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회 - 괴물
“이번 상대는 일본인이다.”
다음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김관수 관장이 미루고 미룬 탓에 누구인가 하던 궁금증은 결국 그 말로 더욱 크게 터져 나오고 말았다.
“일본인이요?”
로드원 FC는 국내 무대이고, 따라서 당연히 다음 상대 역시 국내 선수라고 생각했던지라 김관수 관장의 이야기가 더욱 더 실감이 나지 않는지 현성이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물음을 던지자 이내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이시이 관장이 연말에 현성이 니를 꼭 올리고 싶은 모양이다. 보니까 소속이 정도회관이던데 정도회관 출신 선수는… 이시이 관장 입김이 닿는 곳이니까. 아마 자기 선수 가지고 니를 한 번 테스트 해보고 싶지 않았나… 그래 생각 되네.”
그 말에 현성이 ‘아…’ 하고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 대회에서 K-1의 대표인 이시이 정도회관 관장이 그의 경기를 아주 예의 주시했단 말을 정문호 대표에게 일찍이 전해 들은 바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래도 조금씩 구체화가 되어 가는지 다음 시합 상대가 정도회관 출신의 일본인 파이터란 사실에 현성이 무어라 이야기를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다 정말로 연말 K-1의 이벤트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조금 긴장한 얼굴로 김관수 관장을 바라본다. 그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으며 현성이 했던 말대로 기회는 놓쳐선 안 된다는 듯 이야기를 꺼낸다.
“야마다 류이치! 정도회관 소속… 극진 가라데를 베이스로 삼은 선수고 전적은 8전 5승 3패. 재미있는 거는 이긴 거는 전부 KO승이고, 진 거는 전부 판정패네.”
“워… 뭐 그런 놈이 다 있어요? 이거 대박이네. 아예 대놓고 현성이랑 한 번 붙어봐라 이 심보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 전적 자체가 야마다 류이치라는 선수의 성격 자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전 경기 KO승에 패배는 모두 판정. 그 말인 즉 왠만한 타격으로는 쓰러뜨리기가 힘들며, 또한 무척이나 화끈한 타격전을 주로 펼치는 선수란 것이 아니겠는가? 그 요상한 레코드에 기철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새롭게 토네이도 짐에 합류한 알렉세이 역시 재미있는 전적이라는 듯 덩달아 웃음 짓는다.
“아마도… 다이너마이트 무대 자체가 MMA보다는 입식 위주니까… 아마 그쪽으로 염두에 두고 있지 않겠나 싶다.”
그 말에 이내 알렉세이가 자신도 K-1의 이벤트와는 그리 무관하지 않았다는 듯 이야기를 꺼낸다.
“잠깐 러시안 탑 팀에 있을 때 팀 맴버였던 세르게이란 MMA 파이터가 입식 시합을 치룬 적이 있어요. 그런 형식이 아닐까 싶군요.”
다른 발음은 모두 유창하지만 이상하게 김관수 관장을 부를 때에만 발음이 어려운지 격한 소리 나오는 알렉세이의 말에 김관수 관장이 혹시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닌가 하고 그를 유심히 살펴보자 알렉세이가 이내 미소와 함께 오해라는 듯 손을 흔든다.
“쾅수 콴장님 발음이 힘들어요.”
“…끙… 뭐, 뭐라 칼 수도 없고… 암튼 간에! 다음 시합은 사실상 그라운드 전이 없는 타격 정면 승부가 되지 않겠나 싶다!”
아무래도 뭔가 수상하긴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이쯤하고 넘어가겠다는 듯 김관수 관장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살짝 미소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자 김관수 관장이 먼저 보여줄 게 있다는 듯 관장실에 모여 있는 그들을 향해 노트북을 펴보인다.
“캐가 일단 오퍼는 받고, 자료가 있나 알아보긴 했는데 아무래도 활동 했던 단체가 일본서도 메이저 단체는 아니라가 자료를 구하기가 힘드네. 남아 있는거는 예전에 정도회관 선수로 가라데 대회서 시합했던 거 몇 개 뿐인데… 사실 이거만 봐도 스타일이 딱 나올 거 같다.”
섣불리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되겠지만 현재로써는 이게 최선이라는 듯 김관수 관장이 동영상을 재생한다. 화면이 군데군데 깨지고 노이즈까지 간 화면은 최악의 화질이었지만…
“여기 보이제? 오른쪽이 야마다 류이치다.”
그 영상을 이미 몇 번이나 돌려본 듯 김관수 관장이 정확히 상대를 지목하니 모두들 한결 보기가 쉬워진 듯 음… 하고 화면을 바라본다. 새하얀 극진 도복을 입은 두 사람이 시합을 벌이고 있는 모습은 일찍이 도쿄의 신극진회관에서 본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일본인이 아랍계 선수와 대치를 이루고 있었는데 주먹으로 안면 타격을 금지하고 있는 가라데 특성 상 현란한 발기술을 선사하고 있었다.
-퍽!
특히나 묵직한 상단 돌려 차기는 허리의 힘을 제대로 실은 듯 묵직한 타격감을 선보이고 있었는데 가드를 올린 아랍계 선수의 몸이 휘청일 정도였다!
“파워가 상당한데요?”
“체중 배분이 잘 된 것 같아요.”
기철과 알렉세이 역시 그 위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이야기를 꺼내자 현성이 더욱 더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해서 그 장면을 바라본다. 야마다 류이치라는 이 선수는 오로지 공격에 공격밖에 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상단 돌려차기와 하단의 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아랍계 선수를 몰아 붙이고 있었는데, 그 도중 강력한 정권 지르기를 바디에 맞거나 반격을 당하더라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묵직하게 상대를 밀어 붙이고 있었다.
“…완전 이거 불도저, 탱크 같은데?”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기철이 자신과는 어울리징 않는 파이팅 스타일이란 생각이 들었던지 혀를 내두르고 만다. 기본적으로 극진 가라데 자체가 몸의 내구성, 단련의 정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무술이란 것은 알고 있지만 야마다 류이치라고 불리는 이 선수는 피할 수 있을 법한 타격 조차도 물러섬 없이 받아치고 있었다. 마치 과거 건달이나 양아치들이 서로의 근성을 시험해본다 하는 원펀치를 보는 듯 한 그 격투 방식에 기철과 알렉세이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감탄했다는 듯 혀를 내두른다.
“별명은 사무라이. 죽어도 물러서지 않는다 카네… 정 대표 얘기 들어 보니까 판정으로 이길 수 있는 거도 굳이 무리하게 들어가다가 판정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재미있는 거는…”
-퍼억!
김관수 관장이 설명을 이어가던 도중 순간 아랍계 선수와 난타전을 펼치고 있는 화면속의 야마다 류이치가 번개처럼 뒤돌아 서며 뒤돌아차기로 아랍계 선수의 안면을 강타한다! 엉망인 화질로 봐도 얼핏 엄청난 것이 안면으로 들어가자 그대로 아랍계 선수가 바닥에 쓰러져 버리고 승리를 확신한 듯 ‘우라얍!’ 하는 기합과 함께 주먹을 번쩍 들어올린다. 그것을 끝으로 동영상이 재생을 멈춘 순간 잠깐 말을 멈췄던 김관수 관장이 확실히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듯 이야길 잇는다.
“판정으로 이긴 아들 전부 부상으로 몇 개월 간 시합을 가지지 못했단 거다.”
그 말에 순간 토네이도 짐 관장실에 정적이 흐른다.
“흥미롭군요.”
그리고 알렉세이가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내자 기철이 확실히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인 즉… 엄청나게 튼튼하고, 엄청나게 터프한 상대를 이시이 관장이 현성이 상대로 지목을 해줬단 거네요…?”
“그래, 그럴 거라. 원래는 정 대표도 딱히 관심 있던 선수는 아니었는데 이번 시합을 단기 계약 했다 카는 거보면 분명히… ”
확실히 그 계약 자체를 우연이라고 보기엔 힘이 들 것이다. 물론 스타일 상 상당한 인기를 구가할 수밖에 없는 선수란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김관수 관장의 말에 기철과 알렉세이가 힐끔 현성을 돌아본다. 현성 역시 일이 이렇게 풀릴 것이라곤 도통 생각을 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아무래도 일전에 한 번 신세를 진 적 있는 극진 가라데 소속의 선수와 시합을 하게 되었단 것이 조금은 들뜬 얼굴이다.
고모 내외의 일로 고민이 많던 차에 한결 밝아진 그 모습을 보며 기철과 김관수 관장이 조금은 안심을 한 듯 미소 짓는 동안 현성이 먼저 입을 연다.
“그러면… 이번 시합은 타격을 중점으로 연습을 해야…겠네요…?”
알렉세이 코치까지 들어 왔는데 아무래도 타격 위주로 다시 게임을 풀어가야 하는 게 조금은 걸렸던지 그 말에 알렉세이가 오히려 후후 웃음 짓는다.
“걱정 하지 마요, 현성. 컴벳 삼보는 안면 타격도 허락을 해요. 일반적인 삼보와 다르게 전투용으로 사용하는 무술이기 때문에 그래플링 이외에도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어요.”
기본 베이스가 삼보일 뿐 다른 요소들도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그 말에 현성이 ‘아…’ 하고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인다. 조금 민망해 하는 그의 모습에 알렉세이가 후후후 웃음을 짓는 동안 김관수 관장이 ‘자자!’ 하고 박수를 짝짝 친다.
“우에 됐거나 이거는 우리한테… 확실히 다이너마이트 무대에 설 자격이 있나 보여봐라! 얘기하는거랑 똑같은기다…! 최소한 이 정도로 화끈하게 나오는 선수를, 어떻게 잡아낼래…? 하고 묻는거라…! 아마 세계로 나갈라 카면 이 정도 선수는 확실히… 우리가 잡아낼 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아마도 이시이 관장이 단순히 로드원의 흥행을 기원하고자 야마다 류이치 같은 화끈한 선수를 자객으로 보낸 것은 아닐 것이다. 스타일 상 야마다가 극진 세계 선수권에서도 우승을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 입지는 상당히 견고한 인물 중 하나였다. 특히나 물러서지 않는 투지와 근성의 표본이란 점에 있어서 상당한 팬 층을 구축하고 있는… K-1이 다시 재기를 노리고 있는데 있어서 어필을 하기 위해선 바로 그런 선수가 필요했을 것이다.
과거 K-1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피터 아츠나 레이 세포는 너무 노쇠했고, 이미 후스트는 은퇴하고 말았다. 앤디 훅은 불치병으로 그보다 더 일찍 목숨을 잃었고, UFC와 함께 세계 격투계를 양분하던 K-1은 이렇다 할 세대 교체를 이뤄내지 못한 채 그 황금기 맴버들을 마지막으로 삼아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시류 자체가 조금 더 자극적이고 다양한 그림을 원하는 세태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던지라 그로 인해서 대세가 종합 격투기로 넘어갔다는 상황적인 부분도 K-1의 몰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2000년대 들어 K-1은 히어로를 잃고 말았단 것이다.
레미 본야스키나 바다 하리 같은 걸출한 신인들이 등장한 바 있었지만 그 이전에 과거 명성을 찾기 위한 무리수로 많은 서커스 매치들을 남발했고, 결국은 그것이 단기적으론 흥행에 성공했어도 결국은 K-1 자체를 위협하고 말았다. 후계자들이 모습을 보여도 이미 수습이 되지 않을 정도로 K-1의 이미지는 서커스처럼 변모하고 말았고 결정적으로 최강의 선수였지만 인기가 없단 이유로 슐트를 방출하게 되면서 K-1이라는 의미 자체를 잃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TBS에서 방출이 되고, 많은 선수들이 K-1를 떠나서 네덜란드의 쇼타임으로 이적을 하게 되면서 존망 자체가 위태로워진 이 시점… K-1 재기를 하기 위해선 분명히 히어로 같은 선수가 필요했다. 그것이 기왕이면 자국 선수라면 더 좋겠지만…
과거 K-1이 전성기를 구가했을 때엔 자국의 선수가 맹활약을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존재 자체로 압도적인 사나이들이 대립 구도를 만들었을 때 말 그대로 K-1! 누가 최고의 타격가인가를 가리기 위한 경쟁 구도가 만들어 졌을 때 가장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순간을 열었던 사람이 바로 이시이 관장이고, 그가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한 것은 아마도 그러한 상황을 다시 한 번 재현하기 위함일 것이다.
“사실 나는 이거도 지나가는 코스라고 본다. 하지만… 세계 무대로 나갈라 카면 반드시 그 연말 행사에는 올라설 필요가 있을기라. 아마 다음 경기서 이시이 관장만 납득 시키면… 당연히 그래 되지 않겠나 싶다.”
그것인 즉 단 한 번도 KO 당한 적이 없는 야마다 류이치를 KO 시키는 것. 김관수 관장의 결연한 눈빛에 현성이 복잡했던 마음을 모두 싹 비우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풀리지는 않지만 기철이 해줬던 이야기 처럼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서 플랜을 짜고 실행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남는 것이 있고,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니까.
“목표는 KO승. 그리고 K-1 올라가는 거지예…?”
다시 한 번 그 목표를 확인하겠다는 듯 현성이 물음을 던지는 순간 김관수 관장이 씩 웃음 짓는다. 알렉세이 역시 이 덩치 크고 부끄러운 많은 한국인이 순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단 기분이 들었던지 흥미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아무도 야마다 선수 KO는 못 해봤다 카니까 욕심이 생기네예.”
============================ 작품 후기 ============================
알렉세이 이바노프 -> 블라고이 이바노프가 모델입니당. 격투기 뿐 아니라 삼보에서도 연승을 이어가던 효도르에게 8년만에 패배를 안겨 주었던 선수로 종합에선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사라졌던걸로 기억 하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