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회 - 괴물
지글지글 고기가 익어나는 소리와 냄새는 그 자체로 식감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익어가는 고기 소리와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겐 행복이라지만 현재 감량에 들어가고 있는 현성에게는 고역 그 자체였다. 퀭한 눈으로 불판의 고기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민욱이 ‘우하핫!’ 하고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자 현성이 찌릿 하고 그를 째려보았다.
“징하다, 진짜 니.”
“당연하지. 여기 온 이유 중 하나가 또 너 괴롭히러 온 건데. 내 턱의 원수!”
아직까지 나간 턱의 원한은 잊지 않았다 이야기 하며 민욱이 지글지글 고기를 굽자 현성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얄밉긴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신세 진 것도 있고, 지금이야 미안한 맘도 있다 보니 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저 눈을 감으며 휴 하고 한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에 민욱이 짓고 있던 사악한 웃음을 거두고는 재차 물음을 던졌다.
“아무튼 뭐 준비는 잘 되어 가냐?”
그 물음에 상상으로나마 고기를 먹고 있었던지 잠깐 몽롱하던 현성이 ‘으, 응?’ 하고 눈을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몸이 많이 커져가 감량이 좀 힘들어지긴 했는데 할 만 한 거 같다. 시간도 충분하고.”
“그래?”
그리곤 얄밉게 후후 고기를 식히며 보란 듯이 민욱이 고기를 먹자 현성이 저도 모르게 큭 하고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전까지는 계속해서 증량만 해오던 입장인지라 먹는 것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야 없었다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 모습에 민욱이 정말 얄미운 얼굴을 하고서는 ‘먹을래?’ 하고 고기 한 점을 내밀자 현성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안 된다… 집중 해야지…”
악마의 유혹임에도 불구하고 고개 흔들어 떨쳐내는 그의 모습에 민욱이 ‘이렇게 맛있는데?’ 하고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고기를 입으로 가져 갔다. 그 모습에 현성이 다시 한 번 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진짜 니는 성격적으로 좀 결함이 있는 거 같다.”
“그래, 맞아. 그건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난 지금 이 순간을 즐길 거야.”
할 말 없게 만드는 데엔 도무지 그를 따라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순순히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는 겸허한 마음씨에 현성이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지 꿀꺽 침을 삼키며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내만하면 이 정도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거나, 정말로 감량 중인 현성을 데리고 고기 집으로 오진 않을 텐데 정말 상대는 한다면 하는 녀석이었다.
“아무튼 뭐, 감량 잘 안 돼서 어떻게 하냐? 그래서 컨디션 난조로 그 조폭 아찌 한테 깨지진 않겠지?”
냠냠 하고 소리 내어 고기를 먹으며 던진 그의 물음에 현성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해야지. 문제 많이 안 생기게. 야, 근데 니는 진짜 도와주러 와가 끝까지 좀 멋있으면 안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건 말이 안 된다 싶었던지 허탈한 현성의 웃음에 민욱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그걸로 재미 좀 봤으면 이제 이걸로도 재미 좀 봐야지. 이래봬도 내가 너 사장님이다. 너 사본 격에 사인한 거 잊지 마.”
“…사장님이 자기 소속 선수 이래 괴롭히는 경우도 있나?”
“이게 다 너의 의지를 길러주기 위함이야. 절제! 자제! 흡사 난타전으로 가고 싶은 너의 맘을 억누르고 깔끔하게 특기를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 말이야.”
뻔뻔스러운 얼굴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싶었지만 현성이 그 말을 단순히 농담으로 생각하고 넘어가려다 순간 흠칫 했다.
“밴너랑 붙은 거 재미는 있던데 왜 그렇게 무식한 짓 했냐? 쉽게 이길 수 있었잖아? 그 정도 리치에 움직임도 그렇게 차이가 났는데. 뭐, 일부러 그렇게 했다면 할 말이야 없지만. 결과는 확실히 그게 더 임팩트 있고 좋았으니까.”
말끔한 경기 운영이 주특기이던 민욱이다 보니 그건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 말에 현성이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냥… 은퇴 경기라 카니까 그래 쉽게 따면 안 될 거 같기도 하고.”
“야, 그게 누구 밥 먹여 주냐? 아, 나 고기는 먹여주네!”
금방 또 우하하 하고 얄미운 웃음을 터뜨리며 민욱이 그를 자극하지만 더 이상 현성은 그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았다. 단지 이 얄밉고, 가벼워 보이는 친구가 사실은 표현에 솔직하지 못한 남자란 것을 깨달은 것인지 그를 향해 고마운 눈빛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에이, 밥 맛 떨어지게 무슨 짓이야?”
“고맙다. 오늘 진짜.”
“고마우면 노예처럼 벌면 되잖아. 넌 내 검투사 노예다, 알겠냐? 막시무스.”
“계약서에 수익 부분은 한 개도 안 적혀 있던데?”
둘만의 시간이니 그리 어색해 할 필요 없단 현성의 눈빛에 이번엔 민욱이 좀 당황한 듯 툴툴 거리며 다시 고기를 뒤집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어쩜 이 녀석 또한 자신만큼이나 사람 대하는 것에는 소질이 없는지 모르겠다 생각하며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로 보낼 때 다 포함 할 거야, 멍청아!”
“어쨌든.”
괜시리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던지 민욱이 으 하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시 현성을 바라보았다.
“암튼 뭐 너 그 여자랑은 계속 만나고 있냐?”
“혜주 누나?”
“그래.”
어색한 분위기는 역시나 여자 얘기가 최고라고 생각했던지 민욱이 쌈을 싸며 이야기 하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재운의 일이 처리 되고 나니 이제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다시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민욱이 어이가 없다는 듯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서 웃음을 터뜨렸다.
“뭐, 너는 얘기만 나와도 좋냐? 그렇게 사람이 좋아지냐?”
“그래. 닌 없나?”
무뚝뚝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얼굴 그대로였다. 그 모습에 민욱이 또 다시 말문이 막힌 듯 어버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 형님은 여자는 이제 질리도록 만났다. 근데 넌 참 이해가 안 된다. 너 그 여자가 처음이지?”
이내 페이스를 회복한 민욱의 물음에 현성이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하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 어떻게 한 번만 만나보고 진짜 사랑을 논할 수 있냐? 자고로 뭐든 많이 해본 사람들이 잘 한다는 거 아니야?”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다. 그냥… 좋으면 되는 거 아이가?”
누군가를 만나서 이토록 좋아하게 된다는 것. 그저 혜주 얘기면 싱글벙글인 그 얼굴이, 참 별 일 아닌데도 부럽단 생각이 드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오늘 일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월등히 현성보다 앞서는 입장이지만 이상하게 그가 부럽다 생각하며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너 일본 가서 스캔들도 났더만 솔직히 나이 많은 누나보단 너랑 나이도 좀 비슷하고, 아이돌인 그 여자가 더 끌리지 않냐?”
현성에게는 또래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또래라 할 수 있는 게 창호였으니 오죽 하겠는가? 난생 처음 이런 이야기 까지 나눌 수 있는 민욱의 등장에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사키 또한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혜주의 존재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옅은 웃음을 띤 채 단호하게 고개 흔드는 그의 모습에 민욱이 왠지 모르게 또 다른 의미의 패배감을 맛보았던지 쳇 하고 인상을 구겼다.
“야, 생각 해봐! 나중에 너 서른 되면 그 여잔 마흔 다 되어 가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열린 문 너머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혜주와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함께 따라온 아영의 모습에 순간 민욱이 당황한 듯 ‘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자 혜주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나이 많아서 미안해 죽겠네.”
“아, 아뇨. 뭐 그럴 수도 있죠. 일찍 태어난 게 죄는 아니니까…”
“말하는 거 진짜!”
혜주에겐 지은 죄가 많은 터라 민욱이 낭패란 얼굴로 현성을 홀겨 보았다. 설마 여기로 두 사람을 부른 것인가 하고 그가 현성을 나무라는 눈빛을 보이자 현성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왜 그랬냐 얼굴을 찌푸린 그의 모습에 혜주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 번 민욱을 바라보았다.
“…얘기 듣고 고맙다 칼라 그랬더만 진짜 니는.”
첫인상도 별로 지금도 별로라는 그녀의 말에 민욱이 체념한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야 원래 그런 놈이니까. 그냥 쿨하게 받아 들이겠습니다. 개차반인 거.”
이 정도로 뻔뻔하게 나오면 되려 할 말이 없어지는 건 혜주 쪽이었다.
“그래요, 내가 나쁜 새낍니다. 아, 맞아. 이 아가씨 앞에선 그런 말 하면 안 돼지.”
그리곤 재빠르게 민욱이 아영으로 화제를 전환하자 현성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유난히 긴장을 한 듯 한 아영의 모습에 현성이 ‘왜 그래 겁 먹었노?’ 하고 물음을 던지자 아영이 그의 등 뒤에 숨은 채 말했다.
“천사 오빠랑 싸우던 나쁜 오빠다.”
그 말에 민욱이 뭐라 할 말이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또한 지선을 통해서 아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충분히 분노했던 입장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 방송을 통해서 현성을 처음으로 보았던 것 또한 알고 있었고. 달리 이건 화를 낼 부분도 아니거니와 정말로 자신이 저질렀던 만행들이 있다 보니 뭐라 얘길 할 수가 없는지 그가 애꿎은 상추만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맞은편의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가족처럼 끈끈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더 이상 현성도 괴롭힐 수가 없었던지 민욱이 한숨을 푹 내쉬자 혜주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현성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좋은 기억이 있을 수가 없는 상대이지만… 오늘 그가 도와준 것들을 전해 들었으니 그녀에겐 또한 은인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좋은 마음으로 와서 또 험담하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빠지긴 했지만 더 이상 그 부분은 개의치 않았다. 다른 말 대신 그녀의 손을 꼭 잡은 현성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근데 아영이 참 귀엽게 생겼네. 몇 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민욱이 참 어색해 하며 두 사람을 외면한 채 아영에게 물음을 던졌다. 실제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쁘장하고 귀엽게 생긴 아영의 모습에 호기심이 동했는지 그 물음에 혜주가 피식 웃으며 아영 대신 대답했다.
“아영이는 니 싫어 한다.”
“누님이나 나 싫어하겠죠. 난 여자들한테 인기 쩔어주거든요?”
“악마 오빠.”
그 한 마디에 민욱이 완전 무너져 내린 듯 순간 ‘응?’ 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는 그의 모습에 현성이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민욱이 이런 일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악마라니? 내가 당시에 못난이 한테 좀 막말을 하긴 했지만…!”
아무리 나쁜 남자라 하더라도 아영이와 같은 존재에게까지 나쁜 남자이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항변에 순간 아영이 다른 것보다 현성을 못난이라 부른 게 마음에 안 들었던지 그의 등 뒤에 숨어 발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악마오빠가 더 못난인데!”
유치하긴 하지만 그 말에 민욱에겐 제법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순간 말도 안 된단 얼굴을 하고서 ‘아니, 잠깐!’ 하고 손을 흔들었다.
“와, 진짜 그건 좀 심했다! 아니, 내가 어딜 봐서? 오빠 진짜 잘 생겼단 소리 질리게 들었거든? 그건 좀 아니지, 아영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민욱이 고개를 흔들자 단호한 얼굴로 아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결연한 그녀의 눈빛에 민욱이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듯 ‘하!’ 하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와 진짜. 충격이다. 나 여자한테 이런 말 처음 들어봐.”
“시끄럽고 입 다물고 인정해. 애들 눈이 제일 정확한 거야. 못난아.”
좋아 할래야 좋아할 수는 없는 민욱이기에 혜주가 신이 나서 함께 공격에 들어가자 민욱이 허탈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쿨하게 인정 할 건 인정 합시다. 누님 나이 있고, 나 솔직히 잘 생겼잖아요? 왜 인정을 안 해요? 아니야?”
다시 한 번 민욱이 이해 할 수 없단 얼굴로 혜주와 아영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 모습에 혜주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아영이 경계하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다 진지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이거 농담이 아니잖아? 대체 얘 왜 이래?”
정말로 정색하는 민욱의 모습에 현성이 다시 한 번 푸훗 웃음을 터뜨렸다.
“야, 지금 웃음이 나와? 애가 지금 이상한 심미안을 가지고 있잖아?”
계속해서 투덜거리는 민욱의 모습에 현성 뿐 아니라 혜주도 웃음을 터뜨리자 아영이 영문도 모른 채 두 사람을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민욱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이 동네 나랑은 좀 안 맞다.”
============================ 작품 후기 ============================
이것도 어느샌가 1700키바나 되었군요! 완결 작품 란에 하나 더 추가 되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현자의 시간 주인공이 민욱 현성 정도 될 겁니다. 좀 엄친아스럽죠. 능력 자체가 ㅋㅋ 착한 민욱이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지금 3권 분량 쓰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상당히 만족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대리만족 요소도 어느 정도는 고려를 하고 썼기 때문에, 그런 부분 전혀 고려 하지 않은 괴물보단 접근성이 높을 거구요.
그래도 출판 시장은 아직 확신이 없네요 ㅋㅋ
처음의 열의를 잃어버린 까닭을 찾은 것 같아요. 참 가벼운 맘으로 쓰고자 지른 작품도 웃음기가 나오지 않고 진지해지고 맙니다. 그러다 오늘 문득 깨달은 게 아, 내가 유머를 잃었구나! 문득 그 부분이 생각 나더라구요.
사는 게 빡빡하다 보니 그런 부분을 잃어버린 거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쉴 때 다른 일보다 혼자 술 마시는 날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 외엔 거의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글에 할애하고 있고. 그거 아니면 충동 구매 -_-;;
괴물 완결 이후엔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캐치 할 생각이에요. 그게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