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회 - 괴물
-쿵! 쿵! 쿵!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세차게…! 폭탄 소리처럼 쿵, 쿵ㅋ, 쿵 하고 간헐적으로 뛰기 시작한 심장은 도대체 이해가 도지 않을 정도로 거세게 뛰어 올라… 이미 예열한 몸을 더욱 더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케이지가 정리되고 입장을 하기 바로 직전…! 말로는 이뤄 설명할 수 없는 기운에 심장이 요동치고, 어린 시절의 그 기억과는 다른 열기가 현성의 온 몸을 스친다.
“후우… 후우…”
검은 어둠 속에서 숨을 내뱉으며 흥분 가득한 심장을 진정 시키고,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온 몸을 누그러뜨린 채 그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그 뒤에 선 김관수 관장과 기철, 태수가 긴장하지 말라는 듯 손을 올린다. 그 손길에 현성이 마음이 조금 더 안정이 되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 번 더 숨을 내뱉는다.
“후우…!”
그 깊은 숨소리와 쿵쿵쿵 하고 요란하게 울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뒤섞인 가운데 그 곁에서 나란히 입장을 대기하고 있는 영찬이 보인다. 아마추어 레슬링과 트레이닝은 베테랑이지만 이제 3전 째…! 마찬가지로 긴장된 듯 한 그 모습을 보니 적개심보다는 왠지 모를 동질감에 현성이 자신만 긴장하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닫고는 한결 누그러진 모습으로 깊이 숨을 내뱉는다.
그러다 힐끔 마주친 영찬과의 시선. 그 시선 속에서 영찬이 그가 밉고 싫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무대는 두 사람의 것이고, 그걸 잘 해보자는 듯 그에게 눈빛을 보낸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그리고 좋은 무대를 선보이겠다는 그 눈빛에 현성이 이전에 눈을 피하던 것과는 다르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눈을 마주친다.
“자, 여러분!”
웅성이는 소리 속에서 이내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순간 소란이 진정된다. 밖의 상황은 전혀 보이지 않는 백스테이지에서 현성이 그 앞에 나가게 된다면 가득 차 있을 사람들 앞을 떠올리고는 다시 한 번 더 진정된 몸이 흥분한 듯 꿈틀꿈틀 요동치는 것을 꾹 눌러 달래며 숨을 내뱉는다.
“제 4경기 미들급 매치! 먼저 소개 합니다! 3전 3승…! 로드원의 미들급을 책임질 신예, 김영찬!”
그리고 들려온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영찬의 입장곡이 흘러나오고… 백스테이지 자체를 울릴 듯 한 거대한 우퍼 사운드가 쿵쿵 울림과 함께 영찬이 먼저 무대를 향해 걸어 나간다.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스태프들이 이것은 비단 현성과 영찬의 것만이 아님을 보여주듯이 그 뒤를 따라서 함께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현성이 다시 한 번 더 ‘승리’를 떠올린다.
싸움과는 다르다. 그것을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그도 그렇지만 영찬 역시 그 등에 짊어진 승리의 무게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케이지 안에서 두 사람이 싸워 기량을 가리지만, 결코 그것은 혼자만의 승리가 아닌 모두의 승리…!
‘승리!’
처음 사람들 앞에서, 케이지에서 가지는 데뷔전에… 여지껏 져본 일이 없는 그가 이곳에서도 승리를 이어가기를 바라는 동안 밖에서 ‘와아아아!’ 하는 환호가 울린다. 영찬을 향해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 현성이 ‘내게도 저런 환호가 나올까…’ 미심쩍은 듯 조금 움츠러진 얼굴을 하자 이내 김관수 관장이 그의 등을 툭툭 두드린다. 그 두드림에 힐끔 고개 돌린 곳에는 걱정말란 얼굴의 김관수 관장과 기철, 그리고 예린과 함께 한껏 긴장한 듯 걱정스럽게 그를 바라보는 혜주가 있다.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긴장감도, 부담감도… 모두 사라지고 왠지 모를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느끼며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소개합니다! 로드원 FC의 왕자가 되겠다…! 괴물 신인…! 장! 현! 성!”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만큼 그의 소개를 더욱 더 힘주어 외치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드디어 때가 왔다는 듯 현성이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그와 동시에 김관수 관장이 선곡한 ‘Beastie Boys’의 ’Fight For Your Right’의 디스토션 섞인 기타소리가 울린다.
-지잉…!
그리고 현성이 백스테이지에서 무대로 모습을 드러낼 때 환한 조명이 그를 비추고 동시에 비스티 보이즈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Kick It!
그와 동시에 시작된 음악이 경쾌한 비트와 함께 지글지글 거리는 사운드로 귀를 열자 그와 함께 더욱 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만 같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그 모습에 사람들이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 환호를 지르자 순간 현성이 멈칫한다.
와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장충 체육관을 가득 채우고, 아까 영찬이 나갔을 때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울림에 그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끼며 ‘이건 환청이 아닐까?’ 하고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김관수 관장의 손길을 따라서 그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때…!
-You Gotta Fight! For Your Right-! To Party!
터져 나오는 비스티 보이즈의 외침…! 그 소리에 저도 모를 전율이 온 몸을 스침을 느끼고 현성이 케이지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묵직한 그와 달리 경쾌한 락 앤 롤 사운드가, 원 가사와 달리 싸워야만 하는 그의 의무를 다시 부각시켜주고 있는 것 같다.
그 소리들을 들으며 현성이 다시 한 번 아영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깊게 숨을 들이쉰다. 사람들을 흥분시키던 박력 있는 음악이 가라앉고 김관수 관장과 기철, 태수, 예린, 혜주의 손길은 더 이상 닿지 않는다. 케이지 안에서 먼저 몸을 풀고 있던 영찬과 전에 한 번 본 적 있는 심판 배훈과 장내 아나운서를 맡은 MC 용준만이 자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현성의 입장을 마지막으로… 제 4경기의 모든 준비가 끝이 났을 때 MC 용준이 다시 마이크를 잡는다.
“85.8킬로그램! 떠오르는 신예 김영찬!”
다시 한 번 그가 선수 소개를 하는 듯 소리 높여 영찬의 이름을 부르자 영찬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을 어필해본다. 그 두툼한 가슴팍을 두드리며, 나는 이길 준비가 되어 있고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란 얼굴로 그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필하자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더 ‘와!’ 하고 환호를 터뜨린다.
그리고 기철이 이야기 했던… 그 주변을 신경 쓰지 말라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현성이 조용히 그의 차례를 기다린다. 환호가 잣아들고 그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현성에게 다시 한 번 영찬이 매서운 눈빛을 보내며 전의를 다지는 동안…
“84킬로그램! 로드원을 접수하러 온 괴물, 장현성!”
그 외침이 떨어지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아!
다시 한 번 더 거대한 함성이 장충 체육관을 울린다. 아까 들은 소리가 환청이 아니란 것을 알게 해주는 그 외침에 현성이 자신감 대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꾸벅 꾸벅 인사를 하자 더욱 더 큰 환호가 터져 나온다. 온 몸의 피가 다시 뜨겁게 흐르고 심장이 요동치는 전율감…! 난생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 받고, 환영 받는단 생각에 현성이 조금 감격한 듯 깊이 숨을 들이키는 동안 혜주가 그런 그를 자랑스럽다는 듯 바라본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고된 시간들을 보냈던가? 그 눈빛에 현성이 그녀를 향해 걱정말라 미소 짓는 동안 배훈이 그를 부른다.
천천히 케이지 중앙으로… 소개를 마친 MC 용준이 마이크를 떼고 ‘화이팅!’ 하고 응원하는 소리를 들으며 드디어 현성이 영찬과 마주선다.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내뱉으며 몸을 풀고 있는 영찬.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있는 현성. 그 사이의 배훈이 헤드 버팅과 눈 찌르기, 낭심 가격, 사커킥은 곤란하다 간단히 설명을 하는 동안 현성이 다시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 유 레디?!”
그리고 배훈이 존 메카시 이후로 심판들 사이에 정착된 그 유명한 말을 내던지자 다시 한 번 환호가 울린다. 환호 속…! 현성과 영찬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다시 한 번 정적이 찾아오고 배훈 역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인 듯 후 하고 숨을 내뱉으며 소리친다.
“파이트!”
개전(開戰)을 알리는 배훈의 음성! 그와 동시에 영찬이 먼저 주먹을 내민다. 마치 건배를 하 듯이… 한 번 잘 어울려 보잔 그의 주먹에 현성이 건배를 하듯이 가볍게 주먹을 마주친다.
“…잘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VIP 석에서 직접 대회를 관람하던 정 대표가 어느 샌가 김관수 관장을 곁까지 다가와 물음을 던진다. 그로써도 현성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는 듯 그 기대감과 걱정이 어린 음성에 김관수 관장이 ‘니 내 못 믿나?’ 하고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그를 돌아본다.
“턱받침 준비하라고요?”
그 웃음과 함께 정문호 대표가 다시 케이지로 눈을 돌렸을 때…!
-파앙!
시작한지 채 3초도 지나지 않아 선제공격의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와아아!”
그리고 터져 나온 사람들의 함성! 많은 사람들이 초반에는 견제만 할 것이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움츠러 들었다 생각한 것과 달리…! 몸 전체를 영찬에게 돌린 채 무척이나 공격적인 모습으로 그를 압박하던 현성이 내지른 펀치가 영찬의 가드를 때린다.
-파앙!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빠르고 경쾌한, 그러나 그 속도와 달리 가볍게 내지른 잽이 거의 스트레이트와 다를 바 없는 그 사운드를 낸 순간 정 문호 대표가 눈이 휘둥그레져 김관수 관장을 바라보는 동안 케이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가 소리친다.
“준비 됐나?”
그 말에 정 문호 대표가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더 이상 심장이 요동치지지도, 긴장되지도 않는 묘한 흥분감을 느끼며 현성이 영찬을 노려본다.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승리는 필수이며… 패배란 용납 할 수 없다.
그 매서운 선제 공격에 영찬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만만찮다는 생각에 조금 움츠러 든 사이에 현성이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그를 바라보며 되뇌듯이 속삭인다.
“이거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