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회 - 괴물
“현성이 니도 같이 가보면 좋은 경험이 될 낀데…”
7월. 기철과 김관수 관장의 일본 출국은 현성으로써는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일단은… 시합에 집중 해야지예… 잘 다녀 오이소, 관장님. 행님.”
하지만 그것은 애시당초에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다. 기철의 DEEP 타이틀 방어전은 7월이고, 그것을 위해서 예정된 경기 날짜보다 보름 정도 먼저 일본으로 가 그곳에서 감량과 트레이닝을 병행할 계획 말이다. 원래의 계획은 현성 역시 함께 일본으로 출국해서 훈련을 하고, 기철의 타이틀 전을 세컨드 위치에서 볼 계획이었지만… 여권이 발목을 잡고 말았다.
김관수 관장도 새카맣게 잊고 있었던지라 현성의 여권 발급이 늦어지고, 거기에 비용의 문제까지 발생하다보니 준비 미흡으로 현성을 데리고 가는 일까지는 무산되고 만 것이다. 현성의 데뷔전에서 세컨 역할을 해준 기철의 곁을 지키지 못하고, 타이틀 전을 볼 수 없다… 그것도 아까운 일이긴 하지만 다른 것들보다도 현성에겐 김관수 관장과 약 보름 정도의 공백이 생긴다는 것이 불안스러웠던 모양이다.
아쉬움을 지우지 못한 그 얼굴을 바라보며 김관수 관장 역시 현성을 두고 가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던지 그의 어깨를 연신 두드리고 있다.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시합 일정이 잡혀 있다 일찌감치 경기가 무산되어 버린 예린을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그래, 예린아, 니가 현성이 잘 가르쳐야 된데이. 알겠나?”
“걱정 말고 올 때 선물 사오세요! 관장님! 오빠!”
히히 웃으며 현성을 믿고 맡기라는 듯 예린이 그의 곁에서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자 김관수 관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기철을 바라본다. 감량 중인지라 볼이 홀쭉해진 기철이 자신감 하나는 타고났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 한다.
“니는 경기 무산 됐는데 별로 안 속상해 보이노?”
“뭐 원래 여성부 경기가 다 글쵸! 좀 허무하긴 해도 그거나 여기서 트레이너 하는 거나 버는 건 비슷하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난 현성이 오빠 싸부니까! 이번에 이재석 이기면 내 덕분이에요! 그것도!”
당초에 출국을 할 예정은 예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상대 선수인 사토 레나가 일찌감치 훈련 중 부상으로 아웃되고 말았고, 선수 자체가 모자라는 여성 격투기 시장이다 보니 대체자를 구하지 못해 아예 경기 자체가 연기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의기소침하지 않고 밝게 웃으며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애교를 보이는 예린의 모습에 기철이나 김관수 관장 모두 힘이 난다는 듯 후후 웃음 짓는다.
“진짜 나도 요번에 상대할 놈이 타격가 였으면 좀 빡세게 도와줬을 건데…”
“아이, 괜찮심다. 여지껏 도와주신 거도 많은데… 제가 더 죄송하죠…”
못내 후배의 2전. 그것도 베테랑 이재석 전을 앞두고 본인의 타이틀전 때문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단 그 말에 현성이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그런 그를 보며 김관수 관장이 ‘무슨 걱정이고!’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일단은 여권이나 먼저 좀 만들어 놓거라. 타이틀 전 끝나는대로… 우리도 일본에서 전지훈련 좀 할라 카니까.”
토네이도 짐의 간판 선수는 송기철이다. 하지만… 현성이 데뷔전 하나로 물고 온 스폰서는 여지껏 기철이 승승장구하며 DEEP의 라이트 급 챔피언에 오를 때 까지 모아온 스폰서 이상의 스폰을 얻어냈다. 아마도 그게 방송의 파급효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현성 뿐 아니라 기철과 토네이도 짐 식구들에게도 돌아온다.
“전에 얘기 했잖아! 전지 훈련! 이야, 이거 전지 훈련 스케일이 너무 큰 거 아입니까, 관장님? 일본가가 트레이닝은?”
“뭐… 그만치 여유가 있다 아이가! 내랑 기철이가 가서 미리 얘기도 해놓고… 나중에 예린이랑 같이 여 오면 일본 시장에도 눈도장 좀 찍어 놓자. 원래 여 아들이 프로모션이캉 뭐캉 활발해가 국제무대로 진출하긴 좋다. 예전만큼은 아니라 캐도 중간 시장이 탄탄하기 때문에…”
비단 그것이 데뷔전을 치르러 올라가던 KTX에서의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듯 김관수 관장이 이야기를 꺼낸다. 그로써는 국내의 로드원과 평생을 같이 할 생각은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관수 관장이 과거 복싱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인연이 닿아 있던 일본의 격투기 단체들을 통해서 현성을 조금 더 큰 무대로 옮길 생각인 듯 그 계획을 얼핏 내비추자 현성이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곧… 도쿄 하네다 공항편의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울리자 김관수 관장과 기철이 캐리어를 들고 천천히 게이트로 걸음을 옮긴다.
“근데 요즘 혜주는 어데 갔노? 잘 보이지를 않는 것 같노?”
그러다 김관수 관장이 서울을 다녀온 이후로 잘 보이지 않는 혜주의 모습에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와 함께 대답한다.
“요즘 누나 많이 바빠요. 가정폭력 상담원… 뭐 그런 거 배우고 있고 그캐가…”
서울에서 돌아온 이후.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동안 혜주는 그에게 말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현성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아, 최소한 그녀 역시 거기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어떤 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녀의 잘못되었던 과거를 뉘우치고, 현성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한 아영을 곁에서 도와주려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생각하며 현성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짓자 김관수 관장도 그들의 사정을 알기에 걱정 없다는 듯 후후 웃음 짓는다.
“와, 언니 그거도 해요? 내한테는 쇼핑몰 오픈도 할 거라 카던데?”
가끔씩 혜주가 트레이닝을 나오면 전담 트레이너 역할을 하고 있는 예린이 ‘우와 진짜 바쁘겠다…’ 하고 추임새를 넣자 현성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 것도 준비하고 있어요. 그냥… 작게 하고 싶다 카드라구요. 나중에 예린이 스폰서도 해줄거라고…”
생각만 해도 좋은지 실실 웃음 짓는 현성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아, 진짜!’ 하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기철 역시 ‘아유!’ 하고 분노를 터뜨리는 동안 현성이 고독과 수련밖에 모르는 스승과 선배의 모습에 그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인다.
“뭐 그런 거 가지고 질투 해요! 관장님, 우리 엄마 소개 시켜드릴까요? 우리 엄마 아직 젊고 이쁜데!”
꺄르르 웃으며 예린이 농담처럼 이야기를 내비추자 김관수 관장이 ‘됐다, 마!’ 하고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귀여운 중년답게 현성의 팔불출 기운에 순간 울컥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또 수줍은 남자라고… 그 모습에 기철이 ‘관장님은 제가 참한 아로 물어다 드릴게예!’ 하고 본인의 외로움을 토로하다 말고 그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자 김관수 관장이 ‘와, 와 이카노!’ 하고 당황한 듯 움찔한다.
“니는 니 앞가림이나 잘 해라, 자슥아! 내가 니 나이 때는 아가씨들이 줄을 섰다, 줄을!”
이내 터져나온 그 매서운 스트레이트에 기철이 ‘윽…’ 하고 주춤하며 뒤로 물러난다. 그 모습에 현성과 예린이 푸훗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김관수 관장이 제자들이라기보단… 아들이고, 딸 같은 그들을 바라보며 잠시동안의 이별 인사를 한다.
“보름 뒤에 같이 손 잡고 비행기 타고 올 준비 하그라! 알겠나?”
그 말에 ‘예~!’ 하고 예린이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현성이 다시 한 번 김관수 관장과 기철을 바라본다.
“잘 댕겨 오십쇼… 광장님. 행님. 응원할게예.”
“니들도 우리 없다고 건성 건성 하지 말고!”
“그래, 특히 황예린! 니!”
“내가 뭘! 내만큼 열심히 하는 애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오빠나 잘해요!”
또 다시 티격태격 하는 기철과 예린의 모습에 현성이 그저 미소 짓는 동안… 더 이상은 시간을 끌 수 없다는 듯 김관수 관장과 기철이 게이트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박살을 내고 오께! 걱정 하지 마라!”
마지막으로 자신감 가득한 기철의 목소리에 현성과 예린이 다른 건 몰라도 그 말만큼은 꼭 믿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일본 단체에서 외국인 챔피언은… KO나 탭아웃을 받아 내지 못하면 곤란하다. 판정으로 갈 경우는 잘해봐야 무승부, 심한 경우는 편파 판정으로 패배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KO 기운 받아 간다!”
현성에게 너무 걱정 하지 말라는 듯 기철이 엄지를 들어 보이곤 이내 김관수 관장과 함께 저 게이트 너머로 멀어져 간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언젠가는 자신 역시… 이렇게 국내를 떠나 세계로 나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동안 예린이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가요! 오빠!’ 하고 이야기 한다.
“우리도 가서 준비 해야죠! 근데 참, 오빠 여권 발급은 언제 받을거에요?”
“아… 그거 사진도 찍고 해야 되니까…”
“사진은 요 앞에서 찍어도 되는데! 근데 이거 5년, 10년 길게 써야 되니까 사진 이상한데서 찍으면 안 돼요!”
활발한 성격 답게 기철과 김관수 관장을 보내고도 그렇게 걱정은 하지 않는 듯 예린이 신이 난 듯 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자 현성이 ‘그래…?’ 하고 신기한 듯 그녀를 바라본다.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이 세계에선 오히려 그보다도 더 경험이 많은 것이 예린일 테니까.
“그러면 이따 사진 같이 찍으러 가요! 원래는 이런 거 혜주 언니가 해줘야 되는데 언니 바쁘잖아요. 참! 근데 일본 가면 혜주 언니도 같이 가는 거에요? 언니 뭐 지금 하는 거 바빠서 같이 못 가면 어떻게 해요?”
그리고 재잘재잘 유난히 말이 많은 그녀를 보며 현성이 그 생각은 미처 못 했다는 듯 ‘아…’ 하고 천천히 고개를 흔든다.
“그… 수업 같은 게 100시간을 다 듣기만 하면 되는거라가… 빠지면 곤란할 건데…”
“음… 그렇구나. 언니는 일본 같이 못 가겠다, 그럼…”
이내 예린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그럼 별 수 없지 뭐!’ 하고 후후 웃으며 현성의 팔을 잡는다. 그 손길에 현성이 혜주 말고 다른 여자는 아직 어색한 듯 조금 주춤한 모습을 보이자 예린이 ‘에이… 뭐 이런 거 가지고 그래요!’ 하고 쾌활하게 웃으며 손을 떼고는 으흐흐 하고 웃음 짓는다.
“뺨 클린치 연습한다고 그렇게 하루 종일 끌어 안고 있던 사이인데.”
가늘게 눈을 뜨고 장난스럽게 이야기 하는 그 모습에 현성이 ‘어, 어?’ 하고 조금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힌다.
“그, 그거는… 그냥 훈련이니까…”
“오빠 일부러 막 이런 연기 하는 거면 진짜 대박인데!”
그런 그를 바라보며 예린이 후후 웃음 짓는다. 그리고 곧 ‘가요!’ 하고 그녀가 그를 이끄는 동안 현성이 ‘진짜 그런 거 아닌데…’ 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뒤를 따른다. 당분간은 저 장난 넘치는 19살 소녀가 그의 스승이다.
“가서 훈련 시작하기 전에 사진 먼저 찍어요! 알겠죠?”
물론 아직까진… 스승이라기 보단 여동생 같은 느낌이지만.
그 말에 현성이 미소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보름 떠나 있을 뿐인데 이렇게 불안해 하다니… 그것도 챔피언 기철을 위해서 함께 가는 것인데 말이다. 김관수 관장에게 모든 것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이재석을 상대로 싸울 방법을 스스로도 연구를 해보고 시도를 해봐야겠다 생각하며 그가 걸음을 내딛는다.
이제는 뜨거운 태양이 이글이글 도로를 달구고 있다. 녹화 산업으로 예전만한 더위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구의 태양은 뜨겁고 강렬하다.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에 예린이 으으 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곁에 착 달라붙는다.
“오빠랑 같이 다니면 되게 편해요. 그늘도 많이 생기고, 나도 키 별로 안 커 보이고! 이래서 혜주 언니가 오빠 그래 좋아하는가 봐요!”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현성을 엄폐물 삼아 걸음을 옮기는 그 모습에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여름. 다시 또 여름이다. 하지만 이번은 그가 기억하는, 상처가 지끈 거리던 여름관 확실히 달랐다.
“아… 근데 들어가서 이 날씨에 몸 움직일라니까 진짜… 벌써 숨 갑갑하네요. 오?, 사진 찍으러 가기 전에 아이스크림 사먹으러 가요!”
아마 이 말 많고 활발한… 동생이자 선배이기도 한 여자아이가 곁에서 쉴 새 없이 재잘 거리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것이… 이제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니, 어떤 부분은 그 이상으로… 그 생각에 현성이 아직도 끼워 맞춰지지 않은 가족이란 조각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천천히 고개를 흔든다.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우선… 이재석을 생각하자. 그를 쓰러뜨리고, 시간과 여유가 생겼을 때… 그때 가서 생각을 하자. 그 결론과 함께 현성이 이젠 더 이상 지끈거리거나 욱신거리지 않는 화상 자국 위로 햇빛을 가리고자 손을 올린 채 걸음을 내딛는다.
“근데 내 지갑 안 들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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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