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149화 (149/281)

- 149 회 - 괴물

로드원 FC 시합 이후 또 다시 현성의 영상은 셔독과 유투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물론 국내 시합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네임 벨류는 떨어졌지만 그가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극강의 파이터 그 자체였다.

-맙소사. 이건 내가 여지껏 본 컴비네이션 중 가장 완벽한 것 같아!

-정말 예술적인 스위치히터!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은 좋겠다! 이런 걸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니!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 그 누구 하나 거릴 것 없이 감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수히 많은 대회가 열리고, 또한 무수히 많은 경기 영상들이 나오긴 했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시합을 하는 선수는 흔치 않았다.

-처음엔 컨디션이 안 좋은가 싶었더니 그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먹이를 노리고선 밀림 속에 숨어든 호랑이 같은 느낌이야. 그리고 피니쉬는 하이 킥!

-벌써 5연속 1라운드 실신 KO야! 이 대회 선수 수준도 상당한데 압도적이야! 멜빈이 이 대회 소속이라고 하던데 생각만으로도 너무 기대가 된다!

-아냐, 멜빈은 늙었어. 이제 그에게 상대가 되지 않을 거야. 20킬로나 무거운 밴너도 쓰러뜨렸다구!

다른 것을 떠나서 그의 스타일 자체가 사람들을 열광케 하기 충분한 스타일이다 보니 그 기대감이 가증 되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사실 밴너를 쓰러뜨리고 현성이 유명세를 얻게 되면서부터 국내에서보다 해외 커뮤니티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언급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했던 것이 현성이 지나치게 시합을 촘촘하게 가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류이치와의 시합과 밴너 전은 한 달 반 정도의 텀을 가졌고, 이번 대회 역시 K-1의 아시아 챔피언 결정전과 한 달도 채 안되는 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에 경기 결과를 예의주시하던 많은 매니아들도 그 결과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건 시합이 아니라 몸 풀기에 불과하단 걸 어필하는 것 같아. 나 친구 정말 좋은걸? 팬이 될 것 같아!

-난 일본으로 직접 날아가서 사인도 받을 거야! ‘사이토’가 말하길, 그는 보기와 다르게 무척 수줍음도 많고 친절하다고 하는걸!

너무 무리한 진행이 아닌가, 혹시라도 부상이 생겨난다면 지난 다이너마이트 대회로 상당히 부흥하고 있던 K-1 행보 자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단 우려가 셔독 내에서도 분분했었다. 그러다 보니 이 경기 결과는 그들에게 있어서 더욱 더 기대 되는 매치의 예고편과도 같았다.

다음 시합을 기다리게 만드는 선수! 엔터테이너적인 측면에서 현성은 그렇게 캐릭터나 개성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의 시합만큼은 그 어떤 선수보다도 카타르시스가 흘러 넘쳤으니! 그랬기 때문일까?

셔독의 반응과 마찬가지로 국내의 반응 역시 상당히 뜨거운 편이었다. 물론 격투기 자체가 여전히 비주류 종목이긴 했지만 최소한 격투기 관련 사이트들이나 남자들이 많은 대형 커뮤니티에서는 빠지지 않고 그의 경기 영상이 돌면서 넷 상에서는 인기 검색어 1위를 몇 시간 동안 차지 할 정도 였으니! 밴너 전이 그에게 높은 인지도를 선물했다면 이번 시합은 그 자리를 공고히 하는 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반향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그렇게 승리를 즐길 여력이 없었다.

“…은퇴한다고요? 준혁 선수가…?”

“음, 나이도 있고. 아무래도 충격이 많이 컸는 갑다.”

물론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서 많은 준비와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그 모든 것을 시합 당일에 쏟아 부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응당 자신의 몫이라고 하지만 준혁의 은퇴는 현성으로써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소 마음에 걸리는 듯 한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김관수 관장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안타깝지만 어떻게 보면 그 친구도 당연히 해야 되는 결단 내린기다. 거기 흔들리지 마레이. 35살이면 노장이고… 이게 안정적인 생활도 아이다 보니까 그래 된 거 겠지. 많이 지치기도 했을 거고.”

“예… 관장님.”

결과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감당을 하고,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프로 선수 치고는 그 부분이 무척이나… 여린 감이 있는 현성을 보며 김관수 관장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 눈빛으로 이야기 하자 현성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뒤는 안 볼라고요. 관장님. 그거는 차선수 몫이니까.”

시합 내용 자체가 너무 충격적인지라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니, 만약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잘못일 것이다. 그저 사람이다 보니 그런 맘이 들긴 했으나 프로라면 감당을 해야만 했다. 미안한 맘도 이겨내야만 한다.

“카면 우리는 다시… 가죠, 관장님.”

본인의 맘과 다르게 프로로써의 냉정함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현성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관수 관장이 미트를 들어 올렸다.

“좀 더 안 쉬어도 되나?”

“미안한 만큼 더 열심히 해야죠.”

쓴웃음과 함께 말하는 현성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인자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현성에겐 참 많은 재능이 있지만 그 재능들 가운데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부분인지도 몰랐다. 비록 그것이 사회에서는 요령이 없고, 조금 둔한 것으로 보일지언정 프로 파이터에겐… 아니, 인생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겐 보석과도 같은 재능이었다.

마음을 다해서 노력하고 정진한다는 것! 물론 지금 상황 자체가 쉴 겨를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곧 K-1 그랑프리 출전 자격을 얻기 위한 아시아 챔피언 결정전이 일본 무도관에서 열리게 되니까!

“그 날은 토너먼트기 때문에 경기를 2개 치러야 된다는 거 잊지 마라! 알겠나!”

“예, 관장님!”

토너먼트는 격투기 대회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시스템 중 하나였다. 특히나 UFC 같은 서양 대회에서는 잘 찾아보기가 힘든, K-1의 고유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하루에 2경기를 소화해내야 한다는 것은 선수에게 상당한 부감담을 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체력의 안배와 부상과 같은 변수들이 다른 어떤 시합보다도 컸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은 풀타임으로 2 경기를 모두 소화 해내야 할 지도 모른다.

“최대한 모션을 줄여야 한다. 아직도 펀치 뻗을 때 모션이 크게 나갈 때가 있다!”

“예, 관장님!”

현재 현성의 타격은 거의 완성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 이상 김관수 관장의 지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말이다. 너무나도 빠르게 성장해나가는 제자를 보니 이제 더 이상 가르칠래야 가르칠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어느 샌가 김관수 관장의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치고 드갈 때 자꾸 가드가 열린다! 가드는 항상 굳건하게!”

“예, 관장님!”

잔소리를 백번 해도 백번을 군 말 없이 따라오는 게 현성이다. ‘예!’ 라는 대답 이외의 대답을 하는 일이 거의 없는 그이다 보니 어쩜 그 날이 오면 참 섭섭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김관수 관장이 미소 지었다.

-파앙! 팡! 팡!

예린이가 대학 수업을 들으러 갔고, 기철은 근무를 하러! 알렉세이 코치는 오후에 출근을 하게 되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묘하게 오전 시간을 비우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두 사람만 이 있는 체육관에서 경쾌하게 울리는 미트 소리가 마치 정겨운 대화 소리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힘 조절도 잘 하지 못해서 매번 김관수 관장의 손바닥을 얼얼하게 만들었다만 이제는 그 조절부터 다양한 컴비네이션까지 눈빛만 봐도 손 발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이다. 몇 가지를 지적한 이후로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이 미트 치는 소리만 울려 퍼지만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느 샌가 입가에는 미소가 머물고, 맘은 한 없이 따사로워 지고 있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선수는 결코 흔치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자체가 흔치 않을 것이다.

현성 역시 김관수 관장과 마찬가지인 듯 했다. 집중을 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하고서 펀치를 내뻗는 그의 입 꼬리는 어느샌가 살며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 깊이 있는 눈동자에는 처음 찾아왔을 땐 보지 못했던 즐거움이 맴돌고 있었다. 돈 많이 벌 수 있느냐 처절한 얼굴로 물음을 던졌던 소년은 온데 간데 없이 이젠 그 자체를 열정적으로 해내고 있는 건장한 사내가 있었다.

“하이 텐션!”

그의 외침과 함께 현성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곤 조금 더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펀치의 속도와 맞물려 미트 치는 소리가 점점 묵직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웃음도 거두고 집중한 두 사람이 마치 하나의 작품을 만들 듯이 새어 들어오는 햇살 아래에서 주먹 치고 받는다!

1분, 2분! 쉬지 않고 펀치를 휘두르던 현성이 점차 맹렬한 산호 운동 속에서 무호흡 증상이 오는지 숨결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에겐 김관수 관장의 오더가 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텐션을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해서 일관성 있는 속도로 펀치를 대밀자 김관수 관장이 찌릿찌릿 저려오는 손 끝의 고통을 참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읍!”

체력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도 상대보다 빨리 지쳐선 안 된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항상 상대보다 한 걸음 더 앞서나가야만 한다. 터질 것 같은 제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맘이 아려오면서도 그의 승리를 위해서, 조금 더 높은 곳에 제자를 올리기 위해 참아내던 김관수 관장이 거의 3분을 채운 순간 ‘피니쉬!’ 하고 소리쳤다.

“푸하!”

그 순간 현성이 완전히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으며 시원스럽게 펀치를 날리자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김관수 관장이 들고 있던 미트가 저만치 날아가버렸다.

“관장님! 괜찮으십니까?!”

헉헉 숨을 몰아쉬며 현성이 놀란 듯 물음을 던지자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니 숨 넘어가겠다, 자슥아!”

그 말에 현성이 계속해서 숨을 헐떡이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그도 알고 있다. 김관수 관장이 날아간 미트를 잡고 있던 손을 뒤로 감추고 있단 것을 말이다. 그리고 아마 김관수 관장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매일 같이 훈련을 반복하면서 힘들지 않다 이야기 하는 건 거짓말이란 것을.

“둘이 그러다가 눈 맞으면 어떻게 합니까? 너무 위험하잖아? 이건 혹시라도 인터넷에 범람한다는 19금 유료연재 사이트에서도 나오기 힘든 스토리 아닙니까?”

그 사이에 언제 들어왔던지 입구에 기대선 민욱이 낄낄 웃으며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현성과 김관수 관장이 깜짝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니 언제 왔노?”

현성의 에이전트를 맡은 이후로 서울과 대구를 부지런히 오가며 거의 일주일에 3회 이상 얼굴을 보는 민욱인지라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만 정말 그가 온 줄도 몰랐던 모양이다.

“둘이 막 좋아할 때 부터요. 그런 거 여자들도 안 좋아해요. 그러지 마요.”

“에라이, 자슥아!”

김관수 관장이 끙 하고 소리를 내며 민욱을 나무라자 민욱이 하하핫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여기 많이 할랑하네요? 하기사, 여기 먹여 살려주는 빅스타가 있는데!”

“스타는 무슨…”

“야 이 못난아! 내가 니 사장님이다 보니 국내 말고도 셔독이나 위클리 MMA, MMA 정키 같은 해외 거대 사이트도 모니터링을 한단 말이야. 너 올해 가장 기대되는 신인 선수 1위로 투표 당하는 중이야.”

“오! 민욱아! 그거 진짜가!?”

현성보다도 김관수 관장이 더 신이나서 소리치자 민욱이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마추어들 투표니까 공신력 같은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실질적으로 그 아마추어들이 선정한 파운드 포 파운드나 랭킹 자체가 UFC보다도 더 큰 공신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 이야길 해주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아직까지 정문호 대표의 인가가 떨어지지 않아 초조한 가운데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민욱을 보니 한 소리 하고 싶은 마음과 기특하단 맘이 교차하는지 현성이 말 없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무튼 너 중년이랑 염문설 나면 안 된다. 나 이런 거 다 관리해!”

“자슥, 내 요즘 정여사님이랑 뜨겁다 임마! 행여나 그런 걸로 초치지 말그라!”

오리지날 상남자 김관수 관장의 화끈한 발언에 민욱이 오오! 하고 탄성을 터뜨리며 웃음 지었다.

“그래도 관장님! 중년의 사랑엔 관심 없지 말입니다!”

“자슥, 됐다 마! 근데 뭔 일이고?”

“그래, 연락도 없이.”

“연락이 없기는 개뿔! 내가 전화를 몇 통이나 했는데!”

그 말에 현성이 ‘아!’ 하고 걸음을 옮겨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바라보더니 깜짝 놀란 얼굴로 민욱을 바라보았다.

“혜주 누나한테 전화 왔었네!”

“…너 이거 진짜 확! 지금 여기서 한 판 붙어 버려?”

이젠 장난도 칠 줄 아는 그의 모습에 민욱이 어이가 없단 얼굴로 웃음을 터뜨리자 현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니도 한 통 밖에 안했네.”

“난 원래 한 통 밖에 안 해.”

“…니 똥 굵다.”

그 말에 민욱이 거만한 얼굴로 다리 사이 묵직한 물건을 자신 있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똥 보단 여기가 더.”

“…끄지라.”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현성의 모습에 그가 승리감 가득한 웃음을 띤 채 다가오자 김관수 관장이 사장과 소석 선수라기 보단 친구에 한 없이 가까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덩달아 웃음을 띠었다.

“근데 무슨 일이고?”

“별 일은 아니구요. 아시아 챔피언전 토너먼트 대전 상대 나왔어요.”

귀를 후비적 하며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하는 민욱의 모습에 순간 김관수 관장과 현성이 움찔하며 소리쳤다.

“대전 상대가 와 별 게 아니고!”

“내 시합도 아닌데 뭐.”

쿨하게 관심 없단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는 민욱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크 하고 쓴웃음을 띤 채 민욱이 들고 있던 파일을 낚아챘다. 현성 역시 3주 뒤 붙게 될 대전 상대들이 궁금했던지 김관수 관장의 곁에 바짝 붙자 민욱이 그리 대단한 건 아니라는 듯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근데 그거보다 지금 더 중요한 일 있어요.”

“니랑 로드원서 붙는거…? 알겠다, 그거는 나중에…!”

“물론 그게 제일 중요하지만 그거 다음으로!”

그 말에 김관수 관장과 현성이 파일을 열어보려다 멈칫하곤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민욱이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좀 기대가 된다는 사악한 웃음을 띤 채 얘기 했다.

“이시이 관장이 그랑프리 말고 지역 대회는 계약 한 게 없다고 니 일본처 섭외 좀 해달래.”

============================ 작품 후기 ============================

파앙! 팡! 팡! 라스트 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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