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140화 (140/281)

- 140 회 - 괴물

“솔직히 말해서 너거, 그… 관장이 알면 뭘 알겠노? 우리는 계약 전문가들이라! 일본이랑 저 미국에도 아는 사람들도 많고! 니 돈 많이 벌라고 격투기 선수 했다 아이가? 너거 관장은 그냥 니 트레이닝만 해주면 되고, 계약이랑 돈 문제는 우리가 다 해결을 해주는 거다. 거서 니는 시합만 잘 해가 이기면 되는 거고.”

재운의 제안은 현성으로써도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에이전시라니? 순간 당황한 듯 멈칫한 그에게 재운이 이때다 싶었던지 폭풍 같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현성이 니도 밥샵 알제? 야가 일본에 데뷔해가 한 해 동안 번 돈이 140억이란다. 이게 다 에이전시가 있어가 일본에 있는 프로그램이랑 다 잘 연결이 되가 인기가 그만큼 올라 간 거라. 그때 뭐꼬? 누고? 창호야!”

“크로캅 요런 아들 말입니다!”

“그래, 암튼 가들 뭐 챔피언 하고 캐도, 그런 아들 수십명 모아놔도 밥 샵 요거 하나보다 돈 못 벌었다.”

실제로 크로캅이 챔피언에 오른 적은 없지만 당시에도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고, 높은 몸 값을 자랑하던 선수란 것은 분명했다. 물론 재운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선수라기보다는 거의 엔터테이너에 가까웠던 밥 샵이 일본 무대에 데뷔해서 일으켰던 파란은 정말로 대단했다. 순수한 근육 덩어리 몬스터의 등장! 비스트라는 이름을 달고서 K-1의 제왕이었던 어네스트 후스트를 꺽는 이변을 일으킨 남자! 그것은 흡사 현성의 데뷔와도 비슷한 감이 있었다.

그런 데뷔 전 이후로 밥 샵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아 올랐고, 그 역시 격투기 선수라기보다는 엔터테이너로써의 역할에 더 치중했기 때문에 일본의 여러 방송들과 예능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음반까지도 나오게 되었다. 그 해 밥 샵이 벌어들인 돈은 한화로 약 140억 정도를 웃돌았고, 이는 단일 격투기 선수가 벌어들인 수익으로는 비교 대상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현성이 어렴풋이 재운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던지 쓴웃음을 감추질 못했다.

“요는 저 가지고 장사하고 싶다 그 말씀이시네예.”

“뭐, 생각을 그래 하면 그래 보일 수도 있다! 근데 그런 게 아니고… 잘 들어 봐라. 니가 선수를 해서 돈을 벌 수 도 있지. 그래, 근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걸론 안 된다 이거라.”

“지는 더 이상 벌 생각은 없심다.”

재운의 제안에 대한 그의 답변은 단호했다. 말끔하게 고개를 흔드는 그를 보며 재운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자슥, 와 이래 성격이 급하노? 마, 시간 많다! 느긋하게 생각 해봐라.”

말귀를 못 알아 듣는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합법적인 사업으로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이 분야 일을 쉽게 포기 할 생각은 없는지 그가 웃으며 맥주를 들이키자 현성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전시 같은 거. 다 사업이잖아예?”

“그래, 그렇지!”

“그런 거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랑 해야 되는 거 아입니까.”

전적으로 재운을 믿을 수 없다는 그 말에 이번엔 창호가 실망했단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끼어들었다.

“니 내 못 믿나? 현성아!”

“그래, 니가 정 날 못 믿겠으면 창호가 대신 하면 되는 거 아이가? 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합만 준비하고, 우리가 몇 개 스케줄 물어주면 그거만 소화 해내면 된다! 걱정 하지 마라!”

참으로 더러운 인연의 끈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창호의 이름에 현성이 한숨을 내쉬며 잠깐 눈을 감았다. 그를 바라보는 창호가 부탁한다는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성아, 내 니 어려울 때 도와줬다 아이가? 니도 이번 한 번만 내 좀 도와도!”

하지만 더 이상 그것에 휘둘리지는 않겠다 생각하며 현성이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미안한데 그건 못 하겠심다. 지금도 충분합니더. 나중에 술이나 한 번 살게예.”

그 말에 창호가 실망했단 얼굴로 그를 바라보지만 현성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좀 서운하네. 현성아. 우리가 남이가?”

“그래서 더 못 하겠심다. 개운한 사이는 아니잖아예.”

조폭이라서 엮이기 싫은 것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신뢰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에이전시 문제는 현성으로써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식의 제안은 더더욱! 그런 그의 모습에 재운이 빈 잔을 돌리다 텅 하고 테이블 위에 빈 잔을 올리곤 말했다.

“자슥, 느긋하게 생각해라. 시간 아직 많이 있다 아이가.”

정말로 지긋지긋할 정도로 포기를 모르는 상대였다. 엮인다면 헤어날 수 없을 것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다시 거절을 하려는 그를 향해 재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같은 동네 산다 아이가? 전부 다. 카니까 해놓으면 이 동네 살면서 힘든 일들은 다들 없을 낀데. 도랑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좋은 게 좋은 거 아이겠나? 나쁘면 한 없이 나빠질 수도 있겠는데.”

다시 꺼낸 재운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상냥함이나 배려심 따위는 볼 수가 없었다. 아주 완곡히 돌아가긴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아마 현성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란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울컥하고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현성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생각해라. 천천히.”

지금 당장 대답하라곤 하지 않겠다는 듯 재운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거래는 항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 간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던지! 그가 말했던 대로 어쩜 이기기 위한 거래만을 하니 정말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일런지도 몰랐다. 현성 그 자신을 향한 것은 상관이 없지만 그 주변을 건드린다는 것은… 그로써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직도 서먹하긴 하지만 그래도 간신히 화해한 고모 일가나, 어쩜 김관수 관장이나 기철을 노릴 수도 있었다. 이 세계와는 전혀 거리가 먼 그들이 이것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게 된다면…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혜주와 아영. 자신의 몸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을 건드린단 것은 현성으로써는 도무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참, 혜주 다른 일 한다 카던데 우리도 화환 보냈었제? 창호야!”

“예, 행님. 요새 일 잘 된다 카데예. 여 아가씨들도 거서 옷 사고 한다 카던데예.”

발목에 묵직한 쇠사슬이 감긴 기분을 느끼며 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근이 안 되면 채찍이다. 그리고 그 채찍을 현성이 아닌 그 주변에 고루 사용해 말을 들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다. 이젠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발목이 잡힐 줄은 몰랐다. 진정으로 몰랐다.

깊은 한숨과 함께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웃음을 되찾았던 얼굴에 다시 한 번 그늘이 져있었다. 무감각한 듯 무미건조한 그 얼굴을 보며 그나마 창호가 미안했던지 곁으로 다가오자 현성이 손을 들어 그의 접근을 막았다.

“만에 하나. 내 주변 사람들한테 뭔 일이라도 생겼다 카면 내가 와 괴물인지 알게 될 낍니다.”

그리고 그가 으득 이를 갈며 한 마디를 남기자 창호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현성이 정말로 무서운 건 단순히 싸움을 잘 해서가 아니었다. 한다면 하는 놈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 사나운 기세에 재운 마저 긴장해 꿀꺽 침을 삼킬 정도 였다. 오히려 경험이 많다보니 저런 눈을 하고 있는 상대가 얼마나 위험한 상대인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래, 현성아. 잘 생각 해 보그라.”

하지만 그건 그의 눈 앞에 있는 재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한다면 한다! 똑같은 사람이라면 더 나쁜 쪽이 유리한 것이 세상의 이치다. 결코 그 부분에 있어서 현성은 박재운을 능가할 수 없을 것이고, 결국엔 재운의 뜻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아무 대답 없이 현성이 룸을 나서자 창호가 그 뒤를 따라왔다.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말고, 잘 생각 해봐라!”

“이제 내 더는 빚진 거 없심다.”

더 이상 감성팔이 하지 말란 차가운 그의 눈빛에 창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이야 당장 성을 내긴 했지만 이렇게 잘 되고 있는데 괜히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게 창호라고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었을 터.

그 모습에 현성이 한숨을 내쉬며 BOSS를 나섰다. 오랜만에 마음이 물 먹은 솜 마냥 무겁게 축 늘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잘 되면 그 주변으로 늘쌍 똥파리 같은 것이 들러붙는다는 말을 듣기만 했지, 이런 식으로 자신이 경험 할 줄은 몰랐단 생각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움켜쥔 현성이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가만 안 둔다.”

어떤 식으로든 주변을 건드리기만 하면 조폭이고 뭐고 다 엎어버릴 생각이다. 물론 그런 식으로는 완전하게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계속 해서 악순환이 될 게 뻔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

“하아.”

하지만 현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게 최선이었다. 결국 그 몸뚱이 하나로 해낼 수 있는 일은 그런 것밖에 없다.

그 생각이 무척이나 서글퍼지는 밤이었다. 대체 왜 자신을 이렇게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생각하며 그가 서글픈 발걸음을 옮겼다.

달리 생각해보면 나쁜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당최 들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어떤 방식으로 미화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나쁜 짓에 베이스를 둔 사람들이 그네들이었으니까. 현성이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밑 바닥을 오래도록 생활하며 느낀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해도 나쁜 것이 좋아지진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좋아 보여도 내용물은 여전히 같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박재운 같은 사람이 사업 수완을 발휘한다 한들 결국 그건 현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신을 위한 일이 될 게 틀림없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거리를 거닐며 그가 깊이 숨을 들이켰다. 어떻게 하면 될까? 대체 이 일을…

아무리 생각하고 머리를 짜내도 답은 보이지 않았다.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현성이 집을 향해 홀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차갑게 얼어버린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니 아니나 다를까 혜주에게 걸려온 영상 통화였다.

“여보세요?”

어두운 밤거리라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진 않겠지만 현성이 전화를 받자 화면 너머로 혜주와 아영의 모습이 동시에 비췄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들어왔던지 두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그 모습만으로도 굳어 있던 현성의 얼굴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오빠야!”

“내일부터는 훈련 다시 시작해야 된다 그카드만 어디야? 바람피러 다니는 거 아니지?”

강아지처럼 들뜬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아영과 찌릿 하고 그를 노려보며 다시 예의 그 질투심을 선보이는 혜주. 두 사람의 모습에 현성이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먹먹한 기분을 느끼며 대답 없이 그저 웃음만 지었다. 무어라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이야기가 도통 나오질 않았다.

“오빠야 왜 말 안 하는데?”

그 사이 아영이 말이 없는 현성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음을 던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옅은 웃음을 띤 채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하다 느낀 건 아영 뿐만 아닌 듯 했다. 혜주 역시 그의 모습에 장난을 치려다가도 짐짓 심각해진 얼굴로 걱정을 보이자 현성이 그제야 웃으며 대답했다.

“추워서 입이 얼어가.”

그 말에 아영이 꺄르르 웃으며 ‘와 말했다!’ 하고 좋아하자 현성이 그녀를 따라 웃음 지었다.

“추우면 걷지 말고 택시 타고 오면 되잖아! 바보야!”

항상 현성이 고민 거리가 있을 때엔 홀로 걷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혜주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소리쳤다. 그 외침에 현성이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간질간질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갔다 올 때 있어서예. 금방 들어갈게요. 아니다, 맛있는 거 사들고 거기로 갈까? 내일부터는 감량도 해야 되니까 오늘만 먹을 수 있는데.”

그 말에 혜주가 ‘그래!’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도 확실히 일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환한 웃음을 보여주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영상 통화로도 얼핏 비치는 걱정스러운 얼굴에 현성이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카면 좀 있다 봐요. 한 한 시간 뒤쯤에 갈게예.”

“그래! 아영아, 한 시간 뒤에 현성이 오빠 온단다!”

“진짜요?!”

“그러면 우리는 또 아영이 씻고 공주님 옷 입어야 겠네!”

“히히, 응! 언니!”

금방 또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영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화장실로 달려가는 모습에 현성이 다시 웃음 지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든 일을 내려도 결코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는지 몰랐다.

아영이 화장실로 사라지고 홀로 남은 혜주가 화면 너머의 그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무슨 일인데…?”

“괜찮아요. 요즘 내가 너무 잘 나가서… 근데 금방 정리 할 거에요. 걱정 하지 마요.”

그런 일이 있었다 차마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어떤 일이 있던지 그녀와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지만 아마 이런 이야기를 했다간 지금의 혜주로썬 차마 견뎌내기 어려울지 몰랐다. 그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생각이 또 다시 든다면 말이다. 그걸 알기에 현성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서 그저 웃음만 짓자 혜주가 이전처럼 채근대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 내 꼭 안아줘요.”

그런 그녀를 향해 그가 지금 가장 필요한 게 그것이라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에 혜주가 ‘응…’ 하고 다시 환한 웃음을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연락 하께요, 누나.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아영 몰래 핸드폰 카메라에 살며시 입술을 마주한 혜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상통화가 끝이 났다. 그 여운이 남아 있던지 현성이 우두커니 선 채 계속해서 핸드폰을 바라보다 후우 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다.”

============================ 작품 후기 ============================

저는 털어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을 클린 로맨틱가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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