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회 - 괴물
길었던 여름과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여름을 앞둔 그 시간에 현성이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그 언저리쯤에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제는 발목을 붙잡던 과거들을 떨쳐내고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도 가장 본질적인 문제들이었을 것이다.
“후우…”
익숙한, 그리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러 지내왔던 고모의 집 앞을 서성이며 그가 익숙한 동네 길에 옛정취가 불현듯 스쳐와 코 끝에 그리운 향이 맴도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쉰다.
김관수 관장의 말을 듣고 오긴 왔지만 막상 그들을 만나려고 하니 거부감이 드는 모양이다. 그도 그런 것이… 그가 아주 어릴 때부터 고모부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고모 역시 그를 부담스러워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믿어줄 것만 같았던… 그나마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들이었기 때문에 나쁜 마음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라 믿어주고… 단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봐주길 바랬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죽은 듯 조용히… 그런 불미스러운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처럼 무던하게도 지내고 있었을 뿐.
그 생각을 하자면 갑작스럽게 왜 고모가 자신을 다시 찾아왔는지… 그 6개월이란 긴 시간을 두고서 연락 한 번 없었던 사람이… 하필이면 왜 무엇인가가 잘 풀려가려는 이 와중에 나타난 것인지. 이유는 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속 답답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단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개운치 않은 만남. 피하고 모른 척 하고 지내고 싶은 사이. 아마… 그게 그들 스스로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관계이자 사이였을 것이다. 씁쓸한 맘이 스치는 것을 느끼며 현성이 다시 한 번 더 무거운 한숨을 내쉰다.
만약에… 고모 내외가 아니라 그의 친부모님이었다면… 그에게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어떻게 했을까? 아마 진짜 가족이었다면 그를 믿고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그것이 현성에게는 무척이나 깊고… 그리고 무척이나 단단하게 응어리 진 고통인 듯 불편한 얼굴로 차마 벨을 누르지 못한 채 현성이 그 앞을 서성인다.
“하아…”
마치 뚜렷한 삶의 방향과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이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 길고 추웠던 겨울을 넘겼더니 다시 또 지독스러운 여름이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유난히 뜨거운 것들과는 인연이 없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띤 채 현성이… 과거. 그 일이 생기기 전에는 익숙하게 오다니던 고모 집의 깜장 대문을 바라본다.
그 문을 보자마자 다시 막막한 기분이 물밀듯 밀려오는지 현성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서서 그 자리를 바라본다. 차라리 그 떨리던 데뷔전을 다시 가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꺼림칙한 기분이 사라지질 않았던 모양이다. 사과를 하려고 찾아왔을까…? 그게 아니면… 이제 그가 잘 되기 시작하니까…? 속이 너무 빤히 보이는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한 편으론 혹시나 제발 미안하다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라면… 하고 바라는 마음. 동시에 두 가지 마음이 그 가슴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재석이라는 베테랑과의 일전을 앞두고 이런 일이 자꾸만 마음을 뒤숭숭하게 흔들어 놓으니 집중이 흐트러지고 트레이닝도 하고 싶지 않은 듯 의욕이 떨어져 간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보니 그 미래나 아영, 혜주를 위해서라도 이겨내야만 하지만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것이라… 어떻게 그림이 그려지든 마무리는 확실하게 지어야겠다 싶지만… 그 걸음이 너무나도 힘든 모양이다.
진희를 만나는 일보다도 더 말이다.
“…외롭네.”
요 근래에 항상 누군가가 곁을 지탱해주었고,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힘들이 되어 주었지만… 지금은 오랜만에 혼자다. 그 생각에 현성이 씁쓸한 웃음을 머금은 채 더 미루지 말자 생각한 듯 천천히 깜장 대문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저벅저벅 하고 낮은 소리가 울리고… 익숙한 향취를 가진 그 앞 자리에 섰을 때. 현성이 천천히 벨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다.
-딩동…
낡은 벨 소리가 울리자 저도 모르게 현성이 꿀꺽 하고 침을 삼킨다. 대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번에도 좋게, 좋게 잘 해결이 될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할까? 몰라줘서 미안하다 이야기 할까? 그런 게 아니라면… 대체 멀까…? 결국 그가 듣고 싶었던 것은 다른 장황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정말로 미안했다는 한 마디였음을 떠올리며 그가 다시 한 번 무거운 한숨을 내쉰다.
그의 인생에 오점을 남긴 진희마저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용서했던 현성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판 얼굴도 모르는 여자를, 그렇게 그의 인생을 망가뜨린 여자를 용서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이상하게 그 몫이 더 크게만 느껴진다. 진짜 가족 따위는 아니다. 엄밀히… 정말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정말… 안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며 현성이 다시 벨을 누르자 ‘누구세요!’ 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에 현성이 대답을 하려다 목이 턱 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을 느끼며 대문 너머의 현관을 바라본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두근 세차게 요동친느 것을 느끼며 후다닥 뒤돌아서서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만다.
-타다닥…!
긴 두 팔과 다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전력을 다해서… 순간 고모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녀를 마주하려 하자 무엇인가… 두려운 마음에 도망쳐버린 현성이 골목길 어귀에 숨는 듯 몸을 감춘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몰아쉰다.
“…하아… 하아…”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그가 한숨과 함께 이마를 꾹 누른다. 하지만 무어라 이야기 할 수는 없었지만 고모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미안하다는 말보단 다른 말들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미안하단 말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게 진심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이제… 현성은 더 이상 ‘제 부모 잡아먹고 얹혀사는 애물단지’가 아니었으니까.
외모 덕분에 한창 싸움을 벌이고 돌아왔을 때… 다치거나 말거나 매번 듣던 그 소리가 가슴에 무척 깊이 새겨진 듯 현성이 다시 거칠게 숨을 내쉰다. 그 어린 나이에 그가 죄책감을 그토록 깊게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고모 내외의 역할이 가장 컸을 것이다.
그 역시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얼굴에 입었다. 그리고 그보다 몇 배는 더 깊고 고통스러운, 아직도 진물이 줄줄 흘러 괴롭기 그지없는 맘의 상처를 입었다. 그런 그에게 그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잔혹한 이야기였으니까.
현성이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괴로움이 다시 밀려오고 있었다. 아마 그때는 고모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응어리가 되고 깊은 상처로 남는 건… 아마 속이 좁아서 그런 것일까? 현성이 쓴웃음과 함께 입술을 잘끈 깨문다. 그에겐 다른 누구보다도 고모 내외가 두려웠다. 지금도 여전히… 이제는 더 이상 그들에게 폐를 끼칠 일도 없지만 지금도 여전히 말이다.
“…못 하겠다…”
김관수 관장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해본 그였지만 막상… 그 앞에 서니 정말로 별 거 아닌 것 같았던 일이 이토록 힘이 겨운 일인지는 몰랐던지 현성이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쉰다. 정말로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온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니… 그를 나무라진 않을 것이다. 그를 힐난하거나 비난하진 않을 것이다. 미안해 해야만 한다. 그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이 차라리 만나지 않고 그냥 이대로 끝이 났으면 좋겠단 생각에 현성이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쉰다. 지끈 거리는 이마를 꾹 누르고 그가…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지 다시 천천히 발길을 돌린다. 걸음을 옮기며 고모 집을 떠나서 다시 돌아가는 길목. 그 길목에서 현성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아직도… 여전히…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그 끔찍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숨을 내쉰다.
맞는 것보다도 고통스러운 말의 무게. 그리고 낙인처럼 새겨져 버린… 죄책감. 평생 용서 받지 못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아마 고모 내외를 보면 사나운 뱀처럼 대가리를 바짝 치켜들고 위협적으로 아가리를 벌릴 것만 같았다.
“…후.”
그런 현성에게 갑자기 아영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 안을 가득 채웠다.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혜주나 김관수 관장이 좋은 사람이지만 지금의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밖에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던지 현성이 주머니에 손을 푹 넣고 고개를 숙인 채 걸음을 옮긴다.
저만치 먼 뒤에서… 그를 발견하고는 벗은 발로 서둘러 뛰어 나왔던 고모가 그를 부르려다 멈칫하고 그 뒷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것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말이다.
묵묵히 홀로 걸음을 옮기며 현서이 이대로 돌아간다면 김관수 관장이나 혜주에겐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다시 한숨을 내쉰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러다 보면 이재석이라는 베테랑 파이터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껴지곤 했다. 그는 충분히 크고 강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나약한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택시 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서 현성이 피로한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그리고 눈가를 문지르며 다시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내쉰다. 어느 순간인가 갑자기… 변해버린 것들 때문일까? 마음이 편안하다가도 지금은 너무 무거워져서 오히려 불편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게 그로써는 난생 처음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을 향한 책임감을 가졌기 때문이겠지만…
“맑음터로,,,”
가족이라는 허울이 자꾸만 괴롭게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 것 따위는 가져본 적이 없는데… 하고 입술을 꽉 깨문 채 현성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휙휙 변해가는 것을 보며… 그것들처럼 이 생각과 복잡한 기분들 또한 모두 다 사라졌음하고 아주 작고 사소한 바람을 가지는 사이 어느 샌가 택시는 맑음터 앞에 당도하고 말았다.
-덜컥…
택시비를 내고 맑음터로… 걸음을 옮기던 현성이 날이 풀리고 화창한 꽃들이 만발해 겨울의 을씨년스러움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생겨난 맑음터를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쉰다. 어쩌면… 비겁하게 아영의 뒤로 숨을 생각을 하고서 여기까지 온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현성이… 쉽게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입구에서 망설이고 있는 사이 정숙자 원장이 센터의 직원들과 함께 뭔가를 들고 옮기다 그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듯 ‘어머! 현성씨!’ 하고 그를 부른다.
“아…”
그 부름에 현성이 어색한 얼굴을 하고서 꾸벅 인사를 하자 정숙자 원장이 직원들에게 ‘잠깐…’ 하고 양해를 구하고는 그를 향해 다가온다.
“아영이 보러 왔어요? 얘기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네요!”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조금 놀랍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반가운 듯 한 정숙자 원장의 말에 현성이 ‘아… 예…’ 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정숙자 원장이 심리학을 전공했던 사람인지라 말 하지 않아도 표정에서 드러나는 그의 고민을 읽어낸 듯 ‘무슨 일이 있었나봐요?’ 하고 물음을 던진다.
“…그냥 좀… 속 답답한 기 있어가… 아영이 좀 보면 나아질 거 같아가예.”
그것 참 비겁하다. 그 생각에 현성이 힘겹게 이야기를 꺼내자 정숙자 원장이 후후 웃음 짓는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괜찮으니 이야기 해보란 그녀의 목소리에 현성이 말 없이 고개를 흔든다. 그러자 정숙자 원장이 무슨 일 있는 것은 확신하지만… 억지로 들을 생각은 없다는 듯 이내 ‘그럼 잠깐 일이라도 좀 도와줄래요?’ 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말을 건다.
“예…?”
“우리 도서 후원이 들어와서 책장들을 설치해야 하는데 마침 힘 센 사람이 필요 했거든요.”
그 말에 현성이 ‘아…’ 하고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정숙자 원장이 ‘자, 그럼 부탁해요!’ 하고 후후 웃으며 앞장서 걸음을 옮기자 현성이 그녀의 뒤를 따른다. 그리고 아까 센터 직원들과 함께 나르던 중고 책 꾸러미를 바라보며 그가 양이 생각보다 많단 생각에 조금 놀란 듯 정숙자 원장을 바라보자 정원장이 다시 후후 웃음을 터뜨린다.
“오늘 왠지 느낌이 좋더라니. 이렇게 듬직한 봉사자가 왔네요.”
“…이거 어디가 가져다 놓으면 됩니꺼…?”
“아영이 방 있던데 기억해요…? 그 층에 지금 선생님들 있으니까 들고 올라가면 얘기 해주실거에요!”
정숙자 원장의 말에 현성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어렵잖게 책들이 가득 담긴 박스를 겹겹이 쌓아 올려 동시에 2박스를 번쩍 들고 걸음을 옮기자 정숙자 원장과 센터 직원들이 ‘와…’ 하고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여자 직원들은 둘이서 한 박스를 나르는 것도 끙끙 거릴 정도고, 보통 남자 직원들도 한 박스를 들고 끙끙 거리기 마련인데 노는 손이 모자라 더 들진 못하는 듯 그렇게 어렵잖게 현성이 박스를 들고 걸음을 옮기자 ‘와 장 선생님! 최고!’ 하고 직원들이 이마에 땀을 흘리며 미소 짓는다.
그 모습에 현성이 쑥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어색하게 웃음 짓는 동안…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조금 무겁게 느껴질 법도 하다만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원래 타고난 힘이 센 편이었고, 최근에는 크로스 핏과 트레이닝을 병행하면서 기초 체력 뿐 아니라 근력도 탁월하게 늘어난 모양이다.
문득 자신의 몸이 운동을 통해서 이렇게 변했구나 하는 것을 그 순간에 느낀 듯 현성이 일을 하는 순간에는 고모 내외와 가족들의 생각을 잊고서 옅은 미소를 짓는다.
“이거 어디다 두면 됩니까?”
그리고 그가 3층… 아영이 지난겨울에 감기 몸살이 걸려 누워있던 방이 있던 층으로 와 들어온 책들을 다시 나누고 분류하는 직원에게 물음을 던지자 직원이 채 대답을 하기도 전 그 방 안쪽에서 ‘오빠야!’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현성의 목소리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듯… 아마 센터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역시 합심해 내부 도서관을 만드는 일을 돕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아영 역시 마찬가지였고.
도서관으로 사용할 방에서 허겁지겁 달려나온 공주님 원피스를 입은 맹해 보이는 얼굴. 작고 가느다란, 그리고 여전히 새하얗고 사랑스러운 그 얼굴에 현성이 박스를 양쪽에 든 채 미소 짓자 아영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온 힘을 다해 달려와 그에게 안긴다.
“어… 아영아! 다친다!”
양 손에 책들이 가득 든 박스를 들고 있는지라 현성이 위험하다는 듯 나무라지만 아영은 그저 좋기만 한 모양이다. 열심히 도서관 설치를 돕다가 현성이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온 것이 너무나도 좋은 듯 ‘천사 오빠!’ 하고 그를 꼭 안고서 방방 뛰는 모습에 현성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아이고… 누가 보면 가시나 서방님 만난 줄 알겠다.”
그런 그녀를 보며 센터에 함께 머물고 있는 원생들이 농담조로 이야기를 던지자 아영이 ‘으으응…!’ 하고 부끄러운 듯 몸을 배배 꼬며 그녀들을 바라본다. 전에 보았을 때 보다 훨씬 더… 상태가 좋아진 듯 한 그 모습에 현성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동안 센터 직원이 ‘아영아! 그카면 천사 오빠야 지금 무거워서 아야 할 수 있는데?’ 하고 떨어지라는 듯 이야기를 하자 그제야 아영이 박스들을 발견하고는 ‘아…!’ 하고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친다. 그리고 행여나 그가 다칠까 조마조마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자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보여 현성이 미소 짓는다.
“괜찮다.”
그리고 그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자 아영이 ‘아…!’ 하고 다시 환하게 웃음 짓는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현성이… 고모 내외에게 들었던 말과 달리 그 역시 나쁜 짓을 한 죄인 같은 게 아니라 충분히 좋은 사람임을 다시 한 번 느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거 다 하고 같이 놀제이. 알겠제…?”
혜주처럼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이야기 하자 아영이‘ 응! 응! 응!’ 하고 방방 뛰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도 아이 같은 구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모습에 현성이 미소와 함께 도서관에 책을 내려다 놓자 이내 아영이 히히 웃으며 그의 손을 꼭 잡는다. 떨어지기 싫은 듯 내내 붙어 있을 생각인지 그 모습에 센터 직원이 ‘아영아!’ 하고 그녀를 나무라지만 들은 체 만 체다.
“천사 오빠야… 히힛.”
“아유… 저 가시나 진짜. 좋겠어요! 장 선생님!”
직원의 말에 현성이 그저 어색한 얼굴로 웃음을 짓는다. 그 큼직한 손을 잡은… 상처 많은 아이의 고사리 손처럼 자그마한 손길이, 그 미소 하나가, 그 말 하나가 깊게 패인 상처를 아물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같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오빠야… 오늘은 언제 갈 거야…?”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며 아영이 생각지도 못한 현성의 방문이 무척이나 들뜬 얼굴로 물음을 던진다. 그 말에 현성이 ‘해 떨어지면…’ 하고 무뚝뚝한 얼굴에 웃음을 담아 대답하자 아영이 금방 또 서운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해는 안 떨어지는데… 계속 저게 있는 건데, 그냥 안 보이는 거라서 그칸다고 책에서 그랬는데… 그카면 오빠야 못 간다…!”
금방 또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못 가! 천사 오빠!’ 하고 다시 안겨드는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어쩌면 혜주보다도 더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일런지도 몰랐다. 그 생각과 함께 현성이 지친 맘에 위로한 된 듯 아영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자 아영이 조금 멍해 보이는 새하얀 얼굴이 금방 붉게 물들어선 침이라도 떨어질 듯 입을 헤 벌린 채 천사 같은 미소를 짓는다.
“아영이 침.”
그러자 또 금방 화들짝 놀라 아영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그 모습에 현성이 웃음을 터뜨리며 아영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고맙데이. 아영아.”
“…내… 왜…?”
그 뒤숭숭하고 혼란스럽던 마음이 어느 샌가 그녀의 곁에서 차분하게 정리된 것을 느끼며 현성이 이야기 하자 아영이 왜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 그를 바라본다. 그렇지만 뭐든… 그가 고맙다 칭찬하고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기분이 좋은 듯 아영이 다시 히히힛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내 왜에…? 왜요~!’ 하고 몸을 배배 꼬며 물음을 던진다.
“그냥… 아영이 이쁘니까.”
그 말에 아영이 또 금방 새하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너무 좋아서 또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가 ‘오빠야… 아영이 예뻐…?’ 하고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그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아영이 그카면 나중에 천사 오빠 한테 시집갈래!”
현성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좋은 듯 어느 샌가 그녀가 그의 몸을 꼭 안고서 이야기 하자 현성이 그저 귀엽단 생각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영이는 내보다 더 잘생기고 착한 사람한테 시집 가야지.”
“안 해! 싫어! 나는 천사 오빠한테 시집 갈래! 안 해!”
현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그 모습에 그가 옅은 미소와 함께 천천히 아영의 머리에 손을 올린다. 또 그 쓰다듬는 손길에 히히힛 하고 수줍어 하는… 천진한 모습에 현성이 어떻게 그녀와 자신이 이런 관계가 되었는지 무척이나 신기하다 생각하며 살짝 웃음 짓는다.
“오빠야, 해 안 떨어지니까 이제 계속 여기 아영이랑 같이 있나?”
그런 그를 향해 영특한 아영이가 꼼수를 부리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흔든다. 금방 서운함 가득한 듯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영이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아래층의 정숙자 원장을 힐끔 바라본다.
“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숙자 원장 앞에서 징징 거리면 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 듯 아영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글썽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조용히 아영의 등을 다독인다.
“오빠야가 아영이 예쁜 옷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또 아영이 안 아프게 지켜줄라 카면 더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하거든. 아영이 예쁘고 똑똑하니까 다 알제…?”
그 애정 가득한 목소리에 아영이 ‘그래도…’ 하고 서운한 맘이 가시지 않는 듯 입술을 삐쭉 내밀고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아영이 여길 떠나게 된다면 과연 어디로 가게 될 지…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지내게 될 지… 정말로 알 수 없다 생각하며 작은 한숨을 내쉰다. 가능하다면 아영이를 곁에 두고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큰 듯 현성이 천천히 그녀의 등을 한 번 더 다독인다. 그저 자신을 이렇게 좋아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고마운 맘이다.
“오빠야가 이번에만 이기면… 아영이 보러 더 많이 자주 오께.”
그 말에 아영이 그제야 삐죽 내밀고 있던 입술을 거두고는 새끼손가락을 든다.
“…오빠야 약속…”
그 앙증맞은 손가락에 현성이 굵직한 손가락을 걸자 아영이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자신의 엄지가 현성의 엄지까지 닿질 않자 안절부절 하다가 어찌어찌 몸을 움직이더니 간신히 도장을 찍고는 ‘도장!’ 하고 환하게 웃음 짓는다.
“또 이거도 있는데…!”
이내 뭔가를 자랑하고 싶은 듯 아영이 웃음을 터뜨린 현성의 손바닥을 쭉 펴서 그 위를 손바닥으로 슥 지나가더니 ‘복사!’ 하고 수줍게 웃음 짓는다. 복사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도장 찍는 거 뒤에 뭐가 더 있으니 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생각한 듯 그녀가 ‘오빠야 약속…!’ 하고 득의양양한 웃음 짓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고모의 방문으로 흐트러졌던 마음과 부담감을 떨쳐내고 의무와 책임을 느끼며 다시 한 번 더 사활을 걸고 시합에 임하자 다짐하며 대답한다.
“응. 약속. 이번에 꼭 이기가 오빠야가 아영이랑 한 약속 꼭 지키께.”
============================ 작품 후기 ============================
귀요미 순위
1. 김관수 관장
2. 아영이
3. 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