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회 - 괴물
“안와골절이요…?”
“안와골절 뿐 아닙니다. 오른손에 이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새끼 손가락에 금이 간 것 같은데 빨리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경기는 승리로 마무리 되었지만 이후 진행된 닥터 체크에서 나온 그의 상태는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나 자말의 펀치를 얼굴로 버티는 것은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현성이 얼굴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이야기를 한 것을 거슬러 올라가니 눈 아래의 뼈가 꺼지는 골절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고 견디며 이긴 터라, 그 얘길 듣자마자 민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 자식이! 안와골절인데 노가드를 했어?!”
그리고 그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넋이 빠진 듯 멍한 얼굴로 앉아 있던 현성의 등을 찰싹 소리가 나게 치자 현성이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됐고! 빨리 병원으로 가자! 대체 왜 그렇게 무식하게 싸웠냐, 이 무식아! 안와골절이라잖아! 오른쪽 새끼손가락도 이상이 갔고!”
“안와골절…?”
“그래, 임마! 안 그래도 못 생긴 얼굴 더 망가지기 전에 서둘러!”
원래는 닥터 체크 이후 시상식이 있겠지만 현재 현성의 상태는 그런 것들을 진행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워낙에 붓기가 심하다 보니 제대로 입을 떼기 조차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 민욱과 알렉세이 코치가 승리의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없이 그를 부축하자 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와골절도 골절이지만 지금 현성의 몸은 혼자서 거동하기가 불편 할 정도로 힘이 없었다. 자말과의 싸움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듯 휘청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민욱이 입술을 잘끈 깨물자 현성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담 시합 전까진 다 나을끼다.”
“입 닥치고 걷기나 해! 이 미친 놈아!”
이 와중에도 민욱과의 리매치를 생각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정말 우직스러움을 넘어서서 멍청해보일 지경이었다. 영리하게, 그리고 유조리 있게! 인생을 즐기는 민욱과는 정 반대인 모습. 요령 따위는 모르니 이렇게 싸움도 고생을 한다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결과엔 도무지 이견을 달 수가 없었다.
“하여튼 멍청하게 거기서 왜 뛰어 들어가? 새꺄, 그냥 포인트만 쌓아두고 뒤로 빠지면서 적당히 끊어주기만 해도 이기는데 꼴이 이게 뭐야? 이게 이긴 놈이냐?!”
화가 나는 이유가 뭔지 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이런 마음 가져본 일 없는 민욱이 괜시리 울컥하는 기분을 느끼며 그것을 감추기 위해 툴툴 거리자 멍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던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맞다… 혜주 누나가 보면 욕 엄청 하겠다.”
“아, 진짜! 넌 머리에 뭐가 들었냐!”
“내 머리 쓰고 살 사람은 못 되가 그카는 갑다.”
갑갑하단 민욱의 말에 그가 잘 뜨여지지 않는 두 눈으로 웃으며 대답하자 민욱이 다시 또 속이 울컥하고 갑갑한 기분을 느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암튼 닥치고 걷기나 해! 일단 수상은 너 대신에 키드가 할 거야. 부탁 해놨으니까 걱정 하지마!”
“응, 그래. 고맙다.”
“고맙긴 새꺄! 진짜 너는 정말…”
민욱이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리는 동안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알렉세이 코치가 ‘음?’ 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든 자리에는 언제 왔는지 몰라도 숨을 헐떡이며 스미레와 함께 동행한 사키가 그의 앞에 우두커니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어오른 눈 때문에 그녀의 모습에 잘 보이지 않았던지 현성이 누군가 하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사키가 승리하긴 했지만 부상이 심해보이는 모습에 울먹이며 그 앞으로 다가왔다.
“현성!”
그리고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현성이 사키인 것을 알고 그 모습을 하고서 환하게 웃음 지어 보였다.
“약속 지킸슴다.”
요령도 기술도 없는 투박한 남자의 말에 스미레까지 감동한 듯 입술을 앙 다물고 울먹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오오츠카 사키를 승리의 여신으로 만들어 주겠단 그 말을 그는 온 몸으로 지켜냈다. 물론 그것이 그의 미래와도 관련이 있으니 당연히 승리를 위해서 노력을 했을 테지만… 그리 엉망이 된 얼굴을 하고서도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니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지독스럽게 아파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도 진심으로 이렇게 웃음 지을 수 있단 것!
그 모습에 스미레가 왜 사키가 이 남자에게 반해버린 것인지 알 것 같다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는 동안 사키가 말없이 그의 앞에 섰다. 신고 있던 힐도 벗어 던지고 달려왔던지 머리 하나는 차이가 나는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그를 올려 보자 현성이 수줍은 듯 머리를 긁적여 보였다. 민욱과 알렉세이 코치가 별 다른 말 없이 그저 그가 쓰러지지 않게 곁을 지켜주며 힐끔 고개를 돌리는 동안 사키가 그의 몸을 꼭 끌어 안았다.
“아, 아… 사키 씨…! 이카면…!”
당황한 듯 현성이 움찔하며 소리치자 사키가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요…!”
12살 데뷔를 하면서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온 그녀. 그러나 남아 있는 결과물은 초라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사키를 위해서 이토록 노력해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욱 더 커지고 커진 것을 느끼며 그녀가 그를 안고 눈물 흘리자 민욱도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한 채 현성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안 이를 테니까 괜찮아, 자식아.”
그 말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금이 가고 부러진 두 손으로 사키의 등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행여나 그녀가 기분나빠 할까봐 계란 하나를 쥔 것처럼 조심스럽게 움켜쥔 손이 무척이나 배려심 있다 느끼며 스미레가 덩달아 울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에 입술을 잘근잘끈 깨물었다.
“괜찮아예.”
그리고 그가 정말로 모든 것들이 다 끝이 났다는 듯 부어오른 눈을 감고 사키의 작고 여린 등을 다독였다.
“나 때문에…!”
더욱 더 능숙해진 한국어로 사키가 울음 섞인 목소리를 내자 현성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덕분에 이깄심다. 진짜.”
정말 사키의 일이 있지 않았다면 어쩜 자말의 펀치를 버티지 못했을 지도 몰랐다. 진심이 담긴 그의 목소리에 사키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꾸민 얼굴이 눈물에 번져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였다. 부어오른 눈 탓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게 참 예쁘다 생각하며 현성이 그녀의 눈가에 묻어난 눈물을 떨리는 엄지로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팬더 되는데…”
어색한 그의 말에 사키가 울다가 다시 웃음이 나왔던지 눈가를 슥슥 문지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또 울먹이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한 번 더 그녀를 안고 등을 다독였다.
“괜찮아예. 다 잘 될끼니다.”
“…고마워요. 정말.”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다른 무수히 많은 말들보다도 사키가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말. 그 말에 현성이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수덕하기 그지없는 그 웃음에 사키가 아무리 이성적이 되려 해도 그럴 수 없다는 듯 뒷꿈치를 들어 올렸다.
-쪽.
그리고 그의 입술에 닿은 그녀의 입술에 순간 현성이 자말에게 맞았을 때보다 더 놀란 듯 움찔하고 뒤로 흔들리자 민욱과 알렉세이 코치, 그리고 스미레까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 사키…?”
놀란 그의 목소리에 사키가 다시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까지 하고서… 너무 하잖아요… 나는…!”
그 말에 현성이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민욱과 알렉세이 코치 역시. 현성이 그녀를 위하면 위할수록 그녀의 마음 또한 깊어져 간다. 그는 너무 좋은 사람이라 아낌없이 호의와 마음을 베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사키의 입장은 오히려 힘들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아… 미안해요.”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던 것일까? 현성이 미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사키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멋대로 좋아해서 미안해요.”
서툰 말인 만큼 마음은 오히려 정직하게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 말에 민욱과 알렉세이 코치가 이런 경우가 또 다 있다 싶었던지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미안하다 이야기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이렇게 아름답고, 이렇게 착한 여자가 말이다.
그러다 사키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다 생각한 듯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감정이 잘 진정되지 않는지 계속해서 눈물이 뚝뚝 흐르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안타까운 듯 한 빛을 띤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내가 또…”
마음이 너무 간절해 꼭 붙잡고 싶지만 차마 그럴 용기 내지 못하는 사키의 모습에 현성이 다시 한 번 미안한 맘을 담아 부어오른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사키도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수 없고, 또한 강요할 수 없단 것을 깨달은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현성이 부축을 받아 병원으로 향하는 K-1 내의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그를 부축하던 민욱이 현성에게 말했다.
“잠깐 코치님이랑 같이 가고 있어.”
“…왜?”
그 말에 민욱이 흥 하고 뒤돌아서며 말했다.
“비즈니스 관계는 잘 수습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역시나 그는 현성과 다른 사람이었다. 그 말에 현성이 오히려 걱정이 앞선 듯 고개를 흔들었다.
“괜히 지금…”
“스미레 있으니까 걱정마!”
민욱도 굳이 지금 사키를 괴롭히진 않겠다 생각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옅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알렉세이 코치와 그가 병원으로 향할 차량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동안 민욱이 사키와 스미레를 향해 다가왔다. 스미레의 품에 안겨서 울고 있는 사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미어지게 가련했다.
“복도 많지… 세상에 이런 미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그가 스미레를 바라보자 스미레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정말 고마워요.”
이미 대회 이전부터 승리의 여신이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발표되었고, 지금 실시간으로 업로드 된 기사는 일본 내에서도 확실한 이슈몰이를 하고 있었다. ‘승리의 여신 오오츠카 사키!’ 혹은 ‘초 인기 아이돌의 부활!’ 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말이다.
“약속 했잖아요. 저 놈 여잘 너무 좋아해서 어떻게든 여자들이랑 한 약속은 지킬 놈이라고.”
다소 어색했던지 민욱이 투덜거리며 이야기 하자 스미레가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눈가가 촉촉한 것이 이 정도로 목숨을 걸어 약속을 지켜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생긴 것만으론 도무지 쉽게 좋아 할 수가 없지만… 이 정도로 남자다운 남자는 스미레의 인생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외적인 상처들이 그런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비록 흉측한 화상과 험상궂은 용모로 평가절하 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진국인 남자. 평생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남자. 상처 많고 가녀린 사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라고 말이다.
“앞으로도 걱정 하지 마요. 우리는 이제 공동 운명체니까.”
좋든 싫든 앞으로 K-1과의 계약이 있는 한 그들은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떠나서 그와의 관계는 결코 싫다거나 나쁜 게 아니란 스미레의 말에 민욱이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 지었다.
“그건 그렇고 사실 스미레가 아니라 사키에게 할 말이 있어.”
그 말에 스미레의 품에서 울고 있던 사키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이처럼 일그러진 얼굴이 무척이나 슬퍼 보이는 그녀를 보며 민욱이 말했다.
“뭐, 그쪽이 얼마나 저 못난이를… 그러니까 현성이를 좋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라면 그렇게 쉽게 포기 하지 않을 거야.”
“지금 무슨 소릴…!”
“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나? 최소한 마음과 성의는 확실하게 표현해 보이도록 하겠어.”
혜주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민욱이 보았을 때 그에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는 사키였다. 혜주가 현성에게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모자람 없을 만큼 좋은 여자란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사키도 그녀 못지않다. 아니, 그녀는 누가 봐도 모자람 없을 만큼 좋은 여자니까!
“좋아하면 난 어떻게든 가질 거야. 빼앗을 거라고. 그냥 그렇게 울고만 있진 않을 거야. 정말로 좋아해서, 내가 살 수 없다 생각되면 그렇게 하는 게 맞지 않나?”
어쩜 그게 민욱의 애정표현인지도 몰랐다. 그의 생애 처음으로 사귄 진짜 친구를 향한 애정 말이다. 그 말에 사키가 그런 것은 할 수가 없다는 듯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당신도 행복해질 권리는 있잖아. 저 놈이라고 해서 지금 여기까지 그냥 올라온 줄 알아? 나 같은 인간쓰레기한테 모욕도 당했고, 세상에 내던져진 채 절망하면서도 여기까지 싸워 이겨 올라왔어. 그러니까 당신도 행복해지고 싶다, 가지고 싶은 게 있거든 싸워.”
그런 사키를 보며 민욱이 자신이 할 이야기는 그게 다라는 듯 냉정한 모습으로 이야길 끝내곤 뒤돌아섰다. 저기 앞, 멀어진 현성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잘 한 짓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생각으론 분명히 그의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은…
“아, 생각해보니까 열 받네! 저 자식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 지가 무슨 주인공이야? 막 여자들이 다 좋아하게!”
괜시리 투덜거리며 민욱이 현성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나쁜 놈아!’ 하고 투덜거리며 그가 현성의 등을 툭툭 치자 현성이 그를 돌아보며 ‘와 카노!’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손톱만큼 작아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키가 멍하니 속삭였다.
“…나도 행복 해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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