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58화 (58/281)

- 58 회 - 괴물

몇 주만일까? 선수가 되겠다 결심했던, 그리고 현성의 기억에서 가장 많이 울었을 그 날을 떠올리며 현성이 조금 긴장한 듯 굳은 얼굴을 하고서 휴 하고 숨을 내쉰다. 양 손에 아영이가 좋아한다는 초콜릿과 과자를 한 아름 사들고… 웨이터를 그만 둔 이후로 처음 셔츠를 입고 그 위로는 또 난생 처음 입어보는…

“치, 니 내랑 있을 때 보다 더 긴장한 것 같네!”

혜주가 골라준 투 버튼 재킷까지. 여러 가지로 지금 상황이 어색한 듯 ‘맑은터’ 앞에 멈춰선 그가 곁에서 함께 온 혜주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아니에요.’ 하고 고개를 흔들며 그녀의 어깨를 슬쩍 끌어 당겨 본다. 그 손길에 이내 까칠하던 얼굴의 혜주도 괜시리 심술을 부려본 듯 살짝 웃음과 함께 다소곳하게 가방을 들고 그의 곁에 나란히 서본다.

매번 보던 야한 홀복이 아니라 까만색 자수가 놓여진 카라에 파란색 원피스를 걸친 그녀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위로 걸치고 있는 까만색 코트가 무척이나 단정하고 여성스러워 보이는지라 현성이 봐도 봐도 기분이 좋은지 그녀를 향해 연신 미소 짓자 또 부끄러워 진 듯 혜주가 ‘ 자꾸 보고 웃는데…!’ 하고 그를 쏘아본다. 하지만 그게 너무나도 기분이 좋은 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인지 그녀가 ‘치…’ 하고 이내 팔짱을 끼자 현성이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듯 혜주를 향해 이야기 한다.

“누나랑 같이 있으니까… 더 긴장 되는 것 같아요.”

그 말에 또 혜주가 ‘내가 모!’ 하고 따지듯이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알지 않냐는 듯 옅은 웃음을 짓는다. ‘홍홍’ 하고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 그녀가 그 팔을 꼭 안고서 이제는 봄기운이 내려 앉아 여기 저기에 살며시 꽃봉우리들이 꽃을 피워가기 시작하는 모양을 보며 이야기 한다.

“가는 여기서 계속… 지내고 있는 거가…?”

그녀로 아영의 사연은 이미 전해 들었고, 그 가슴 아픈 사연에 눈물까지 보였던지라… 현성과 마찬가지로 꼭 한 번 만나서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내심 꽃이 피고 있긴 하지만 외지(外地) 마냥 적막한 건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조금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꽃이 피고, 차가운 바람도 가라앉았고, 햇살은 따스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맑음터는 을씨년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물론 그곳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장소들이 그러하겠지만.

“벌써 2년… 넘게 지내고 있으니까.”

그 대답에 혜주가 저도 모르게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인간적으로 사연이 딱하기도 하지만 같은 여자로써… 이런 곳에서 벌써 몇 년이나 살고 있단 것이 너무나도 가슴 아픈 듯 금방 또 글썽한 눈을 바라보며 현성이 괜찮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다독인다.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아영을 다시 만나보고, 정숙자 원장과 이야기를 나눠서 도움을 방향을 결정 하는 것으로 시작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에 드가면 아마 지선 피디님이랑 다 같이 있을 거에요.”

“응, 빨리 드가자! 나도 가 빨리 보고 싶다…”

원래 낯가림이 심하고 까칠한 성격이다 보니 아영이에게 잘 해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전 날 밤에 걱정을 하던 그녀이기도 했지만 막상 맑음터에 오고 나니 그런 생각도 들지 않는 모양이다.

“응. 드가요.”

항상 자신은 까칠하고 못된 여자라고 하지만 곁에서 보면 절대로 그게 아닌 그녀의 모습에 그가 다시 웃음을 터뜨리자 혜주가 ‘뭐… 왜 자꾸 웃는데…!’ 하고 얼굴을 붉히며 그의 팔을 꼭 끌어안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기분 좋은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봄의 햇볕보다도 따스한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현성이 함께 걸음을 내딛는 동안… 그 전에 연락을 받고 먼저 와있던 지선이 맑음터 안으로 들어오는 그들을 바라보며 ‘여기에요!’ 하고 손을 흔든다. 이제 촬영을 대부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면 보기 힘들 그녀의 모습에 현성이 반가운 듯 웃음 짓자 혜주가 이내 옆구리를 툭 찌른다.

“…그런 거 아닌데…”

“방심하지 말라 카잖아.”

유독 지선에게는 질투심을 여지 없이 드러내는 그 모습에 현성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혜주와 달리 오늘도 편안한 차림으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지선이 두 사람의 다정해 보이는 모습에 왠지 모를 웃음을 짓는다.

“…술 많이 사두길 잘했네.”

그 날 혹시나… 그 전 촬영에서 그랬던 것처럼 함께 캔 맥주나 마실 시간이 있을까 마련했던 맥주는 결국 홀로 모두 싹 비워내야만 했지만. 그것이 씁쓸하다기 보다는 그의 일이 잘 풀려가고 있다는 생각 덕분인지 그녀가 ‘다 잘 된 거지, 뭐.’ 하고 웃음을 띤 채 손을 흔든다.

“오랜만이에요. 혜주 씨.”

그리고 두 사람이 그녀 앞에 섰을 때… 술집 여자라곤 생각도 할 수 없는 청순하고 수수한 차림의 그녀가 타고난 아름다움을 내뿜자 지선이 조금 기가 눌린 듯 움츠러든 모습으로 인사를 건넨다. 그 조심스럽고 상냥한 서울 말씨에 혜주가 또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렇게 꾸며 입고, 현성의 앞에서 싸움닭처럼 틱틱 거리고 싶진 않았던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자 지선이 ‘오늘 정말 예쁘시네요!’ 하고 어색한 웃음과 함께 칭찬을 건넨다.

“내 원래 이뻐요.”

그리고 새침하게 혜주가 대답하자 지선이 그 대단한 자신감에 내심 부러우면서도 한 편으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현성이 두 여자의 미묘한 대치가 조금 재미있다고 생각했던지 미소를 짓다가도 그럴 시간이 없다 생각한 듯 한아름 사든 과자와 선물들을 보이며 물음을 던진다.

“아영이는… 안에 있어예…?”

그 물음에 지선이 아…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혜주와 함께 있는 것이 못내 신경이 쓰였던 지선이 그게 오히려 낫겠다는 듯 ‘안으로!’ 하고 그들을 안내한다. 이미 그녀는 며칠 전부터 맑음터에서 함께 생활을 하며 아영과 친해지고 있다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현성이 힐끔 그녀를 바라보며 조금 긴장한 얼굴로 ‘잘 지내고 있심까…?’ 물음을 던지자 지선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아영이 오늘 현성씨 온다는 소리 듣고 샤워도 하고 제일 이쁜 옷도 골라 입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 말에 현성이 ‘아…’ 하고 조금은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영이가 천사 오빠 언제 다시 오는지 몇 번이나 물어본 지 모를거에요. 수도 없이 물어 봤는데…”

후후 웃으며 지선이 다시 말을 잇자 혜주가 ‘천사…’ 하고 웃으며 그를 바라본다. 그 시선에 현성이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도 또… 그렇게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주 오지 못한 것이 미안한 듯 한숨을 내쉬자 말 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그녀가 팔을 꼭 안으며 그를 위로한다. 그 모습을 힐끔 바라보던 지선이 ‘이제 자주 오면 되잖아요.’ 하고 안으로 한숨을 삼키며 이야기 하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세 사람이 맑음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빠야!’ 하는 앳된 목소리가 맑음터 안을 울린다. 그 반가움 가득한 음성에 혜주가 ‘어?’ 하고 작은 키, 작은 체구를 가진… 그러나 어딘가 조금 멍해 보이는 공주님 원피스를 입은 아영을 바라보고는 미소와 함께 안고 있던 그의 팔을 슬쩍 놓아준다. 그리고 곧…

“오빠야!”

그를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었던지 폴짝 뛰어 안긴 아영을 안아들며 현성이 이렇게나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은 아직도 어색하고 낯선 듯 ‘아영아…’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가 온다는 소식에 구경을 나온 다른 센터 식구들이나 정원장도 그 모습에 덩달아 기분 좋은 듯 웃음 짓는다.

“잘… 지냈나?”

지선의 말대로 씻기도 깨끗하게 씻고, 좋아하는 공주님 분위기의 옷까지… 감기에 걸려 누워있던 모습과 달리 한결 말끔하고 건강해 보이는 모습에 안도 하며 그가 물음을 던지자 ‘으응! 응!’ 하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영이 그를 더욱 더 꼭 끌어안는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또래들보다 체구가 작다곤 하지만 그 적극적인 애정 공세에 현성이 조금 당황한 듯 정원장과 지선을 바라보자 두 사람이 그저 어깨를 으쓱한다.

“아영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 현성씨밖에 없어서 그래요.”

그 말에 현성이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아영이 그의 뺨에 쪽 하고 뽀뽀까지 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혜주가 ‘어…? 그러면 안 되는데!’ 하고 조금 샐쭉한 얼굴로 아영을 바라본다. 그 시선에 아영이 그제야 혜주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자신과 비슷한 차림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녀를 보고서 조금 멈칫한다. 그리고 그녀가 경계하는 듯 빤히 혜주를 바라보자 혜주가 조금 긴장한 듯 어색한 얼굴로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넨다.

“…예쁘다…”

그리고 초등학생과 다를 바 없는 아영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가깝다 여긴 듯 혜주를 보고 멍하니 감탄을 터뜨리자 혜주가 기분이 좋은 듯 얼굴을 붉히며 ‘야가 보는 눈이 좀 있네…’ 하고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예쁜 언니…”

아직도 현성을 꼭 안고 있지만 이내 관심이 혜주로 넘어간 듯 그녀가 멍하니 혜주를 바라보자 현성이 두 사람을 힐끔 바라보곤 천천히 아영에게서 떨어지려 한다. 그러나 그건 허락지 않겠다는 듯 아영이 ‘으으응!’ 하고 고개를 흔들며 다시 그를 꼭 안자 조금 난감한 얼굴로 현성이 정숙자 원장을 바라본다.

“아영이 안 그러기로 원장님이랑 약속 했어, 안했어?”

그 눈빛에 그제야 정원장이 아영을 향해 야단을 치자 아영이 시무룩한 얼굴로 그에게서 떨어진다. 그렇지만 이내 그가 든 과자보다도 그가 좋은 든 그 손을 꼭 잡고 ‘아영이 안 캤는데…!’ 하고 모른 척 하자 빤히 보이는 그 모습에 현성과 지선, 혜주가 함께 웃음을 터뜨린다.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소녀. 타고나기를… 남들과 달리 태어났지만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그 모습에 혜주가 이런 아이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 게 믿기지 않는지 웃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착잡한 듯 그녀를 바라본다.

“안녕, 아영아.”

그리고 그녀가 먼저 아영에게 손을 내밀자 아영이 ‘와…’ 하고 감탄을 터뜨리며 반짝반짝 빛 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동경의 빛이 확연한 그 눈빛에 혜주가 ‘왜…’ 하고 어색하게 물음을 던지자 아영이 ‘예쁜 언니…’ 하고 현성의 손을 꼭 잡는다. 오히려 경계하는 듯 그의 손을 잡은 모습에 혜주가 ‘언니 나쁜 사람 아닌데!’ 하고 새침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아영이 ‘아영이도 안 나빠요!’ 하고 고개를 흔든다.

“언니가 인사 했는데 니 언니한테 인사도 안 해주나?”

그리고 눈높이를 맞춘 혜주가 아영에게 한 소리를 하자 현성이 역시나 그 성격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자… 사람들을 무척이나 경계하던 아영이 혜주의 기에 눌린 듯 ‘아, 안녕… 예쁜 언니…’ 하고 수줍게 인사한다.

“그래, 인사 앞으로 잘 해야 된데이.”

이래 저래 여자 아이들을 다루는 일에는… 익숙한 듯 혜주가 인사하는 아영의 머리를 쓰다듬자 아영이 조금 들뜬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하는 천사 오빠도 있고, 또 무척 예쁜 언니를 봐서 그런지 기분이 좋은 듯 아영이 슬그머니 혜주의 옷을 어루만지자 혜주가 ‘니도 이런 거 좋아하나?’ 하고 다시 눈을 맞추며 물음을 던진다.

“…언니 옷도 이쁘고, 얼굴도 이뻐요…!”

그리고 아영이 혜주를 그렇게 경계하지 않는 듯 그녀에게 호의를 보이자 혜주가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음…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니도 이쁘네.”

그 말에 아영이 ‘아… 아닌데… 아영이 안 이쁜데…’ 하고 배시시 웃으며 수줍게 몸을 꼬자 혜주가 ‘니 내랑 내기 할래?’ 하고 까칠한 목소리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손길에 아영이 조금 움찔 하다가도 ‘아영이 이뻐요…?’ 하고 현성을 힐끔 바라보며 물음을 던진다.

“응. 이쁘다.”

두 사람의 어울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현성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자 아영이 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히히히 하고 좋아하는 그 모습에 지선이 나도 꾸며 입고 왔으면… 하고 조금 섭섭한 듯 그들을 바라보는 동안 정원장이 ‘인사는 이만하고 안으로 들어오시죠!’ 하고 그들을 이끈다.

“오빠야… 아영이 안보고 싶었어…?”

정원장의 방으로 향하는 내내 그 손을 붙잡고서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그 모습에 현성이 대답 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영이 또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몸만 어른일 뿐 아이와 다를 바 없이 순수하고 해맑은 그 모습에 그가 그 날 느꼈던 그 여운이 다시 살아남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본다. 그 날 떨쳐냈던 깊은 상처들… 그리고 다시 등에 업은 감동까지. 오늘만큼은 내내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아영아.”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현성의 부름에 아영이 그 손을 꼭 잡고서 발그레한 얼굴로 ‘응, 오빠야!’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에게만큼은 천사같은 그 얼굴을 바라보며 현성이 정원장의 방 앞에서 그녀에게 이야기 한다.

“내… 원장 선생님이랑 조금만 이야기 하고 오께.”

그 말에 아영이 ‘아… 안 해! 나도 같이 갈래!’ 하고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든다. 잠시도 떨어지기 싫은 듯 발을 동동 구르는 그 모습에 현성이 조금 난처한 듯 웃음 짓자 이내 지선이 ‘아영아…’ 하고 그녀를 부른다. 그러다 이내 혜주가 ‘그카면 못 쓴다!’ 하고 달래는 사람들과 달리 엄하게 아영을 바라보며 이야기 하자 아영이 다시 움찔 한다. 오늘 처음 보는 예쁜 언니의 목소리에 조금 움츠러든 듯 그녀가 금방 또 울 것 같은 얼굴을 하자 혜주가 어느 샌가 자연스럽게 아영의 옆에 서서 ‘자, 빨리 언니 손 잡아라!’ 하고 손을 내민다.

“조금도 못 기다리면 천사 오빠야기 니 싫어한다.”

그 말에 아영이 기겁을 하며 고개를 흔든다.

“오빠야! 내 싫나…?”

금방 울 것 같이 고개 흔드는 그 모습에 현성이 여전히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자 혜주가 ‘맞제? 말 안 듣고 그카면 아영이 얼굴도 못 생겨지고 싫제?’ 하고 느긋한 얼굴로 물음을 던진다.

“응…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온다.”

그리고 다시 달래는 그 목소리에 아영이 그러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아영이 잘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오빠야 그카면 안 된다…”

그 손을 꼭 잡은 그녀의 간절한 음성에 순간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가 웃으며 훈훈하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애틋하고 간절한지 모른다. 왠지 모르게 그게… 이 넓은 세상에서 그녀가 믿는 유일한 사람이 그라는 생각이 들자 덩달아 사람들이 숙연해진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동안 현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절대로 안 칸다. 걱정 마라.”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아영이 안도한 듯 그래도 뭔가 서운한 듯 그 잠시가 싫어 ‘응…’ 하고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현성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저기 예쁜… 언니랑 아영이 좋아하는 과자랑 같이 먹고 있어. 알았지…?”

그제야 아영이 ‘응! 오빠야, 빨리 와!’ 하고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곧 현서이 혜주에게 부탁한다는 눈빛을 보내자 혜주가 걱정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아영의 손을 잡는다.

“아영이 과자 뭐 좋아하는데? 나는 바나나킥.”

“나는… 감자 과자 좋아하는데… 바나나도 좋아해요.”

보기와 다르게 너무나도 아영을 잘 다루고 있는 모습에 현성이 안도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지선과 함께 정원장의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참 들어오기 힘들죠?”

후후 웃으며 정원장이 그래도 아영이가 이렇게 좋아한 적이 없다는 듯 이야기 하자 현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그와 정원장이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든 지선이 그들을 바라보며 ‘나도 좀 예쁘게 입고 다닐 걸 그랬나봐요.’ 하고 서운함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 하자 정원장이 ‘어머, 지금도 예뻐요!’ 하고 후후 웃음 짓는다.

“같이 온 아가씨는 여자친구…?”

그리고 그녀가 다시 현성에게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어색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친구가 정말 예쁘네요! 우리 현성 씨 능력 있는 남자네!”

감탄을 터뜨리는 그 모습에 현성이 다시 어색하게 웃음을 띤 채 연이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그를 보며 정원장이 미소와 함께 말을 잇는다.

“전에 봤을 때 보다 한결 좋아 보여요.”

“…아영이 덕분에예.”

그리고 그가 여전히 묵직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정원장이 그 모습에 무척 기분 좋은 듯 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현성이 밖에 기다리고 있는 아영을 생각하면 그렇게 오래 시간을 뺄 수는 없다 생각한 듯 정원장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본다.

“아영이… 여 계속 있을 수는 없지예?”

아마 센터에서도 문제가 되는 게 있다면 그런 부분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회로 나와야 하고, 이제 그녀도 슬슬 사회 적응 훈련이 필요한 시기다.

“네… 아영이 달리 갈 수 있는 곳이 없으니까… 보호자인 아영이 어머니도… 센터에서 생활을 하고 계시거든요. 슬슬… 사회 적응 훈련도 시작하고… 관련 업체 쪽에서 일도 배워보고 하는 활동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낯을 심하게 가리고 경계도 심하니까요. 몇 번이나 보내본 적이 있긴 한데… 아영이가 안에서 버티질 못하더라구요. 그런데 이제 계속…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현실적인 부분이 이제 장애가 될 것이다. 한 센터에서도 이렇게 오랫동안 데리고 있기는 힘이 드니까 아마 이제 센터를 전전해야 하지 않을까…? 그 걱정에 현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바라본다.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그의 눈빛에 정원장이 가장 필요한 건 당장 사회로 내보는 것보다 오랫동안 미뤄졌던 재활이 우선이라 싶었던 던지 이야길 꺼낸다.

“여력이 되면 최우선적으로 심리 치료도 확실히 병행을 할 필요가 있죠. 센터에서 진행하는 것만으론 무리가 있고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기 힘드니까… 지금은 안정되어 보여도 사실은 그런 게 아니니까. 현성씨를 천사라고 생각하고 믿고 따르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거에요.”

그녀의 상세한 설명에 현성이 ‘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심리치료… 그녀가 입었던 상처는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얼마나 걸릴지도 몰라요. 사실 아영이 같은 경우는… 너무 상처가 커서… 대체로 친가족에게 그런 일을 당한 아이들은 그렇거든요. 아영이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몸에 입은 상처도 상처지만 가장 믿어야 할 사람에게 배신 당한 게 무척이나 크죠. 날 지켜줘야 할 사람이 내 몸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에 대한 신뢰 자체를 가지지 못하는 거죠. 그건 또 관계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단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거구요. 생활 자체가… 불가능 한거죠.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을, 이제는 어머니에게도 똑같이 느끼고 있으니까.”

한숨과 함께 이야기 하는 정숙자 원장의 말에 현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들을… 그래.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을 천사라고 여긴다는 것 자체가 그녀가 받았던 상처가 얼마 큰 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일 것이다. 더불어 다시 아영이 끌려 가서 그 일을 다시 당했을 때. 그때는 그녀의 어머니마저도 가족이 아니라 미움으로 대상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제일 먼저 해야 할 거는… 심리 치료네예.”

“그렇죠. 그런데… 문제가 되는 건 단순히 심리 치료만 참가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걸… 언제 끝이 날 지 모르는 그 일을 곁에서 계속 지켜보며 지지해주고, 마음의 상처를 덜어 낼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한거죠. 아영이에겐… 사람들과의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가족이 필요한 거에요.”

그 말에 현성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를 도와야 한다는 단순한 결심을 지나서… 이제 그가 무엇을 해줘야 할 지도 명확하게 보이고 있다.

“내가… 그런 거를 잘 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최소한 아영이 치료 받는데 필요한 거는… 아낌 없이 진행 할 수 있도록 할게예.”

그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그렇게 믿지 않는… 그리고 제대로 된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현성이 그게 가능 할 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치료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부분과 여건을 채워야만 한다 결심하며 이야기를 꺼내자 정숙자 원장이 ‘내가 보기엔 현성 씨가 되게 잘 해줄 것 같은데.’ 하고 후후 웃음 짓는다.

“그건 잘 모르겠심다. 근데…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뭐든지 해볼라 캅니다.”

그녀의 생각과 달리 자신이 없으니 확신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결심만큼은 더 없이 단단하다.

“얼마가 들던지, 얼마나 오래 걸리던지… 아영이 나을 수 있으면… 내가 책임지께예.”

그 묵직한 청년의 대답에 정원장이 이야기 듣는 것만으로 든든하다는 듯 후후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성 씨 얘기니까 더 믿음직 하네요.”

정숙자 원장의 솔직한 말에 현성이 그건 잘 모르겠다는 듯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인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로 잘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목숨 이상을 걸어야 한다 결심한 채 그가 잠깐 눈을 감는다.

‘5월 12일.’

그 날 모든 것을 뒤바꿔 버리겠다 다짐하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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