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회 - 괴물
성심병원까지 간 인원은 비교적 대인원이었지만 태웅회관으로 향하는 인원은 그 크기가 많이 줄어 있었다. 사업과 학교 덕분에 일찍 대구로 내려 가야 하는 태수와 예린을 혜주와 기철이 배웅하러 갔고, 오형석 대표 역시 이후엔 개인 스케줄이 있어 지선과 김관수 관장, 현성… 세 사람이 태웅회관으로 향하는 길. 자연스럽게 밴을 끌고 온 지선이 운전을 하는 동안 뒷좌석의 두 남자는 지선이 촬영했던 어제의 경기 장면을 분석하기 여념 없었다.
“잘 봐라. 니 공격은 빠르고, 강하다 카는 걸 이제 다른 아들도 다 알았을끼다. 타고난 리치란 게 극복하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겠지만 아마… 연구를 하겠지. 니가 내랑 같이 짠 플랜을 100% 실행했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지만 그거를 들어 가면서 보인 문제점들이 몇이 있다.”
경기 내용 자체가 무척이나 원사이드하고 짧은 터라 벌써 3번이 넘도록 경기 장면을 지켜보던 현성이 그제야 이야기를 꺼내는 김관수 관장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성공적인 데뷔전을 가지긴 했지만 오히려 처음이 너무 잘 된 터라 그 뒤의 시합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나 불안한 맘과 부담감이 조금 생겨난 듯 더욱 더 집중하는 그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정말로 이놈은 뭘 해도 될 놈이다 싶은 생각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영찬이가 타격 스킬이 그렇게 뛰어난 케이스가 아니라가 이래 말려들었지만… 아마 민욱이 같이… 그때 첨 붙었을 땐 민욱이가 너무 방심을 했다. 아마 방심 하지 않고, 이런 걸 보고 차고차곡 대비를 해가 붙었으면 경기 결과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카이. 왜냐하면 빠르고, 간결하고, 위력적인 거는 맞아! 근데 너무 단조롭다 카는거.”
준비 기간이 짧다보니 확실히 기본기만 들고 들어가긴 했지만 대체로 현성의 움직임은 거의 직선에 가까웠다. 물론 그것이 타고난 펀치력과 체격, 리치를 앞세워서 상대를 압박할 떄엔 엄청난 압박감을 보여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이후의 상대는 타격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영찬처럼 당황해서 쉽게 말려들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한 듯 열을 올리는 김관수 관장의 말에 현성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로써도 오늘 병원을 다녀와서 확실히 얼굴의 상처를 수술하거나, 시술하거나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반짝 치고 올라온 별이 아니라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야 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지 ‘그카면 우에 하면 됩니까, 관장님…?’ 하고 진지한 얼굴로 물음을 던진다. 그도 아직은 20살 어리다면 어린 나이인지라 시합이 끝나자 마자 이렇게 경기 결과는 보고 분석하는 일보단 혜주와 함께 데이트라도 하고 싶을 테지만 그러한 것들을 미뤄두고 이 일들을 우선시하는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대견함과 동시에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끼며 ‘자…’ 하고 입을 연다.
“그캐가 이제부터는 좀 더 타격을 다양하게 구사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영찬이가 가드 올린데 구석구석 빈틈을 잘 찔러 넣긴 했으. 근데 스탭이 너무 딱딱하고 공격이 펀치에만 집중되어 있으니까 다양한 맛이 부족했던거지. 니가 또 핸드 스피드는 빠르지만, 그거에 비해서 몸놀림은 그렇게 빠른 편은 아이야.”
“저… 근데 관장님! 현성 씨 정도면 체구 치고는 무척 빠른 편 아닌가요? 우리 스탭들도 생각보다 엄청 빠르다고 다들 놀라던데…”
운전을 하면서 그들의 대화를 주의깊게 듣고 있던 지선이 백미러로 김관수 관장을 힐끔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듯 물음을 던진다. 그도 그런 것이 치고 나가는 현성의 속도나 상대의 움직임에 반응해서 물러서는 모습은 무척이나 빠른 감이 있었으니까.
“아, 그거는 아직 현성이가 자기 체중을 몬 찾아가 그카는 거지. 86킬로 계약인데 평소 체중이 84킬로라꼬. 원래대로 하면 그거보다 아래 체급을 해서, 감량을 하고 체중을 맞춰야 하는 게 정석인데… 우리는 헤비급까지 체중을 상향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상연히 체중이 5킬로 이상 차이가 났을낀데 빠르긴 빠르겠지. 더구나 영찬이가 레슬러 출신이니까 상대적으로 훨씬 더. 근데 진짜배기 타격가들을 만나면 그게 그렇게 빠른 거는 아이라.”
냉정한 김관수 관장의 말에 지선이 ‘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에는 십분 공감을 하는 듯 현성이 기철의 움직임만 생각해도 쉽게 알 수 있다는 듯 수긍의 빛을 담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일단은 어떻게 훈련을…?”
“일단 대구 내리가면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을 하겠지만 서울에 있는 김에… 니한테 특별 과외 교사 하나 섭외 해놨다. 이제 펀치 말고 간단하게 발 동작도 슬슬 잡아 가야지 다음 시합이 누구든 준비를 할 수 있을거니까.”
그 말에 현성이 호기심을 느낀 듯 김관수 관장을 바라본다. 재생하고 있는 탭의 화면을 멈춘 채 기철이 말했던 ‘타격 스폐셜 리스트’에 대한 호기심을 느낀 건지 그의 눈빛에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음을 터뜨린다.
“이제 다 안 왔나? 지선 씨.”
그의 물음에 지선이 ‘아, 다 왔어요!’ 하고 혜주가 사라지자 조금 편안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머지 않아 보이는 ‘태웅회관’이라는 간판. 어쩐지 토네이도짐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 보이는 그 모습에 현성이 ‘어…?’ 하고 이야기를 꺼낸다.
“킥복싱 전문…?”
그의 물음에 김관수 관장이 ‘그래!’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한다. 아직까지 폴더 폰을 쓰고 있는 그가 폰을 열고 번호를 꾹 누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어! 내 여기 바로 앞인데 마중 좀 나오이소!”
그리고 김관수 관장이 씩 웃으며 핸드폰을 다시 탁 하고 접자 현성이 무척이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기철도 딱히 설명할 시간 없이… 혜주가 혼자 배웅하고 오기엔 위험할 수도 있단 생각에 함께 배웅을 하러 사라져 버렸고 김관수 관장도 딱히 설명해줄 생각이 없는지 그저 ‘보면 안다 카이!’ 하고 후후 웃음 짓는다. 물론 아직까지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잘 모르다 보니 설명을 해줘도 잘 알지 못 하겠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이 세계에서 살아갈 것이란 생각에 현성이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어련히 다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사이에 지선이 사뭇 긴장된 얼굴로 그들을 힐끔 돌아보며 이야기 한다.
“…먼저 내리세요. 저 주차…”
아무래도 주차를, 또 이렇게 큰 차를 주차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듯 결연한 그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아, 안 되면 임관장한테 시키면 되는데!’ 하고 이야기 하자 지선이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이것도 해봐야 늘잖아요! 제가 할 게요!”
보통 여자들과는 사뭇 다른 그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지선씨는 참 멋져!’ 하고 엄지를 치켜든 동안 현성도 그게 신기한 듯 힐끔 지선을 바라본다. 얼핏 보기엔 무척이나 가녀려 보이는데도 남다른 강인한 구석이 있었다. 혜주가 겉으로 보기엔 그냥 세게만 보이지만 속은 무척이나 여린 사람이라면 아마 지선은 그 반대이지 않을까 싶은…
“저도 나중에 면허 따야 되겠심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자기도 면허를 따야겠단 생각이 들었던지 이야기 하자 지선이 후후 웃으며 ‘도로 주행 선생님 해줄까요?’ 하고 후후 웃음 짓는다. 그러다 ‘아!’ 하고 어색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혜주 씨한테는… 비밀로?’ 하고 후후 웃음을 터뜨린다.
혜주가 왜 그렇게 지선을 싫어하는지는 몰라도 그 질투심이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싫지만은 않은 듯 현성이 머리를 긁적이는 동안 어느 샌가 김관수 관장이 태웅회관 밖으로 나온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 내리자!’ 하고 목소리를 높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임관장! 신비! 잘 지냈나?”
그리고 무척이나 반가운 듯 한 그 목소리를 들으며 현성이 신비란 이름은 여자 이름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신비…?’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화이팅이에요! 현성씨!”
그 사이 그에게 지선이 후후 웃으며 자신도 파이팅 해서 주차를 완료하겠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어 보자 현성이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가 내려 김관수 관장의 뒤에 서자 ‘오!’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친구가 그 친굽니까? 김관장님!”
생각보다 훨씬 젊은, 작지만 단단한 체구의 임관장이 그를 알아보곤 반가운 얼굴로 악수를 건네자 현성이 ‘아… 이 사람이 바로 그 타격의 스폐셜 리스트인가…?’ 하고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는다.
“장현성이라 캅니다.”
단단한 체구만큼이나 손에서도 힘이 느껴지는 그의 모습에 현성이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네자 그가 와하핫 하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다.
“어제 경기장은 못 가고 인터넷으로 경기 봤어요! 이야 진짜 김관수 관장님이 눈독 들일만 했어! 이거 뭐 시합 보니까 타격감도 좋은데 실제로 보니까 더 크네!”
호탕하게 웃으며 그와 임관장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김관수 관장이 ‘어데 내만 좋아하겠나? 한 1-2년 안에 대한민국이 술렁일거라!’ 하고 호언장담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아, 참! 인사 해야지. 싸와디깝!”
김관수 관장이 후후 웃으며 임관장의 곁에 선… 까무잡잡한 피부에 늘씬한 체구를 가진 외국인에게 두 손을 모아 인사하자 그도 김관수 관장을 알아보는 듯 상냥한 미소를 띤 채 ‘사와디캅!’ 하고 인사를 한다.
호리호리해 보이는 체구에 서글서글한 인상. 큼직한 눈이 살짝 눈꼬리가 쳐져서 웃고 있는 듯 한 얼굴을 가진… 그 이국적인 용모의 사내가 누구인가… 하고 생각하다 아까 들었던 신비라는 이름이 떠올랐던지 현성이 힐끔 그를 보며 ‘안녕하십니까…’ 하고 고개 숙여 인사 한다.
“아, 안녕하세요.”
그리고 그가 어눌하지만 제법 입에 익은 한국어로 대답하자 김관수 관장이 그제야 소개를 해주겠다는 듯 신비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친근하게 손을 올리며 이야기 한다.
“이쪽이 오늘 니 과외 쌤이다.”
그 말에 현성이 임관장이 아니라 그가 타격의 스폐셜 리스트…라는 생각이 쉽사리 들지 않았던지 힐끔 그를 바라보며 ‘아…’ 하고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무척이나 온화해 보이는 그가 기철이 말한 세계적 레벨의 타격가론 전혀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모습에 신비가 익숙한 듯 후후 웃음 짓는 동안 김관수 관장이 ‘겉보기로 판단하면 안 돼!’ 하고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이 친구가 이래 여리여리해 보여도 태국… 룸피니서 1위 하던 친구라. 전적만 239전 224승인데… 이기 이래 여기해보여도 맞으면 진짜 장난 아이다.”
김관수 관장의 소개에 현성이 ‘아…’ 하고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176센티 정도 되는 키에 상당히 마른 듯 보이는 날렵한 체구. 수줍은 웃음이 가득한 얼굴이 도저히… 200전이 훨씬 넘는 어마어마한 전적을 가진 것이라곤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얼떨떨한 얼굴로 현성이 그를 바라보자 신비태웅이 조금 민망한 듯 그에게 다시 한 번 미소 짓는다.
“…239전…”
그리고 현성이 엄두가 나지 않는 어마어마한 전적과 승리에 입을 떡 벌리고 그를 바라보는 동안 곁에 있던 임관장이 허허 웃음을 터뜨린다.
“진짜 이 친구는 여기 하나도 모르나 보네! 나는 그래도 격투기 시작한 친구라서 이런 거는 좀 알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혹시 쁘아카오 이런 선수는 알고 있나?”
“아… 그런 건 들어 본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다는 듯 현성이 고개를 흔들자 임관장이 태웅회관의 관장으로써 자긍심 가득한 얼굴로 대답한다.
“아무튼 그 쁘아카오 이런 선수랑 같은 레벨이고, 카오클라이… 이런 선수보다는 훨씬 더 윗단계에 있는 선수라고 알면 됩니다. 한 마디로 괴물, 괴물! 왜 거서 챔피언을 한 번도 못해 봤나 의문이 생길 정도로.”
칭찬을 하면서 동시에… 무관의 제왕이란 별명을 가졌던 신비를 놀리듯이 임관장이 이야기 하자 신비가 초면에 창피한 듯 수줍은 웃음과 함께 ‘임 관장님!’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 모습에 현성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보다… 하고 생각하는 동안 임관장이 ‘자, 이카지말고 다 안으로 들어가죠!’ 하고 손님 대접을 해야겠다는 듯 그들에게 손짓 한다.
“우리 지선 씨도… 이야, 여자가 저걸 다 주차 하네. 진짜 난 사람이다, 난 사람. 나보다 잘 하는 거 같은데요?”
그러는 동안 지선이 골목 사이에 밴을 주차한 듯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걸어오자 신비와 임관장이 그녀를 알아보고 꾸벅 인사 한다. 아마 오기 전에 잠깐 얼굴을 보았던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어색한 듯 하면서도 들떠 보인다.
“그럼 자자! 안으로 들어오시죠! 손님들!”
지선까지 왔으니 이제 모두 안으로 들어가잔 힘관장의 말에 신비 역시 ‘안으로 가시죠!’ 하고 조금 어눌하지만 한국 생활이 오래된 만큼 유창한 말로 그들을 이끈다.
이내 현성을 바라보며 그 사연을 감명 깊게 본 듯 그가 환영의 빛을 담아 가볍게 까딱 하고 다시 목례를 하자 현성이 ‘이곳에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왠지 모를 기대감에 차 어느 샌가 뒤돌아 서서 그들을 이끄는 신비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 시선을 느꼈던지 신비가 후후 웃으며 그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리곤 조금 어눌한 듯 하면서도 유창한 한국어로 이야기 한다.
“킥 가르쳐 줄게요.”
============================ 작품 후기 ============================
신비태웅의 전적은 실존 선수입니다. 26세 당시의 전적이 239전 224승 15패 77KO.
태국은 낙무아이라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무에타이 선수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어린 나이에 수백전에 가까운 전적을 가진 이들이 즐비합니다. 그들 가운데에서도 손 꼽히는 실력자로 쁘아카오에게는 판정으로 패배한 바 있지만 룸피니 챔피언이었던 펫람액에게 3전 3승의 전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피무(아웃복싱) 스타일을 구사하며 레프트 하이킥을 주특기로 사용하는 굉장한 실력파 선수로 한국 무대와는 친숙한 점이 많은데 임치빈을 꺽고 코마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으며 태웅회관 소속 선수로 K-1 칸 대회에서 한국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