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131화 (131/281)

- 131 회 - 괴물

그 어떤 싸움보다 격렬했고, 그 어떤 싸움보다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한 그 느낌들 속에서 날아드는 밴너의 펀치는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했다. 온 몸 뼛속 깊이 새겨지는 그 강렬한 충격을 다시 한 번 맞이하자니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먼저 나왔다.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의 펀치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후웅…!

바람을 가르는 듯 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흡사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공기를 찢고서 그의 주먹이 현성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몸이 바짝 굳은 듯 쉽게 움직이지 않았지만 주먹을 내질러야만 했다!

‘이게 마지막이야! 여기가 승부처야!’

그 생각이 든 순간 마음은 오히려 한결 가벼워졌다. 내용면이야 어쨌든 승리의 기회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열망! 살아가며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목표! 꿈! 그것들을 간신히 가지게 된 지금 이 순간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조금 더 먼 곳으로 날개 짓을 하고 싶었다. 꿈은 물론, 내일조차도 없었던 자신을 떨쳐내고 새롭게 한 걸음을 내딛고 싶었다.

이제는 그 끔찍했던, 활활 타오르던 과거의 고통들을 모두 떨쳐내고 이제 그만 스스로를 용서하고 싶었다!

“하아아아!”

본능적이었다. 수천, 수 만 번에 가까울 만큼 지금하게 연습했던 패턴 그대로! 사슬에 묶인 듯 굳어 있던 몸이 그 오랜 속박을 깨냈다! 단 한 번의 기회도 놓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숙인 덕킹 동작! 그리고 아슬하게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는 밴너의 주먹! 바로 그 순간 현성이 온 힘을 다해서 반원을 그렸다.

-후웅!

마치 9회말 마무리 투수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서 던진 반원은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호랑이처럼 역동적이었고, 강렬했으며, 아름다웠다.

“으아아…!”

손 끝에 걸린 묵직함! 그리고 그것을 부서야만, 그것을 이겨내야만 이겨낼 수 있어! 더 이상은 과거에 사로잡혀 있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열망을 담은 주먹이 그대로 밴너의 얼굴에 닿았다.

-콰직!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그의 주먹이 밴너의 안면을 강타했고, 그와 동시에 밴너가 의식을 잃은 듯 통나무처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쿵…!

그 모든 장면이 슬로우처럼, 아찔한 정신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숨소리가 귓가가 아니라 마치 뇌 속에서 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 멍한 자리에서 쓰러진 밴너는 눈을 뜨지 못했고, 이내 심판 기쿠다가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1라운드를 단 3초 남겨두고 터진 카운터 KO승에 도쿄돔이 폭발하듯이 흔들렸다. 그 환호 속에서 현성이 그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던지 멍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장현성! 승리! 승리했습니다! 제롬 르 밴너에게…! 역대급의 카운터를 선사하며, 밴너에게 승리 했습니다! 아아아아아!”

“정말 대단합니다! 전관예우가 무엇인지, 그리고 차세대 하드펀쳐가 누가인지! 자신의 진가를 완벽하게 드러낸 경기였다 보입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같은 나라 사람을 떠나서 정말, 정말 이 경기는 최고의 경기입니다!”

감격에 겨워 MC 용준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고, 김대환 해설위원 역시 흥분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처음부터 무리수를 두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저돌적인 시작에서, 중간의 위기! 그러나 결국 승리해내지 않았던가?

단순히 밴너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었다거나, 그의 부상을 이용해서 승리 했다면 이 정도의 감동은 전해져 오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았단 것! 그리고 20킬로나 가벼운 몸으로, 펀치를 맞으면 몸이 휘청하고 밀려나갈 정도로 열세인 장면에서 이만한 그림을 만들어 냈단 것은 틀림없는 반전이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제롬 르 밴너 대 장현성! 팬들도 인정 할 수밖에 없는지 기립박수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아아! 오오츠카 사키는 울고 있습니다! 엄청납니다! 정말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갈라진 용준의 목소리가 울리는 동안 스크린은 눈물을 흘리는 사키를 비춰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더욱 더 큰 화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현성은 스크린이나 사람들의 소리는 들어오지 않는 듯 어느 샌가 밴너의 곁으로 가 있었다.

온 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금방이라도 누워 쉬고 싶은… 그러면서 동시에 이 승리에 도취하여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마지막까지 이 좋은 모습을 함께 했던 밴너를 챙기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 듯 그가 쓰러져 있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자 잠깐 의식을 잃었던 밴너가 움찔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환호 속에서 별처럼 빛이 나고 있는 도쿄돔 스타디움을 천장을 바라보며 그가 모든 것이 끝이 났단 것을 실감한 듯 옅은 미소를 띤 채 현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아 현성이 밴너를 일으켜 세우려다 힘이 빠진 듯 잠깐 비틀하고 말았다. 하지만 로프를 잡고서 다시 그가 밴너를 일으키자 밴너가 지친 숨을 내쉬며 그의 손을 번쩍 들어 주었다.

“오오오오! 너무나도 멋진 광경입니다! 아아…! 사나이 가슴을 울립니다!”

자신의 마지막을 이렇게 화려하게 장식해준 상대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듯 현성의 손을 들어 올리고서 그에게 꾸벅 인사 하는 그의 남자다움에 반한 듯 MC 용준이 다시 한 번 더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외침과 함께 도쿄돔의 관중들도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굿 보이.”그리고 그의 말에 왠지 모르게 현성이 울컥하는 기분을 느끼며 ‘감사합니더!’ 하고 고개를 숙이자 밴너가 말없이 그를 안으며 현성의 등을 툭툭 쳤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으며 진심으로 상대를 축하 할 수 있는 것!

“두 사람 모두가 승자입니다! 패자가 없는 경기!”

여운이 가시질 않는지 박수와 함성이 끝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밴너의 축하를 받고 나서야 그 모든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 그가 주먹을 들고 감격에 겨운 듯 눈을 감았을 때 참고 있던 김관수 관장과 토네이도 짐의 스태들이 드디어 링 위로 들어와 ‘현성아!’ 하고 그를 부르며 그를 끌어안았다.

위기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그 위기를 잘 극복해냈다! 그 어떤 시합보다도 값진 승리였다. 승리보다도 그 내용면에서 아마 현성은 이제 전 세계 격투 팬들에게 그 이름을 단단히 새겼을 것이다.

“잘 했다! 진짜 잘 했다!”

“관장님…!”

이젠 밴너 대신 김관수 관장의 품에 안겨 현성이 울먹이며 그를 불렀다. 해가 바뀌는 마지막 순간! 그 지난 시간들이 모두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도망칠 곳조차 없었던 때! 마지못해서 시작했던 프로그램!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바뀌어 간 수많은 것들…! 울기도 많이 울었고, 힘겨워 하기도 많이 힘겨워 했었던 시간 속에서 뛰어든 격투기였다.

아직 갈 길은 멀었고,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현성이 기대했던 이상을 그에게 안겨 주었으니까! 자신을 믿고 따라온다면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는 그의 말을 되새기며 현성이 ‘이겼심다!’ 하고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그 누구에게도 해보이지 못했던 자랑! 아버지가 있었다면, 어머니가 있었다면 자랑스럽게 꺼내보였을 그 마음을 그제야 털어 놓자 김관수 관장이 온화한 얼굴로, 흐뭇함을 가득 담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했다! 장하다! 내 아들!”

그들의 유대는 어쩌면 단순한 사제지간 이상이었는지도 몰랐다. 가족이 없었기에, 더욱 더 서로를 잘 헤아릴 수 있었던…! 그 말에 현성이 밴너를 이겼을 때 보다도 더 기쁜 듯 함박 웃음을 띤 채 다시 한 번 김관수 관장을 끌어안았다.

“진짜 둘이서만 그카면 됩니까! 우리도 좀 껴줘야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기철과 알렉세이 코치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소리쳤다. 그 두 사람의 말에 네 사람이 서로 얼싸 안고 기쁨을 나누는 동안 김관수 관장이 괜시리 코 끝이 찡해진 듯 ‘현성아!’ 하고 그를 불렀다.

“우리만 이카면 또 예린이랑 혜주, 아영이도 삐진다!”

관중석에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서운하게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냔 그 말에 현성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곤 뒤돌아섰다. 방향 감각도 잠깐 상실한 듯 위치를 잡지 못하는 그를 김관수 관장과 기철이 아버지와 친형 마냥 듬직하게 지탱하며 방향을 가르쳐 주자 그 자리를 바라보며 현성이 손을 흔들었다.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아직도 정신이 없어 잘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관중석의 세 사람은 다른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그의 모습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성이 누굴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는지 찾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가 손을 흔드는 방면에서 그의 승리에 누구보다 기뻐하며 눈물까지 보인 채 화답하고 있는 세 여자를 알아보는 것은!

그건 사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화면은 종종 그녀의 모습을 비추곤 했지만 그는 결코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오로지 그 자리에 있는, 그의 연인이라 했던 ‘혜주’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그것이 그답단 생각이 들었지만 한 편으론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기분과 왠지 모르게 슬픈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익숙한 일이니까. 그 마음까지 묻은 채 사키가 박수를 치는 동안 그녀의 곁에 있던 이시이 관장이 세컨으로 있다가 부름을 받고 달려온 류이치에게 속삭였다.

“대회가 끝이 나는 대로 계약 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준비를 해주게.”

1경기가 끝이 나자마자 전달한 이시이 관장의 말에 류이치가 덩달아 들뜨고 흥분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계약 건이라구요?”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단지 같은 선수를 떠나서 현성의 팬을 자처한 입장으로써 일본 무대에서 그를 좀 더 자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혹시 K-1 월드 그랑프리 대회에 대한 계약 말씀이십니까?”

K-1 자체 내의 가장 큰 대회! 월드 그랑프리! 그 말에 이시이 관장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놓쳐선 안 되니 코지마 실장과 얘기해서 잘 풀어주게. 야마다 군.”

============================ 작품 후기 ============================

현성 전적.

비공식전적

이민욱 - 1R KO승 펀치(비공식)

공식전적

김영찬 - 1R KO승 니킥(데뷔전)

이재석 - 1R KO승 스핀킥

야마다 류이치 - 1R KO승 하이킥

제롬 르 밴너 - 1R KO승 펀치

4전 4승 4KO승 4연속 1회 KO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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