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회 - 괴물
현성의 신체는 여러모로 격투기에는 유리한 부분이 많았다. 마치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내추럴 헤비급의 골격과 살인적인 리치를 떠나서 또 하나의 강점이 그라운드 훈련을 진행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우왓!”
알렉세이 코치가 날린 로 킥은 성인 남성보다 1.5배는 큼직한 손에 어김 없이 덥석 잡히고 말았다. 타고난 힘 자체가 차원이 다를 정도로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그 중 유난히 눈에 띠는 포인트가 두 가지 있었다.
“싱글 레그 테이크 다운!”
김관수 관장의 신이 난 듯 한 목소리에 힘입어 순간 현성이 알렉세이 코치의 로 킥을 캐치한 손으로 그의 다리를 움켜쥐고 황소마냥 그를 밀어붙이자 그 어마어마한 힘과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알렉세이 코치의 몸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 사이에 가격된 현성의 로 킥!
-쩍!
“큭!”
보호대를 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며 들어간 로킥에 알렉세이 코치가 데미지를 입음과 동시에 버티지 못하고 몸이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한 번 더 힘을 내세워 현성이 그의 다리를 잡은 그대로 알렉세이 코치를 밀어 붙이자 어느 샌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구의 알렉세이 코치가 바닥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현성이 타고난 덩치를 이용해 알렉세이 코치를 압박하기 시작하자 알렉세이 코치가 그 어마어마한 악력과 힘에 짓눌려 당황한 듯 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러버 가드를 통해서 견고히 현성의 허리를 감싸 안고 저항하기 위한 자세를 잡고 있지만 다리를 끼던 말던 그 강인한 허리는 힘 자체가 남달랐다!
“무슨 힘이 이렇게 좋아! 현성!”
힘 세기로 소문난 슬라브계 백인을, 그것도 러시아 삼보 챔피언 출신의 알렉세이 코치를 이 정도로 힘으로 압도할 줄은 몰랐다는 듯 그가 헛웃음과 함께 소리쳤다. 처음에 현성은 그라운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고, 지나치게 그라운드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몸뚱이 밖에 없어가!”
아직까지 그라운드 기술은 구사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지만 타고난 힘과 근력, 그리고 거기다 체력이 뒷받침 된다는 것은 최소한 레슬링에 있어서 기본적인 압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현성이 보디빌더 이상의 중량으로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그리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골격과 근력 뿐 아니라 몸의 중심이 되는 허리가 남다르게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라운드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허리를 비롯한 코어 근력인데, 그 부분에 있어서 알렉세이 코치를 압도할 정도로 뛰어난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다보니 삼보 팸치언 출신인 알렉세이 코치가 아무런 기술을 시도 하지 못 하고 그저 방어만 급급할 정도로 강한 압박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이드! 무조건 사이드 마운트다, 현성아!”
흔히 현대 격투기는 3가지 요소로 구분을 할 수 있었다. 그라운드, 스탠딩, 그리고 레슬링! 이 세 가지 요소들 가운데 링이 사라지고 케이지가 득세를 하면서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다름 아닌 레슬링이었다. 링과 달리 케이지는 사이드로 몰리게 되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연출해낼 수 있었고, 링보다도 탈출이 어려웠다.
게다가 이종 격투기가 종합화 되면서 전반적인 수준이 향상 되었고, 스탠딩이나 그라운드에서 쉽게 결착이 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수준 높은 공방전도 공방전이지만 판정 또한 승부의 요인이었다. 그런 면에서 테이크 다운은 단일 기술로써는 가장 높은 판정 점수를 받는 기술 중 하나였다. 더불어 레슬링을 통한 압박은 상대의 체력을 급속도로 감소시킬 수 있는 위력이 있었고, 따라서 이 레슬링이 뒷받침이 되는 선수는 스탠딩이든 그라운드든 피니쉬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 기량을 100% 발휘 할 수 있는 선생 조건을 갖춘 셈이었다.
레슬링 자체를 피니쉬로 사용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하지만 승리를 위한 압박, 그리고 공격으로 이를 활용하는 선수들이 대다수인만큼 현성 또한 레슬링 훈련을 등한시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
현재 그의 재능은 타격기에만 집중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계속되는 현성의 포지셔닝 압박에 체력이 빠지기 시작한 듯 알렉세이 코치가 순간 힘이 ㅃㆍ져 그를 놓친 상황에 현성이 번개처럼 다리를 옮겨 사이드 마운트로 자세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알렉세이 코치가 황급히 몸을 움직여 포지션을 빼앗기는 것을 방어해냈지만 금방 또 그의 얼굴을 짓누르는 현성의 팔꿈치 덕분에 숨을 쉬기조차도 버거운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만약 여기에 타격기가 함께 들어왔다면 아마 알렉세이 코치로써는 상당히 상상하기 싫은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아직까지 포지셔닝에 중점을 두어 그라운드 상황에서 파운딩은 포함을 하지 않고 있지만 저 어마어마한 힘으로 압박을 가하는 현성이 그라운드에서 펀치를 꽂아 넣는다면 버틸 래야 버틸 자신이 없었다.
“자, 그만! 다시 일어나라!”
그 사이에 그라운드의 공방전이 교착 상태로 접어들자 김관수 관장이 두 사람의 훈련을 중단 시키고 현성과 알렉세이 코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외침에 현성이 온 몸으로 짓누르고 있던 알렉세이 코치에게서 떨어져 몸을 일으키며 지친 숨을 달랬다. 그리고 그가 손을 내밀자 현성의 아래에 깔려 가드를 하던 알렉세이 코치가 온 몸이 땀에 흥건히 젖은 몸이 되어선 그가 내민 손을 붙잡곤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 몸이 먼저 골병 나겠어요.”
엄살을 부리는 그의 말에 김관수 관장이 다소 미안한 얼굴로 큭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최근 현성이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트레이닝은 삼보 식 테이크 다운과 싱글 레그 테이크 다운으로 대표되는 레슬링 기술들, 그리고 그라운드 압박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라운드 상황에 종종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를 감당해낼 수 있는 그라운드 담당자가 알렉세이 코치 밖에 없다 보니 그가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게 현역에서 물러난 알렉세이 코치에겐 상당히 버거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아니, 그걸 떠나서 깡패들의 건수가 해결 된 이후로 현성의 훈련 량은 더욱 더 증가했고, 저 지칠 줄 모르는 몸뚱이를 도저히 따라갈 재간이 없었다.
“괜찮심까, 코치님?”
지치긴 마찬가지이지만 어마어마한 회복력을 선보이며 어느 샌가 헐떡이던 숨을 진정시킨 그의 모습에 알렉세이 코치가 정말로 할 말을 잃은 듯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노.”
허탈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흔드는 그의 모습에 현성이 미안한 듯 겸연쩍은 웃음을 짓자 김관수 관장이 클클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이제 그라운드 게임 말고 다시 타격도 훈련을 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솔직히 날짜도 이제 며칠 안 남았고, 그라운드 훈련은 알렉세이 코치가 죽을 거 같아가… 내 더 이상 시키지를 못 하겠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은 저기 더미 가지고 진행하고, 기철이 오면 기철이랑 같이 디테일 연습 하자.”
“오, 살았어요! 나!”
웬만해선 엄살을 피우지 않는 러시아 사나이가 지칠 정도로 살인적인 강도에다, 많은 양의 훈련을 소화해내는 현성이다 보니 알렉세이 코치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모습에 현성이 그저 머리를 긁적이는 동안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으며 그간 얘기 하지 않았던 게임 플랜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차준혁이 대비해가 레슬링만 훈련을 해왔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그라운드 상황으로는 안 들어가게 할 생각이다.”
“오, 맙소사!”
그 말에 알렉세이 코치가 장난기 섞인, 다소 허탈한 얼굴로 김관수 관장을 바라보았다.
“원래 다 해야 되는 거 아이가?”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라운드 상황이 나오지 않으면 섭섭할 것 같단 알렉세이 코치의 눈빛에 김관수 관장이 어색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되어 있다! 물론 차준혁이가 테이크 다운을 분명히 시도 하고, 그라운드로 들어 갈라고 기를 쓸 거기 때문에 아예 이 상황이 안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건 그래요. 현성, 그라운드에도 재능이 있지만, 무리수를 안고 갈 필욘 없어요. 기본적으로 타격이 가장 위협적이니까 스탠딩에서 끝을 내는 게 가장 좋아요.”
섭섭하단 듯 장난을 치던 알렉세이 코치가 다시 후후 웃으며 동감한다 이야기를 하자 김관수 관장이 은근히 신경을 썼던지 그제야 안심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요는 초반에 테이크 다운을 노리고 들어오면 그 타이밍을 잡아서 상대를 KO 시키는 거라.”
“테이크 다운을 대놓고 하러 들어올까예?”
이제는 현성도 경험이 생겨 그런지 자신의 의견을 더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척이나 좋은 변화라 생각한 듯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니랑 차준혁이 리치 차이가 30센티다. 안 들어오면 답이 없다.”
엄연히 219센티의 리치는 말 그대로 사기에 가까웠다. 게다가 한방, 한방이 피니쉬의 위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현성의 주먹이 아니던가?
“아마 성격상 처음부터 테이크 다운, 그라운드 돌입 할라고 체력 있을 때 계속해가 태클 시도 할끼라. 그러면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최소한 한 번은 근접에 성공 할 수 있겠제? 더불어 준혁 선수가 상당히 터프하다 안 카나? 경기 봐서 알겠지만 난타전을 별로 안 두려워하는 선수기 때문에 맞아도 넘기면 이긴다 생각을 하고 들어오게 될 거다.”
“…쉽게 생각하면… 내 넘기면 이기고, 못 넘기면 진다고 생각하고 들어온다 이거겠네예.”
김관수 관장의 말을 현성이 잘 이해한 듯 요약하자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체급 차이를 극복하고 밴너를 상대로 그런 KO승을 거둔 현성이다 보니 그라운드 말곤 사실상 답이 없다. 변수 많은 격투기라고 하지만 변수에 의존하기보다는 최대한 높은 퍼센테이지에 의존을 하게 될 것이다.
그라운드! 아직까지 반쪽 파이터인 현성에게는 확실히 그라운드가 약점일 테니! 하지만 접근이 예상된다는 것은 충분히 대비 또한 가능하단 것을 의미했다.
“준혁 선수 테이크 다운이…”
“하단 태클 테이크 다운이다. 실패 하면 체력 소모도 심하고, 상당히… 위험부담은 커도 현성이 니 거리 잡을 라면 가는 그거 밖에 없을 거라.”
이미 비디오와 차준혁의 전 경기는 분석이 끝이 났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김관수 관장의 대답에 현성이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 하단 태클 테이크 다운! 전형적인 레슬러들의 기술! 그것을 잡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생각해내며 현성이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무엇인가가 또 그림이 그려진 모양이다. 이번 시합이 민욱과의 리매치가 걸려 있는 시합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무척이나 진지한 그의 얼굴을 보며 김관수 관장이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카면 이제 슬슬 타격 훈련도 다시 시작하자! K-1 시합도 준비해야 되니까!”
============================ 작품 후기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