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회 - 괴물
“밖에 나와도 되는 거가…?”
“병원에서 허락 했으니까 괜찮아예! 안에만 있기도 지루 하고…”
수술 부위가 얼굴이다 보니 외출을 삼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혜주가 왔는데 병실에만 있을 순 없었던지 현성이 오랜만에 밖으로 나섰다. 무척이나 들떠 보이는 그의 얼굴에 혜주가 후후 웃음과 함께 그의 팔을 꼭 끌 어 안았다.
“바보 같이… 왜 그래 많이 맞아서…”
아직도 그게 마음에 걸렸던지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그리 이야기 하자 현성이 미안한 듯 눈치를 살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자꾸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요, 누나.”
“처음에 한 거는 참 잘 했다. 그래 이길 줄 알았는데, 바보야!”
자말 또한 나카하라와 같이 이겨줄 줄 알았지만 사실 그렇진 못했다. 상대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 김관수 관장의 설명을 들었다만 그래도 마음이 쓰이고 걱정이 되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혜주의 손길에 현성이 후후 웃으며 기분이 좋은 듯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도시락을 싸왔던 사키는 스케줄 때문인지 금방 도시락을 들고 돌아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을 하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혜주와 그녀의 사이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가 잘못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다 얘기 했고, 혜주가 그걸 알게 되면 무척이나 걱정하고 불편해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현성이 안도하며 말했다.
“우리 같이 뭐 하까요, 누나?”
“뭐 하긴! 니 쉬어야지! 내 니 간호하러 온 건데?”
“안 돼요. 전에도 잠만 잔다고 제대로 못 보냈는데.”
이번에도 그럴 수 없다는 듯 그가 고개를 흔들며 오랜만에 애교를 보이자 혜주가 너무나 기분이 좋은지 저도 모르게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이렇게 그의 곁에서 함께 숨을 쉬고 있단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하고 행복해져 왔다. 그게 정말 사랑이란 것 같다 생각하며 그녀가 말했다.
“니 일본 많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일어는 이제 좀 할 줄 아나?”
“…안 그캐도 좀 배워야겠다… 싶긴 해요. 그리고 내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잖아요? 그래서 한국 돌아가면 그것도 좀 공부 해볼까 싶어가…”
그 말에 현성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2년이란 시간을 허비했고, 그에게 돌아갈 자리는 학교가 아니라 사회였다. 그러다 보니 아직까지도 그의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이다. 그 말에 혜주가 ‘아…’ 하고 잠깐 멈칫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이렇게 세계적인 파이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현성이지만 그녀의 앞에 있는 그는 처음 나났을 때와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그건 그의 직업일 뿐, 그가 그녀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은 그렇게나 한결 같았으니까.
“나중에 누나 친구들 놀릴까봐.”
오랜만에 입은 사복! 그리고 혜주! 그 사실로 들뜬 현성이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가지 않는 얼굴로 이야기 하자 혜주가 다시 흐뭇한 웃음을 터뜨렸다.
“뭐, 중졸이 어때서! 그래도 내가 니보다 학력은 조금 낫네!”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단 그녀의 미소에 현성이 덩달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 다 가지고 있는 거니까… 따긴 따야 할 거 같아예.”
잃어버린 2년. 그 생각은 지금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이 그녀의 마음을 후벼 팠다. 금방 글썽이는 눈으로 혜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현성이 후후 웃으며 가녀린 혜주의 어깨를 꼭 잡았다.
“내 맨날 고생만 시켜가 미안해요. 관장님 간호 한다고 많이 힘들었죠…?”
“뭐, 간호사들이 다 하지 내가 할 거 있나? 나는 그냥 가서 관장님 말 상대 밖에 안 해드렸다. 그리고 정원장님 와서 계속 같이 있으시니까 진짜 더 할 거 없었고!”
그와 떨어져 있을 때 느끼던 불안감들. 그리고 뭇 사람들의 손가락질들. 두렵고 싫은 것들이 그와 함께 있을 때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것은 떠오르지 않고, 오히려 마음은 행복하기 그지없다. 마치 따뜻한 온수에 몸을 담근 것 마냥 기분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끼며 혜주가 그의 허리를 꼭 안았다. 그 모습에 현성이 후후 미소 띤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근데 누나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진 거 같아요…?”
“뭐, 서울이랑 대구랑 왔다 갔다 하니까 바빠서 그렇다. 아님 오늘 맛있는 거 좀 사주던지!”
새초롬하고, 도도하게! 처음 보였던 그 모습처럼 혜주가 새침하게 이야길 꺼내자 현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맛있는 거부터 먹으로 가까요?”
들뜬 그의 물음에 혜주가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해는 중천에 걸려 있었다만 도쿄의 거리는 무척이나 활발했다. 오가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현성과 혜주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돌아보자 이내 많은 사람들이 현성을 알아보곤 여기저기서 웅성이기 시작했다.
“사키노 오토코!”
그리고 흡사 만화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꺅 꺅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현성이 조금 당황한 듯 멈칫하고 말았다.
“잔 상!”
그의 이름이 발음하기가 어려웠던지 성인 장을 이름처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현성이 자신도 이렇게 사람들이 알아봐줄 줄은 몰랐다는 듯 당황한 표정으로 꾸벅 인사를 하자 혜주가 후후 웃으며 말했다.
“니… 이제 진짜 인기 많은데 이런 거 익숙해져야지.”
“그런 거 모르겠어요, 누나. 그냥… 나는 내 일만 하는 건데…”
이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고, 바란 일도 아니라는 듯 현성이 난처한 웃음을 짓자 그 여전한 모습에 혜주가 안도하는 듯 그를 꼭 끌어 안았다.
“글고 누나랑 같이 있는데 방해 받기 싫으니까.”
이내 현성이 혜주가 들으라 이야기 한 건 아닌지 혼자말로 중얼거리자 혜주가 더욱 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일부러 한 말이라면 정말 그는 여자의 마음을 잘 살피는 선수겠지만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혜주의 손을 잡고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생활하며 대강 배운 짧은 일어로 ‘스미마셍!’ 하고 인사 하며 도망치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순진하기 그지 없었으니까!
“아, 여기에요!”
그러다 현성이 류이치가 소개 해줬던 한정식 식당을 발견하고는 그 안으로 도망치듯이 들어가 환한 웃음을 짓자 혜주가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누나…?”
왠지 모르게 글썽이는 그녀의 눈빛에 현성이 왜 그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음을 던지자 혜주가 이내 눈가를 손으로 슥슥 닦으며 말했다.
“기특하다! 우리 현성이!”
그리고 그녀가 자신보다 한참 큰 현성의 머리를 까치발을 들고 쓰다듬자 현성이 뭐가 그리 좋은지 아영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칭찬 앞에서는 자말 로우지를 쓰러뜨린 무시무시한 파이터도 아이가 되고 말았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장 선수!”
그 사이에 식당을 운영하는 재일 교포 출신 주인이 그를 알아보고 박수를 짝 치며 반기자 현성이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심까.”
“경기 정말 잘 봤네! 정말 대단했어!”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에 현성이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가게 안에 있던 종업원들과 손님들도 그를 알아보고는 또 다시 술렁이는 분위기가 되자 현성이 재빨리 물음을 던졌다.
“저… 저희 방에서 고기 좀 먹을 수 있심까?”
그 물음에 주인이 들뜬 얼굴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방으로 함께 안내를 하자 현성의 손을 잡고 혜주가 방 안으로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 쪽은…?”
“아, 제 여자 친구…”
아직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모습에 주인이 ‘오!’ 하고 다시 감탄을 터뜨렸다.
“대단한 미인이네! 사키 양 못지 않은 걸?”
그 말에 현성이 다시 움찔하며 혜주를 바라보았지만 혜주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가보다 제가 좀 더 섹시한 스타일이잖아요!”
대신 당차게 미소로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과 주인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인이 인정한다는 듯 다시 엄지를 치켜들자 그 리액션이 재미있었던지 혜주가 입을 가린 채 웃음 지었다.
“우리 가게에 아시아 챔피언이 왔는데 오늘 쏠테니까 마음껏 드시고 가!”
“아, 아입니더! 안 그러셔도…!”
“에이! 이 먼 타지 와서 우리가 얼마나 그 경기 보고 기뻐했는지 아는가? 사양 말고 받아주게!”
화통한 주인의 말에 현성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힐끔 혜주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일 년에 억을 넘게 버는 유명한 선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서툴기 짝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사인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어 드리면 되잖아!”
“오, 그렇지!”
“그카고 남은 시합 다 우승해서 챔피언 되면 얼마나 광고 되시겠노?”
“이야! 역시 이 아가씨가 내조가 뭔지를 아는구만! 그래, 그거야!”
그 생각은 주인도 하지 못했다는 듯 그가 다시 엄지를 치켜들자 혜주가 또 다시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성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 카면… 사장님 일단 고기… 그.. 한 3인분만 주시면…”
혜주가 좋으면 뭐든 좋다만 이런 게 익숙하지 않은지 소심한 그의 부탁에 주인이 ‘어허!’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다치기도 많이 다쳤는데 고기 많이 먹고 빨리 나아야지! 걱정 말고 팍팍 시켜!”
그리고 그가 밖으로 나가 ‘최고급 와규로 가지고 와!’ 하고 소리치자 현성이 혜주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와규…?”
“와규 뭔지 모르나?”
“와규가… 뭐에요…? 와규…?”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지 현성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혜주가 푸힛 웃음을 터뜨렸다.
“…와규라는 고기가 있어요…?”
그게 일본 고베 지역에서 나는 명품 소고기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현성이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혜주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멍해있는 모습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사랑스러운 얼굴로 혜주가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고 그가 핸드폰에 슬그머니 손을 가져가자 혜주가 히힛 웃으며 그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와규…?”
그 모습에 현성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떨어지지 않는다 싶었던지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짓자 혜주가 눈물까지 보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누나, 그게 뭐에요…? 이상한… 뭐, 일본어 같은 건가…?”
속닥속닥 물음을 던지는 그의 모습에 혜주가 사진 사건부터 너무나도 귀여운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 포옹에 현성이 와규의 정체는 아직까지 알 수 없지만 기분이 무척 좋은 듯 미소 짓자 혜주가 후후 웃음 지으며 말했다.
“와규라고 돼지랑 소랑 중간 정도 되는… 일본에서만 나오는 특수한 고기 있다. 엄~청 비싼 건데.”
“예? 돼지랑 소랑?”
믿을 수 없단 얼굴로 현성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짐짓 진지한 얼굴로 혜주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물론 그냥 소고기란 건 알고 있지만 그를 속이고 싶었던지 그녀의 진지한 얼굴에 현성이 그게 되는지 모르겠단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다 진지하게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 돼지 코 있고 소뿔도 있어요…?”
그 말에 혜주가 다시 한 번 자지러지며 그를 꼭 끌어 안자 숯불을 넣으러 들어온 식당 주인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와규는 날개도 달려 있지!”
“예? 에이, 사장님…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건 말이 안 된다는 표정의 현성을 보며 식당 주인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응, 진짜다. 일본에서도 진짜 중요한 사람들만 먹을 수 있단다.”
“에이, 내 빙시 아닙니더!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안 나오는데!”
그런 건 속지 않겠다는 듯 현성이 고개를 흔들며 소리치자 혜주와 식당 주인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웃음에 현성이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싶었던지 금방 혜주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슥 하고 빼내서 와규를 검색해보고는 속지 않아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말을 이겼을 때보다 당당한 모습에 혜주가 웃다가 눈물까지 나오는지 즐거워 하자 현성이 또 다시 덩달아 웃음 지었다.
“근데… 그 말 오랜만에 듣는 거 같네.”
“어떤 거예?”
그러다 그녀가 그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얘기 하자 현성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내 빙시 아입니더… 하는 거.”
그 말에 현성이 자신도 웃음이 먼저 나왔던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했던 건 그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1년 반이 지났고, 지금은 그게 전혀 다른 의미가 되지 않았던가? 시간이 지났고, 특별했던 것들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한 것들은 특별한 채로 남아 있다. 익숙해져 잊기 쉬운 것들을 다시 떠올리며 그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녀의 손을 덮을 듯 이렇게 꼭 잡아 주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정말로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 생각으로 혜주가 미소와 함께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근데 와규가 그렇게 나와 있는 거는 일본 정부의 음모라서 그런 거야. 이게 외부로 노출이 되면 안 되니까 일부러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안 그렇다니까…?”
그 순간에도 거짓말을 태연하게 이어가는 식당 주인의 모습에 현성과 혜주가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사장님…!”
너무 한 거 아니냐는 현성의 항의 섞인 목소리에 사장님이 다시 한 번 진지한 얼굴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혜주가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리고 현성이 설마 진짜인가 하고 순간 혹한 듯 그를 바라보자 그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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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요미
헐 그것이 알고 싶다 완전 무섭네여. 해외여행도 겁나서 함부로 못 갈 듯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