으로 준비를 착실하게 해왔다 하더라도 그라운드 상황에서 맞은 보디 샷에 민욱이 체력이 급감하는 듯 난처한 얼굴을 해보였다.
“좀 떨어져!”
짜증 섞인 그의 목소리와 함께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현성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어떻게든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현성은 아주 차가워진 승부사의 눈으로 민욱을 응시하며 순간 다시 그의 얼굴에 펀치를 내리 꽂았다.
-퍼억!
“아! 큽니다! 이번 파운딩 상당히 강렬합니다!”
“오버 핸드 스타일로 들어갔어요! 이민욱 선수 데미지가 상당하겠는데요!”
이번에 들어간 현성의 파운딩은 훅과 스트레이트의 중간 정도 되는 펀치였다. 그것은 곧 바닥에 맞닿은 민욱의 머리에 2배로 강렬한 충격을 선사했다. 펀치에 닿는 순간과 민욱의 머리가 바닥에 닿는 순간의 충격이 동시에 그의 머리를 울리자 순간 멍해진 민욱이 넋을 놓은 듯 움찔하고 말았다.
‘와… 세긴 세다, 정말…!’
그때도 느낀 것이었지만 현성의 펀치력은 정말 남달랐다. 이것을 1라운드 내내 맞고 버틴 자말 로우지가 대단하다 생각하며 민욱이 다시 퍼뜩 정신을 차리곤 스윕을 시도했다.
“오! 이민욱 스윕! 세상에! 예상치 못한 그림이에요!”
“스트라이커인 두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공방전을 펼칠 줄이야!”
흥미 가득한 MC 용준과 김대환 해설 위원의 목소리!
“빠져나와! 민욱! 빠져 나와야 해!”
그와 동시에 민욱의 세컨을 맡은 키드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대로 깔려선 답이 없었다! 민욱의 주특기를 살릴 수 없는 상황의 압박! 그 속에서 민욱이 어떻게든 스윕을 하려 했지만 현성의 힘은 쉽게 감당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코의 출혈이 너무 심해져 숨을 쉬기조차 가빠왔다.
-퍼억!
그 사이 현성의 파운딩이 다시 한 번 민욱의 얼굴을 때리자 민욱이 그대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집중력을 잃어선 안 된다! 곧 그가 현성이 다시 파운딩을 날리려는 예비 동작에서 발로 그의 몸을 밀어내고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균형감을 얼핏 회복한 현성이 그를 향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퍼벅!
민욱의 가드 위를 때리는 정직한 원 투! 가장 기본적인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순간 민욱의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이 다시 터져 나오자 민욱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대로 질 수는 없다. 무엇인가를 한 번은 더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그 순간 그가 재차 날아드는 현성의 펀치를 발견하고는 순간 덕킹으로 몸을 앞으로 살짝 숙여 그의 펀치를 피했다.
-퍼억!
“아아앗! 이민욱! 이민욱이 러시안 훅을 구사했습니다!”
“이거 정말 의외의 그림들이 가득하네요!”
그리고 현성이 했던 대로, 현성이 그에게 처음 선사했던 그 펀치를 민욱이 돌려주자 현성이 조금 당황한 듯 주춤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민욱이 다시 한 번 위에서 아래로, 내리 찍 듯이 펀치를 날렸다.
‘스매쉬!’
날카롭게 치고 나온 반 박자 빠른 펀치! 그것이 다시 한 번 얼굴에 날아드는 순간 현성이 몸을 비틀어 숄더챠징으로 그의 주먹을 컷트 해냈다!
그리고 동시에 반동으로 밀려나는 민욱!
“스매쉬! 스매쉬가 나오나요?!”
‘아…!’
그 순간 민욱이 그의 공격을 직감한 듯 팔을 십자로 교차하며 황급히 가드를 가져갔다! 이 무너진 자세와 거리! 이것은 분명히 스매쉬의 것이다! 거기엔 절대로 당하지 않을 것이다! 민욱이 스매쉬의 막강한 분쇄력을 막기 위해서 크로스 가드로 두껍게 자신을 보호한 바로 그 순간…!
‘뭐지?’
예상과 달리 현성의 스매쉬는 날아들지 않았다. 다만 바로 그 찰나의 순간 그의 발과 손이 바뀌었다. 마치 거울에 비춘 듯 뒤바뀌어 버린 모션!
‘스위치!’
순간 민욱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연히 스매쉬가 날아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상황에서 한 번 더 페이크가 들어간 것이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스위치! 당황함보다도 허탈한 웃음이 민욱의 얼굴을 스쳤다.
‘빌어먹을…’
그리고 반 박자 빠르게 날아드는 펀치…!
-뻐억!
“와아아아아아아!”
“스매쉬! 장현성! 러독 스매쉬가 아니라 맥클라렌 스매쉬를 이민욱에게 적중 시킵니다!”
“와! 맙소사! 굉장합니다! 장현성! 테이크 다운으로 감각을 회복한 이후 이민욱 선수의 맹렬한 공격을 그대로 반격 했어요! 마지막 스매쉬 앞에서 스위치 모션으로 딜레이를 주었고, 리듬이 흐트러진 이민욱을 그가 사용했던 스매쉬로 격침합니다! 준비한 플랜이 아닐 텐 데 정말 굉장합니다! 시합 중에도 진화를 하는 것 같습니다!”
MC 용준과 김대환 해설 위원의 들뜬 목소리와 함께 민욱이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털썩…!
완벽하게 허를 찔린 순간이었다. 아마도 이건 플랜이 아니라 현성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타격을 완성해가며, 그와 시합! 그 순간에도 발전을 이뤄낸 것이 틀림없었다. 더 이상은 몸을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온 몸의 기가 쭉 빠진 듯 멍한 기분 속에서 심판 배훈이 민욱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멍하니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확인해보곤 배훈이 양 손을 교차하며 소리쳤다.
“속행 불가! 장현성 선수 승리!”
그 외침과 함께 다시 한 번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장현성! 8연승! 1라운드 4분 12초! 이민욱 선수의 분투에 생각보다는 고전 했습니다만 그의 새로운 일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장현성 선수가 약해졌다기보다는 장 선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천재적인 감각과 경기 운영 능력을 지닌 이민욱 선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우려와 달리 아, 정말 훌륭한 경기 내용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장현성 선수가 당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판단력도 가지고 있고, 또한 국내 여느 선수와 비교해도 모자랄 것 없는 레슬링 실력을 보유하고 있단 것까지 알게 되어 의미 있는 시합이었다 생각합니다! 이민욱 역시 대단한 선수입니다!”
MC 용준과 김대환 해설 위원의 감탄이 터져 나오는 동안 현성이 정말로 생각 외의 데미지에서 당황을 했다는 듯 어색한 웃음과 함께 민욱에게 다가갔다.
“내한테 몬 짓을 한거고?”
“니가 나한테 한 짓에 비하면 양반이지. 자식아.”
그리고 그가 손을 내밀자 민욱이 팀 닥터의 거즈로 코피를 닦아내곤 그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
정타와 유효타를 더 많이 가져간 것은 민욱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리가 풀려버린 것은 그였다. 타고난 것을 이겨낼 수는 없다. 그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는 듯 그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현성의 팔을 번쩍 들어 주었다.
“여러분! 이 놈이 바로 제 소속 선수 입니다! 내가 얘 사장이라구요!”
그리고 민욱이 자신은 져도 진 것이 아니다 소리치자 사람들이 야유를 보냈던 때와 달리 그들을 향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엄연히 제롬 르 밴너와 자말 로우지를 제외하고는 현성을 가장 고전하게 만든 상대가 아니던가?!
“아! 역시 이민욱 선수! 장 선수는 자신의 소속 선수이기 때문에 져도 진 게 아니라 선언 합니다! 역시 빅마우스! 오늘 경기가 은퇴 경기라는 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네! 개인적으로 이민욱 선수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꼭 격투 무대로 다시 복귀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장 선수와는 다른 방식으로 격투계를 빛낼 수 있는 선수임에 틀림 없습니다!”
경기 자체가 날카로운 대립이 있었던 게 아니었던 만큼 경기가 끝난 이후 토네이도 짐과 킬러비 짐의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모두가 현성의 승리를 축하하는 가운데 스크린에서 그를 향해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고 있는 VIP 석의 사키가 비춰졌다.
“오오오오!”
상당한 위기를 보였던 만큼 사키나 이시이 관장도 걱정을 했었지만 역시나 승리를 거둔 그의 모습에 무척이나 감격한 듯 눈가가 촉촉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동안 배훈이 다시 그에게로 다가와 한 번 더 현성의 손을 들었다.
기록적인 8연승! 게다가 아직 1라운드 연속 KO의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더 높은 자리! 타이틀 전을 앞둔 그의 모습에 MC 용준이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세미파이널 경기 장현성 승리 합니다! 승리의 여신 오오츠카 사키의 힘일까요?! 승리를 가져간 데 이어 다음 대회 차기 도전자로 확정됩니다! 이 다음 시합의 귀추를 주목해야 하겠는걸요?”
“네, 그렇습니다! 장충 체육관에서 장현성 선수가 데뷔전을 가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 자리까지 올라 왔습니다! 명실상부한 괴물! 그 자체! 다음엔 또 얼마나 진화된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겠습니다!”
============================ 작품 후기 ============================
2150키바, 약 7권 분량 중 주인공 현성이 여지껏 대사 친 거 보다 김대환 해설 위원 대사가 더 많단 것이 함정.
과연 현성의 진화는 어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