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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129화 (129/281)

- 129 회 - 괴물

모든 것이 슬로우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 찰나의 선택이 모든 것을 좌우했다. 그리고 그 결과!

“와아아아아!”

“정말, 정말 대단합니다! 장현성 선수! 그 상황에서 백 스핀 킥으로 반격했습니다!”

온 몸이 소름이 돋은 듯 양 팔을 어루만지며 MC 용준이 갈라진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밴너의 펀치를 처음부터 피할 생각이 없었던지 이재석을 쓰러뜨릴 때와 같이 밴 스핀 킥으로 반격을 가한 현성!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밴너의 펀치가 그의 안면에, 현성의 킥이 밴너의 오른쪽 갈빗대에 닿아 있었다! 실질적으로 그 정도 위력이라면 밴너가 밀려나 펀치를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체급 차이는 그것조차도 극복하도록 만들었던 모양이다. 크게 일그러진 밴너의 얼굴을 보아선 분명히 데미지를 주긴 했으나 현성 역시 안면에 닿은 밴너의 레프트를 버티기 힘들었던 모양인지 비틀 하고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하아… 하아..”

조금 더 깊게 들어왔다면 턱이 돌아 가버렸을 정도로 강렬한 펀치에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을 느끼며 현성이 다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 찰나의 순간 본능적으로 반격을 가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은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작부터 격렬한 난타전의 결과인지 벌써부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게다가 아까 들어온 펀치는 아직까지도 현성의 머리를 핑 돌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다리도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정말 여지껏 해온 싸움 중 가장 힘든 싸움이라 생각하며 현성이 지친 숨으로 밴너를 바라보았다.

그와 같이 지친 숨을 몰아쉬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거대했고, 묵직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심장이 미친 듯 요동치고 있었다. 이대로 밴너가 다가온다면 아마 버티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온 몸이 터질 듯 뜨거운 가운데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밴너 역시 현성의 킥으로 인해 쇄도해 들어오지 못하고 주춤하고 있단 것이었다.

“어마어마합니다! 그 유명한 제롬 르 밴너의 레프트를 백스핀 킥으로 막아냈습니다! 장현성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 그 순간의 판단력은 감탄을 금 할 길이 없습니다! 이건 K-1 역사상 길이 남을 명승부라고 봐도 좋을 겁니다!”

감탄을 넘어서 감동을 받은 듯 한 MC 용준과 김대환 해설위원의 해설이 울려 퍼졌다. 말 그대로 도쿄 돔에 운집한 3만 여명의 팬들이 마치 소요 사태의 폭도들처럼 맹렬한 함성을 내지르며 특설 링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격렬했던 싸움 이후 오랜만에 정적이 찾아오고 있었다. 서로를 몰아치던 신구의 두 사내가 잠깐 숨을 고르는 그 순간마저도 폭풍 전야와도 같은…!

“아무래도 경기는 1라운드 안에 승부가 날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소임을 다하고자 냉정함을 선보이는 김대환 해설위원의 말에 MC 용준이 놀란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이렇게 치열한데 말입니까?”

“사실 방금 그 장면에선 누구 하나 쓰러졌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서로 반격이 적중하면서 데미지가 분산된 감이 있지만 그렇다 해도 서로 치명타가 들어갔다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두 선수 모두 남은 시간 안에 승부를 낼 것 같습니다. 결과야 어쨌든 이건 두 사람 모두가 승자인 시합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그 말 그대로였다. 실제로 그 말을 듣고 그리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만 링 위의 현성과 밴너 역시 생각이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이상하게도 주먹을 치켜들고 서로 대치한 상황 속에서 묘한 교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공동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밴너와 알 수 없는 눈빛을 주고받던 현성이 후우 하고 숨을 내뱉으며 주먹을 들었다.

이제 내가 다시 가겠다는 듯 한 그의 신호에 밴너 역시 오른쪽 옆구리가 보라색으로 변색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가드를 굳건히 할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현성이 다시 한 번 밴너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잠깐의 정적 이후 다시 한 번 폭풍이 몰아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오츠카 사키의 얼굴이 잠깐 스크린이 비쳐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 할 정도로 집중한 듯 고요해진 도쿄 돔!

설마 무명의 신예가 이 정도로 잘 싸우리라곤 예상을 하지 못한 듯 그들이 꿀꺽 긴장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쩌억!

“와아아아아아아!”

다시 한 번 함성이 시작되었다! 정적을 깨뜨린 것은 역시나 이번에도 현성이었다! 다리가 떨려왔지만 그 떨림을 떨쳐내기 위해서 내 던진 로킥이 채찍처럼 밴너의 다리를 휘감았다. 그러나 그것에 대비가 된 듯 밴너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날카로운 라이트로 응수를 해왔다.

-후웅!

등골이 서늘한 펀치가 아슬하게 현성의 이마를 스쳤다! 그러나 그것에 놀랄 겨를은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채 2분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승부를 내야만 한다! 그 일념 하나로 밴너의 펀치를 피한 현성이 순간 레프트 바디 샷으로 밴너의 오른쪽 옆구리를 노렸다!

“큭!”

순간 밴너가 가드를 하면서도 움찔하자 현성이 밴너의 몸에 이상이 왔단 것을 느낀 듯 눈썹을 꿈틀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곳은 링! 강한 자가 서 있고, 약한 자가 쓰러져야만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곳이 아니던가? 부상에 불구하고 밴너가 반격의 펀치를 날리자 현성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그 펀치를 피해내며 번개처럼 밴너의 안면에 라이트 훅을 찔러 넣었다!

-퍼억!

“정타! 정타가 다시 한 번 들어갑니다!”

“밴너 선수가 부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작이 날카롭지 못해요!”

“과연 살인적인 위력입니다, 장현성 선수!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훅에 흔들리는 밴너!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는 듯 그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반격의 주먹을 날렸다.

-퍽!

그대로 현성의 얼굴을 흔든 그의 주먹에 현성이 비틀하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버텨낼 뿐이다!

-퍼억!

그리고 이번에는 현성이 반격의 주먹을 날렸다. 상처가 생기고 부은 밴너의 얼굴을 다시 한 번 흔드는 그의 주먹!

“이번에도 다시 노 가드 입니다! 맙소사! 대체 이런 시합이 어디 있습니까!”

“충분히 쉽게 가져 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습니다, 장현성 선수!”

조금 의아하단 눈으로 현성을 바라보며 밴너가 의문이 담긴 눈빛을 해보였다. 이미 그는 전성기를 지나 노쇄 했고, 방금 전의 카운터로 입은 상처는 무엇보다도 치명적이었다. 비록 그 역시 밴너의 레프트 스트레이트에 당한 충격이 있다지만 충분히 회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지난 시합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사정없이 로 킥을 난사하며 충분히 요리를 할 수 있겠지만 현성은 그리 하질 않았다.

“어리석은 친구.”

그 모습에 밴너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마 그가 계속 프랑스에서 선수 생활을 해왔다면 이게 어떤 의미인지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의 인생의 절반을 아시아권에서 보내지 않았던가? 그것이야 말로 현성이 자신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라는 것을 느낀 듯 밴너가 갈빗대가 나간 듯 심하게 부어올라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이 온 몸으로 퍼져감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그를 향해 펀치를 날렸다.

-퍼억!

부상이 있다지만 위력은 여전했다. 체급의 차이에 나오는 파괴력에 현성의 몸이 휘청하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움찔할 정도였다. 그러나…!

“받아 칩니다! 장현성! 아아! 대단합니다!”

밀어내도 밀려나지를 않는다! 쉽게 가져갈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상대와 펀치를 교환하는 그의 모습은 도쿄돔의 찬사를 이끌어 내기 충분했다. 열화와 같이 쏟아지는 함성 속에서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까지 모습을 보였다.

“승리를 위해서라기엔 너무 무모하지 않나 싶습니다! 단순히 승리를 위해서라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충분 할 텐데… 전관예우라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장현성 선수-!”

분명히 쉽게 가는 방법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게 이긴다면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최소한 현성의 생각은 그러했다. 물론 그가 늙고 부상당한 밴너를 쓰러뜨렸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 모든 것들을 떠나서 그와의 투쟁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교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현성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즐겁다!’

무어라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치 상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맞으면 몸이 휘청일 정도로 펀치는 대단했고, 데미지 또한 평소 시합과는 달랐다. 모든 것이 상상을 초월했지만… 이상 할 정도로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파박!

그랬기 때문일까? 무수히 쏟아지는 밴너의 펀치를 가드 없이 정면으로 도전하며 현성의 원, 투가 불을 뿜었다. 순간 말끔하게 들어간 펀치가 밴너의 얼굴을 흔들자 120킬로의 밴너가 뒤로 휘청 였다. 드디어 거대한 산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앗!”

그리고 현성이 전진형 스탭과 동시에 어깨에서 반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러시안 훅을 연이어 날렸다. 타고난 핸드 스피드에 타고난 힘! 프로가 아닌 일반인 시절에 민욱을 쓰러뜨렸던 바로 그 펀치를 말이다!

-퍽!

“러시안 훅! 장현성 선수! 러시안 훅을 폭발 시킵니다! 이제 경기는 막바지로 흘러 갑니다!”

“밴너 선수가 밀려 나고 있습니다! 20킬로의 체급 차이를 극복해냈어요!”

도쿄돔 전체가 다시 한 번 진동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이시이 관장이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 주먹을 불끈 쥐었고, 수 많은 관계자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김관수 관장이나 기철 역시 현성의 승리가 바로 눈 앞에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그래, 가라! 가자!’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승리…!’

이제 남은 것은 그것 뿐! 그리고 한 번 더 현성이 밴너를 향해 송곳 같은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찔러 넣었다.

“크윽!”

연달아 밴너가 그의 펀치에 휘청이며 뒤로 밀려났다! 이제는 점차 패색이 짙어져 가는… 레전드의 모습에 그의 팬들이 안타까워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신성의 등장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 의미는 특히나 동양인이라는 것! 동방의 최종병기라는 자극적인 타이틀이 전혀 무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더 값진 것이었다!

승리, 오직 승리! 그것을 통해서 조금 더 큰 세계로…!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날개 짓을 해낸다! 그 일념과 함께 현성이 더 이상의 전관예우는 없다는 듯 순간 다시 한 번 뛰어들 듯이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흐앗!”

온 힘을 짜낸 기합과 동시에 캥거루처럼 껑충 뛰어 들어간 현성! 바로 그 순간 휘청이던 밴너의 눈에서 빛이 났다.

-오싹…!

패색이 짙은 바로 그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던가? 온 체중을 실은 현성의 펀치가 도달하기도 전에 흔들리던 밴너가 순간 집중력을 선보이며 간결하고 빠르게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상대는 강했다. 젊고, 빠르다! 하지만 지나치게 우직하다는 것…! 그것이 반해버릴 정도로 마음에 들었지만 여긴 전장과 다름이 없었다. 그것이 패인이 될 수 있단 것을 베테랑은 놓치지 않았다.

어네스트 후스트에 의해서 입었던 팔의 부상! 뼈가 산산조각이 나 철근을 박아 넣으면서 유실되었던 왼팔의 봉인을 모두 풀어 헤친 듯 순간 흔들림을 바로잡은 밴너의 왼손이 폭발했다.

-뻑!

다시 한 번 어마어마한 소리가 도쿄돔을 울렸다.

============================ 작품 후기 ============================

일요일에 연달아 3편 써두고 한편씩 차근 차근 업로드. 폭업하면 다음 날이 감당이 안 되다 보니…

이제 선작은 거의 마지노선에 도달한 거 같습니다. 선삭과 선작 추가가 반복되면서 정체된지 어언 2주. 더 이상 성장이 없군요 ㅋ 4000을 넘지 못하고 좌절.

그래서 소개글에 살짝 살을 붙였습니다. 별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요 ㅋ잔뜩 들어갔던 힘을 조금 더 덜어 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은 좀 더 가볍고 경쾌하게, 그리고 재미가 가득하게 써내려 가고 싶네요.

벌써부터 출근하기 싫습니다… 아아… ㅋ 트리플 잡이란 게 주말이 사라지는 비결이었던 것 같네요. 이런 제길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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