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회 - 괴물
“로드원 FC, 이제 남은 시합은 석현재 선수와 데니스 선수의 미들급 타이틀 매치!”
“그리고 장현성 선수와 이민욱 선수의 미들급 매치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중계를 맡고 있는 MC용준과 김대환 해설위원이 상당히 흥미롭단 얼굴로 평을 이어갔다.
“사실 장현성 선수가 이민욱 선수와의 리매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요. 재미있는 것은 이민욱 선수가 지금 장현성 선수의 에이전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 두 선수 사이가 오묘하네요! 제가 그 당시 시합을 중계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당시 떠오르던 신예였던 이민욱 선수를 잠정적인 은퇴까지 몰고 갔던 것이 일반인 장현성 선수였습니다. 방송 촬영하면서는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정말 묘합니다. 사람 일이란 게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군요!”
많은 사람들이 이 시합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작년 3월 등장한 이후로 현성은 수직 상승을 거듭하고 있었다. K-1의 떠오르는 히어로로 자리매김 했고, 제롬 르 밴너가 직접 자신의 후계자라 지목 할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조금 그에 어울리는 대전 상대를 원하는 게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이민욱 선수가 공백이 너무 길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네, 물론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이민욱 선수는 저력이 있는 선숩니다. 장현성 선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엔 장현성 선수가 감량 때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고 들었거든요. 아무리 리게인 되었다 하더라도 일전에 K-1에서 보여줬던 때만큼 몸의 효율 자체가 회복되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과가 정해진 시합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변수는 항상 있으니까요.”
업셋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걸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보여준 산 증인이 바로 현성 아니던가? 김대환 해설위원의 말에 엠씨 용준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장 선수가 체격이 있다 보니까 베스트 체중이 미들급은 아닌 것 같군요?”
그리고 그가 화제를 현성의 체급으로 돌리자 김대환 해설 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무래도 장 선수의 베스트 체중은 미들급이 아니라 그보다 높은 라이트 헤비나, 헤비급으로 보는 게 옳다 생각 됩니다. 골격 자체가 헤비급인데다 몸 자체의 근육 량이 굉장하다 들었거든요. K-1에서 적은 체중에도 불구하고 밀리지 않는 힘을 보인 이유가 거기에 있을 텐데 근육량이 늘면 감량 때엔 그만큼 독이 됩니다. 안 그래도 올 해가 미들급으로 활동하는 마지막 시기라고 하는데요! 앞으로 장현성 선수가 어떤 행보를 해나갈지 기대가 됩니다!”
기실 모든 투기 종목의 꽃은 헤비급이라 할 수 있었다. 체급은 노력으로도 극복을 해내기가 힘든 부분이었다. 타고나야 가능한 곳! 그리고 동시에 상대적으로 다른 체급에 비해서 감량에 대한 어려움이 덜하고, 기량을 마음 놓고 펼칠 수 있는 장이기도 했다.
물론 선수들에 따라서는 그조차도 감량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헤비급에서의 체중 차이는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헤비급이란 어느 선수든 최소한 상대를 한방에 침묵 시킬 수 있는 한 방을 가지고 있는 체급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현성의 헤비급 진출이 더 기대가 된다는 듯 한 김대환 해설 위원의 말에 MC 용준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건 장현성 선수의 마무리 성공적인 시작을 마무리 하고 새로운 곳으로 도약하는 첫 발걸음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네, 다음 시합이 오늘 있을 타이틀 매치의 승자인데요. 그때가 장 선수의 미들급을 마무리 짓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가 누가 도리 지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기대 만발이네요!”
“그 타이틀도 얻고, 월드 그랑프리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군요! 장 선수의 선전을 기원해 봅니다!”
그러는 동안 어수선하던 무대가 정리 되기 시작했다. 곧 장내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들고 케이지 중앙에 서자 사람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장현성! 장현성!”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사람들의 응원은 현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도 그런 것이 컨벤션 호텔 이벤트 홀에 모여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격투기 팬들이라기보다는 일반인들에 가까웠고, 그들에겐 현성이 가장 유명한 선수였으니까!
그 엄청난 응원에 백 스테이지에서 기다리고 있던 민욱이 인생무상이란 말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 지었다.
“작년만 해도… 이거랑은 반대였었는데.”
규모는 작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순 매니아들 가운데 그의 팬들이 더 많이 자리를 잡았었고, 그 당시의 응원 분위기는 그야말로 일방적이었다. 허나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쩜 그 일년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서로가 다른 길을 걸어간 차이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구만.”
확실히 민욱도 승리 한다곤 생각하지 못하는 듯 그저 옅은 미소만 띨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광철과 키드가 정신 차리라는 듯 등판을 찰싹 두들기자 민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만 좀 쳐!”
짜증을 내는 그의 모습에 백 스테이지에서 같이 대기하고 있던 현성이 힐끔 그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이제 경기가 곧 시작이 되고, 결과가 나오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 생각으로 현성이 민욱을 바라보자 민욱이 그의 시선을 느끼곤 힐끔 고개를 돌렸다.
무어라 이야기 하지 않아도 건투하길 바란단 눈빛에 민욱이 평소처럼 입술을 이죽이거나 비웃지도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만큼은 더 없이 진지한 민욱이었다. 1년 반! 그 시간동안 언더독이 되어 버린 것은 자신이었지만 그게 당연한 일었다. 1년 반 동안 목숨 걸고 이만큼 달려온 녀석과 마지막 아쉬움 때문에 시합을 준비한 그와의 격차는 좁혀질 수가 없을 것이다.
“이민욱 선수! 입장 해주세요!”
하지만 쉽게는 당하지 않는다. 그때처럼 우습게 패배하진 않을 것이다. 그 생각을 가지고 민욱이 먼저 무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로써는 무척이나 오랜만의 일이었다. 음악이 흘러 나오고, 무대로 나서면 사람들의 환호가 들려왔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우우우!”
터져 나오는 야유 속에서 민욱이 발끈하는 기분을 느끼며 동시에 그 삐딱이 근성이 나오던지 오히려 더 여유롭게 양 손을 들어 보였다.
“더 질러봐! 더!”
그 배짱 넘치는 모습에 사람들이 더욱 더 야유를 쏟아내자 민욱이 씩 웃으며 어꺠를 까딱까딱 해보 았다.
“아, 이민욱 선수 등장에 사람들이 야유를 보냅니다!”
“아무래도 이민욱 선수는 악당일 수밖에 없거든요. 사실 에이전트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지만 어디 그런 거 까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액면상 민욱은 현성이 데뷔하기 전에 그를 괴롭혔던 악당 파이터라는 느낌이 강했고, 이 리벤지 역시도 그의 억지란 소문이 들 정도였다. 과거 선수시절부터 악동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니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온 사방이 적인 가운데 민욱이 부담감보다는 역시나 상대가 세면 셀수록 더 집중하게 되는 삐딱이 근성을 내세우며 링 위에 올라 여유 있는 얼굴로 다시 두 팔을 들었다.
“하지만 역시 이민욱은 이민욱이네요! 전혀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야유를 즐기는 듯 하는데요? 하핫!”
“그것도 그것이지만 이민욱 선수 몸을 상당히 잘 만들어 온 거 같습니다! 일본에서 훈련을 했다고 들었는데 몸이 태닝이 되어 그런가요? 상당히 근육의 데피니션이 선명하고 벌크도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이번 시합에서 사고 한 번 치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 듭니다!”
하얗고 잘 생긴 파이터에서 까만 피부의 쾌남으로 돌아온 민욱은 확실히 현성보다는 감량의 고통이 덜했다. 그리고 그의 몸 만들기 역시 성공적인 결과를 보인 것 같았다. 그 모습에 김대환 해설 위원이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자 이내 MC 용준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그렇지만 사실상 이민욱 선수가 그라운드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고, 스탠딩에서 장 선수에게 답이 있을까요?”
“저도 그 부분을 예측 할 수 없단 점에서 기대가 됩니다. 장 선수가 압도적인 스탠딩 게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민욱 선수가 정확도와 스킬이 정말 대단했거든요! 그 부분을 빌린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으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일단 전성기 속도만 놓고 본다면 이민욱 선수는 경량급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교한 타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마 포인트 싸움으로 들어간다면 승리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꼭 장현성 선수가 자말 로우지 선수가 된 것 같은 느낌이네요?”
“하핫! 네! 아무래도 장선수의 파괴력 자체가 체급을 훨씬 뛰어넘는 상황이다 보니 그 부분에 기대는 것이 승리를 위한 최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간단히 MC 용준과 김대환 해설 위원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웅성이는 실내에서 다시 장내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댔다.
“…시작하나.”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야유에 오히려 제스처를 취해보며 즐기고 있던 민욱이 사뭇 긴장한 얼굴로 뺨을 두드렸다. 이제 곧 녀석이 온다.
“한국 격투기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일본 열도를 놀라게 한 괴물 파이터! 장현성 선숩니다!”
힘이 가득 실린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럭스 아테나의 전주곡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미친 듯 환호를 지르자 민욱이 ‘이런 기분이었나…’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1년 반 전. 현성이 그와의 시합에서 마주했을 기분을 느끼며보며 민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여유 있게 몸을 돌렸다. 이제 곧 그가 입장할 것이다.
웅장하게 깔린 음악 속에서 매번 그렇다 시피 현성의 전 경기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앤드류 나카하라, 그리고 자말 로우지와의 시합! 특별히 편집된 영상이 흘러나오며 그의 압도적인 강함이 선을 보이자 사람들이 더욱 더 크게 함성을 질렀다. 케이지 안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욱이 과연 특별대우는 특별대우다 싶었던지 사뭇 긴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말 로우지를 상대로 물러섬 없이 난타전도 불사하는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과연 그를 쓰러뜨릴 수는 있을까? 그 의문이 민욱이 머리를 채웠다.
“…어서 와라. 어서.”
대답은 그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두 주먹이 내려줄 것이다. 들뜨고 긴장된 마음으로 민욱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천천히 현성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새까만 트리코스타의 몬스터 티셔츠를 입고 모스을 보인 그의 모습에 민욱에겐 야유를 하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그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 점차 빨라지는 음악. 그 소리가 꼭 장송곡 같다 생각하며 민욱이 다가오고 있는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받아서 걸음을 옮기는 현성의 모습은 평소에 마주하던 모습과는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좀처럼 그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차분하게 정리하는 듯 한 모습!
‘상대를 어떻게 요리 할까?’
마치 그렇게 생각하는 듯 보이는 모습에 민욱이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점차 격렬해지는 음악 속에서 현성이 모두와 함께 케이지에 당도하자 키드와 광철이 후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이내 장난스럽게 으르렁 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현성이 옅은 미소로 인사를 하곤 케이지로 입장했다. 입고 있던 까만 셔츠를 벗자마자 리게인에 성공한, 자말 전과 다를 바 없는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민욱이 긴장한 듯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사이 사람들의 환호가 한 번 더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환호 속에서 현성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티셔츠를 김관수 관장에게 넘기고 서자 심판 배훈이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하며 손짓했다. 드디어 임박했다.
-꿀꺽.
저도 모르게 목구멍 너머로 마른 침을 삼키며 민욱이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도 눈을 피하고 있던 현성이 그제야 민욱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순박한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고요함 속에서 강인한 기운이 흘러 넘치기 시작했다. 자말 로우지를 무너뜨렸던 그 기세를 온 몸으로 느끼며 민욱이 찌릿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씨익…
그리고 그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는 동안 심판 배훈이 룰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이번에는 현성이 얼마나 빠른 시간에 민욱을 쓰러뜨릴까 이야기 하는 동안 MC 용준이 소리쳤다.
“세미 파이널 매치! 장현성 선수 대 이민욱 선수의 리벤지! 이제 드디어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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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니 졸리고 피로하군요. 후후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