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회 - 괴물
잘 될 것 같다가도 막상 마주하면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이다. 그래도 최소한 이제 혼자는 아니란 생각에 안도는 해도 결국 살아가는 것은 자신이고, 그것을 책임질 사람도 자신 밖에 없단 생각을 하며 현성이 작은 한숨을 내쉰다.
국내 격투기 무대가 그렇게 상황이 좋지 않단 것과… 그들 가운데 정말로 잘 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 물론 그것들이 불안하긴 했으나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를 불러주는 곳은 그곳 아니면… 창호나 박재운이 일을 하고 있는 암흑세계일 뿐이니까.
단지 그가 그리 원하지 않았으나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에, 이를 선택했고… 이것이 실패하게 된다면 ‘난 대체 무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앞선 불안감이 걱정을 만든다. 아영을 도와주려면, 더 이상 혜주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인가를 해내야만 한다는 그가 만든 압박감 또한.
물론 처음에 나누었던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단 점도 한 몫 거들어 주는 부분이었고. 정말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지선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후원이나 스폰서가 부족하게 된 것도 아직까지 그가 ‘확실한’ 입장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말을 고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게 설령 아무런 손익을 끼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왜곡해서 받아들이곤 한다. 아무리 그가 진실을 이야기 한다 하더라도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가두어두고 그 안에서 판단을 내리는 무리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슬픈 것은 그런 이들 혹은 무관심한 이들이 대부분이란 것이고. 그런 와중에 스폰서를 맡게 되는 것도 어쩌면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뛰어들지 못하고 재고 따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라도 장현성이 거짓말을 했고, 정말로 살인자에 불과하다면 그들에게 타격이 가게 될 테니까.
그건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가방끈이 짧은 현성이지만 충분히. 때로는 그 현실들이 무척이나 서글프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만… 결국 그것을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사람은 그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확실하게 보여줘야만 한다. 그게 살아남는 법이고, 그래야만 그도… 그리고 아영이나 혜주에게도 뭔가를 해줄 수가 있다. 그 무게감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주변에 생기고 나서 그들이 그에게 가지는 기대감들이 지금은 색다른 부담감이 되어 마음을 짓누르다보니 더욱 더 서두르게만 된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마음이 붕 뜬 채 어떻게든 그 기분들을 가라앉히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예전, 혼자 있을 때의 우울한 모습이 떠올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현성이 한숨을 내쉰다.
그런 것에는 이제 익숙하니 더 이상 상처 받을 일도, 더 이상 실망 할 일도 없었다만… 어떻게든 참고 넘길만 했다만…
“많이… 걸려요?”
‘그 애’의 일만큼은 그로써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일이었다. 카메라를 든 지선의 물음에 현성이 그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무어라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그 일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정확히… 아영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은 바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직까지 억울함이나 원망… 같은 잔여 감정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큰 쓰레기들을 치운다고 해서 잔 부스러기들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현성이 한숨을 내쉬자 지선이 또 다시 미안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도와주겠다, 잘 되게 해주겠다 호언장담했던 것 치고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확실한 게 없다보니 덩달아 한숨이 나오는지 그녀의 한숨에 이내 현성이 고개를 흔든다.
“나는 괜찮심다.”
자기 걱정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야기 하는 그의 마음에 ‘네…’ 하고 지선이 고개를 끄덕인다. 말이야 그렇지만 어떻게 괜찮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누군가를 배려하기 위해서 하는 말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인다. 두 사람 모두 서로 괜찮다, 그렇다 이야기를 하지만 분위기는 그렇게 풀리지 않자 현성이 함께 택시를 타고 가며 어색하게 고개를 흔든다.
“근데 그냥… 안 될 것 같아서요.”
솔직한 말로는 정말로 만나기 불편하고 거북스럽다. 그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시간에 묻어두기보다는 그것 역시 아영을 만났을 때처럼 어쩜 걱정하고 불안했던 것과는 달리 해결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다.
물론… 이번에는 입장이 다를 것이다. 용서 받을 일이 아니라 용서해야 할 입장인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게 용서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마냥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그렇고 영 거슬리는 것들이 많은지 망설여지는 현성이지만… 아영에게 받은 걸 생각한다면… 그도 아마 그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쩜 이렇게 나는 멍청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미 시간은 지났고, 돌이킬 수는 없다.
아직까지도 그것으로 인해서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푸는 걸 두려워 하는 마음, 움츠러 드는 마음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것을 그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배워가고 있으니까. 그가 1년 6개월간 고생을 하고 범법자란 꼬리표를 달게 된 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보상받지 못한다. 그래서 똑같이 그녀도… 어쩌면 그것보다도 가혹하게 평생 그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라 이야기 하고 싶지만 그래선 도대체 나아질 것이 없단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후…”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불안한 미래. 그리고 비교적 좋아지긴 했지만… 그 좋아진 주변 또한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보니 왠지 모를 압박감이 생기곤 했다. 그런 복잡한 기분에 마냥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닌 듯 현성이 짧게 한숨을 내쉬는 동안 곁에 있던 지선이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그를 바라본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 찾아서…”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심까…?”
“그거는… 일단은 대구에 있는 센터들 찾아가보려구요… 그 당시에 혹시라도 상담 내역들 중 비슷한 사례가 있으면… 해서 뽑아 놓은 곳들이 몇군데 있거든요. 걱정 하지마요… 어떻게든 내가 찾아볼게요!”
그를 위해서 도대체 왜 이렇게 애를 쓰는지 모르겠단 생각에 현성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바라본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이렇게까지 그를 위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텐데… 그리 생각하면 다시 또 마냥 싫다고, 거북스럽다고 피할수만도 없다.
“…가 어디 있는지 압니다.”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현성이 대답하자 그나마 지선이 희망은 보인다는 듯 ‘아…!’ 하고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에게 민감한 문제인만큼 너무 쉽게 기뻐할 수도 없고 안도 할 수도 없다. 그런 그녀를 보며 현성이 ‘근데…’ 하고 그녀를 바라본다.
“솔직히 보고 싶진 않심다. 아무리 도움 되는 일이라캐도 이만큼 시간 지났는데… 아무 것도 도움 안 되잖아예. 그냥 묻어뒀으면… 그런 맘이 있긴 하네예.”
다시 또 한숨. 그 말과 함께 던진 그의 말에 그녀가 그를 돌아보며 ‘내가 생각하기엔…’ 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아영이가 그랬던 것처럼 현성 씨도… 그러는 게 아마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정말 괘씸하기도 하고 용서가 안 되기도 하잖아요… 근데 내가 보기엔 현성 씨는… 그런 거 앙심품고 계속 원망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그게 현성 씨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들이 많고 또… 그런 인식부분을 떠나서도… 자기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머뭇거리며 이야기 하는 지선의 말에 현성이 서울 말씨는 귀에 참 쏙쏙 들어오는구나 생각하며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우습게 보이지 않았고, 어리석어 보이지 않으려 노력해왔지만 결국은… 그걸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세상 살아가기가 어렵고 힘들 뿐이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아직까지도 본인은 그런 게 아닌데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선에 스스로를 맞추려고 하고 있는지 몰랐다. 애시당초 논외의 대상으로 그들에게 배척 받아 왔기 때문에 더더욱 기를 쓰고서…
“피디님은 와 이래 내한테 잘 해주는가 모르겠네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선의 말이 맞다. 그는… 비록 남들이 꺼려할 만큼 위협적인 용모를 가지긴 했지만 천성이 그렇게 사람을 미워하는 편은 되질 못했으니까. 그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도 아직까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용서의 의미로 아영을 돕고자 결심을 한 것이니까. 그런 그의 목소리에 지선이 6mm 카메라를 들고 스쳐지나가는 택시 밖을 힐끔 바라보다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듯 웃음과 함께 고개를 흔든다.
“…그냥… 나한테는 현성 씨가 첫 방송이니까 그래서 그런가 봐요.”
물끄러미 운동화를 바라보던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피디님 말대로 할게예.”
그 말에 지선이 ‘아…’ 하고 그를 바라본다.
“나는 배운 거도 없고 무식한 사람이니까… 사실 요즘에 많이 힘들었거든예. 몸이 힘든 거는 둘째 치고 항상 혼자만 있다가… 주변에 누가 생기니까 익숙하지도 않고. 글고 그냥 몸만 건사 하면 됐는데 잘해야 된다 카는 부담감도 생기고,,, 별로 기대한 건 아니고 그냥… 한 건데 주변에서 그러니까…”
어렵사리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그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쉰다. 맑음터에서 아영을 만나고 홀로 생각하며 격투기 선수가 되기로 결심 했다. 많은 돈을 벌어서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자. 그리고 그 와중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동시에 너무나도 달라진 환경 자체가 그에겐 압박감을 주었던 모양이다. 체력적으로 버거운 것도 있을 것이고, 그 와중에 불안한 미래는 더더욱.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오히려 그 누구보다 그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지선이기에 그녀가 괜시리 울컥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로 돕고 싶단 생각은 한 가득이지만… 따로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게 지금으로썬 딱히 없다. 그도 그것을 아는 것인지 그 마음만으로도 고맙다는 듯 수덕한 웃음을 띤 채 머리를 긁적일 뿐이다.
“…당장에 돈 안 되는 건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예. 이런 소리 하면 건방져 보일지 몰라도… 이게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거니까… 꼭 잘 될 수 있도록 해봐야죠. 잘 싸우고, 잘 이기면 되는 거잖아예…? 아무리 이게 그냥 싸움이랑은 다르고 어렵다 그캐도… 맞죠…?”
그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며 그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지선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내 다시 일부러 활짝 웃음을 띤 채 ‘맞아요.’ 하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믿어준 만큼 나도 꼭… 잘 될 수 있도록 노력 할게요. 현성 씨가 어떤 맘으로 이 일에 임하고 있는지 아니까.”
그 목소리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한참 말이 없다가 가게 근처에 다다랐을 때 다시 지선을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연다.
“…대구 바닥이 좁긴 좁은가… 우리 가게 맞은편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데요.”
한숨 섞인 그 말에 지선이 ‘네?’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떻게 알고 있나… 혹시 면회라도 왔던가 생각 했지만… 그게 아니라 나오고 나서 만났던 모양이다. 그것도 바로 지척에서!
“어, 어떻게… 그런…”
“…악연인지 뭔지는 몰라도… 인연이 있나봐예.”
그런 걸 믿는 편은 아니지만 ‘그 애’와는… 어떻게 할 수 없다 생각하며 현성이 고개를 흔든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지선이 그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어느 샌가 택시가 멈춰 선다.
“…지금도 일 하고 있는가는 잘 모르겠네예… 가 밤에 일하는 거 보고는 안 갔으니까.”
고개를 흔드는 그를 보며 지선이 ‘아니에요! 이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하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를 바라본다. 단순한 취재 대상을 넘어서 인간적으로… 그가 잘 풀리는 것을 보고 싶다는 듯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안심하라 미소 짓자 현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가가 싫다 카면… 그렇게 막 그라진 마시고…”
“아… 그렇게 하지 않을 거에요.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근데… 그 사람도 아마 그럴 거에요. 마음의 짐을 안고 계속 살아가고 싶진 않을 거에요. 그런 걸 아예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버린 뻔뻔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걱정되는 부분이야 있지만 만약 지선과 같은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생각에 현성이 그 날… 우연히 마주쳐서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사과 하던 얼굴을 떠올리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게예. 나머지는 피디님만 믿겠심더.”
복잡한 생각들을 모두 다 날려 버리자. 그리고 걱정들도! 그것들을 다잡으며 현성이 한결 개운해진 목소리로 이야기 하자 지선이 오내지 모르게 짐을 덜어준 것 같은 기분에 후후 웃으며 대답한다.
“네! 부응할게요! 꼭!”