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회 - 괴물
지금껏 현성이 많은 싸움을 해왔지만… 이토록 많이 맞아본 일은 민욱과의 싸움이 이후론 처음이었다.
미들급 최고의 스트라이커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가드를 했지만 가드를 했던 두 팔이 저려올 정도였고, 간간히 허용한 바디 샷은 차마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지만 현성의 호흡 역시 짧아지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영찬과 달리 펀치를 흘려보내거나 커트하면서 안으로 끝까지 들어와 맞불을 놓는 근성까지…! 역시 예상했던 대로 재석은 보통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후웅…!
그는 철저히 플랜대로 재석의 초반 러시를 봉쇄하며 페이스를 흐트러뜨렸고, 묵직한 로 킥으로 경기의 분위기를 뒤집었다. 그리고 접근전의 테이크 다운을 뺨 클린치와 니킥으로 차단해내며, 마찬가지로 당한만큼 재석에게도 바디 샷으로 데미지를 돌려주어 그의 체력 소모를 자신보다도 더 크게 이끌어 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리고 타고난 신체의 이점…!
오히려 베테랑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들어갔을 때 불리함을 느끼고 서둘러 마무리를 하기 위해 그가 뛰어오른 순간이 바로 기회였다. 재석의 발끝이 스친 옆구리에서 지끈하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상대적으로 언더독이라 불리는, 아무리 현성이 노력해도 결국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 평을 내린 사람들에게 항의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단지 오직 승리! 그것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준비해오지 않았던가…?
마치 슬로모션처럼 뛰어 오른 재석이 그를 향해 주먹을 내던진다. 비디오로 보았던 그 모션 그대로, 그 장면 그대로!
성이 난 말벌처럼 사납게 날아올라 그를 향해 날카로운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내던진 바로 그 모습에 현성이 두근! 하고 가슴이 한 번 더 요동침을 느끼며 몸을 돌려 세운다…! 몇 번이나 연습을 했고, 몇 번이나 반복을 했던… 심지어 하루에 수 백 번도 더 연습을 했던 바로 그 한방을 선사하기 위해서 말이다!
-빙글…!
몸을 뒤로 돌아 세우며 손은 페이크 모션을 주기 위해서 마치 백 스핀 블로를 구사하듯이 요란하게 반동을 주어 상대의 시야를 가린다…! 그 순간 재석이 그가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고는 더욱 더 이를 악 무는 장면이 얼핏 현성의 눈가를 스친다…! 하지만 재석도 그도 이제는 멈출 수가 없다! 이미 그도, 현성도 여기서 승부수를 띄울 생각이었으니까…!
알아차렸을까? 깨달은 것일까?
하지만…!
‘깨달아도 이미 너무 늦었다!’
이것이 히트하던지, 빗겨나가던지…! 이미 모션은 들어갔고 그 다음은 연습하고 반복했던 그것을 적중시키는 일 밖에 없었다.
-부웅…!
그리고 돌아선 현성에 사뿐하게 자리를 박차며, 마치 그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지는 묘한 이질감에 온 몸에 짜르륵 하고 전율이 퍼지는 것을 느끼며 뒷다리를 앞으로 내리 찔러 들어간다…! 축으로 삼은 앞발은 가볍게 지면을 박찼고, 지탱하던 뒷다리에 모든 체중을 실어 온 힘을 다해서…!
-퍼억!
그 순간 둔탁한 소리가 컨벤션 호텔 이벤트 홀을 가득 울렸다…! 시작부터 난타전 양상으로 벌어진 신구 타격가의 대결…! 벌처럼 날아든 재석의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향해 현성은… 극진회관에서 익힌 스핀킥을 통해서 완벽한 반격을 선사했다…!
그 찰나의 순간! 백 스핀 블로를 연상케 했던 손동작 이후 정확하게 재석의 복부를, 마치 카운터 형식으로 들어간 킥에 엄청난 소리를 내며 히트하자 그와 동시에 재석이 견디지 못하고 인상을 찡그리며 복부를 부여잡고 바닥으로 쓰러져 버린다…!
“아악…!”
예상치 못했던 재석의 반격에 대한 현성의 반격…! 그 순간 사람들이 너무나도 빠른 그 광경에 잠깐 정리가 되지 않은 듯 멈칫하다 이내 ‘오오오오!’ 하고 놀라서 함성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말도 안 돼! 우와아아…! 와!”
“대박…! 이게 뭐야, 도대체!”
군데군데 웅성이는 사람들이 마치 액션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연출된 그 장면에 아낌 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동안 현성이 바디 샷으로 인해서, 그리고 다이나믹한 움직임의 재석을 따라잡기 위해서 움직인 것 덕분에 숨이 벅차 오른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재석을 바라본다.
바로 그 찰나의 순간…! 기철에게 전수 받은 핸드 페인팅 동작을 재석은 백 스핀 블로라 착각했고, 그것보다도 먼저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으려 했지만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팔이 길어도 다리보다 길 수가 있을까? 여지 없이 날아든 현성의 스핀킥이 재석의 복부를 가격한 순간 그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경기 종료!”
바닥에 쓰러진 재석이 복부를 붙잡고 식은땀까지 흘리며 괴로워하자 이내 더 이상은 진행이 불가능하다 판단한 심판 배훈이 경기 종료를 외치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아-!”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함성 속에서 현성이 지친 숨을 몰아쉬며,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재석의 모습에 승리가 확실해지자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처음에 공언했던 그대로…! 반드시 이기겠다는 약속과 함께 승리를 거둔 그 당당한 모습…! 그 모습과 동시에 사람들이 ‘거품설’을 일축하며 그를 향해 박수와 환호를 더하기 시작했다.
판정으로 끝난 1경기와 다르게 시작부터 화끈했던, 그리고 종국에는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과도 같은 장면을 연출하며 2전을 KO 승으로 장식한 그를 향해 환호를 아끼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 듯 말이다…!
“현성아!”
그런 그를 향해서 김관수 관장이 가장 먼저 소리친다.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는 재석이 걱정이 되지만… 어디까지나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다.
그 기쁜 목소리가 함성에 묻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컨벤션 호텔 이벤트 홀이 함성으로 가득하자 현성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전율감을 느끼며 그제야 김관수 관장과 기철을 향해 뒤돌아선다.
“잘했다, 잘했어!”
“이겼다…! 이겼어! 꺄아아악!”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아낌없이 기뻐하며 기철이 엄지를 치켜들고, 혜주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좋아하자 현성이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달려간다.
“관장님! 행님! 누나…!”
이제는 정말 가족과도 다름이 없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현성이 약속을 지켰다는 듯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자 기철과 김관수 관장이 케이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잘했다! 하고 그를 꽉 끌어안는다!
“잘 했다! 진짜 잘 했어! 진짜!”
고작 2전 째에 과거 스피릿 MC 4천왕이라 불렸던 이재석과의 싸움을 한다… 얼핏 무리수처럼 느껴진 그 선택을 그는 무리수가 아닌 기회로 만들어 냈다…! 아무렴 현성이 재능이 있어도 재석을 이기는 것은 무리란 여론이 팽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세상에 트레이너로써 이렇게 기쁜 일은 더는 없을 것이다. 어떤 요구든 거절하거나 토를 달지 않으며, 전적으로 그의 뜻을 믿고 따른다. 그리고 함께 구상한 플랜을 100% 시행해내며, 완벽한 승리를 가져가는 선수이자 제자는 다시는 만나보기가 힘들 테니까!
그 기쁨 덕분일까? 김관수 관장이 글썽한 눈으로 현성의 어깨를 두드리는 동안 기철이 ‘진짜…! 진짜 너무 잘했다, 임마!’ 하고 현성의 까까머리를 헝큰다. 친형처럼 다정한 그 손길에 현성이 그저 웃음만 짓는 동안 혜주가 안으로 들어와 다소 불안했던 초반과 달리 영화처럼 멋진 승리를 거둬낸 그녀의 남자에게로 달려간다.
“왜 이렇게 많이 맞았노! 바보야…!”
승리보다도 온 통 울긋불긋한 그 몸이 더 걱정이라는 듯 눈물 글썽이는 그녀를 보며 김관수 관장과 기철이 후후 웃음과 함께 길을 열어주자 이내 현성이 달려온 혜주를 번쩍 안아든다.
“잘 했어…! 정말 제일 멋있다…!”
그리고 그녀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그의 입에 입술을 맞추자 사람들이 더욱 더 크게 환호한다…! 그 환호에 혜주가 순간 여기가 12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드러선 장소란 것을 깨달은 듯,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자 꺅 하고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자 현성이 마냥 좋기만 한 듯 웃음을 터뜨린다. 그 사이에 기철이 이 기쁜 소식을 알릴 사람이 있다는 듯 핸드폰 화면을 다시 보여주자 이내 핸드폰 너머로 ‘꺄아아악!’ 하는 환호성이 울린다!
“예린아! 이겼다!”
이번 시합에서 가장 큰 공훈을 세운 예린을 향해 현성이 주먹을 들자 핸드폰 너머의 예린이 너무 기쁜 듯 눈물까지 보이며 ‘오빠! 진짜 잘 했어요! 진짜 오빠가 최고!’ 진심으로 그의 승리를 축하한다. 그 모습에 현성이 웃음을 짓고 있는 동안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으며 현성에게 턱짓을 한다.
“아…”
장내는 여전히 진정될 줄을 몰랐다. 그는 고요했지만 그의 경기는 언제나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마치 체 게바라 같은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 카리스마에 흠뻑 취한 사람들이, 진짜 남자들의 싸움에서 느낀 카타르시스에 취해 있는 동안 현성이 김관수 관장의 턱 짓을 따라서 충격적인 패배를 겪고 만 재석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괜찮으…십니까…?”
승리도 기쁘고, 사람들의 환호도 즐겁지만… 아무래도 무대 위에는 승자와 패자….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두 사람 모두 승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오늘은 패자가 된 재석을 바라보며 걱정스런 눈빛을 하자 재석이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 미들급의 대들보라 불렸던 그가… 그 야심찼던 복귀전이 이런 패배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는 듯 그 안타까운 모습에 현성이 미안한 듯 그를 바라보다 90도로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 한다.
“감사합니더…. 선배님.”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 대신 전한 그 말. 진심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그 모습에 사람들이 짝짝짝 하고 박수를 치는 동안 재석이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충격이 심한 복부를 부여 잡고 일어나 현성의 등을 두드린다. 그리고 그 손길에 현성이 고개를 들자 재석이 아무 말 없이 현성을 끌어안는다.
나쁜 것은 없다. 최선을 다해서 싸웠고, 그가 자신보다 조금 더 강했을 뿐이다. 그게… 그게 너무너무 분하고 힘들지만… 받아들이기 쉽진 않지만 나쁜 것은 없다. 이내 재석이 ‘진 짜 잘 했어…’ 하고 그의 등을 다독이자 현성이 괜시리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던지 ‘감사합니더…’ 하고 다시 인사 한다.
그 지난 넉달간의 노력. 그만큼이나… 재석 또한 노력 했을 것이다. 시합을 하는 내내 서로 이기기 위해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주먹을 나누고, 킥을 나누기도 했다. 며칠은 앓아야 할 상처를 서로의 몸에 새겼지만… 그건 그 어떤 말보다도 가슴에 깊이 와닿는 말이었다.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 노력을 했다.’
그 마음이란 건… 그냥 감정이 솟아올라서 욱하고 싸워버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단 것을 그 무대 위에서 완전히 깨달은 현성이 글썽이는 눈을 하자 이내 재석이 그러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이긴 사람은… 관중들을 더 열광하게 해줘야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이 담긴 조언과 함께 재석이 현성의 손을 잡고 그의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와아아아아아!”
그 훈훈하기 그지없는 장면에 다시 한 번 사람들이 열광하는 동안 이제 자기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재석이 천천히 자신의 손만 내리곤 박수를 치며 그를 바라본다. 아직도 복부에 들어간 스핀킥의 데미지가 남아 있는 듯 창백한 얼굴이지만… 분명히 그렇게 쉬운 심경은 아닐 테지만… 아낌없이 박수 치는 그 모습에 현성이 다시 한 번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재석이 그나마 질만한 놈에게 져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던지 옅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팀 파시 팀원들의 부축을 받아 먼저 퇴장한다. 그리고 동안 현성이 아직도 박수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더 인사 한다.
“감사합니더! 고맙심다…!”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환호를 보내준 사람들에게 현성이 고개 숙여 인사 하자 다소 무섭게 생긴 외모에… 남들보다 갑절은 고생을 했던 어두운 과거까지 가지고 있던… 이 압도적으로 강하고 예의바른 청년의 모습에 사람들이 아낌없이 다시 한 번 더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승리 축하 합니다, 장선수… 그런데 이제… 다음 시합도 슬슬 준비를 해야 해서…”
“아… 죄송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성이 이제는 다음 시합을 위해서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배훈의 이야기에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김관수 관장과, 기철, 혜주를 비롯한 토네이도 짐의 스태프들과 함께 케이지를 벗어나 백 스테이지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영찬과의 데뷔전에서 보였던 강함도 강함이지만 그보다 더 진일보한 모습을 선보이며 2전 2승 2KO를 기록한 바로 그 날…
“…어때요? 이시이 상. 이 친구 끝내주죠…?”
컨벤션 호텔 이벤트 홀 VIP 석에 선 정문호 대표가 미소와 함께 곁에 서 있던 작고 머리가 벗겨진 남자를 향해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물음을 던진다.
“…아…”
그리고 곧 그가 채 이시이라 불린 남자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어떤 대답을 내릴지는 알겠다는 듯 씩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현재는 내리막길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 두터운 팬 층을 가지고 있는 K-1의 창시자이자… 다시 돌아온 K-1의 대표가 이토록 빛이 나는 원석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확실히 대단하군요. 아직 유명하진 않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느껴집니다.”
이제는 인사를 다 하고서 다시 대기실로 사라지는 현성이지만 여전히 그를 향해 눈을 떼지 못한 채 이시이 대표가 대답하자 정문호 대표가 이것은 기회라는 듯 그를 향해 다시 물음을 던진다.
“K-1의 연말 다이너마이트 축제에 선다 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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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K-1 진출!
혹시 집단 상담 받아보셨거나 시행해보신 분 계신가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