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119화 (119/281)

- 119 회 - 괴물

“…이제 안 오네.”

일주일 전부터 빠칭코 가게 앞을 지나가던 그 덩치 큰 남자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알게 모르게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키에게는 상당히… 서운했던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물론 별 다른 말들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빠칭코 가게에 와서 멍하니 머신만 바라보는 일과를 되풀이하던 그녀에겐… 어쩜 그게 소소한 일상이었는지도 몰랐다.

“…다른 곳으로 코스를 바꾼 걸까…?”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괜시리 매번 보던 사람이 보이지 않자 이상하게 걱정이 되는 듯 사키가 한숨을 푹 내쉰다. 여전히 같은 차림에 푹 눌러쓴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 담배는 피지 않았다. 뭐라 이야기를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 듯 한 그 모습을 보자면 그녀도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아버지를 잃고 힘겹게 살아가던 가족들을 12살이란 어린 나이에 부양하기 시작했던… 그때 ! 매일매일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기분이었고, 그 힘들고 고된 스케줄 속에서도 결코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리고 잠이 들기 전에는 항상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가득한 그 시절이 말이다.

“하아… 멍청이.”

아마 그래서 그런 것일까?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그녀를 응원하는 듯 했던 그 이방인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사키는 우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물론… 결국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이기에… 덧없는 관계란 것들을 이미 알고 있다.

더 본다 한들 나아지는 것은 없겠지만 왠지 모르게 섭섭한 맘은 혹시나 그 사람이 달리던 와중에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몰랐다.

아주 어린 시절 그녀를 이뻐해줬던 아버지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녀가 기울었던 가세를 일으켰을 때, 조금 더 큰 욕심을 냈던 어머니는 사업에 실패하고 그녀가 사준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극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어서 하나 밖에 없는, 하나 남은 유일한 가족인 동생 테루는 아이돌로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도와 폭행으로 구속당하기 일쑤였고 결국은 강도 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 받고 말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더욱 더 나빠지기만 할 뿐. 혹시 그 사람도 자신과 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은 아닌가 하고 사키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빠칭코 머신이 가져다 주는 소소한 재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지만 가끔씩 얻을 때 가져다 주는 그 묘한 즐거움조차… 이제는 별 다른 의미가 없었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빠칭코 머신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 그 시간, 그 사람과 마주치는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화장기 없이 창백한 얼굴의 사키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힘 없이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도쿄 중심가에 있는 자그마한 오피스텔. 과거 그녀가 벌어들였던 천문학적인 수익에 비하면 아주 초라 할 지 모르겠지만 도쿄의 중심가에 있는 20평짜리 아파트는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였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사키는 그 집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집은 언제나 그녀 혼자만 머무는 곳이었으니까.

물론 이제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조차도 없겠지만.

“야옹…”

사키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마키만이 그녀를 반길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사키가 요즘 부쩍 애교가 는 마키를 바라보며 살짝 웃음 짓는다. 도도하기만 하던 마키가 어느 순간인가부터 아주 애교가 많아 졌다. 아마 말 못 하는 짐승도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을 하면 또 혼자는 아니란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사키가 고양이 마키를 꼭 끌어 안고서 이제는 무얼 하면 좋을까… 하고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 티비를 켠다. 정상적인 생활 패턴을 잃어버린 그녀의 삶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팟…

티비 화면이 켜지면 24시간 방송되는 영화 채널에 고정이 맞춰져 있다. 그녀가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혹시라도 지금과는 너무 다른… 과거의 자신을 볼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떄문에.

“…지루해.”

아마도 머리 어딘가가 잘못되어 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빚을 갚고 동생을 변호해줄 변호사를 마련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누드 화보를 촬영하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결국 사키가 견딜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마키를 살며시 내려놓고는 부엌으로 걸음을 옮긴다. 냉장고를 열자 가득 차 있는 맥주캔을 하나 꺼내고는 톡 하고 캔을 열고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으로 술을 가져 간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녀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이지만 이게 오오츠카 사키의 현실이었다. 멍하니 맥주를 들이키며 들어와 모자 벗는 것도 잊은 자신을 발견하곤 사키가 쓴웃음과 함께 모자를 벗는다.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모습이 비칠까봐 집에는 거울도 모두 다 치워 버렸다.

“마키… 너무너무 힘들어.”

그저 멍하니… 보고 또 보았던 영화 채널을 반복해 바라보며 사키가 고양이 마키에게 마음을 털어놓자 마키가 야옹… 하고 다시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뺨을 부빈다. 애교 많은 마키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린 듯 사키가 후후 웃으며 멍하니 티비를 쳐다본다.

그 와중에 자꾸만 맘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도대체 그 사람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스미레를 제외하고, 마키를 제외하고는 최근에 사키가 유일하게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다. 아니, 그걸 대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인데 자신이 너무 오버한 것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 생각으로 다시 스스로를 감추며 사키가 움츠러 들었다.

외롭다. 너무나도 외롭고 힘들다. 왠지 모르게 그 순박해 보이는 사람의 얼굴이 자꾸만 머리를 맴돌아서, 술 기운이 살며시 오르니 더 감당이 되지 않는 듯 그녀가 저도 모르게 채널을 돌린다. 혹시나 뉴스를 보면… 그런 사고 소식이 있지 않을까? 컴퓨터를 켜긴 두려웠다. 거긴 오오츠카 사키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아예 선마저 잘라놓은 컴퓨터 대신 사키가 티비 채널을 돌리다 문득…

“아…?”

채널을 돌리던 사키가 우연히 TBS 채널에 화면을 멈추고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본다.

“얼굴의 화상은 어린 시절에 입은 상처 입니까…?”

리포터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그 사람은 분명히… 그녀가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4살 때인지… 5살때인지… 그쯤에 입은 상처입니다.”

조금 긴장한 듯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로 그가 대답을 하자 아래로 자막이 나온다. 그 자막을 유심히 바라보며 사키가 저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띤 채 티비에 시선을 고정한다.

“아, 그렇군요. 어떤 사고 였는지?”

K-1 대부활! 다이너마이트 D-21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고 있는 TBS의 방송에 나온 것… 아마도 K-1 선수였던 것일까? 말을 하는 것은 보니 한국 사람이 틀림 없었다. 사키가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진 못해도 그게 어느 나라 말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종종 한국의 팬들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했었으니까.

어쨌거나 그것과 별개로 사기는 무척이나 집중해서 티비 속 그를 보았다. 여전히 수줍은 기색이 가득한 얼굴은 아무래도 이런 방송 인터뷰마저도 많이 어색한 듯 자꾸만 카메라 뒤쪽에 있는 누군가를 쳐다보고 있다. 오랜 방송 경력이 있는 만큼 그 앞쪽에 아마… 트레이너라던지, 친구라던지. 누군가 의지 할 사람이 있어서 자꾸만 그 자릴 보는 게 아닐까? 그녀가 12살에 처음 데뷔를 했을 때처럼 말이다.

“혹시 코멘트 하기 곤란한 질문이라면…”

“어릴 때 제 실수로 불이 났습니다.”

이제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듯 현성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 순간 인터뷰를 하고 있던 리포터가 통역을 듣고선 ‘아…’ 하고 그를 바라본다.

“부모님이 많이 속상하셨겠…”

그러다 문득 리포터가 ‘아,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자 현성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담담해 보이지만… 그 슬퍼 보이는 눈빛을 사키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저 사람도…”

묘한 동질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보다도 훨씬 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남자. 그 남자가 실의에 빠져 하루, 하루를 소모하고 있기만 한 그녀와 만나 기운내라 이야기를 해주었다니… 누군지도 모르고 말이다.

사키가 어느 샌가 글썽글썽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예능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인지라 감수성이 풍부해서일까? 아니,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링 네임이 괴물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뜻인가요? 말 그대로 사납게 상대를 짓밟아 버리겠다?”

곧 화면이 바뀌며 다시 주제가 옮겨진다.

“괴물…”

어찌 보면 그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하지만 사키의 생각으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라 생각하며 글썽한 눈가를 문지르곤 그녀가 다시 티비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 뜻은 아니었고… 별명이었습니다.”

“별명?”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키와 덩치도 컸고, 얼굴도 이렇다 보니까.”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사키가 ‘너무해!’ 하고 몰입한 듯 티비 속의 현성을 바라본다.

아주 어릴 때부터 화려함만을 보고 살아온 그녀에게는 결코 외모나 외형에 현혹되지 않는 힘이 생긴 것 같았다. 아름다운 외모로 못된 짓을 일삼는 연예계 종사자들을 더러 보아왔고, 빛나는 모습 뒤엔 더 없이 추악한 시기와 질투가 존재한단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단순히 생긴 것으로 저런 별명을 붙인다는 것은…

지금이야 무척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굉장히 그 사람에겐 상처가 클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송을 보면서 자꾸만 현성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단 생각을 하며 사키가 그를 바라보는 동안 인터뷰는 계속해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아… 유년시절의 상처가 많이 크셨군요.”

“그런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정말 듣기 싫었던 별명이었지만 이젠 그런 뜻보단 다른 뜻으로 받아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그는 그가 짊어졌던 상처들을 많이 떨쳐낸 모양이다. 그게 참 부럽기도 하고… 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를 배우고 싶단 생각을 하며 사키가 ‘장현성…’하고 일본인은 다소 발음하기 힘든 그의 이름을 되뇌여 본다.

그 사이 리포터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원래부터 싸움을 좋아했느냐 하는 상투적인 질문 말이다. 아무래도 K-1에서 바라는 것은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악동이 아닐까? 하지만 악동보다는 아주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에 가까운 것이 현성이었다.

“싸운다는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엔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싸움과는 다르더군요. 뭐라고 해야 할지… 서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겨루는 것 같았습니다. 그 한 시합에는 몇 개월 동안 나와 팀이 준비한 노력들이 결과로 나오게 되니까… 그래서 상대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나도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순간이라 지금은 그 순간이 너무 좋습니다.”

여지껏 던진 물음 중 가장 긴 대답. 그게 거짓말에는 영 재주가 없는 사람인지라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보이는 표정은 정말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아래의 자막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만나보고 싶어…”

매번 마주치던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말로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은 맘. 그 맘을 느끼며 사키가 화면을 보는 동안 인터뷰는 이제 슬슬 마무리로 접어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밴너 선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길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여지껏 조용조용하던 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단호하게 꺼낸 그 말에 리포터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담담한 미소를 짓는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화면은 현성의 경기 장면을 편집한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넘어가 버렸다. 파란을 일으킨 데뷔전부터 베테랑 이재석을 스핀킥으로 잡아낸 2전! 그리고 일본에서 떠오르던 강자 야마다 류이치를 하이킥으로 녹아웃 시킨 장면까지!

격투기라는 것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그리고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았던 사키 마저도 탄성을 내지르게 할 정도로 대단한 모습이었다. 클린트 미셀의 Lux Aeterna를 배경으로, 쿵쿵쿵 하고 웅장한 사운드가 울릴 때 마다 힘없이 쓰러지는 상대들!

“…전혀 약하지 않았어…”

아주 약한 선수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그는 강했다. 괴물이란 별명이 더 이상 놀림이 아니라 그 이상의 찬사가 없어 붙을 정도로 말이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키가 어느 샌가 현성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끝이 나고 상대 선수인 제롬 르 밴너의 영상으로 화면이 돌아가자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그녀가… 무척이나 오랜만에 핸드폰을 들고 스미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키! 어쩐 일이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걱정 가득한 스미레의 목소리는 어쩜… 사키가 가족에 너무 집착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자기 사람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스미레 상. 나 이번 K-1 이벤트에 참여하고 싶어요.”

============================ 작품 후기 ============================

레노버 키보드가 쫀득쫀득한 게 좋네요 ㅋ 배열이 아직 안 익숙하지만 우왕굳 ㅋ 면접이 10시 30분에서 4시로 밀렸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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