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156화 (156/281)

- 156 회 - 괴물

“카면 관장님 상태는 어떠신데예?”

현성의 하루 일과가 끝날 무렵에서야 걸려온 전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트레이닝에 임했던 현성이 걸려온 혜주의 전화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음을 던졌다.

-관장님, 그렇게 사고 자체는 심하지 않으신데 나이가 있어셔가… 그래도 진짜 천만 다행이다! 사고가 서울 시내서 나가지고 빨리 병원으로 옮겨져서…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 혜주의 목소리에 현성 역시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내내 피터를 비롯해서 킬러비 짐의 관원들과 훈련을 진행했다만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은 다른 곳에 가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혜주에게서 걸려온 이 전화는 세상 무엇보다도 반가운, 가뭄 끝의 단비와 같은 전화였다.

“많…이 다치셨어예?”

-음… 팔을 다치셔가 한 3-4주 정도는 입원해 계셔야 한단다. 그래도 그거 말고 다른 데는 이상이 없다 카니까 괜찮으시다. 수술 받으시고 이제 잠 드셨는데 괜찮다 카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물론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더라 할 수 있는 김관수 관장이 이탈한단 것은 무척이나 큰 변수였다만 사고가 크지 않았단 것 자체가 다행이 아니겠는가? 특히나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핸드폰 너머로 걱정스러운 혜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놀랬제…? 오늘…

“아… 괜찮아예. 그냥 좀 걱정 많이 했는데… 연락이 늦어서…”

-응. 기철이랑 내도 급하게 들어간다고 갔는데 수술 중이셔가… 그래도 괜찮으시다 카니까 진짜 다행이다. 너무 걱정 하지 마라!

평소 현성이 김관수 관장을 얼마나 잘 따르는지는 곁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부분이었다. 혜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의 아버지처럼… 아니,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성에겐 없는 존재! 그리고 김관수 관장 또한 가족이 없다 보니 유달리 끈끈한 사제애를 선보이던 두 사람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런지 혜주가 연신 현성을 달래고 위로하려 이야기를 하자 현성이 그 말에 그제야 웃음을 띤 채 대답했다.

“진짜 괜찮아예. 저는… 그래도 관장 별 일 없으니까 다행이네예.”

-응! 진짜 다행이다! 나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아무튼 다행이네예. 다행.”

하루 종일 졸여 있던 맘이 그제야 풀리던지 훈련의 피로감과 함께 온 몸이 나른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현성이 소파에 몸을 더 깊숙이 기대었다. 너무 먼 곳까지 와버려서 그런 일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달려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과 서운한, 미안한 감정으로 남은 가운데 혜주가 기운 내라는 듯 후후 웃음과 함께 말했다.

-민욱이 와가 병원도 특실로 바꾸고 가서 괜찮으실 거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니 목소리까지 힘 없으니까 내 더 속상하잖아!

오랜만에 선 보이는 그녀의 애교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괜찮아요. 이제 관장님도 괜찮으신 거 확인 했으니까… 오늘 훈련을 너무 열심히 해가 그래요. 응… 오늘 진짜…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요령이라는 것을 모르는 남자! 민욱처럼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밝지도 않고, 그와 같은 사회적인 기술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현성이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에 심란한 맘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최선을 다해서 모든 일정을 진행했다. 알렉세이 코치가 오기 전까지 피터와 함께 스파링을 반복했고, 알렉세이 코치가 도착한 이후에는 킬러비 짐의 기구들을 빌려 웨이트 또한 늦추지 않고 진행했다.

김관수 관장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한 맘이 치솟을 때 마다 어떻게든 그 생각을 지우려 몰입했던 만큼 피로도 역시 상당했다. 그랬기 때문인지 많이 지친 몸을 쇼파에 기댄 채 현성이 저도 모르게 슬쩍 눈을 감았다. 잠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만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몰라도 혜주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그리 기대어 있고 싶은 맘이 들었다.

-응! 잘 했다…! 관장님은 걱정 말고 니 경기 준비해야지…! 근데 카면 이제 훈련 하는 거는 우에 하노….? 관장님 없는데…

다른 건 몰라도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 부분일 것이다. 여지껏 현성이 치러온 모든 경기는 김관수 관장의 작품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분석과 섬세한 플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다만 그의 부재는 상당히 심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혜주 역시 그 부분을 크게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김관수 관장이 잘 해줬던 것은 현성이 항상 최상의 상태를 가질 수 있도록 육체적인 부분 뿐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도 잘 헤아려 주었던 점에 있었다. 트레이너로써 그는 어쩜 완벽한 인물인지도 몰랐다. 아니, 트레이너라기 보다는 인생의 멘토와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재촉하지 않고 현성이 해낼 수 있을 때 까지 믿어주고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그가 방황하고 흔들릴 때면 언제든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편히 이야기 할 때 까지 기다려준 사람이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일이 이리 되자 상당한 압박감과 부담감이 밀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혜주의 걱정 섞인 목소리에 현성이 감았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어떻게든 해봐야죠. 관장님 퇴원 선물로요.”

그 나른한 음성에 혜주가 걱정이 되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기운 내요. 현성아.

애교 섞인 그녀의 목소리에 현성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누나. 고마워요. 챙기줘서.”

-…내 아니면 누가 챙겨주노! 당연히 해야 되는 건데.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그 말 한 마디에 혜주가 놀랐던 맘과, 급히 달려와 그녀 또한 피로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을 느끼며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함께 있을 순 없지만 그 자체로 마음이 무척이나 포근해지는 순간이었다.

“보고 싶네예.”

그 말에 저도 모르게 혜주가 핸드폰 너머로 웃음 지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현성이 그녀를 따라서 다시 웃음 지었다.

-관장님 아프신데 그카면 욕 먹는다!

수줍음 섞인 그 대답에 현성이 후후 웃으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큰 일을 겪다 보니 정말로 보고 싶은 맘이 들었다. 어쩜 혜주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싶은 불안한 맘이 들어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가능하다면 이제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지낼 수 있는 안정적인 생활을 해나가고 싶다 생각하며 현성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응… 누나. 아무튼 민욱이는…?”

그 물음에 혜주가 곁에 있는 기철에게 무어라 물음을 던지더니 금방 다시 대답했다.

-민욱이 또 금방 비행기 타러 갔다. 자세한 건 민욱이 한테 들으면 될 거래.

“아… 알겠어요, 누나. 카면 이제 누나도…?”

-응. 나도 명색이 사장이라가 좀 얘긴 해야 될 거 같다. 내 바쁘제?

후후 웃으며 우쭐한 척 혜주가 말하자 현성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누나 보고 싶은데 시간이 안 나네예.”

-치, 말로만!

“진짜로요. 정말 너무 보고 싶은데…”

-그래도 지금은 안 된다… 관장님 돌봐야지.

그 말에 혜주가 마음이 약해진 듯 우물쭈물하며 말하자 현성이 ‘응!’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제 씻고 좀… 생각을 해봐야 될 거 같아요.”

김관수 관장의 부재! 그리고 남아 있는 토너먼트! 과연 삼보 전문인 알렉세이 코치와 그가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어쩜 이번은 현성 스스로 활로를 찾아내야만 할 일인지도 몰랐다. 그 부담감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혜주가 기운 내라는 듯 ‘응!’ 하고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운 내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보고 싶으면 하면 안 돼요?”

-카면 니 훈련 못 하니까 안 돼! 그거는!

후후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 현성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알겠어요, 누나. 그러면 이따가 다시 연락 할 게예.”

-그으래! 이따 전화 하께!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이따 봐요, 누나!”

전형적인 연인의 작별인사를 던지고 통화가 끊어졌다. 그와 함께 현성이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조용한 가운데 벽을 바라보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김관수 관장은 팔이 부러지긴 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물론 앞으로의 훈련 일정을 생각한다면 크나큰 차질이 생긴 것에는 틀림이 없었다만…

“…해야 된다.”

계약은 계약이다. 분명히 그는 민욱이 했던 말대로 프로 선수였다. 자신이 받은 돈 만큼의 값어치를 해야 하는, 기대치에 향응하는 실력을 선보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절대로 김관수 관장에게 일이 생겨서, 이런저런 이유를 이해해주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며 현성이 다시 한 번 후 하고 숨을 골랐다.

과거 재석과의 시합처럼, 그때 그가 찾았던 해답 스핀킥과 같이 이번에도 뭔가를 해내야만 했다. 김관수 관장 없이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벌써부터 앞섰지만 어떻게든 해내야만 한다. 그 생각과 함께 현성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 오랜 시간 김관수 관장과 함께 단련해온 탄탄한 근육질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달아 두 경기를 해야 되니까… 체력 떨어지는 걸 줄이야 된다.”

토너먼트 경기의 관건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배정은 상당히 유리했다. 현성이 제 1경기였고, 곧 아시아 챔피언 결정전 경기는 마지막이다 보니 그 사이에 있는 다른 시합들을 통해서 충분히 긴 휴식 시간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1경기에 데미지를 입는다면 상대적으로 다음 경기를 치르는데 어려움이 생길 확률이 컸다. 최대한 데미지 없이 1경기를 풀어가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결승에서 만난 상대를 쓰러뜨려야 한다! 무척이나 간단하지만 그것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다 현성이 천천히 자세를 잡아 보았다. 파이트 자세! 그리고 오늘 피터와 함께 스파링을 했던 대로 눈 앞에 앤드류 나카하라라는 선수를 그리기 시작했다. 테크니컬한 상대를 최대한 빠르게 KO 시키는 방법이 필요했다.

“펀치…”

상대가 킥 복서 출신이기 때문에 킥보단 복싱으로 밀어 붙이는 것이 더욱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5전이라는 경험을 쌓으면서 현성이 피부로 느낀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김관수 관장이 항상 그에게 이야기를 해오던 부분이기도 했고.

순간 뭐가 느낌이 온 듯 현성이 후다닥 걸음을 옮겨 다시 핸드폰을 낚아챘다. 호텔 안에 비치된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자판이 일어이다 보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영어를 그렇게 잘 구사할 자신도 없었고. 핸드폰이 인터넷이 된단 사실에 그가 안도하며 검색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곧 핸드폰이 와이파이 신호를 잡아서 무리 없이 검색 결과를 화면에 띄웠고, 이내 현성이 꾹 하고 화면을 눌러 보았다.

그리고 화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지글지글 거리는 기타 소리와 함께 낯익은 음성이 낯익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핸드폰에서 울렸다.

“제롬 르 반나!”

============================ 작품 후기 ============================

제 2의 하이퍼 배틀 사이보그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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