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106화 (106/281)

- 106 회 - 괴물

10월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간간히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11월 들어선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한창 뜨거웠던 시간이 사라지고, 점차 날이 차가워진다는 것은 현성에겐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그가 태어난 날에 가까워지고 있단 것이고, 두 번째로는 이제 곧 야마다 류이치와의 시합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단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엔 이 시합의 결과에 따라서 국제무대 데뷔전을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후우, 후우…!”

이제는 너무 커진 몸 덕분에 러닝은 필수 코스가 되고 말았다. 현재 그의 체중은 87킬로그램. 남은 1킬로는 일주일동안 그리 어렵잖게 감량할 수 있는 폭이다. 물론 변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꾸준히 증량 코스를 밟지 않으면 금방 살이 빠지는 현성인지라 감량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짐 근처의 도로가를 달리면서 맞는 바람은 후끈 달아오른 몸과 맞물려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땀복 겸 바람막이 하나만을 걸치고 달리는 와중이다 보니 제법 쌀쌀한 날씨에 몸서리칠 만도 했지만 현성을 그것을 그리 싫어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어린 시절부터 뜨거운 것과는 악연이 있던 그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지난해부터 겨울은 그에게 있어서 항상 좋은 소식들을 가져 왔으니까. 물론 소년원을 나서면서 맞았던 그 매서운 칼바람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시리게 느껴졌다. 원내에서 가졌던 희망이나 기대감 따위는 모두 내버리도록 만들었던 그 날의 쌀쌀함!

“후…! 후…!”

하지만 지금은 그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행복하고 안락한 현실이 찾아온 것인지도 몰랐다. 그 생각과 함께 현성이 막바지 스퍼트를 올리며 체육관을 향해 속도를 높인다. 감량은 지금부터 식사량만 조절을 해도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훈련 자체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계속해서 타격기만을 다듬고 있다. 목표는 단 하나! 야마다 류이치를 난타전으로든, 무엇이든… 물러서지 않고 잡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조금 더 큰 무대로 현성이 나서게 된다면… 혜주도, 아영이도 충분히 잘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은 없지만 가족 같은 두 사람…! 그것을 떠올리며 현성이 더욱 더 이글이글 불타는 의지로 숨이 턱 까지 차 오른 상태에서 더욱 더 마지막 속도를 올린다.

숨조차 꾹 참으며, 쿵쿵쿵 하고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전신에 울리는 것을 느끼며 그렇게 체육관을 향해 달려가던 현성이 이내 그 앞을 서성이는 낯익은 모습에 순간 숨을 토해내며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만다.

“…헉… 헉…”

그리고 그가 조금 굳은 얼굴로, 한 편으론 조금 당황한 얼굴로 그 앞을 서성이고 있는 고모를 바라본다.

“…운동 갔다 오나…?”

시합을 끝내고 근처 카페에서 만난 이후로는 거의 두 달만이었다. 그 사이에 고모는 마음 고생이 제법 심했던지 살이 빠진 듯 홀쭉해진 얼굴을 하고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다시 또 뒤숭숭해지는 기분을 느끼고는 지친 숨을 달랠 겨를도 없이 입술을 꾹 깨문다. 모든 것이 완벽한 가운데 갑자기 왜 나타나서 다시 마음을 흔들려고 하는가 싶은 미운 맘이 샘솟는 한 편… 저 야위고 초췌해진 얼굴이 걱정되는 마음 또한 다른 한 편에 위치해 있다.

“…진규 등록금 필요하신 거면…”

어렵사리 꺼낸 말이 고작해봐야 그런 말이란 사실에 현성이 왠지 모르게 자신이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던지 목구멍 너머로 뭔가를 꿀꺽 삼키고 만다.

“아이다! 그런 거…”

그 목소리에 고모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뭔가를 싸들고 온 듯 보자기 하나를 그에게 내밀자 현성이 그게 뭐냐는 듯 힐끔 고모를 바라본다.

“…니 장조림 좋아해가 그거랑… 좀 싸왔다. 사골 고아낸거랑…”

“내 체중 감량해야 돼서 그런 거 못 먹심다…”

괜시리 퉁명스럽게 나온 목소리에 오히려 현성 자신이 깜짝 놀라서 움찔하고 말지만… 고모는 그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아…’ 하고 의기소침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다. 그 모습에 현성이 맘이 굉장히 불편하고 어색한 기분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본다. 비록 좋은 기억들은 별로 없었지만 어머니 대신 자신을 길러줬던 고모는 어느 샌가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희끗하게 변해 있었다. 초췌해져서 그런지 얼굴의 주름 또한… 그 모습을 바라보며 괜시리 울컥하는 기분이 들자 현성이 한숨을 내쉬고 만다.

“…내가 무식해가…그런 줄도 모르고…”

과거와는 다르게 의기소침한 얼굴로 어색한 미소를 짓는 그 모습. 그 모습이… 이상하게 짠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가족이었기 때문일까? 현성이 왠지 모르게 답답한 기분을 느끼며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다. 오해 받으면서, 그리고 외면 받으면서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용서해줘야만 하는 입장이 된 것이 아직도 괴롭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마음이 불편했다. 고모에게 그렇게 모질게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맘과 달리 툭 튀어나온 그 말에 현성이 미안한 맘까지 드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체육관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가 아무런 말 없이 고모가 들고 있던 보자기를 받아 든다.

“…택시… 타고 가실거에요…?”

다시 한 번 무뚝뚝한 얼굴로 물음을 던지는 그 말에 고모가 천천히 고개를 흔든다.

“날 추운데 택시 타고 가세요.”

그리고 그가 체육복 주머니에 챙겨 둔 비상금 2만원을 꺼내자 고모가 ‘아이다…!’ 하고 고개를 흔든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니라는 듯… 그 모습에 현성이 한숨을 내쉬며 ‘그냥 그래 하세요.’ 하고 먼저 걸음을 옮긴다.

“…미안타… 괜히 와서…”

그 날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이라지만… 아마 계속해서 그 말을 하고 싶었던지 왠지 모르게 맘이 짜르르 울리는 그 목소리에 현성이 괜히 흔들리는 감정들을 느끼며 입술을 꾹 깨문다.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무뚝뚝하게 걸음을 옮기는 조카를 보며 고모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듯 조금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내가 좀만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낀데..”

그 한숨 섞인 목소리에 현성이 덩달아 한숨을 내쉰다. 무어라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어릴 땐 그렇게 무서워 했던 고모나 고모부가 이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서글프단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가? 그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현성이 그저 입을 다문 채 길가로 나와 택시를 잡는다. 낮 시간인지라 금새 택시 한 대가 멈춰서자 고모가 그를 힐끔 바라본다.

“내 그냥 버스 타고 가도…”

“그냥 타고 가세요.”

같이 있기 싫다는 듯 투박한 그 말에 고모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게 그녀는 가장 큰 죄인인지도 모른다. 어쩜 그 여자아이를 용서했으면서도 가족을 용서 하질 못하냐… 그녀의 남편처럼 분통을 터뜨릴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니까 오히려 더 상처가 크진 않았을까? 그 생각만 하면 후회가 물 밀 듯이 밀려 오는지 고모가 글썽글썽하는 눈으로 ‘그거.. 도…’ 하고 얘기 한다. 그 말에 현성이 우두커니 서있다 한숨을 내쉬며 택시 문을 연다.

“타세요.”

그리고 그 말에 고모가 한숨을 내쉬며 먼저 택시에 오르자 현성이 아무 말 없이 고모에게 이만원을 건넨다.

“…반찬 값 하께요.”

“아…”

그 말에 고모가 멍하니 그를 바라본다. 먹지도 못 할 음식이라지만… 차마 고모가 여기까지 가지고 온 것들을 매몰차게 외면하진 못했던 모양이다. 여전히 어색한 듯 고개를 숙인 채 눈을 피하고 있는 조카의 모습에 고모가 정말로 미안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결국은 눈물을 보이고 만다. 그 모습에 현성이 ‘빨리 드가서 훈련 해야 돼요.’ 하고 어색한 얼굴로 이야기 하자 고모가 ‘그래…!’ 하고 눈가를 슥슥 닦으며 이만원을 받는다. 그렇게 대단한 액수의 금액도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그것이 어쩜… 아직은 모두 다 받아들이고, 용서하진 못해도 아마 그녀를 용서하기 위한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현성 역시 괜시리 맘이 울컥울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차라리 잘 한 짓이란 생각이 들었던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문을 닫는다. 그리고 그가 말 없이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자 어느 샌가 고모가 창문을 열고 ‘잘 하고… 이기그레이!’ 하고 용기 내 응원한다. 그 소리에 잠깐 멈칫한 현성이 힐끔 고개를 돌며 알겠다는 듯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체육관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택시는 부웅 하고 소리를 내며 그를 스쳐지난다.

“후우…”

스파트를 올려 뜨겁게 만들어 놓은 몸도 다 식어 버리고 기분도 괜시리 싱숭생숭 해졌지만… 들고 있는 보자기를 보자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던 모양이다.

“…무거운데…”

그리고 이 무거운 걸 혼자서 여기까지 들고 왔나… 싶은 생각이 들자 현성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다. 사람이 살아가는 게 일만 잘 풀린다 해서 다른 것들 또한 풀리진 않는다.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그가 옅은 미소를 짓는다. 결국 끝까지 매몰차게 굴진 못했지만… 기분만큼은 카페에서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때 보단 좋았다. 그 생각으로 충분한 듯 현성이 숨을 고르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자 김관수 관장이 ‘어, 왔나?’ 하고 느긋한 얼굴로 물음을 던진다.

“…그건 뭐고?”

“…관장님, 다 아시면서 모르는 척 하지 마세요.”

거짓말 못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김관수 고나장의 과장된 연기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무안해졌던지 김관수 관장이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다.

“내가 뭐 자슥아? 나는 모르겠는데?”

끝까지 발뺌하는 그 모습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김관수 관장에게 보자기를 내민다.

“저 대신에 많이 잡수세요.”

“…그카면 안 되는 거다! 현성아, 고모가 여까지…”

이내 움찔하며 타이르려는 그 모습에 현성이 살짝 미소 짓는다.

“다 아시면서.”

그 말에 김관수 관장이 ‘크흠!’ 하고 어색한 얼굴을 하는 동안 현성이 그래도 지금은 먹을 수 없다는 듯 다시 김관수 관장에게 보자기를 내민다.

“맘만 받아야죠… 지금은 못 먹잖아예.”

정말로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는 듯… 그 사이에 또 자란 것 같은 제자의 목소리에 김관수 관장이 ‘알겠다..’ 하고 후후 웃으며 보자기를 받아든다.

“아이고! 뭐가 이래 무겁노?!”

“사골 고아왔다 카시네요. 관장님 안 그래도 요즘 피곤해 보이시는데… 제 몫까지 많이 잡솨 주시면 되겠네예.”

“그래, 이거 고마워서 어떡 하노…?”

역시나 중년에게 최고의 선물은 ‘몸에 좋은 것’이라는 정설을 입증해내는 그의 반응에 현성이 미소와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곧 그가 글러브를 낀 채 다시 한 번 움직여야 한다는 듯 힐끔 김관수 관장을 돌아본다. 그리고 어색한 웃음을 더한 채 현성이 이야길 꺼낸다.

“…티켓이나… 선물 해드리죠… 뭐.”

============================ 작품 후기 ============================

오늘 로크미디어랑 계약 했습니다. 계약 조건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기존 노블 연재 작품은 아니고, 새 작품 2질은 종이책으로 만나보실 수 있으실 것 같아요.

현재 첫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악당의 세계(가제)’ 혹은 ‘정직하게 살자’라는 작품인데 확정되기 전까진 논의가 필요 할 것 같네요. 일단은 연재랑 호흡 자체가 다르다 보니 여러가지로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고 준비해야 할 부분도 많이 있네요. 종이책은 새로운 시도라서 많이 흥미진진합니다.

기왕에 된 거 소장 가치가 있는 재미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네요.

로크 최고의 히트작인 달조만큼만 히트 한다면 이 생에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ㅋㅋ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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