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 회 - 괴물
현 격투계는 사각의 링을 버리고 팔각의 케이지를 선택했다. 그것은 비단 격투계를 주도하고 있는 UFC가 과거 초대 대회에서부터 옥타곤이라 불리는 팔각 케이지를 사용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철장은 링보다 더 심플하고, 강인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싸우는 파이터들 역시 조금 더 강인해 보이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마치 우리 속에서 싸우는 짐승처럼, 보다 거칠고 격정적으로 싸우고 있는 듯 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 케이지 안에서 수백, 수 천개의 시선을 느끼며 현성이 재석과 마주선 순간… 그는 그것이 단순한 철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포함한 아주 두꺼운 이중 장벽을 만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후우… 후우…”
아직까지 완전하게 떨쳐내지 못한 사람들의 시선은 다소 그를 움츠러들게 했지만… 그게 그렇게 큰 문제는 되지 않을 터.
이제는 그 시선들이 결코 그를 비웃거나, 경멸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겨우 그러한 것들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현성이었기 때문에 그저 재석과 마주선 채로 차분하게 숨을 정리할 뿐이다.
“겁 먹었어? 왜 이래…?”
심판 배훈이 익숙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 퍼포먼스를 마치고 링으로 입장한 재석이 마찬가지로 긴장함을 풀기 위해서 몸을 요란하게 움직이며 현성에게 말을 건다. 아마도 눈을 감은 채 고요한 정적을 보이고 있는 현성이 다소 긴장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 듯 조금 자극을 하기 위해서 던진 듯 한 그 말도 이 순간만큼은 시비가 아니라 배려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천천히 눈을 뜬 현성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흔든다. 그 모습에 재석이 ‘이거 봐라…’ 하고 조금 더 달아오른 듯 몸을 풀며 그를 매섭게 노려본다. 아마 재석이 그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 따위는 키우지 않고 있겠지만 상대와 친구가 될 생각은 없다. 적어도 시합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는 말이다.
특히나 2년만의 복귀전인지라 더욱 더 기합이 들어간 듯 재석이 후배이며, 초심자이지만 절대로 봐주지 않겠다는 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응시하는 동안 현성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그 눈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 영찬과 붙을 때에도 그랬지만 결코 상대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의 플랜을 정돈하는 듯 한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김관수 관장과 기철, 혜주가 묘한 긴장감으로 그를 바라본다.
여지껏 현성은 그들에게 이렇게 확실한 자신감을 보인 바가 없었다. 그것이 좌절과 시련을 반복해온 인생 덕에 본인 스스로도 확신을 내릴 수 없어 생겨난 문제인지도 몰랐지만… 지금까지의 그는 그렇게 쉽게 승리를 장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이제 겨우 2전째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 그런 것일까? 재석이 등장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그가 말했던 ‘반드시 이긴다.’는 자신 있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더욱 기대감을 자극하는 것을 느끼며 그들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고요하다. 가볍게 팔과 다리를 풀고 있지만 그 몸을 무척이나 고요하다. 어떤 떨림이나 진동도 느껴지지 않는… 마치 묵직하고 고요한 산과 같았다.
“…느낌이 엄청 좋은데요…?”
현역 파이터로써 가장 현성의 기분을 잘 이해 할 수 있는 기철이 여지껏 던지던 시시껄렁한 농담을 집어치운 채 후배의 너른 등판을 바라본다. 잘 만들어진 근육이 탄탄하게 자리 잡은 그 넓직한 등판이 요란하게 몸을 풀고 있는 재석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복귀전인 탓에 긴장과 흥분이 과한 듯 과한 모습으로 몸을 푸는 그와는 달리 현성은… 11전이란 많은 시합을 치룬 기철이 보기에도 무척이나 안정감이 있어 보였다.
“오늘… 큰 사고 하나 칠 거 같은데요…?”
그 자신감 가득한 모습과 이 놀라운 안정감. 이제 겨우 2전째인 초짜가 보일 태도는 아니란 생각이 들자 기대감은 더욱 더 커져 간다. 물론 너무 큰 기대감은 오히려 게임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러게 말이다.”
냉정한 김관수 관장마저도 현성의 모습에 덩달아 기대를 한 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다. 지금 현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만… 그와 함께 훈련을 해왔고, 그 성실함과 그 집념…! 거기다 타고난 재능을 더해서 이 자리에 선 그를 믿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점차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제는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진 듯 재석이 다급하게 배훈을 바라본다. 어서 시작을 해달라는 그 눈빛…! 오랫동안 굶주린 시합에 대한 갈망이 보이는 그 얼굴에 배훈이 오랜 세월 함께 해온 동료이자 친구인 그를 향해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와아아아 하고 커져가던 함성이 점차 사그라들고 그 사이로 정적이 찾아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훈이 두 사람에게 헤드 버팅과 눈을 찌르는 행위, 급소 가격은 안 된다는 기본적인 룰을 이야기 하고 천천히 두 사람 사이로 손을 올린다.
-두근… 두근… 두근…!
마치 슬로모션처럼… 그의 손이 가슴팍 앞 까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현성이 기분좋게 쿵쾅이는 가슴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재석을 바라본다.
“파이트!”
그리고 배훈의 목소리가 어느 샌가 완전한 정적이 찾아든 컨벤션 호텔 이벤트 홀을 가득 울리자 이내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함성을 더한다. 와아아 하고 이벤트 홀에 들어온 1200명의 관중들이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2 시합의 향방을 기대하는 동안 현성이 재석과 주먹을 마주친다.
‘좋은 시합을 하자.’
도발을 하기도 하고 흥분을 하기도 했지만 주먹을 마주치며 재석이 보낸 눈빛은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듯 했다. 그 눈빛을 바라보며 내내 시선을 피하던 현성이 그제야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팟!
“와아아!”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날아든 재석의 예리한 펀치! 순간 사람들이 인사 이후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간 공격에 움찔하며 환호하는 동안 현성 역시 인사 직후 바로 날아든 주먹에 움찔하며 주먹을 뻗는다.
-후웅!
리치는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절대 우위를 가지고 있는 현성에게 거리를 둔다는 것은 애시당초 계산이나 염두에 두지 않은 듯 재석이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 반격에 움찔하며 몸을 낮춰 들어와 시작부터 화끈하게 주먹에 불을 뿜기 시작한다!
기습적인 잽 이후에 현성의 반격을 피해내고는 근접해서 그가 바디샷을 날리자 생각보다 더 빠른 그 몸놀림에 현성이 조금 당황한 듯 움찔하며 가드를 내린다. 마치 그것을 노린 듯 내려온 가드를 보는 순간 다시 안면으로 날아드는 재석의 레프트…!
-후웅!
묵직한 훅이 근접에서의 KO승을 노리고 있는 듯 날카롭게 날아들자 현성이 순간 백스탭으로 거리를 둬 레프트 훅을 피해낸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레프트가 빗겨나가자 마자 재석이 바로 라이트 스트레이트로 도망치는 현성을 추격해 들어간다! 그와 리치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거의 15센티 이상이 차이가 난다! 그 거리를 허용하는 순간 게임 자체가 쉽게 풀려나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듯 초반, 맹렬한 기세로 재석이 휘두른 스트레이트에 현성의 가드가 흔들린다!
-퍼억!
가드 위를 때린 주먹이 생각보다 세차다! 현성과 같은 체급의 선수가 없는 토네이도 짐이기 때문에, 이렇 듯 같은 체급의 재석이 체중을 실어 날린 펀치는 가드를 해도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와아아아아!”
그 광경에 사람들이 흥분해 함성을 지르는 동안 재석이 근접전에선 밀리지 않는다는 듯 스트레이트를 작렬한 이후 급히 밀착하며 현성의 바디를 다시 공략하기 시작한다! 당초 연습했던 것과 달리 기습적인 잽 이후로 철저히 접근전을 고수하는 재석의 모습에 현성이 게임이 조금 말린 듯 수세에 몰리자 김관수 관장과 기철이 움찔하며 주먹을 쥔다.
리치가 압도적으로 길단 것은 거리 싸움에 있어서 탁월하게 상대를 요리할 수 있지만 이토록 밀착한 상태에서, 상대가 빠르게 공격을 해오게 된다면 그 못지 않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었다. 특히나 재석은 한국 미들급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강타자였고, 아무리 2년의 공백기가 있어도 그의 펀치는 무척이나 매서웠다!
-후웅!
집요하게 안면 타격을 노리는 그의 펀치를 피해내며 현성이 점차 코너로 밀리기 시작한다! 영찬을 상대했을 때의 그 공격적인 모습과는 다소 다른 모습에 사람들이 ‘거품이었나…? 역시 이재석에겐 안 되나 보다…!’ 하고 웅성이는 동안…!
완벽하게 몸이 풀린 재석이 어마어마한 펀치 러쉬를 퍼붓기 시작한다. 수년의 경험이 담긴, 프로 복서에 가까운 원투 컴비네이션에 이어 적절히 찔러 들어가는 바디샷! 케이지 한 구석으로 내 몰린 채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는 현성의 모습에 사람들이 ‘와아아아!’ 환호 하기 시작하자 혜주가 피가 말리는 듯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 모습을 본다!
“…왜… 왜 거서 자꾸 그카노…!”
빨리 뭐라도 해서 이 상황을 벗어나야지, 왜 거기서 맞고만 있는지 답답한 맘을 담아 근가 소리친다. 그러나 발을 동동 구르는 그녀와 달리… 김관수 관장과 기철은 고요하다. 아주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눈빛에 빛을 발할 뿐이다.
“관장님…! 왜 캐요…! 지금…”
“정타는 하나도 안 들어가고 있다. 걱정 하지 마라.”
그 말에 혜주가 ‘예?’ 하고 그를 바라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그녀가 다시 케이지의 현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가드를 올린 채 맞고만 있는 현성이 보인다. 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듯 혜주가 기철과 김관수 관장을 바라보자 기철이 피식 웃음 짓는다.
“누나, 저거 생각보다 되게 힘들어요. 초반 러시 들어가는 거… 특히나 기회다 싶을 때 미친 듯이 펀치 휘두르고 나면 나중엔 숨도 쉬기 힘들어 져요.”
“…그러면 뭐 일부러…? 일부러 맞는다고…?”
그 말에 김관수 관장이 피식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처음부터 재석의 저돌성은 예상을 했던 바…!
“초반 체력만 빼놓으면 그 다음은 쉬워 진다…! 잘 봐라! 많이 맞고 있는 거 같지만 거의 다 가드에 걸리고 있고, 잔 데미지는 입어도 얼굴은 말짱하제…?”
말 그대로였다. 간간히 바디샷을 허용하긴 했지만 붉어진 두 팔과 달리 현성의 얼굴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혜주가 미처 그 상황 속에서 발견하지 못한… 오싹할 정도로 침착해보이는 얼굴까지도 말이다!
“후아!”
맹공을 퍼붓고 있는 재석 역시 열광하는 사람들과 달리 뭔가가 이상하단 것을 느낀 듯 쉴 새 없이 펀치를 이어가지만 정타가 생겨나지 않는단 사실에 움찔하며 이를 악 물고 만다. 맷집과 체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 시작 이후로 약 30여초 동안 쉴 새 없이 펀치를 퍼붓고 있는데, 저 단단한 가드로 치명타는 컷트해내고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동작이 조금만 크다 싶으면 어렵잖게 피해내고 있었다…!
‘노림수…?’
순간 불안한 느낌이 가슴을 스치자 재석이 이거 봐라! 하고 웃으며 한 번 맞불을 놓아주겠다는 듯 더욱 더 격정적으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이런 작전으로 체력을 빼고 후반을 노리겠다면 오히려 더 큰 공격으로 무너뜨려 주겠노라고 말이다!
-후웅!
안면이 아닌 바디를 잡겠다는 듯 바디로 들어는 펀치…! 아무리 흘려 보내도 코너에 이렇게 몰린 채로 바디샷은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퍼억!
바로 그 순간!
무척이나 둔탁한 소리가 켄벤션 호텔 이벤트 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마치 몽둥이로 사람을 후려쳤을 때 날 법한 묵직한 소리에 와아아아 하고 환호하던 사람들이 잠깐 놀라 멈칫했을 때…!
펀치를 퍼붓던 재석이 휘청하자 내내 수비로 일관하던 현성이 드디어 주먹을 뻗기 시작한다.
-파박!
그 짧은 거리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송곳 같은 원 투가… 마치 쇠파이프를 연상케 하는 현성의 로 킥에 주춤한 재석의 안면으로 들어가자 재석이 황급히 더킹 동작으로 고개를 숙여 펀치를 피해낸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한 번 더…!
-짜악!!
이번에는 완전히 다리를 휘어감아 찬 듯 어마어마한 소리가 재석의 허벅지에서 터져 나오자 사람들이 ‘오오!’ 하고 함성을 내지른다! 마치 상대의 다리를 분질러 버릴 것 같은 강렬한 로 킥 두 방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던 경기 분위기를 뒤집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로 킥 이후 현성이 백스탭으로 거리를 두고서 시뻘게진 두 팔을 들어 올린 채 계체량과 시합 직전에는 보인 바 없는 매서운 눈으로 재석을 노려보기 시작한다.
“하아… 하아…”
사전에 파악했던 부분에는 전혀 없었던 살인적인 위력의 로 킥…! 지친 숨을 내쉬며 재석이 어느 샌가 체력도 빼내고, 거리도 확보한 그를 보며 저도 모르게 긴장한 듯 꿀꺽 침을 삼킨다. 그런 그를 향해서… 자신은 헛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듯… 오로지 결과만으로 보여주겠다는 듯 현성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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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강때 급히 써올린 분량이라 오타는 이후에 수정할게영-
축의금 100 접수♥
재미는 믿고 지금껏 봐주신 분들만을 드리기 위해서 과감히 ‘격투기물’ 표기 하지 않는 객기 부립니당. 으헝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