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회 - 괴물
“응, 누나. 일 잘 마무리 됐어요. 이제 오늘부턴 다시 훈련 시작해야죠. 인자 도착해가 다시 시작만 하면 돼요. 더 얘기 하고 싶은데 옆에 도깨비 같이 생긴 게 노려보고 있어가… 응. 이따 다시 연락 할게요. 이따 봐요.”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이야기 거리가 그리 많은지, 킬러비 짐으로 가는 내내 통화를 하던 현성을 민욱이 다소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자 현성이 그를 향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전화 하는 거 첨 보나?”
“만난 지 벌써 일년은 됐겠구만, 아직도 그러고 사냐?”
여자를 많이 만나 보긴 했어도, 오래 만난 적은 없는 민욱이다 보니 대체 이 광경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통화가 끝이 나길 기다리고 있던 민욱이 다소 띠거운 얼굴로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그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던지 민욱을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닌 안 카나?”
“난 보통 하루 자고 나면 바이바이라서. 그러고 나선 여자애들한테 전화 걸려오는 것만 받지. 가끔씩 정말 하고 싶을 때만 연락하고.”
난 너와 같이 그렇게 돌쇠처럼 끌려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다 주장하는 민욱의 말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의 말이 안 된다거나 이해가 안 된다기 보다는 어쩜 사람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먼저 든 모양이다.
그런 현성의 모습에 민욱이 역시 비슷한 생각이 들었던지 멋드러진 명품 트레이닝 복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으며 말했다.
“여튼 넌 참 별종이다. 어제 사키 같은 여잘 보고도 맘이 그러냐?”
“그거는 니가 아직 제대로 사람 못 만나가 그렇다.”
민욱의 말에 현성이 제법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자 민욱이 쳇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사키 같은 애가 널 좋아해주면 아유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이는 게 예의지. 솔직히 꽤 오래 만났는데 이제 이만하면 바꿀 때도 된 거 아니냐? 질리지도 않아?”
“사람이 물건이가? 물건도 오래 쓰면 정 드는거다.”
판이하게 다른 스타일 덕분인지 두 사람은 이성관 또한 차이가 선명했다. 하지만 그게 누구 하나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어렴풋이 정답에 가까운 쪽은 자신이 아니라 현성일런지도 모르겠다 민욱 또한 느끼고 있긴 했지만.
“너랑 이런 얘기 해서 어디다 쓰게냐! 그냥 들어가기나 하자!”
가진 것으로 따져 보았을 땐 아무리 현성이 잘 나가는 격투기 선수가 되었다 하더라도 민욱을 결코 따라올 수 없었다. 물질의 풍요에 있어서 그는 훨씬 더 여유롭고 풍족했으나 어쩜 마음에 있어선 따라갈 수가 없었던지도 몰랐다. 그래서 현성에게 묘하게 이끌리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며 민욱이 킬러비 짐 안으로 먼저 걸음을 옮기자 연락을 받았던 킬러비의 유명 선수 ‘키드’가 민욱을 반겼다.
“헤이! 리!”
채 160이 겨우 넘는 작은 키에 풍성한 후드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지라 몸 또한 말라 보였지만 그 모습만 보고 우습게 본다면 큰 코 다칠 수 있는 난폭한 선수가 바로 그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아보여 놀라긴 했지만 그는 현성도 익히 알고 있는 선수였다.
야마모토 키드 노리후미! 일명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일본 최고 인기 격투가 중 한 사람! 민욱이 친구가 있다고 하긴 했으나 그게 키드일 줄은 몰랐다 싶었던지 현성이 다소 긴장한 얼굴로 그와 민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
그 사이 키드가 그를 알아보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덩치와 다르게 성격 사납기로 유명한 키드였다만 아무래도 그 역시 현성의 경기를 보고 그에게 호감을 가진 모양이었다.
“반갑군!”
“안녕하심까!”
터프하게 손을 내미는 키드의 모습에 현성이 고개 숙여 인사하며 그의 손을 잡자 키드가 놀라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리치가 길단 소리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저 자식 팔 길이는 사기야. 팔 길이가 키드 키만한 걸?”
그 말에 키드가 풉 웃음을 터뜨리며 번개처럼 민욱에게로 달려가 날아 차기를 날리자 민욱이 이 익숙한 듯 낄낄 웃으며 그의 발차기를 피했다. 일본에서는 거의 국민 파이터라 불릴 정도로 인기 많은 선수가 그인지라 조심스러운 현성과 달리 무척이나 친해 보이는 민욱의 모습에 현성이 신기하기도 하고, 다소 부럽단 생각도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튼 아시아 챔피언 결정전까지 여기서 연습 할 거야. 스파링 파트너는 준비가 되었겠지?”
오랜만에 보는 키드와 서슴없이 장난을 주고 받으면서도 에이전트의 본분을 잊진 않았던지 민욱의 말에 키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야 체급 덕분에 스파링 파트너가 될 수는 없지만 무척 좋아한 사람이 하나 있지.”
그리고 그가 이른 시간부터 짐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한 선수를 가리켰다. 현성과 마찬가지로 짧은 머리에 결코 녹록치는 않은 인상이 돋보이는 남자는 수염이 꽤 덥수룩 했는데, 그 모습과 다르게 얼굴엔 상당히 수줍은 기색이 있었다.
“오, 광철이 형!”
그를 보자마자 민욱이 반가운 얼굴로 소리치자 광철이라 불린 사내가 씩 웃으며 그에게 손으로 인사를 했다.
“광철?”
킬러비 짐에서 트레이닝 중인 한국 선수가 있었나 싶은 생각에 현성이 힐끔 민욱을 바라보자 그가 후후 웃으며 대답했다.
“교포야, 이 형님. 슈토랑 원 FC에서 챔피언 지낸 적 있고! 가슴에 거북선 문신 몰라?”
“아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현성이 누구인지 알아보겠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십니까!”
“반가워! 현성 선수!”
덩치 큰 남자들치고는 다소 수줍은 그 인사에 키드가 피식 웃음과 함께 민욱을 바라보자 민욱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의 인사를 시작으로 현성이 킬러비 팀원들과 모두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현성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지 민욱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근데 여… MMA 체육관 아이가?”
“그렇지. 것도 여긴 대부분 레슬링이 베이스인 선수들이 가득한 곳이지.”
낄낄 웃으며 장난스럽게 민욱이 대답하자 현성이 ‘응?’ 하고 눈썹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중요한 시기에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인가 싶은 그의 모습에 민욱이 다시 씩 웃음 지었다.
“설마 내가 대책 없이 그랬겠냐?”
“…좀.”
요즘이야 그러지 않지만 과거 전력을 살펴 본다면 재미로 현성의 연습이나 훈련을 망칠 가능성도 있는 게 이민욱 아니던가? 그 불안하고 못미더운 목소리에 민욱이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서 인상을 구겼다.
“넌 사장님을 못 믿냐?”
“…아쉽게도.”
그 말에 현재 ONE FC 라이트 급 챔피언을 역임하고 있는 광철이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까지 오지 않아서 그렇지 그 날까지 함께 스파링 할 파트너가 있어. 걱정 하지 마.”
“아, 예! 행님…!”
나이 많은 사람에겐 바짝 기합이 들어간 현성의 대답에 광철이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북선, 호랑이, 한반도 문신을 몸에 새기고 다닐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한 이이다 보니 다이너마이트에서 밴너를 쓰러뜨린 현성에게 무척이나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의 말에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떨떠름한 얼굴로 민욱이 그를 바라보았다.
“…날 그렇게 못 믿는단 말이지? 이걸 그냥 확 여기서 엎어버려?”
“오랜만에 만나가 기절하는 모습 보여줄 순 없다 아이가. 참아라.”
후후 웃으며 꺼낸 현성의 말에 민욱이 큭 하고 씁쓸한 미소를 띤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현성이 광철에게 안심해도 된다 이야기를 들어도 영 불안한 맘이 사라지지 않았던지 민욱에게 물음을 던졌다.
“대체 카면 누가 파트너 해주는긴데…? 아직 안 온 거제?”
그 말에 민욱이 말싸움을 계속 할 여력은 없다 생각했던지 인상을 구긴 얼굴로 대답했다.
“일단은 토너먼트 1시합 상대가 앤드류 나카하라. 미국계 혼혈이고, 킥복싱이 베이스를 이루고 있는 선수란 말이야. 그래서 이 양반이랑 비슷한 스타일의 파이터를 준비 했지.”
“비슷한 스타일…?”
현성이 앤드류 나카하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면 현성과 비슷한 체격에 상당히 테크니컬한 선수란 것이었다. 특히나 빠르게 치고 빠지는 킥이 일품인 선수로 맹렬한 공격을 퍼붓다 간간히 터지는 레프트가 간간히 KO를 이끌어 낼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현성이 비슷한 스타일의 파이터가 누구인가 생각해보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선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키드란 선수도 킬러비 짐에서 트레이닝을 할 것이란 소식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
“눈데…? 그게…?”
“몸이나 풀고 있으셔.”
그 말에 현성이 시간을 이렇게 보내긴 아깝다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크로스핏에서 익힌 대로 웜업 동작을 하며 그가 몸을 풀고 있는 동안 어느 샌가 트레이닝복 상의를 벗고 하얀 나시만 걸친 민욱이 그를 향해 글러브를 던졌다.
“그렇게 해서 몸이 풀리겠냐? 스파링 가볍게 해!”
날아든 글러브를 받아 들고서 현성이 다시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곧 민욱이 오랜만에 글러브를 끼고는 링 안으로 먼저 들어가 보란 듯이 씩 웃으며 그를 향해 손짓 했다.
“…설마…?”
놀란 현성의 얼굴에 민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현성이 어이가 없었던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니가 스파링 파트너라고…?”
물론 민욱은 앤드류 나카하라라는 상대와 많은 면에서 일치하는 상대였다. 앤드류 나카하라와 거의 비슷한 신장과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베이스 또한 같았다. 사실상 엘리트 체육인이라 해도 가히 부족함 없는 민욱이다 보니 이 상황이 조금 놀랍긴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괜찮겠나?”
순순히 링 위로 올라가면서도 현성이 못내 걱정이 되는 듯 물음을 던졌다.
“니가 날 걱정 해주냐?”
그 말에 민욱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자 키드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워! 오랜만에 보는 재미있는 싸움이다!’ 하고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 모습에 현성이 정말 미처 생각지 못한 듯 글러브를 낀 채 망설이는 얼굴로 민욱을 바라보자 민욱이 자세를 잡아 보았다.
“이제 1년 지난 초짜 주제에 감히 누굴 걱정 하는 거야?”
“그래도 니 너무 오래 쉬었다 아이가…?”
어쩜 두 사람의 리매치는 성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민욱이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아마추어 전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일 년이라는 공백이 있지 않은가? 아마 그런 탓에 리매치는 힘이 들지도 모르겠다 판단을 내린 것인지 기꺼이 스파링 파트너를 자청한 그의 모습에 현성이 왠지 모를 서운한 기분을 느끼며 서있자 민욱이 인상을 구겼다.
“지금 니가 이럴 시간이 없을 텐 데?”
“…그건 맞다. 근데 진짜…”
그 순간 민욱이 클래스를 사라지지 않는다는 듯 완벽한 자세로 현성이 눈 앞을 스치는 하이킥을 선사했다. 그건 미처 현성이 반응하지 못 할 정도로 빠른 킥이었는데, 호를 그리는 선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발차기였다.
“오!”
그 모습에 키드와 광철, 그리고 키쿠타 에이치 같은 선수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자 현성 역시 민욱이 건재하단 생각이 들었던지 웃음과 함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곤 자세를 잡았다.
“괜히 리매치 하자 그러는 게 아니다, 장현성.”
그 순간만큼은 민욱도 진지했던지 그가 흥분된 얼굴로 몸을 풀기 시작하자 현성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기다려! 공 가지고 올 테니!”
장난을 좋아하는 키드 답게 짐 내부에 공도 따로 준비를 해놓았던지 그가 후다닥 달려가 짐 한 구석에 둔 공을 가지고 오자 현성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사이에 민욱은 한결 집중한 듯 매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현성 역시 이게 장난으로 하는 스파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지 웃음을 거두고 천천히 민욱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파이트!”
곧 키드가 거침없이 공을 때리며 소리치자 민욱이 번개처럼 전진하며 로 킥을 날렸다. 시작하자마자 쏟아진 공격은 여지껏 현성이 마주했던 그 어떤 상대보다도 스피디했다! 여전한 속도에 현성이 다소 놀란 듯 움찔하는 사이에 쩍! 하는 소리가 킬러비 짐을 가득 채웠다.
“와우! 화끈하군!”
“오오오! 제대로 들어 갔어!”
싸움꾼들 답게 그 화끈한 오프닝 킥에 키드와 에이치가 좋아하는 동안 민욱이 오랜만에 느껴보는 희열감에 취했던지 로 킥 이후 바로 몸을 낮춰 현성에게로 치고 들어오며 바디샷을 날렸다.
-퍽!
허나 그것은 허락지 않았던지 현성의 가드에 주먹이 막히자 망설임 없이 민욱이 뒤로 빠지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 순간 현성이 뱀처럼 구불구불한 잽을 날려 응수하자 민욱이 그때도 느꼈지만 이 핸드 스피드 만큼은 상상을 초월한단 생각이 들었던지 오싹함을 느끼며 스웨이 동작으로 그의 잽을 피해냈다.
-쩍!
그리고 날린 번개 같은 로 킥에 다시 한 번 킬러비 짐에서 ‘오!’ 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정도 밖에 안 되냐?!”
이내 민욱이 빅 마우스의 본능이 살아나는지 사이드 스탭으로 전환하여 거리를 두고 소리치자 현성이 그리 데미지는 크지 않다는 듯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2번의 로 킥이 들어갔지만 그 정도로 무너뜨리기엔 너무 강한 상대가 아니던가? 그 생각이 들었던지 빠른 스탭으로 주변을 맴돌던 민욱이 이내 번개처럼 치고 들어가 펀치를 뻗었다.
-퍽!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견고한 현성의 가드를 뚫진 못했는데, 그것조차 페이크 모션이었는지 이내 다시 한 번 쩍! 하는 소리가 울렸다.
“세 번째 로 킥! 채찍 같은 걸!”
들뜬 키드의 중계에 민욱이 다시 한 번 더 희열감을 느끼며 뒤로 백스탭을 밟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육중하리만큼 거대한 압박감과 함께 순간 현성이 그들이 처음 주먹을 마주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대시 해오자 순간 민욱이 움찔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를 향해 날아드는 날카로운 레프트!
“우왓!”
일년 간 미국 대학 진학 준비로 인해서 굳어버린 몸일지언정 반사신경까지 죽은 것은 아니라는 듯 민욱이 황급히 그의 주먹을 피했다. 부웅! 하고 엄청난 소리를 낸 그 가공할 만 한 펀치에 모두들 감탄을 터뜨리기가 무섭게 다시 육중한 소리가 울렸다.
-퍼억!
“컥!”
짧게 쇼트로 끊어 친 왼 손 레프트 이후 다시 한 번 더 왼 손 바디샷이 바로 민욱의 옆구리를 때린 것이다! 그 순간 민욱이 몸이 순간 비틀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고서 움찔하자 현성이 후속타를 날리려다 멈칫 하고 말았다.
-털썩…!
그리고 민욱이 바디 샷 한방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고 말자 들떠 구경하던 키드와 에이치, 광철 모두 놀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리! 괜찮아?!”
“민욱아!”
“아, 아! 괜찮아! 왜 호들갑이야!”
화들짝 놀란 민욱이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그의 바디 샷은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물론 그 정도로 못 움직일 민욱이 아니었다만… 다소 착잡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현성의 얼굴을 보자 민욱의 얼굴이 급격히 굳기 시작했다.
“폼은 그대론데, 몸이 너무…”
그 또한 리매치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지금의 이 결과가 너무 슬펐던 모양이다. 그것이 조롱이나 비웃음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더욱 더 비참한 기분을 느끼며 민욱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설마 그 일 년 사이에 이 정도로 큰 차이가 생겼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라면 현실일 것이다. 타고난 재능에 불이 붙었고, 민욱은 너무 오랜 시간을 쉬어 왔으니까.
“자식아, 현역이 선배 예우도 안 해주냐!”
툴툴 거리며 손을 내민 그의 모습에 현성이 미안한 듯 한 얼굴로 민욱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있었던 민욱에겐 무척이나 충격이 컸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던지 그 걱정스러운 눈빛이 민욱이 별 일 아니라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나도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본 거야. 근데 진짜… 내가 유리 몸이 다 됐구나. 체력 관리를 좀 하긴 해야겠네.”
“술 좀 끊고.”
그 말에 민욱이 흥 하고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딘가 모르게 씁쓸함이 맴도는 그의 모습에 현성이 무어라 얘길 못하고 있는 사이에 킬러비 짐 입구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헬로, 프랜드!”
“어…?”
그 모습에 현성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 민욱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진짜 스파링 파트너. 앤드류 나카하라랑 같은 테크니션에… 자말 로우지랑 비슷한 체격이야.”
애써 괜찮은 척 하고 있지만 스파링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현성이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친구로써의 도리라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킬러비 짐 안으로 들어온 외국인을 바라보았다.
“오, 경기 잘 봤습니다!”
그리고 그가 영어로 이야기 하자 현성이 움찔하며 민욱을 바라보았다.
“이제 회사 차원에서 너 영어랑 일어 공부 좀 시켜야 겠다.
“…그런 거는 내 자신이 없는데…”
“걱정 마. 내가 지독하게 가르쳐 주면 알아 먹을 거야.”
낄낄 웃으며 민욱이 사악한 웃음을 짓자 현성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고 곧 민욱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피터!”
“리, 오랜만이로군! 잘 지냈어?”
역시나 그 또한 민욱과 격이 없는 사이였는지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성이 ‘피터…?’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그가 링으로 다가와 현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피터 그라함이라 한다…! 잘 부탁해!”
============================ 작품 후기 ============================
피터 그라함 - 과거 스핀킥으로 바다하리의 턱을 부셨던 선숩니다. 호주 출신이고 상당히 잘 싸웠는데 애석하게도 그랑프리에선 8강 이상엔 오르지 못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