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회 - 괴물
격투 계를 논함에 있어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셔독’이었다. 거의 격투기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는 이 격투 팬 사이트는 격투기 커뮤니티의 메카와도 같은 곳이었는데, UFC와 별도로 셔독 랭킹이 따로 존재 할 정도로 셔독은 격투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리고 1월 1일. 해가 바뀌자 마자 셔독에는 일대 파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제롬 르 밴너, 한국의 신예와 난타 끝에 패배!
K-1의 연말 이벤트였던 다이너마이트가 끝나기도 전에 그 소식이 셔독에 전해졌고, 그것은 곧 전 세계의 격투기 팬들에게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제롬 르 밴너가 은퇴 경기에서 졌단 말이야?
-질 수도 있잖아? 그는 이미 전성기가 지나갔으니까.
최초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밴너의 노쇠화! 격투기 종목에서는 결코 강자라 할 수 없는 동양의 신인에게 패배한 것은 그가 늙고 지쳤기 때문이라는 일반적인 평이 가득했다. 그도 그런 것이 이미 밴너는 사와이시키 준이치나 쿄타로 같은 일본인 선수들에게도 판정으로 패배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정말 파란이 일어난 것은 누군가가 경기 영상을 인코딩 해 올리고 나서부터였다.
-멍청이들! 그냥 이긴 게 아니라 정면 승부로 이겼단 말이야! 그 밴너를 1라운드 실신 KO로 이겼다고!
-더구나 그는 사모아인도 아니었고, 밴너보다 20킬로나 가벼웠다고 해!
기본적으로 헤비급은 한방이 있는 체급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늙었다 하더라도 수퍼 파이트 한 경기를 소화해내지 못 할 정도로 무딘 밴너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어련히 이겼다면 판정으로 이겼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천지 차이의 결과였다.
-맙소사! 펀치를 맞을 때 마다 휘청하는데도 물러서질 않아!
-뭐야? 이건 꼭 좀비 같아! 어떻게 이렇게 튼튼 할 수 있지?!
사실상 다이너마이트 대회는 실제보다는 ‘정치적인 시합’에 가까운 경기였다. 이기든, 지든 현성은 밴너라는 유명한 상대를 만나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대의 최고 하드 펀처를 펀치로 제압하면서 밴너의 후광과 이름을 모두 계승해낼 수 있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이 현성이나 김관수 관장이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강렬한 인상을 줄 필요가 있었고, 그것을 위해서 지더라도 화끈한 모습을 보이고자 결심을 내린 것이었지만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사람들은 큰 골리앗 보다는 작은 다윗이 이기기를 바래왔다. 그리고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지혜와 꾀를 사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이야기의 정설이자 알리고자 하는 바였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을 말도 안 되는 투지와 근성으로 정면 격파를 한다면? 그 자체로도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단 느낌과 함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20킬로나 가벼운 동양인 선수가 하이퍼 배틀 사이보그를 쓰러뜨렸다! 실신 KO로! 그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하겠는가?
-와! 끝내 주는 군! 빨리 데이나는 이 선수를 데리고 와야 해!
-진짜 K-1 경기를 보는 기분이었어. 최근엔 우습잖은 프로레슬링 매치 밖에 없었다고.
-아, 걱정 된다! 그도 일본에 있다간 우스운 서커스 매치의 희생양이 되고 말거야!
게다가 인터넷은 정보가 연이어 흘러나오기가 좋단 강점이 있었다. 그와 동시에 ‘사이토’라는 일본인 유저가 현성의 프로모션과 로드원 FC 시합 영상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 격투기 팬들의 반응은 더욱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대단하다, 정말. 그냥 흔해 빠진 선수와는 확실히 뭔가가 다른 것 같아.
-진짜 끝내준다! 최근에 이렇게 멋진 경기는 처음이야!
그의 경기에 깊은 영감을 받아서 완전히 반해버린 사람들이나,
-뭔지는 몰라도 불과 7달 전에는 저렇게 말랐었단 말이잖아?
-맙소사. 정말 격투기 경력이 1년이 안 된단 거야?
믿을 수 없는 현성의 전적과 성장세에 더욱 더 감탄하는 사람들이나!
관련 영상은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조횟수가 10만 건 이상을 기록했고, 댓글이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내리막길이라 평 받고, 서커스 매치라 조롱 받았던 K-1의 근래 경기 중 가장 높은 조회와 가장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 말 그대로 거의 모든 격투 팬들의 시선이 단 한 순간에 현성에게로 집중 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이 선수의 이름은 뭐지? 어느 나라 사람이야? 중국인? 일본인?
그 와중에 누군가가 물음을 던졌다.
-장현성이라는 한국 선수야. 나이는 20살. 오, 리치가 무려 7.18 피트나 된다는데?
-괴물? 한국어로 MONSTER란 뜻이래. 잘 어울리는 별명이야!
-화상 때문에 더 무서워 보이는 것 같아! 정말 굉장한 선수야!
-그건 결코 무서운 게 아니야! 그가 어릴 때 입은 상처라고 하는 군. 매우 슬픈 상처야.
-그것 말고도 사연이 많은 선수야. 한국어를 알고 있다면 이 영상을 봐. 링크 해줄게.
그리고 그 물음을 필두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현성에 대한 이야기들! 단 하루 밤 사이에, 현성도 알지 못한 그 시간에 그의 커리어가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 속에서 말이다.
그건 셔독 뿐 아니라 국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31일부터 1월 1일 오후가 될 때 까지 현성의 경기는 포털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 10위안에 머물며 인기 몰이를 했고, 국내의 이종격투기 카페들 역시 난리가 나고 말았다. 일본 현지 언론은 더 말 할 필요가 없었고 말이다.
정말로 단 하루만에, 눈을 뜨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었단 말처럼… 모든 것이 급변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
“음…”
그때까지도 현성은 잠에서 깨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파급 효과를 몰고 와 승리를 거머쥐긴 했지만 20킬로나 무거운 밴너의 펀치를 온 몸으로 버틴 것은 신체적으론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퉁퉁 부어 있는 얼굴과 온 몸이 콕콕 쑤시는 고통 속에서도 그동안의 모든 피로를 쏟아 부은 듯 연달아 잠만 자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혜주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닌가 걱정이 돼서 마음을 졸이기도 했지만 극도로 긴장하고 있던 것이 풀린 데다 피로가 무척이나 크게 쌓여 있는 상태이니 그럴 수도 있었다. 의료진이 이상이 없다 진단을 했고, 김관수 관장도 그 짧은 시간을 준비하면서 현성이 얼마나 지독스럽게 달려왔는지 알기에 그것에 대해서 크게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진짜 우에 이래 잠만 계속 자노. 축하 파티도 못 하구로.”
“그러게요. 진짜, 맞지 말라니까!”
이기는 것보단 그가 덜 맞는 게 좋다. 아직도 그 마음이 변함이 없는지 혜주가 뾰루퉁한 표정을 짓자 김관수 관장이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캐가 이제… 쭉쭉 나갈 일만 남은 거 아이겠나? 벌써 로드원이랑 K-1에서도 연락오고, 보니까네 다른 데서도 관심 장난 아니다 카는데.”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속이 상하겠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타고난 복이었다. 기본적으로 격투기 역시 엔터테이너의 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보니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선수가 인기가 많고, 또한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었다. 현성 자체가 원래 그런 끼는 없다지만 적어도 프로 격투가로써, 무대 위에서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혜주의 걱정스러운 마음과는 다분히 상충 되는 부분일테지만…
“그러니까요! 인제 돈 많이 받으면 그냥 그러지 말고 살살 하라 그럴라고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미소 짓는 혜주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오냐!’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정말로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어 버렸다. 로드원과의 계약도 계약이지만 K-1 측에서도 바로 오퍼를 보내왔다. 류이치를 통해서 3년 계약을 제시했고, 단위가 이미 억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것은 국내 격투기 선수들 가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수익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현성 자체가 타고난 부분이 있는데다 매번 결과를 만들어 내니 이 정도 받는 것도 당연하다 싶고, 뿌듯한 감이 있었지만 혜주는 그게 마냥 좋아 보이진 않았다.
많이 부어 오른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조금 생각에 잠긴 듯 한 얼굴을 한 그녀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힐끔 그녀를 보며 물음을 던졌다.
“근데 와 그래 안 좋아 보이노, 혜주야?”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금방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혜주가 고개를 흔들어 보였지만 김관수 관장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 것이란 그의 모습에 그녀가 이런 이야긴 좀처럼 해본 일이 없다는 듯 ‘그냥…’ 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현성이 이제 이렇게 잘 나가니까… 내 같은 건 필요 없겠다 싶어서.”
“에헤이, 그럴 리가 있겠나? 현성이가 누군데!”
생각지도 못한 그 말에 김관수 관장이 깜짝 놀라 이야기 하자 혜주도 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부어 오른 호빵 같은 얼굴로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잠을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보이는지 무척이나 따뜻한 눈빛을 하고서 그의 뺨을 간질이듯 어루만졌다.
“내가 발목 붙잡을까봐 걱정 돼서 그래요. 관장님도 아시잖아요.”
그를 마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대고,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보다 7살이 많았다. 그 인생의 깊이만큼이나… 이렇듯 현성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커져가게 된다며 자연스럽게 그녀 자신이 그에겐 걸림돌이 될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진짜 우리 현성이한테 그런 건 안 되고 싶어요.”
“…혜주야.”
“내가 현성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아는데! 술집 여자 만난다고 그냥 양아치 건달이다… 그러면 내가 너무 속 상 할 거 같아요. 그리고 또… 이만큼 잘 나가는데 나 같은 거 보다는…”
많이도 되뇌이고 생각해본 문제들.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꺼내자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왠지 모르게 뜨뜻해지는 눈가를 느끼며 혜주가 애써 밝은 얼굴로 눈물을 참고 웃음 지었다.
“난 진짜 우리 현성이 너무 좋아하니까. 제일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필요가 없다면 난 사라질 수도 있어. 이런 마음을 가져본 일이 있었던가? 아니,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김관수 관장이 절대로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우리는 그런데 절대로 안 흔들린다.”
그리고 그가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줄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는 현성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퍼질러 자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지만 그의 눈에는 두 사람 모두가 너무나도 예쁘게 보였던 모양이다.
“둘이 내 염장 질러줘야지 나도 정여사님이랑 좀 잘 해볼 거 아이가?”
그 말에 혜주가 웃음이 터진 듯 입을 막고서 웃음 지었다.
점점 높은 곳으로, 날개를 단 듯 날아가는 그를 보며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곁을 지키는 일 뿐이라고.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 땐 차마 가는 길 막는 장애물은 되지 말자 생각하며 혜주가 다시 현성의 뺨을 어루만졌다.
“…너무 멀리는 안 갔으면 좋겠다.”
============================ 작품 후기 ============================
실수로 오늘 2편 올라갔네요… 원래 하루 1편씩 올라갈 예정이었는데…
내일부터 다시 21일까지 현자의 시간 2권 들어갑니다.
널널할 줄 알았더니 취직하고 시간이 전혀 없네요.
다음엔 진짜 레알 조직물도 한 번 써보고 싶네요. 어정쩡하게 중간에 걸치는 거 말고 대부나 이스턴 프라미스, 스카 페이스 필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