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회 - 괴물
계절이 변하는 것과 같이… 사람이 무엇인가에 미쳐 있을 때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고 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하나의 일에 매진하다 보면 어느 샌가 시간이 흘러가서 정신을 차렸을 땐 막상 그 일을 앞에 두게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성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데뷔를 결정하게 된 게 엊그제 같은데… 목표가 정해지고 나서 그것을 위해서 계속해 내달리다보니 벌써 2달이란 시간이 지나서… 5월 12일 로드원 FC의 13번째 대회를 불과 하루 앞두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 사이에 촬영을 했던 방송도 로드원 FC의 대회를 2주 앞두고서 드디어 전파를 타고야 말았다.
지선과 함께 촬영했던 추가 분량이 전파를 타게 되면서 일으킨 여파는 지난 방송보다도 훨씬 더 거대했다. 여전히 비난과 의심을 포기하지 않았던 여론도 당사자인 진희가 눈물을 흘리며 미안함을 토로하는 내용과… 그로 인해서 죽음을 맞이했던 목사의 추악한 실체. 이후 그의 딸인 아영과 그의 관계가 중점적으로 보도 되면서 단순한 케이블 방송의 영역을 넘어서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야 말았다. 그 험상궂은 외모 뒤에 숨겨져 있던 진심이 드러나며 그 드라마틱한 인생이 이후 뉴스에도 소개될 정도로 거대한 파란을 일으키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변화는 처음보다도 더 극적이고 거대하게 다가왔다. 방송 이후로 망설이고 있던 스폰서들이 선뜻 계약을 내걸었고, 여기저기서 계약을 위해 연락이 오기 시작했으니… 물론 데뷔전에 모든 신경을 쏟아 붓고 있기 때문에 약속은 대부분이 이후로 미뤄진 상황이고, 데뷔전의 결과에 따라 스폰서 제의도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 자체가 현성에게는 충분히 긍정적으로 앞날을 기대할 만 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계체량을 위해서 장충 체육관으로 향하는 길. 지난 두 달간 정신없이 달려온 길을 돌이키며 현성이 김관수 관장과 세컨으로 함께 참여한 기철, 태수를 대동한 채 KTX로 오른다. 대회는 내일이지만 격투기를 비롯한 투기 종목에는 계체량이라는 전야제가 있다. 상대가 그 기간 동안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몸을 만들어 왔는지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인 동시에 싸워도 된다는 공식적인 인가를 거치는 시간. 그 시간을 가져보는 일은 처음인지 조금 긴장한 얼굴로 현성이 KTX의 좌석을 찾아 걸음을 옮기는 동안 사람들이 웅성이며 그와 김관수 관장, 기철, 태수를 번갈아 바라본다.
“…관장님, 아무래도 우리 가족 칸은 좀 보기가 그렇지 않아요?”
김관수 관장이나 기철이나… 현성에 비하면 작은 체구라고 할 수 있지만 또 보통 사람과 비교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운동으로 단련되어 단단한 체구를 가진 두 사람에다 선수는 아니지만 하던 일 마다하고 세컨을 자청한 태수 역시 180 센티가 넘는 덩치였던지라 4명의 큼직한 대구 사나이들이 KTX를 타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특히나…
“…그게 싸다 아이가! 두시간 반임 금방 간다! 눈 좀 감고 있그라!”
가족 칸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근검절약을 내세운 김관수 관장이 눈이 신경 쓰이면 니 눈을 감아 버리란 특단의 조치를 내리자 기철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알겠어요, 관장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야… 근데 진짜 현성이 니는 어떻게 2달 사이에 몸이 그렇게 바뀌노?”
그러면서 그가 2달 동안… 78Kg이었던 체중이 84Kg까지 불어나며 전보다 훨씬 더 강해 보이는 모습의 그를 바라보며 화제를 전환하자 현성이 ‘예…?’ 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괜히 이렇게 시선이 쏠리는 것이 자기 탓이 아닌가 하고 움츠러든 모습을 보이다 그 물음에 갑자기 당황한 듯 어벙한 모습을 보이자 기철이 피식 웃으며 ‘아유, 이 순둥아!’ 하고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이래가 가서 잘 할 수 있겠나?”
그 말에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열심히 해봐야죠, 행님.’ 하고 대답하자 기철이 ‘하긴…’ 하고 웃으며 다시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영찬이 형 내랑 그래도 안면 있는데 살살 해라.”
현성이 영찬이란… 베테랑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는 기철의 말에 현성이 잘 모르겠다는 듯 생각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다시 ‘아…’ 하고 그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한다.
“살살 하믄… 못 이길 수도 있잖아예.”
긴장을 풀어주려 하는 기철의 마음이야 알지만 그래도 긴장한 것이 잘 풀리지 않는지 현성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대답하자 기철이 ‘그래, 그래!’ 하고 웃으며 그의 어깨를 한 번 더 두드린다.
그리고 네 사람이 다시 KTX에 올라 자리를 잡았을 때 좁은 좌석이 불편해 보이는 현성과 태수의 곁에서 김관수 관장과 기철이 자기들이 생각해도 이건 좀 웃기다 싶었던지 연신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이거 서울 갈 때 까지 이래 마주 보고 가야 되네요.”
허허 웃으며 태수가 어색하게 이야기를 꺼내자 맞은 편에 앉은 현성도 이렇게 기차를 타본 건 처음인지 웃음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스울 이유야 없지만…
“태수 행님… 많이 좁아 보이는데…”
“사돈 남말 하지 마라, 현성아.”
괜시리 이 덩치 큰 남자들이 사이 좋게 가족 칸에 타고 있는 것이 웃긴지 그들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지켜보던 사람들도 저도 모르게 덩달아서 웃음을 터뜨린다.
“흠흠! 암튼… 가가지고 현성아… 푸흡…”
이내 분위기를 환기해보려 김관수 관장이 입을 열지만 괜히 웃긴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던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막 관장으로써 계체량을 앞 둔 현성에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려다 웃음이 터진 것이 조금 창피했던지 김관수 관장이 만만한 기적을 바라보며 버럭 소리친다.
“얌마! 니가 자꾸 가족석 얘기 하니까…!”
“저 한 번 밖에 안 그랬는데요, 관장님!”
억울하다는 듯 기철이 항변하자 김관수 관장이 다시 버럭 소리친다.
“한 번이든 두 번이든 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이야?!”
그 외침에 순간 기철과 현성이 동시에 크흡… 하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린다. 가끔씩 김관수 관장이 땡깡을 부릴 때가 있는데 이 날이 바로 그 날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워낙에 사람이 좋고 또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그럴 때 마다 큰 웃음을 만들곤 했지만 오늘은 정말로 참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인 채 웃음을 참는 동안 김관수 관장도 ‘왜 내 말이 틀맀나! 태수야!’ 하고 지원군을 요청하자 참고 있던 태수가 ‘마, 맞심다! 관장님!’ 하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대답한다.
“기철이 이 자슥! 빨리 사과 안 드리나…!”
중년의 귀여움이 뭔지 보여주겠다 결심이라도 한 듯 김관수 관장이 기철을 째려 보자 태수가 웃음을 꾹 참고 그를 거든다.
“죄송합니다, 관장님… 괜히 가족석 얘길…”
큭 하고 말하다 말고 기철이 웃음이 터지자 김관수 관장도 정색 하려던 표정이 이내 흐트러지고 만다. 결국은 다시 그도 웃음을 터뜨리며…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에서 김관수 관장이 정말로 그런 게 아니라 현성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듯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 현성아. 긴장은 좀 풀맀나?”
그 말에 현성이 이게 다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단 것을 깨닫고는 ‘아…’ 하고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두 달 넘게 김영찬 비디오 보고 준비 단디 했다. 걱정 하지 마라. 지든, 이기든 노력은 배신 하지 않는다.”
이내 그가 스승답게, 팀 토네이도의 단장 다운 면모를 보이자 현성이 그의 말을 믿겠다는 듯 ;예, 관장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무려 두달이라는 시간을… 웨이터 생활을 그만두고 체육관에서 살다시피 한 현성이었다. 대부분의 돈은 몸을 불리는데 투자를 했단 것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독스럽게 먹고 트레이닝 하고, 먹고 트레이닝 하고를 반복하던 게 그와 김관수 관장이다. 그 기간동안 얼마나 독하게 트레이닝을 했는지는 태수나 기철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바… 그들을 보며 훈훈하게 웃음 짓던 기철이 이내 크윽 하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관장님! 진짜 웃겨서 그캐놓고 왜 포장 해요!”
“아이, 진짜 송기철이! 니는! 콱 마! 잘 포장해놨드만 닌 또 그걸 뜯나!”
그 외침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만다. 정신없이 웃고 보니… 어느 샌가 KTX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뭇 긴장했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한결 마음이 편안한 가운데 티격태격 하는 김관수 관장과 기철의 모습이… 마치 싸우러 간다는 생각보다도 어딘가로 여행을 떠난다는 기분이 들었던지 현성이 그가 움직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흠! 아무튼… 체중은 미달이니까네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명심 또 명심해라, 현성아.”
그러는 동안 김관수 관장이 이제 장난은 그만치고 너무 긴장을 풀어서도 안 된다는 듯 그의 주의를 다시 이끈다.
“상대는 평균 체중이 90에서 100킬로 사이가 나가던 아라. 그걸 감량해가 오늘 계체하고, 막상 내일 케이지에 올라가면 계체한 체중보다 높게 나갈거라. 힘이 그만치 좋다 이기다.”
기본적으로 격투기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부분이 있다면 ‘체급’일 것이다. 체중이 모든 것을 다 이야기 해주지 않지만 격투기 특성 상… 물론 초창기 격투기는 호이스 그레이시와 같이 작고 날렵한 체구로도 얼마든지 거구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일이 가능했다. 현대의 격투기는 그때와는 양상이 다른 종합화가 되면서 똑같은 조건에 놓인 두 선수가 체중만 다르다면 체격과 체중이 큰 쪽이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그 가장 큰 역할이 그라운드에 대한 이해가 있느냐, 없느냐… 바로 이것이었는데 평소 체중의 차이를 현성이 극복해내기엔… 압도적으로 불리한 부분이 바로 그라운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란 것이었다.
물론 내내 기철과 함께 디펜스를 연습하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그라운드 게임이 어떤 것인지 체험해보긴 했지만 그라운드는 그렇게 쉽게 늘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그라운드는 애시당초 김영찬과의 데뷔전에서 김관수 관장이 그린 밑그림에 포함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고 말이다.
“예. 최대한 접근은 못하도록…”
“그래, 그기다. 평체 차이 때문에 파워는 밀릴 수 있어도 타격으론 절대로 안 밀릴끼다. 영찬이가 경력이 좀 되고 기본적으로 아마 레슬러 출신이라기 파워도 있고, 저돌적이긴 한데 리치가 짧단 말이다. 힘은 더 좋을지 몰라도 스탠딩서는 니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니까네… 그거를 잘 잡아야 되는 거 명심해두고.”
결국 이 싸움은 현성의 타고난 거리를 영찬이 따라잡느냐… 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김관수 관장의 말에 현성이 웃다가도 다시 긴장을 불러일으킨 듯 조금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기철이 곁에서 바라보며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조금 불안한 얼굴로 후배를 바라보다 이내 그의 어깨를 다독인다.
“영찬이 형이 뭐라 캐야 되나… 아마 레슬러 출신이라가 테이크 다운이랑 그라운드서 개비기는 잘 할 거라. 그런데 모션이 주지시떼로나 삼보, 유도 같은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 밀착 상태에서 다리 잡고 원 핸드 테이크 다운으로 들어오기 보다는 아마 거리를 두고 대놓고 태클로 들어올 확률이 높을거라. 절대로 그 거리를 주면 안 돼.”
그리고 그 역시 두 달의 기간 동안 계속해서 연구하고 분석하던 영찬의 패턴을 꺼내며 현성에게 승리를 위한 포인트를 짚어 준다. 김관수 관장과 기철 모두 평소에는 즐겁고 유쾌한 사람들이지만… 일에서는 분명한 기준이 있는 프로들이었다. 그 사실에 현성이 안도와 동시에 감사를 느끼며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명심할게예. 절대로… 못 들어오게.”
그러면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이 승리가 발판이 되어서 그 꼬이고 꼬인 인생이 바로 풀려나길 기도할 수밖에. 후우 하고 숨을 고르며 현성이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린다. ?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들 속에서 그가 문득 혜주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이 났던지 핸드폰을 꺼내들자 역시나 혜주에게 연락이 와있다. 그 모습에 현성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웃음과 함께 눈치를 살피며 답장을 보내자 김관수 관장이 ‘혹시 니 거사 앞두고 힘 뺀 건 아니제!’ 하고 짓궂은 얼굴로 물음을 던진다.
“예?”
하지만 순진하게도 그게 뭔지 모르고 현성이 ‘무슨 말씀이신지…?’ 하고 물음을 던지자 되려 민망해진 김관수 관장이 ‘어,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자 기철과 태수가 푸학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혜주 누나랑 잘 지내고 있나 물어보신거다.”
기철이 이렇게 즐거울 수 없다는 듯 유쾌한 얼굴로 이야기를 꺼내자 그제야 이해를 한 듯 현성이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가 웨이터를 그만두고 난 이후… 혜주도 곧 가게 일을 그만두었다. 물론 걱정은 있었지만 그녀가 장담했던 대로 먹고 사는데엔 전혀 지장이 없었던 모양이다. 다만 그녀가 일을 그만두고 차리려고 했던 네일아트 샵도 포기한 채 그의 뒷바라지에 힘을 쓰고 있단 것이 여전히 미안한 사실이기도 했지만.
“예, 잘 지내고 있어예…”
이미 토네이도 짐에서도 다정하기로 소문난 커플이다 보니 그 물음이 무색하지 않겠는가? 그와 함께 있고 싶어 예린에게 개인 PT를 받으며 팔자에도 없는 운동을 한다 투덜거리는 그녀이지만 김관수 관장이나 기철, 태수 모두가 겉으로 보기엔 까칠해 보여도 속은 여린 그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부끄러워 하는 현성을 보며 흐흐 웃음 짓자 현성이 무어라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 그저 쑥스러움 가득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인다.
“혜주는 언제 오노? 내일 예린이랑 같이 오나?”
그러다 그가 김관수 관장의 물음에 ‘아, 예.’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부럽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던 기철이 낄낄 웃으며 대답을 거든다.
“내일 예린이 학교 끝나자 마자 같이 온다 카네요. 이제 둘이 베프잖아요.”
“와? 기철이, 베프 빼앗겨가 속상하나!”
태수가 껄껄 웃으며 한 마디를 던지자 왠만해선 당황하지 않는 기철이 ‘예? 에이, 아입니더! 행님!’ 하고 크게 손사래를 친다. 그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매번 당하다 뭔가 낌새를 차린 듯 껄껄 웃으며 ‘기철아!’ 하고 소리친다.
“니 그카다 아청법에 잡혀간데이.”
“…관장님, 그런 거 아니거든예? 가랑 내랑 운동을 같이 몇 년 했는데…! 그냥 동생 같은 압니다! 키도 멀대 같이 크고 가시나가 뭐 여자 같은 구석도 없고… 말보다 주먹 먼저 나오고 그카는데 누가 좋다 캅니까?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들… 아 참말로!”
당황한 듯 평소보다 빠르게 말을 쏟아내는 그 모습에 현성마저 큭 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기철이 ‘아, 현성아! 니 까지 와 카노!’ 하고 버벅 거리며 소리친다. 그 모습에 김관수 관장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기철의 어깨를 두드린다.
“교복 입은 아는 아직 지켜줘야 된데이.”
“와! 진짜…! 내 환장하겠네요! 관장님, 저는 좀 작고 여성스러운 아를 좋아한단 말입니다! 예린이는 진짜 아니거든요?!”
극구 부인하는 기철의 모습이 되려 수상한 가운데… 보기완 달리 수다 삼매경인 덩치 큰 남자들의 모습에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이 덩달아 웃음이 터진 듯 미소 짓자 기철이 ‘아 쪽 팔려!’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우리 좀 조용히 가요, 관장님. 예?”
“자, 봐라 현성아. 이런 식으로 피하란 말이야. 김영찬이가 내같이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카면 이런 식으로 거리를…”
“진짜 관장님 가끔씩 못된 거 아십니까?”
김관수 관장의 창의적인 가르침에 기철이 그저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듯 허탈한 웃음과 함께 이야길 하자 현성이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웃음을 터뜨린다. 너무 긴장되고 떨릴 줄 알았던 것과 달리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즐겁기 그지 없다.
“…다음에… 다 같이 어디… 놀러 같은데 가도 좋겠네예.”
아마 이것이 내일 데뷔전을 위한 계체량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을지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는 듯 현성이 이야길 꺼내자 태수가 ‘그러게 말이다!’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기차는 처음 타보는 건데… 암튼 좋네예.”
썡썡 지나가는 풍경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 모든 것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듯 그의 말에 태수가 ‘왜? 니 수학여행…’ 하고 물음을 던지려다 아차 하고 입을 다문다. 그 모습에 현성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동안 김관수 관장과 기철이 힐끔 서로를 바라본다.
“우리는 놀러 같은 거 없다, 현성아.”
그리고 기철이 옆 자리에 앉은 현성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 하자 현성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대신에 우리는 여름 전지훈련 간다 아이가! 장난 없으니까네 니 기대해도 된다!”
마치 만담 콤비처럼 김관수 관장이 바로 말을 잇자 현성이 그건 몰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본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분위기는… 마치 가족처럼 그를 챙겨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들에 감사한 마음으로 현성이 미소 짓는 동안… 즐거운 기차 여행은 어느 샌가 KTX가 서울역에 당도하자마자 끝이 나고 현실로 돌아온다.
“…뭐 이래 많아요…?”
우르르 몰려서 내리는 사람들도 사람들이지만 내리고 나서 붐비는 서울역에 기가 질린 듯 현성이 조금 움츠러든 얼굴로 이야길 꺼내자 기철이 ‘형님이 손 잘 잡고 있으니까 길 안 잃는다!’ 하고 그의 엉덩이를 토닥인다. 그 모습에 현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은… 항상 기피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피하고 싶지도 않단 생각이 든 듯 어색한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곧…
“현성씨!”
멀리서 그를 알아본 듯 낯익은 음성이 들려온다. 그들을 장충 체육관까지 데려다 주러 나온 지선의 목소리에 현성이 고개를 돌리자 봄날처럼 싱그러운 그녀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서있다. 지난 2월에 본 것이 마지막.
그 이후로는 방송이 방영되고 나서 전화로 연락을 한 번 한 게 마지막인지라 오랜만에 보는 지선이 반가운 듯 그녀를 따라서 손을 흔들던 현성이 순간 멈칫 한다. 여전히 청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캐주얼한 복장을 한 그녀의 곁에 서있는 잘 생긴 남자의 모습에 현성이 여기서 그를 만날 줄은 몰랐다는 듯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민욱이 ‘뭘 쪼개냐!’ 하고 마찬가지로 씩 웃으며 팔짱을 낀 채 그를 향해 다가온다.
김관수 관장이나 기철 역시 여기에 이민욱이 같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는 듯 힐끔 그들을 번갈아 보는 동안 지선이 그와 함께 토네이도 짐 식구들 앞으로 다가오며 ‘오랜만이에요!’ 하고 반갑게 인사 한다.
“아… 예, 피디님.”
그리고 현성이 지선의 인사를 받으며 힐끔 민욱을 바라보자 민욱이 괜시리 뻘쭘한 듯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먼저 김관수 관장과 기철에게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한다. 아마 안면이 있는 듯… 그 인사에 김관수 관장과 기철이 ‘민욱이 오랜만이네! 잘 지냈나!’ 인사를 건네자 민욱이 씩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저거, 저 자식 때문에 반 은퇴 상태잖아요.”
그 말에 김관수 관장이 으하핫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아… 그때…’ 하고 머리를 긁적이자 이내 민욱이 장난이라는 듯 웃음과 함께 ‘시간 늦기 전에 다 같이 가시죠!’ 하고 그들을 이끈다. 뒤 끝 없는 그 모습에 현성이 어색하게 웃음을 띤 채 금이 간 턱과 옆구리 부상이 모두 나은 듯 쌩쌩 해보이는 민욱의 뒤를 따르는 동안 지선이 그를 향해 미소 짓는다.
“내일 대회 준비는 잘 됐어요?”
오랜만에 보는 그가 조금은 어색한 듯 그녀의 물음에 현성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그냥… 열심히 준비 했심다. 예… 도와주신 덕분에… 더 열심히 해야 하니까…”
고맙다는 이야기를 바로 하진 못하고 은근히 돌아가는 그 수덕한 모습에 지선이 ‘그렇구나.’ 하고 후후 웃음 짓는 동안… 이내 민욱이 ‘야! 장현성!’ 하고 그를 부른다.
“너 여자 친구도 있다면서 우리 누나한테 작업 걸래? 우리 지선이 누나 세컨드 되는 건 내가 용납 못한다! 메인이면 메인이지, 어딜…!”
킥킥 웃으며 그가 장난스럽게 소리치자 현성보다도 지선이 더 화들짝 놀라 ‘이민욱 이 똘아이 자식이!’ 하고 울컥 소리를 지른다. 그 외침에 민욱이 푸핫 웃음을 터뜨리며 ‘어르신들 계신데 왜 이래, 누나?’ 하고 고개를 흔들자 지선이 김관수 관장과 기철, 태수의 모습에 얼굴을 붉히며 ‘죄, 죄송해요!’ 하고 소리친다.
“아니, 뭐… 우리한테 죄송할 거 까지야… 안 글나, 현성아?”
김관수 관장 특유의 중년의 귀여움이 빛을 발하자 지선도 웃음이 터진 듯 힐끔 현성을 바라본다. 따스한 봄날처럼 사람들 모두가 옅은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것만 같은 그 모습에 현성이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 역시 봄날처럼 화사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서울역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은 듯 큼직한 밴의 모습에 김관수 관장과 기철도 깜짝 놀란 듯 ‘이거…?’ 하고 물음을 던지자 지선이 ‘저 힘 좀 썼어요!’ 하고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X채널에서는 현성 씨가 슈퍼맨 못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대신 촬영이나 좀 잘 해오라고…”
내심 백스테이지나 계체량을 비롯해서 또 방송으로 내보낼 부분을 찍어야 한다는 듯 한 그녀의 말에 토네이도 짐 식구들이 모두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외로운 파이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파이터만이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 룰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김관수 관장이 반드시 이 데뷔전에서 이겨야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듬직한 제자의 어깨를 툭툭 친다.
“자, 그라몬 가보자! 현성아!”
그 외침과 함께 지선이 직접 운전을 하겠다는 듯 운전석에 오르는 동안 민욱이 잠깐 차에 오르기 전에 할 말이 있다는 듯 ‘장현성!’ 하고 그를 부른다. 그 부름에 김관수 관장과 함께 차에 오르려던 현성이 멈칫하자 김관수 관장이 잠깐 이야기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차에 오른다.
“…뭐 할 말 있나…?”
여전히 어색한 듯 현성이 물음을 던지자 민욱이 ‘뭘 그렇게 뻘쭘해 하냐?’ 하고 덩달아 뻘쭘한 듯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순간 웃음이 터진 듯 그가 그를 바라보며 ‘잘 하라고.’ 하고 이야기 하자 현성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뭐, 지금 너한테 진 놈이 잘 하라 그러니까 꼴 받냐?”
그리고 민욱이 처음 봤을 때처럼 그를 도발하려는 듯 이야기 하지만 이상하게 끄때처럼 그렇게 밉지만은 않다. 그 모습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그 정도는 아닌데.”
그때와 달리 느긋한 모습으로 대답하자 민욱이 ‘참 내…’ 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웃음기 섞인 그 모습에 현성이 오내지 모르게 그가 알고 지내던 녀석들보다도 더 오래된 친구가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며 ‘고맙다.’ 하고 이야기 하자 민욱이 됐다는 듯 손을 흔들며 걸음을 옮긴다.
“니가 제대로 해야 내가 평가절하 받은 게 아니란 걸 사람들이 알 거니까, 그래서 응원하는거다! 짜식아!”
혜주와 마찬가지로 어쩐지 솔직하지 못한 그의 말에 현성이 그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민욱이 ‘그럼 가보자!’ 하고 지선의 옆자리에 먼저 오르자 현성이 싸움과는 확실히 뭔가가 다른 듯 한 기분을 다시 느끼며 밴에 오른다. 이토록 응원 받는 싸움이 있던가 미소를 띤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