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회 - 괴물
“김대환 해설 위원은 이 경기 어떻게 예상 하십니까?”
“사실 장현성 선수가 상대하기엔 벅찬 상대라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물론 밴너가 전성기에 비해서 체력적인 부분이나 기량 면에서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두 선수의 체중 차이는 공식적으로 20킬로그램이 넘게 차이가 나거든요. 게다가 격투 경력에 있어서 장현성 선수가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한다면 무척이나 열세라고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장현성 선수가 경험에 비해서 일취월장하고 있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신체 조건도 밴너 선수에 비해서 체중 말고는 그렇게 밀리는 부분이 없구요!”
K-1의 하향세는 국내의 케이블 스포츠 채널과의 계약마저도 단절 되었지만 X 채널에서 특별히 편성된 생방송 중계 덕분에 국내에도 실황이 생생히 전달이 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오랜만에 입식 격투를 중계하는 해설자 대환과 진행을 맡은 MC 용준도 한껏 흥분된 표정이었다.
기실 격투기가 과거에 잠깐 붐을 일으켰다 다시 매니아 스포츠로 사장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 이례적으로 중요 언론이 현성의 데뷔를 언론이 다루었고, 그를 통해서 오프닝부터 인기 검색어를 들락날락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물론 시기적으로 현성이 운이 상당히 좋은 경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얻고 있던 오오츠카 사키와의 스캔들은 국내 언론들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고, 그것으로 인해서 조금 더 큰 관심을 촉발시킬 수 있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전적과 경력에서 20배라는 차이가 납니다. 게다가 장선수는 아직 자기보다 큰 상대와는 상대해본 적이 없단 것이 큰 변수입니다. 보통 자신보다 체격이 큰 상대와 붙을 때에는 기술과 스피드로 상대를 쓰러뜨려야 하는데 상대는 펀치와 킥 모두 세계 최정상급에 도달한 제롬 르 밴너입니다.”
현성의 데뷔부터 그의 팬을 자처해온 MC 용준은 현성에 대해 우호적이었지만 전문가의 입장은 달랐던 모양이다. 김대환 해설위원의 냉정한 말에 MC 용준이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우리 장현성 선수가 어떻게 경기를 풀어나가야 할 까요?”
“아무래도 밴너 선수가 다른 건 몰라도 노쇄화가 진행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장선수의 타고난 리치와 체력을 적극 활용해서 장기전을 노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입니다. 허나 밴너 자체가 무척이나 터프하고 적극적인 선수이기 때문에 초반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가 전반적인 경기 당락을 결정 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냉정한 분석을 잇는 그의 말에 MC 용준이 ‘역시 아웃 복싱인가요?’ 하고 물음을 던졌다. 확실히 20킬로그램의 체격 차이와 나이에서 오는 체력의 우세라면 그것이 정설일 것이다.
“네, 그렇게 된다면 장선수도 충분히 밴너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체격은 차이가 나도 장선수 역시 전 경기를 KO로 잡아낸 출중한 화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분명히 기회가 온다면 잡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그도 국내의 신성이라 할 수 있는 현성을 응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김대환 해설위원의 응원 가득한 눈빛에 MC 용준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화려한 입장을 마쳤던 두 선수가 링 한 가운데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기쿠다 노부아키 심판이 오랜만에 링에 모습을 드러냈군요. 아, 오오츠카 사키의 모습이 화면이 비춥니다! 장선수와는 스캔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지에서 단 한 번도 연애 스캔들이 없었던 아이돌이다 보니 관심이 무척 뜨겁다 하는군요?”
“하지만 실제로 오오츠카 사키 쪽은 단순히 팬으로써의 의사를 표현한 것 뿐이라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장선수가 단순한 선수가 아니라 ‘희망’의 상징이라는 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인생 역경은 충분히 드라마틱 했고, 그것은 격투계 종사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 충분했다. 김대환 해설위원 역시 마찬가지였던지 그의 평에 MC 용준이 저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인생 역전의 사나이…! 패배를 모르는 한국의 괴물이 하이퍼 배틀 사이보그를 잡고 일본 열도를 제압하길 기원해 봅니다!”
본분을 잊지 않은 MC 용준의 외침과 함께 주의사항을 설명하던 기쿠다 노부아키가 드디어 파이트를 외칠 준비를 했다.
-꿀꺽.
그 말 많은 MC 용준과 김대환 해설위원이 동시에 입을 다물고 침을 삼켰다. 고조되는 흥분감 속에서 기쿠다 심판이 ‘파이트!’를 외쳤다. 그와 함께 와아아 하는 함성이 도쿄돔을 일었고, 현성과 밴너가 서로 주먹을 내밀었다. 건투를 바라는 인사! 그 모습에 더욱 더 크게 터져 나오는 도쿄돔의 함성 소리 속에서 MC 용준이 소리쳤다.
“자, K-1 다이너마이트 제 1경기! 시작 됩니다!”
그리고 그의 외침에 끝이 나기 무섭게 쩍!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놀란 MC 용준이 숨조차 멈추고 화면을 바라보다 흥분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와!”
흥분 가득한 그 목소리만큼이나 놀란 것은 김대환 해설위원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시작하자마자 하이킥! 장현성 선수의 하이킥이 제롬 르 밴너의 안면을 노리고 날아들었습니다!”
“아, 이거 처음부터 승부수를 띄우나요? 장선수, 지금 이 정도 체격 차이로는 힘이 들 텐데!”
다소 안정적인 경기 플랜을 생각했던 것과 달리 현성은 그리 움직이지 않았다. 시합이 시작하자마자 터져 나온 것은 전 경기의 야마다 류이치를 제압했던 바로 그 하이킥! 시작과 동시에 불을 뿜은 현성의 하이킥은 도쿄돔을 열광케 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상대인 밴너 역시!
“슉!”
시작부터 기세 좋게 날아든 킥에 조금 당황한 듯 멈칫했지만 밴너가 침착하게 펀치를 뻗었다.
-후웅!
“제롬 르 밴너 레프트!”
동작이 큰 하이킥 이후의 반격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밴너의 반격이 날아들자 현성이 무섭게 집중한 얼굴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퍼억!
가드 대신 이를 악 물고 날린 펀치가 동시에 밴너와 현성의 얼굴을 때렸다. 20킬로가 넘는 체급 차이에서 오는 파괴력에 순간 현성의 몸이 휘청할 정도였지만 현성은 결코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그저 우직하게, 입에 물고 있는 마우스피스가 끊어질 정도로 강하게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매섭게 밴너를 노리며 밴너보다도 더 빠르게 두 번째 펀치를 날렸을 뿐!
-퍽!
비록 체중 차이로 현성이 밀려나긴 했지만 그의 리치는 밴너를 능가했고, 펀치의 파괴력 또한 밀리지 않았다. 자신보다도 더 빠르게 반격하는 현성의 주먹에 오히려 밴너가 당황한 듯 가드를 치고 올렸다.
-퍼억!
묵직하게 가드를 때린 펀치! 그리고 밴너가 화끈 하고 몸에 열이 오른 듯 순간 가드했던 몸으로 현성을 압박하듯이 밀어 붙이고는 그 덩치에서 나오는 펀치라곤 믿을 수 없는 빠른 원 투를 선보였다.
-파밧!
현성의 얼굴을 날리고 날아든 밴너의 깔끔한 펀치! 그 펀치에 다시 한 번 더 가드를 올릴만 했지만 결코 현성은 그리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이로 다시 공격을 이어갈 뿐!
-퍽!
순간 밴너의 잽이 현성의 안면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어금니를 꽉 깨문 현성 또한 밴너의 안면을 흔들자 이쯤하면 당황스러운 것은 오히려 밴너 측이었던 모양이다!
“맙소사! 장현성 선수! 제롬 르 밴너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난타전 양상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입니다! 장현성 선수가 설마 20킬로 차이가 나는 밴너와 맞불을 놓을 줄은!”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모습에 MC 용준과 김대환 해설위원이 흥분한 듯 소리쳤다. 상식적으로 이 정도의 차이가 난다면 당연히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여지껏 플랜 없이 본능으로 싸워 온 것이 아니라 완벽한 플랜을 준비해왔던 김관수 관장이기에 더더욱!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정말로 상상 밖의 것이었다.
“이건 정말 말이 안 됩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전문가 김대환 위원이 우려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초반에 승부수를 띄우려는 밴너에게 마찬가지로 초반 승부수를 던진다…! 그렇다면 경기는 승리보다 패배로 갈 확률이 더 크지 않겠는가? 더구나…!
“노가드입니다! 엄청납니다! 스쳐도 사망 할 것 같은 밴너의 펀치를 상대로 가드 없이 오로지 펀치로 맞부딪치고 있습니다!”
시작의 하이킥 이후로 킥 없이 현성과 밴너 모두 펀치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 예상외의 전개는 우려를 안겨주었지만 반대로 어마어마한 흥분을 선사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도쿄돔이 터져 나갈 것 같습니다! 어마어마한 함성입니다!”
1경기부터 흥분해 갈라지는 MC 용준의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리고 현성이 절대로 쓰러지거나지지 않겠다는 듯 이를 악 물고 다시 한 번 밴너의 얼굴을 향해 펀치를 날렸다.
-퍽!
속도는 이쪽이 훨씬 더 빠르다! 그리고 유효타 역시!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퍼억!
“큭!”
체급 차이에서 나오는 펀치의 질이 달랐단 것이었다! 묵직한 밴너의 펀치는 여지껏 현성이 경험해본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렬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난타전으로 들어온 밴너 역시 어금니를 악 물고 펀치를 내질렀다. 그 주먹이 몸에 닿으면 저도 모르게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였으니까!
허나 그 정도로 무너져선 곤란한 일이었다!
“하앗!”
몸이 밀려날 때 마다 오히려 더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현성은 그야말로 투견과도 같았다. 20킬로가 넘는 체격 차이도 그를 막을 수 없다는 듯, 압도적으로 유리한 리치와 체력을 가지고도 달려드는 그의 모습에 도쿄돔이 진동했다.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거대한 함성 소리 자체가 현성에겐 압박처럼 느껴졌지만 그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후웅!
그것에 신경을 쓰는 순간 바닥을 뒹굴지도 모르겠다는 아찔한 생각이 어느 샌가 현성의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으니까!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지만 밴너의 펀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컴 온!”
그의 투지에 불이 붙은 듯 영어로 소리치며 밴너가 펀치를 날려 왔다. 아슬하게 코 끝을 스치는 훅 이후로…!
-쩌억!
순간 예상치 못한 밴너의 로 킥이 현성의 허벅다리를 때렸다. 그 충격에 순간 다리가 휘청했지만 무너지지 않고 현성이 기회라는 듯 밴너의 얼굴을 향해서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찔러 넣는다.
-퍽!
순간 120킬로가 넘는 밴너의 얼굴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현성의 펀치 역시 강렬했다!
“라이트 스트레이트! 장현성 선수! 20킬로 차이를 극복하고 밴너의 얼굴에 스트레이트를 찔러 넣었습니다!”
터져 나오는 함성과 MC 용준의 외침! 김대환 해설위원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정타! 정타입니다!’ 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정도로 무너질 밴너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밴너가 뒤로 물러서며 위협적인 원투로 다시 반격을 가하자 현성이 더 이상 들어가진 못하고 뒤로 물러서며 다시 파이팅 포즈를 잡았다.
한방에 붉게 부어오른 허벅다리가 로 킥 하나조차도 쉽게 볼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인 밴너의 파괴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전율이 일고 있습니다! 도쿄돔은 그야말로 함성 천지입니다!”
설마 저 제롬 르 밴너와 저렇게 맞붙을 수 있는 동양인 선수가 있었단 말인가? 과거 사모아의 괴인이라 불렸던 마크 헌트 이후로 이렇게 강렬하게 밴너에 대적한 상대는 처음 본다는 듯 올드 팬들마저 감탄을 아끼지 않는 동안 이번에도 역시 현성이 먼저 밴너를 향해 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부웅!
“플라잉 니킥! 플라잉 니킥입니다!”
번개처럼 뛰어들어 날린 현성의 플라잉 니 킥에 밴너가 시작처럼 하이킥이 나올까 대비하다 당황한 듯 뒤로 휘청하고 몸이 흔들렸다. 그로써도 정말로 예상치 못한 경기 양상이 펼쳐 지고 있었다.
당연히 장기전으로 끌고 가 승리를 따내려 했을 것이란 모두의 예측을 뒤엎고 이렇게 정면으로 도전해 온다는 것!
“비얀!”
좋아! 하고 외친 그 목소리에 현성이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왠지 모르게 밴너가 웃고 있는 것 같단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현성이 다시 주먹을 들었다.
-퍽!
그러나 이번엔 밴너가 더 빨랐다! 크게 한방을 노리지 않은 잽이 순간 현성의 안면을 흔들었고, 그 잽조차도 스트레이트에 가깝단 생각에 현성의 몸이 휘청하고 뒤로 밀렸다.
“아아아아! 장현성 선수! 위기입니다! 안면을 허용 했어요!”
“위험합니다! 어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밴너가 전매특허인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후스트와의 경기에서 입은 부상 이후론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그의 왼손! KO률 80%를 장식했던 그 엄청난 주먹이 마지막 투혼과 함께 날아들자 순간 ‘아아아!’ 하고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함성 속에서 순간 현성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시작은 터프하게 노 가드 양상을 보였어도 이 펀치는 위험하단 본능이 그의 온 몸을 때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몸이 밀리며 다소 무너진 자세는 밴너의 반 박자 빠른 레프트를 피해내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순간 당혹감이 스치는 현성!
‘버틸 수 있을까?’
싸움과는 다른 그 순간의 교감에 잠깐 방심이라도 하고 말았던 것일까? 그것을 되새겨 보지만 후회는 이미 늦었다! 그리고…!
-퍼억!
터져 나온 엄청난 소리에 다시 한 번 도쿄돔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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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너무 바쁘네요. 배우는 단계라서 그런지 더 신경 쓸 일들도 많고- 느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