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회 - 괴물
“현성아!”
오랜만에 밟는 한국 땅도 한국 땅이었지만 그보다 반가운 것은 역시나 김관수 관장이었다.
“관장님!”
아직까지 안와골절의 흔적은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는 터라 성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무척이나 좋아진 그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깁스를 한 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슥! 잘 했다! 잘 했어!”
그도 수술을 마치고 이제는 혼자서 병원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던 터라 김관수 관장이 병문안을 온 현성을 벗은 발로 맞이했다. 그 모습에 현성이 놀라 달려와선 다시 그를 침대로 앉혔다.
“에이, 다 왔는데 관장님!”
“그래도 좀 이래줘야 리액션이 산다 아이가?”
유쾌한 얼굴로 웃음 짓는 그의 모습에 현성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에 김관수 관장도 오랜만에 보는 제자의 모습에 너무 기분이 좋았던지 귀여운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를 많이 혼낼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김관수 관장이 그를 나무라거나 혼을 내지는 않은 터라 이내 현성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김관수 관장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니 혜주한테 혼 많이 났을 거니까 별 소리 안 하는기다.”
“아… 예.”
그 말에 현성이 쓴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며 함께 돌아온 혜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혜주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에 딱지 내려앉도록 얘기 해놨어요.”
“예, 밤새도록…”
역시나 현성을 잡는 건 혜주밖에 없다고, 그 말에 김관수 관장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밤새도록… 잠 안 자고 딴 거 한 거는 아이고?”
이내 짓궂은 눈빛으로 그가 야릇한 물음을 던지자 혜주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관장님!”
“허허, 맞다. 병원이었제?”
먹히고 먹히는 관계라는 것이 그런 것일까? 능글맞은 중년의 모습에 그녀가 입술을 깨물고 찌릿 눈빛을 보내다 웃음 짓자 현성이 즐거운 마음으로 덩달아 웃음 지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도랑오고 나니 이제야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은 것 같단 기분이 들었다. 그런 그를 보며 김관수 관장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인사는 이쯤하면 충분하다 싶었던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아무튼 짐 상태는 어떤데? 민욱이는 인제 준비 드갔다 카는데 우리도 준비를 해야지.”
아무리 그가 공백이 길다지만 쉽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여전히 민욱의 폼은 죽지 않았고, 과거 전적을 미뤄 보았을 때에 현성 같은 스타일에는 오히려 천적에 가까웠다. 게다가 민욱은 여지껏 현성이 상대해왔던 선수들처럼 KO를 노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지능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까지 현성이 만나온 선수들 가운데… 그를 가장 잘 아는 상대이기도 했고.
“아직 얼굴 쪽은 한 한달 정도 더 있어야 된다 카는데 손가락은 빠르면 2주 안으로 다 나을 수 있다 카더라구요.”
현성 역시 민욱과의 리매치를 쉽게 보는 것은 아닌지 다소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쯤 하면 이렇게 회복 속도 빠르고 튼튼한 몸도 복이었다. 안와골절이 생각보다 시간을 잡아먹긴 했지만 그 정도 상황이라면 다른 체력 훈련을 하는데엔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시합 자체가 로드원 FC에서 86킬로 미들급 계약 체중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 현성은 다시 감량을 진행해야만 했다.
그의 대답에 김관수 관장이 흠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면 그 동안… 무리는 하지 말고 기본적인 체력 훈련이랑 감량 준비를 좀 해야겠다.”
“예, 관장님. 지금 제가… 10킬로 빼야 되네요.”
아시아 챔피언 결정전 당시엔 95킬로그램이었지만 병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살이 1킬로 불었다. 물론 그 이상 체중이 늘었었지만 병원 내에서도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몸을 관리해왔던 현성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체중 관리를 해야겠지만 10킬로그램이라는 숫자는 상당히 버겁게 느껴졌던지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12월 31일 이후로 이제 더 이상 체중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그동안은 증량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어려울 게 없었지만 이제 근육질 몸으로 감량을 해야만 한다. 지방질이 낀 몸은 커팅을 통해서 감량도 쉽다만 현성 같이 근육의 비중이 높은 몸은 체중을 감량하는 일도 쉽지가 않았으니까.
“음, 지금부터 계속 준비를 해야지. 올해까지만 미들급 하고 내년부터는 체급을 올리자, 현성아.”
아무래도 그의 골격 자체가 보통 사람들을 훨씬 능가하다 보니 앞으로는 더욱 더 감량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었다. 증량은 성공적이었다만 체급의 상향을 타이밍을 언제로 하는 것이 좋은가 또한 관건이었다.
“아… 내년부터는 그카면…?”
“국내는 헤비급이지. 93킬로. 미국 기준으로 함 라이트 헤비급이고.”
그 말에 현성이 지금보다 3킬로만 더 빼면 된다 생각이 들었던지 다소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올해가 아직 8개월이나 남아 있고, 로드원과도 최소 2경기를 더 치러야 하기 때문에 체중 감량에 대한 압박은 여전히 남아 있긴 했다만 그 시간이 그리 길 것 같진 않았다.
왜냐하면 목표라는 것이 생기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86킬로라는 어려운 목표지점이 생기긴 했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 또 맞춰가는 보람이 있었다.
“캐도 당일에는 제가 좀 더 유리하겠네예.”
과정이야 힘들지만 그게 당일엔 다시 그에겐 플러스 요인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니 참을 수 있다는 듯 한 그의 말에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현성아. 해줄 말이 있다.”
자말 전 이후로 다른 때와 달리 오래 휴식을 취했던 터라 현성이 더욱 더 의지를 불태우는 동안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에 현성이 귀를 쫑긋 세우고 그를 바라보자 그가 후후 웃으며 말했다.
“내 말이데이. 정원장님이랑… 흠흠! 식 올리기로 했다.”
“예? 진짜요?!”
그 순간 병실이 뒤집어 졌다.
“정말요?!”
현성 뿐 아니라 잠자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혜주도 깜짝 놀라 소리지르자 김관수 관장이 다소 어색한 얼굴로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뭐… 그래 됐다.”
“와… 관장님… 아무 것도 안 하시는 척 하시다…”
현성이 너무 놀란 듯 멍하니 이야기를 하자 김관수 관장이 크게 움찔하며 헛기침을 계속했다. 그러다 현성이 몹시 좋은 소식을 들어 기분이 좋은 듯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진짜 축하드려요, 관장님!”
“그러게요? 저 없는 사이에 하신 거에요?!”
“아, 아니 뭐… 우리가 나이도 있고 하니까…”
놀란 두 사람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부끄러웠던지 머리를 긁적이자 현성이 자신의 일처럼 기쁘고 들뜬 얼굴로 웃음 지었다. 무뚝뚝하던 그의 그런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더 어색해진 듯 허허 웃음 짓는 동안 그가 자신도 결혼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던지 혜주의 손을 꼭 잡았다.
“일단은 내가 가야지 너거도 가지 않겠나?”
“예, 관장님!”
그 말에 현성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혜주가 발그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진짜 놀랬어요! 어쩜… 이렇게…”
“아, 참! 창피하구로!”
어색해 하는 김관수 관장의 모습에 두 사람이 큭큭 웃음 짓는 동안 그가 다시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암튼 그거는! 10월에 현성이 타이틀 전 끝내면 할라고 준비 중이다! 알긋나?”
“아, 가을에 하시게요?”
아무 생각 없이 대답을 했다 순간 현성이 멈칫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타이틀전이요?”
놀란 그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결혼 소식보다도 더 기쁜 소식이라는 듯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원래는 민욱이랑 시합 하는 대신에 니캉 데니스랑 시합 잡을라 캤다. 니 전적도 좋고 이제는… 충분히 그럴 시기가 안 됐나 싶어가 정문호 대표가 그 생각을 많이 했다 카데.”
“예, 예…”
“근데 민욱이랑 둘이 그래 시합 하고 싶어 하니까네… 일단은 현재랑 데니스가 먼저 타이틀 전 치르고. 그 다음에 니랑 첫 번째 방어전 치르기로 했다.”
그 말에 현성이 가슴이 터질 듯 요동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타이틀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던가?
챔피언이라는 말이었다! 현재 로드원 FC에서는 미들급 챔피언이 가장 높은 체급이었다. 물론 헤비급 선수도 있지만 디비전 자체가 활발하지 않았고, 아직까지 챔피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타이틀 전은 정말 생각도 하지 못한 듯 현성이 얼어붙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혜주가 덩달아 신이 난 듯 물음을 던졌다.
“그카면 현성이 챔피언 될 수 있는 거에요?”
“그래! 한국 미들급 챔피언 될 수 있다!”
들뜬 김관수 관장의 목소리에 현성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다시 물음을 던졌다.
“지, 진짜로요…?”
어찌나 놀랐던지 말이 절로 더듬어질 정도였다. 그 말에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현성의 타이틀 샷은 어쩜 당연한 수순인지도 몰랐다. 현재 국내외에서 현성 정도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는 드물었다. 아니, 국내의 격투기 역사를 통틀어도 이 정도로 좋은 전적을 가진 선수는 찾기 힘들었다. 7연속 1라운드 KO승의 주인공이 아니던가? 게다가 밴너와 자말 로우지라는 거의 무제한급에 가까운 선수 둘을 이기기도 했다.
사실상 타이틀 샷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근데 그것도 민욱이랑 붙어가 지면 말짱 꽝이데이.”
그래서 정문호 대표가 두 사람의 시합을 그리 반대했을 것이다. 순수한 열정과 열의만으로 시합을 결정하기엔 이미 현성이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물론 김관수 관장 역시 빠른 타이틀 샷이 훨씬 더 유리하단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현성의 의사를 존중한 선택이었다.
“…타이틀 샷…”
계속 그 말이 맴돌던지 현성이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어라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K-1 월드 그랑프리에 진출하긴 했다만 그것과는 또 느낌이 달랐다. 월드 그랑프리가 토너먼트이다 보니 당연히 그랑프리 우승까진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아직 파이널 16강이 9월에 그를 기다리고 있고, 연말에는 결승까지 치러질 예정이니까.
그 사이에 놓여진 로드원의 타이틀 샷.
“…저 체급 올리면…?”
“아마 이게 국내선 마지막 타이틀 샷 되지 않겠나 싶다.”
물론 현성이 체급을 올리면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분명히 벨트를 제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미들급 챔피언은 국내 최강자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현성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 말에 현성이 더 의욕이 솟아오르는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 챔피언이 되고, K-1의 챔피언도 달게 된다면 이제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미소와 함께 김관수 관장과 혜주를 돌아보자 두 사람이 후후 웃음 지었다.
“결혼식 선물. 번쩍번쩍 하는 걸로 가지고 오그라.”
“예, 관장님!”
기운 넘치는 그의 대답에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음 짓는 동안 혜주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현성이, 이제 하늘로 날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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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